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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2

       

         

         

         

        용사 파티가 오기도 전에 격렬한 전투를 벌이고 있던 마검과 루시.

         

        사실 마검은 일방적으로 루시를 두들길 수 있었음에도 적당히 상대하고 있었다.

         

        사지가 절단나고 검을 잡아본 적이 거의 없는 루시의 기량을 끌어올리기 위해서였다.

         

        무지막지한 힘을 갖고 있기는 했지만 세련되지 않고 거칠기만 했다.

         

         

        ‘이런 수준이면 나중에 곤란해 지겠는 걸?’

         

         

        전생자 이씨 다음으로 DLC의 내용을 알고 있는 마검.

         

        자아를 가진 등장인물들 중에서 유일하게 산 채로 흐노니의 강화 재료로 소모되어 버린 탓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여신 그 미친년도 이런 부작용이 생긴 줄 몰랐겠지?’

         

         

        덕분에 순순히 마족 편에 서려던 심연은 이 뒤에 이어질 아주 맛 좋고 질 좋은 후회를 기대하며 용사를 따라다녀볼까 각을 보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린?”

         

         

        마검과 루시는 동시에 짐꾼의 위기를 알아차렸다.

         

        린에게 연결된 붉은 실이 이리저리 불안하게 흔들리고 루시는 정확하게 그가 있는 위치로 도약할 준비를 했다.

         

         

        “어디 가려고? 나랑 좀 더 놀자.”

         

        “꺼져! 내가 있을 곳은 린 옆이야!”

         

         

        마력을 이용해 땅을 박찼다.

         

        주위 지형지물을 바꿀 정도의 도약력이 가해지자 마검이 둘러놓았던 어둠이 손쉽게 찢겨나갔다.

         

         

        “와우….”

         

         

        린을 향해 똑바로 나아가는 루시의 뒷모습을 보며 심연은 감탄했다.

         

        저년 저거 이제야 정신이 똑바로 박히기 시작했네?

         

         

         

         

         

        그러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

         

        무수한 공격을 막아냈음에도 용사 파티는 루시를 뚫고서 린에게 공격을 적중시켰다.

         

        짐꾼이 쓰러지고 루시는 폭주하기 시작했다.

         

        [에스텔류 비기]

         

         

        “베어 가르기-!!!!”

         

         

        핏빛 마력을 머금은 검기가 용사 파티를 향해 날아갔다.

         

        기겁한 라인폴드가 전면으로 나서서 방패를 단단히 붙들었다.

         

        [특급 방어유술]

         

         

        “흘려보내기!”

         

         

        카가가가가각-!

         

        땅에 대고 대각선으로 받쳐든 방패를 검기가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긁었다.

         

        스킬명에 어울리지 않게 라인폴드는 검기의 힘을 정면으로 버티다 한쪽 무릎까지 꺾여가며 궤도를 틀어내는 게 고작이었다.

         

        어찌됐건 흘리기는 흘렸다.

         

        콰앙-!

         

        그러나 흘려낸 검기는 정박해 있던 범선으로 날아가 그대로 두 동강을 내버렸다.

         

        우지끈거리며 바다로 가라앉는 배를 보고 그 누구도 비명 지를 생각도 못했다.

         

         

        “더 강해졌어…?”

         

         

        마왕 토벌 때도 보지 못한 화력에 나이드리안은 경악했다.

         

        다시 준비 자세를 취하며 마력 모으기에 들어가는 루시.

         

        서서히 맺히기 시작하는 핏빛 마력을 보며 궁수는 다급하게 외쳤다.

         

         

        “티그리아! 왜 가만히 있어요? 마족과 용사를 제압해야죠!”

         

        “마족 아님.”

         

        “예?”

         

        “마족 아님 짐꾼임.”

         

        “짐꾼이건 뭐건 간에 마기가 풀풀 난다고 특히 저 녀석 양팔에!”

         

         

        아르실이 신경질적으로 외치자 마법사는 어처구니가 없는 얼굴로 성녀를 바라봤다.

         

         

        “잊었음? 짐꾼이 맨손으로 마왕의 외뿔을 만져서 신성한 관에 담은 거?”

         

         

        용사 파티 전원이 굳었다.

         

        라인폴드조차 설마 아니겠지 하는 눈빛으로 마법사를 바라봤지만, 언제나 그랬듯 티그리아는 불편한 진실을 주지시켰다.

