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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2

       그는 차별을 싫어한다.

         

       워낙 차별 당하고 산 역사가 많아서일까?

       대표적으로 사단장 아들 새끼란 이유로 폐급 오브 폐급이 초고속 진급에 성공했고.

       반대로 10년 동안 장기 근무했는데도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진급 누락되는 만년 중사로 남았던 역사.

       뼈에 사무치도록 당한 것이 많으니, 그는 타인을 대함에 있어 절대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공평함을 중시하게 됐다.

         

       그렇다 보니 그는 저가 하층민 출신이란 이유로 새싹 조에게 특혜를 주지 않을 셈이었고, 귀족의 자식이라고 한들 내팽겨 두지 않을 것이다.

         

       공평함이란 똑같이 대해주어야 하는 것이 공평함이란 것이니.

         

       하여.

         

       “-자, 오늘도 힘차게 해보도록 하자.”

         

       “…….”

         

       이한은 아카데미에 와 있었다.

         

       불칸에 가지 않고 아카데미에 남은 검술학부 54인의 생도들 모두가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그들의 교관을 보았다.

         

       …뭐지, 꿈인가?

         

       “…교, 교관님.”

       “말해라, 3번 병아리.”

       “저, 저기. 부, 분명 불칸까지 훈련을 하러 가신다고 들었는데요.”

       “그렇다만?”

       “그, 그리고 불칸과 아카데미의 거리는 제가 알기로 40km가 되는 것으로 알아요.”

       “정확힌 37.9km다.”

       “그, 그렇군요.”

         

       아니, 그게 지금 중요한 게 아니고!

         

       “왜 여기 계세요? 불칸에 있으셔야 할 분이?”

       “너희 가르치러 왔지.”

       “…불칸은요?”

       “낮에 조져놓고 왔다. 너희 가르치고 야간에 또 조지러, 아니 훈련시키러 가야지.”

       “…….”

       “왜 그런 눈으로 보지?”

       “…아니요, 역시 특이하신 분이다 싶어서요.”

       “별게 다 특이하군. 성실한 것뿐인데.”

       “하하….”

         

       하긴 수업 안 빼먹으려고 굳이 왕복 75.8km의 거리를 달려오는 사람인데, 어찌 성실하지 않을 수 있으랴.

       차마 반박하지 못할 현실에 병아리라 불린 여성 생도는 헛웃음을 지었다.

         

       * * *

         

       …지금에서야 하는 얘기지만, 이한과 오드왈이 워 게임을 한다는 소식에 큰 소란이 일어났다.

         

       아카데미 역사에서도 검술학부와 마법학부는 늘 험악한 관계였으나, 그렇더라도 이토록 직접적인 충돌이 생긴 역사는 없었으니.

         

       허나 이미 말릴 틈도 없이 워 게임의 진행이 일파만파 퍼진 상황이었고, 귀족들마저 기대하고 있으니 학술원으로선 말리려 해도 말릴 수가 없었다.

       이미 명분과 흐름이 걷잡을 수 없었기에.

       그리고 이 때문에 이한은 다시금 학장실에 불려가야만 했다.

         

       혼났다.

         

       1학기에만 대체 몇 번이나 사건을 일으키는 거냐며.

       물론 정정거리는 많았다.

       먼저 시비를 건 것도 주문쟁이고, 되도 않는 트집으로 싸움을 건 것도 주문쟁이니까.

         

       하여 그는 당당했고, 학장은 뒷목이 다 뻐근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도 그가 생도들을 위한 활동비를 지원해주는 것을 보면 확실히 학장은 학장이더라.

         

       ‘비리 교사만 만나다가, 저런 참교육자를 만나니까 좋긴 하네.’

         

       다만, 거금을 주는 학장의 얼굴에는 큰 기대감이 없어 보였다.

       워 게임에서 검술학부가 패배하리란 생각이 확연히 보이더라.

       그리고 이는 마냥 학장만이 그런 게 아니라, 아카데미 전체에서 도는 분위기였다.

       마치 승패는 이미 갈렸다는 것처럼.

         

       “어쩔 수 없습니다. 워 게임에서 전사들은 체스로 치면 폰입니다. 그나마 숙련된 전사들은 비숍 취급해주지만, 마법사는 퀸이나 나이트 취급을 받으니까요.”

       “전사에 대한 취급이 너무하긴 하네. 편협한 인간들.”

       “…전적이 그러한 걸 어떡하겠습니까.”

       “그건 진 인간들이 허약해서 그런 거고.”

       “교관님이랑 비교하면 안 허약한 사람도 있습니까?”

       “나도 비교적 허약하지.”

       “…….”

         

       올해 들은 말 중 가장 어처구니없다는 듯 쓰러진 생도 하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니, 일그러진 이유는 어처구니없는 것보다 격통이 강해서 그런 것이려나.

         

       “끄으윽….”

         

       “으으읍!”

         

       “커헉! 컥…!”

         

       여기저기서 쓰러지거나 헛구역질 하는 생도가 즐비했다.

       쇠줄 넘기 대신 무제한 자유대련이란 명목으로 교관과 대련을 벌인 일동이 모조리 다 땅바닥에 패대기쳐지며 고통을 호소했다.

         

       다만 이상하게도 크게 다친 인원은 없다.

       패대기쳐지긴 했지만, 교관은 마지막에 힘을 조절한 것이다.

         

       …이게 더 굴욕적이긴 했지만.