         

         

        “권능: 마기가 사라지지 않았으니 그때 침식당한 마기도 사라졌을 리가 없음.”

         

        “하…. 이, 씨발….”

         

         

        허탈해진 아르실이 머리를 부여잡고 읊조렸다.

         

         

        “내가 무슨 짓을….”

         

         

        마기에 침식당한 동료를 신성력으로 정화시켜주지 못할망정 마족으로 몰아 공격해버렸다.

         

        심지어 그 마기는 그때 바로 치료했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자연히 마왕이 죽었으니 사라질 거라 여기고 린을 다그치기까지 했던 자신이 떠올랐다.

         

         

        “아르실! 네가 책임지고 용사를 진정시켜라.”

         

        “뭐…?”

         

        “네 부주의로 이리 된 게 아닌가!”

         

         

        라인폴드가 거칠게 일갈하자 아르실은 말문이 막혔다.

         

        언제나 신념과 확신을 갖고 움직이던 성녀는 시간을 되돌리고만 싶었다.

         

        입술은 타들어가고 침은 삼켜지지도 않았지만 아르실은 용기를 내며 방패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루시! 짐꾼을 공격한 건 내가 오해해서… 미안하다! 그… 화나게 해버린 게 이쪽이지만 이대로 대치하는 건 소모전이기만 할 뿐이니까….”

         

        “닥쳐 오른팔.”

         

        “어?”

         

         

        하도 분노를 꾹꾹 눌러 담다 보니 되려 아무 감정도 없는 것처럼 들렸다.

         

        무표정하게 피눈물을 흘리며 루시는 작게 말했다.

         

         

        “리… 짐꾼을 때린 것도 그 오른팔이고, 네가 날린 내 신체도 오른팔이고, 넌 최소한 그 오른팔부터 잡아뜯어줄거야.”

         

         

        무심코 린이라 부를 뻔했지만 마검의 충고를 떠올리고 빠르게 말을 바꿨다.

         

        이 연놈들은 린의 이름을 들을 자격이 없다.

         

         

        “협상을 원한다면 들어줄 용의는 있어.”

         

        “정말이냐?!”

         

        “일단 아르실 넌 오른팔 내놔.”

         

         

        루시는 오랜만에 보는 동료들에게 진한 애정을 드러냈다.

         

         

        “네놈들 모두 팔다리에서 한 짝씩 나한테 내놓고, 라인폴드를 넘겨.”

         

         

        당연히 전 약혼자를 되찾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라인폴드 네 글자를 입에 담는 순간, 살의가 짙어졌다.

         

         

        “…그렇다는데?”

         

         

        다같이 들은 걸 멍하니 일행에게 되묻고 앉은 아르실.

         

        나이드리안조차도 입을 벌리고 아르실을 한심하게 쳐다봤다.

         

        결국, 라인폴드가 나섰다.

         

         

        “루시에나, 우리에게 화가 난 건 당연하다. 하지만 너 역시 그간의 언행이 지나쳤음을 부정하지는 않을 터!”

         

         

        [에스텔류 비기]

         

         

        “하늘 내려찍기.”

         

        “아, 젠장!”

         

         

        라인폴드가 욕지거리를 내뱉자마자 루시가 마력을 담아 근거리에서 방패를 검으로 찍어버렸다.

         

        엄청난 압력을 버텨내느라 라인폴드의 잘생긴 얼굴이 볼썽사납게 일그러졌다.

         

         

        “끄으으으으으아아아아아아…!”

         

        “너희 따위가 뭔 짓을 했었는지 상관없어.”

         

        “루시에나, 이대로는 소모전일 뿐이에요. 화가 나더라도 이야기해야 상황을…!”

         

        “하지만 날 목숨 바쳐 지켜준 사람을 해치려는 건 절대로 용서 못해.”

         

         

        서서히 옅보이는 광기에 엘프는 입을 다물었다.

         

         

        “정말 끝장을 보고 싶은 거임?”

         

        “끝장을 보고 싶어하던 건 너희들이었던 걸로 아는데? 그리고 다 상관없다고 했지?”

         

         

        어째서인지 루시가 시간을 끌고 있다는 걸 알아챈 마법사도 입을 다물었다.

         

         

        “옛일도 옛일이지만 지금 건 내 잘못이야. 루시! 오른팔을 달라면 줄 테니까…!”

         

        “진정한 사랑이 뭔지 깨달아가는 중인데, 자꾸 과거가 내 발목을 잡아.”

         

         

        원래 성녀는 말하면 안 됐다.

         

        또 실수한 걸 알고서 아르실도 입을 다물었다.

         

        루시는 마법사의 생각처럼 일부러 시간을 끄는 게 아니었다.

         

        천천히 마력을 증가시켜 라인폴드를 방패째로 눌러 죽이려는 거였다.

         

        눈에 실핏줄까지 터져가며 버티는 라인폴드.

         

        어차피 방패에 가려 보지 못하는 루시는 자기 좋을 말만 계속해서 이어갔다.

         

         

        “알겠어? 아르실? 래빈 말로는 너도 한 사랑 했다던데?”

         

        “뭐라고…?”

         

        “그에게 잘 해주지 못한 과거, 그 사람 앞에서 딴놈한테 아양을 떨었던 과거, 하하하… 그 자식은 날 죽일 생각만 하고 있던 놈인데 말야!”

         

         

        으득, 이가 갈린다.

         

         

        “해준 것 중에 부족한 게 있지 않았나가 아니라, 내가 그때 그 사람에게 상처 입히지 않을 게 얼만지 세는 게 더 빠르다는 사실이 얼마나… 얼마나…!”

         

         

        [에스텔류 비기: 하늘 내려찍기]

         

        콰득-!

         

         

        “으으으으으으으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넌, 내 사랑을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물이자, 그 사람 앞에 떳떳할 수 없게 하는 치욕스러운 오점이야.”

         

         

        방패 밑에서 끔찍한 소리가 들려온다.

         

        이대로 가면 방패기사가 죽는다.

         

        아르실과 나이드리안은 어쩔 수 없이 공격할 준비를 했지만, 그보다 티그리아가 더 빨랐다.

         

         

        “포착, 그물, 약화, 겁박, 느려짐.”

         

        “…?!”

         

         

        재빨리 물러났지만 포착 마법이 시전된 이상 티그리아의 시선만으로도 타게팅이 된다.

         

        마왕에게 쏟아부었던 속도 저하가 마법이 루시를 옭아맸다.

         

         

        “지금이다! 짐꾼을 확보해! 짐꾼이 루시에나의 약점이다!”

         

        “라인폴드, 이 자식! 그걸 말이라고!”

         

        “그랬다가는 루시에나를 더 자극하고 말아요!”

         

        “알았음. 이대로면 서로 대치만 하거나 루시에나에게 죽을 뿐, 지시를 따르겠음.”

         

         

        악에 받친 라인폴드가 방패를 들고 루시에게 부닥쳤다.

         

         

        “나도, 목숨을 바쳐 사랑하는 여인이 있다! 여기서 죽을 수 없단 말이다!”

         

         

        아군이 붙어버렸기 때문에 화살을 쏠 수 없다.

         

        나이드리안도 단검을 꺼내들고 아르실과 함께 루시에게 붙었다.

         

         

        “으아아아아아-!!!”

         

         

        검으로 방패를 두들겼지만 끄떡도 하지 않는다.

         

        성격과 별개로 라인폴드는 루시의 풀 차지 공격을 최대 3번을 막아낼 수 있는 실력자였다.

         

        괜히 방패기사가 아니었다.

         

        그 사이로 파고드는 궁수와 성녀의 공격.

         

        마법으로 움직임이 느려진 용사는 이들에게 밀리지는 않더라도 당장 뿌리치기는 어려웠다.

         

         

        “좌표 설정, 질량, 부피, 밀도, 계산, 이동!”

         

         

        그 틈을 타 티그리아는 루시 뒤쪽에 누워있는 린을 향해 단거리 순간이동을 시전했다.

         

         

        “떨어지라고!”

         

         

        뿌리치려 해도 뿌리칠 수 없는 끈덕진 마크에 루시가 다급하게 뒤를 바라봤지만 티그리아는 이미 이동한 상태였다.

         

        모래사장 위로 성공적으로 이동한 티그리아가 린을 향해 주문을 외려는 순간,

         

         

        “어머, 반갑지 않은 구면이네?”

         

        “넌…!”

         

         

        절대로 살아서 만날 일이 없다고 여겼던 검은 소녀와 마주쳤다.

         

        턱을 타고 흘러내린 린의 피를 작은 두 손 한가득 담아 마신 그녀의 입가는 검붉었다.

         

         

        “이 더러운 년의 인형아. 여기가 어디라고 낯짝을 들이미느냐.”

         

        “나는…!”

         

         

        앳된 목소리가 점점 요염해진다.

         

        작았던 몸이 빠르게 성장하며 루시보다 더 큰 풍만함과 색기를 두른다.

         

        전생자 이씨가 봤다면 완벽한 동탄 미시의 탑 티어라고 불렀을 만한 미모였다.

         

         

        “루시! 뒤, 뒤! 이번에는 진짜 마족이라고!”

         

         

        다급하게 아르실의 손가락을 따라 뒤를 돈 루시의 눈에는,

         

        매우 요염하게 허리춤에서 쌍검을 꺼내드는 검은 긴 생머리의 마용사가 있었다.

         

        궁극스킬

         

         

        “제단: 다크팽 생츄어리!”

         

        “결계임! 모두 물러나야함!”

         

         

        이미 늦었다.

         

        쌍검이 모래사장을 내리찍자 순식간에 검붉은 빛이 해안선을 감싸고 돌았다.

         

        거대한 돔 모양을 만들어낸 마용사는 안쓰러운 눈으로 린의 턱에 흐른 피를 닦아주었다.

         

         

        “이 멍청아, 이번만 도와주는 거야.”

         

         

        어느새 모여 진형을 갖춘 용사 파티를 향해 마용사는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나는 데나루아, 마용사 파티의 일원인 쌍검사다.”

         

        “쌍검사, 짐꾼은 비전투원이다. 무인이라면 그는 내버려두고 우리와 결판을 내자!”

         

         

        라인폴드가 멋지게 요구했지만 어디까지나 루시의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서였다.

         

        마용사까지 나타난 이상 용사와의 협력은 필수사항이 되었다.

         

         

        “어머, 나는 너희가 말하는 이 짐꾼 때문에 여기 온 건데? 얌전히 데리고 가게 하면 해코지는 않할게.”

         

         

        순간, 라인폴드는 망설였다.

         

        짐꾼을 데리고 가게 하면 루시의 분노는 자연히 마족을 향하게 될 거고 짐꾼 확보라는 목적을 미끼로 다룰 수 있을 터였다.

         

         

        “머리 굴리기는.”

         

         

        하지만 데나루아가 그런 얄팍함을 눈치 못 챌 리 없었다.

         

         

        “저 짐꾼의 양팔에는 우리 마왕님의 마기가 고스란히 있단 말이지? 당연히 부활에 꼭 필요한 재료야.”

         

        “젠장, 짐꾼을 확보해라!”

         

         

        각자의 포지션에서 쌍검사에게 달려드는 용사 파티.

         

        여유롭게 받아치는 데나루아.

         

        그 가운데 꼼짝 않고 있는 루시.

         

         

        [어때? 도와줄까? 내가 도와주면 린을 구할 수 있어.]

         

        “닥쳐.”

         

        [왜 가만히 있는 건데?]

         

        “저 마족 뭔가 이상해. 린을 향한 적의나 악의가 없어.”

         

        [와우! 벌써 그런 경지에 다다른 거야?]

         

         

        마검은 루시의 머릿속에 은근히 속삭였다.

         

         

        [아니면 혹시, 린을 좋아하고 있는 거 아냐?]

         

        “….!!!!!”

         

        [자, 루시. 또 새로운 연적이 나타났네?]

         

         

        으득

         

         

        “린은….”

         

         

        다시 돌아온 붉은 금빛이 검을 감싼다.

         

         

        “내 거라고!!!!”

         

         

        용사 파티원들을 어깨빵으로 밀어버리며 데나루아에게 덤벼드는 루시.

         

        그런 그녀를 보며 마검은 씨익 웃었다.

         

         

        [아, 이제야 저 말에 무게감이 좀 실리네.]

         

         

         

         

       


           


He Became the Only Ally of the Abandoned Warrior

He Became the Only Ally of the Abandoned Warrior

Abandoned Hero's Only Ally, 버림받은 용사의 유일한 아군이 되었다.
Score 6.8
Status: Ongoing Type: Author: ,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saved the Warrior who used to ignore and bully me and now she is obsessed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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