         

       “너희 굴욕주려고 살살한 건 아니야. 회복실 사제가 애들 그만 좀 보내라고 해서 어쩔 수가 없더라.”

         

       “…부상자가 많긴 하지요.”

       “교, 교관님. 진짜 불칸에서 달려오신 거 맞습니까?”

       “힘이 무슨….”

         

       그들을 이토록 모조리 이겨놓고도 아무런 감흥이 없어 보이는 사람을 보고 있자면 저것도 체력이 좀 빠진 상태란 게 믿기지 않는다.

         

       “평소보다 기운이 없는 건 맞다. 아무리 교관이라도 그만한 거리를 왕복하다 보면 숨이 벅차니. 하지만 ‘애송이들’ 상대로 힘들어 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

       “…….”

       “분하나 보지? 그럼 더 강해지려고 노력해라. 교관은 최선을 다해 너희를 가르쳐줄 거니까.”

       “…….”

       “왜 그런 눈으로 보지?”

       “…그저 궁금해서 그랬습니다. 그렇게 열정적이신 분께서 왜 저희는 불칸으로 데리고 가지 않았는가 싶어서.”

       “특별 집중훈련을 말하는 건가?”

       “…….”

       “흠, 전날에도 말했지만, 가고 싶었던 사람은 출발 날 집합해라고 했었다만? 근데 너희들은 안 나타났었지.”

       “…그건.”

         

       저도 모르게 섭섭함을 드러낸 생도는 자기가 생각해도 유치한 반발심이라며 이를 악 물었다.

       허나 어쩔 수 없었다.

         

       그들도 안 가고 싶어서 안 간 건 아니었으니까.

         

       “가, 가문에서 가지 말라는 걸 어쩌겠습니까.”

       “성인이란 녀석들이, 아직도 집에 잡혀 사냐?”

       “…!”

       “하하, 농담이다. 나라고 너희 사정을 모를까.”

         

       아마 저들 중에도 이한의 집중 특강을 듣고 싶었던 이들이 있었으리라.

       그동안 수련 받으며 몸이 더욱 탄탄해지는 것을 느꼈을 이들은 특히 더.

       알게 모르게 이한을 훌륭한 교관으로 인정하기 시작한 거다.

         

       …그러나 그들은 귀족이다.

         

       권위와 명예에 살며, 신분과 지연, 혈연 등이 무엇보다 중요한 계급사회에 속한 이들.

         

       하여 그들은 결코 가문의 명령을 거스를 순 없었다.

         

       “흐, 아마 여기 있는 인원 중 몇몇은 이미 내 수업에 나가지 말라고 들은 이들도 있겠지. 천민 출신 기사 녀석 따위의 수업에 나가는 것을 가문의 흠으로 여기고 있을 테니.”

       “…….”

       “화내는 게 아니다. 기분이 나쁘지도 않다. 내가 어디 기사단 출신인데 이를 모를까.”

         

       백은사자 공식 왕따가 다름 아닌 그였다.

       귀족들의 특권의식은 이미 질리도록 겪었다.

       뭐, 특권의식 드러내다 그에게 두들겨 맞은 이들이 더 많지만.

         

       “너희를 이해한다. 귀족들은 자신들의 역사에 이물질이 섞이는 걸 허락하지 않으니까.”

         

       생도들 중에는 아마 [경]을 배우고 싶은 이들도 있을 거다.

       아무렴 제법 인상적인 기술이지 않은가.

       다만, 이를 귀족 가문에선 절대 허락할 리 없을 터.

         

       수백 년 동안 쌓아온 투기법과 기술에 대한 자부심이 하늘을 찌를 듯한 귀족들이다.

       그런 뜻에서 이한의 기술은 사특한 무언가다.

         

       무림으로 따지면 귀족 가문은 정파고, 이한의 기술은 흑도나 사파, 좀 더 심하게 가자면 마교의 마공 비스름한 취급을 받고 있으리라.

       익히면 무림공적, 아니 가문에서 적출당하지 않을까 싶다.

         

       ‘아닌 녀석들도 있지만.’

         

       크게 아르노와 로엔.

       둘 모두 대귀족의 후예지만, 비교적 그들은 자유분방하다.

       오펜 가야 타 가문의 기술을 흡수하는 데 망설임도 없는 이질적인 면모가 있고, 반대로 로엔의 경우는 가문의 눈치 따윈 보지 않으니 그에게 가르침을 받는 데 고민이 없다.

         

       데미안?

       그건 그냥 굴리는 거고.

         

       즉, 지금 이한에게 가르침을 애원하는 경우는 정말 기댈 곳 없는 녀석들이거나, 남 눈치 따윈 전혀 보지 않는 녀석들뿐이란 뜻이다.

         

       이들과는 사정이 다르다.

         

       그러니 이들은 분한 거다.

       그들도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고, 가문에 대한 반항심은 있지만. 결국은 가문의 명령을 거부할 순 없었으니까.

         

       “너희 중엔 내가 억지로라도 불칸까지 가서 훈련시켜주길 원한 녀석들도 있었을 테지.”

       “…크흠.”

       “근데 그럴 수는 없어. 내가 지금 불칸에서 시키는 훈련은 절박한 녀석들이 하는 훈련이거든. 아마 너희를 억지로 데려갔다고 한들 크게 성과는 없었을 거다. 앞만 보고 가기도 바쁜데, 여러 가지를 신경 써야 하는 녀석들이 어떻게 절박할까.”

       “…….”

       “그래도 다른 녀석들만 특별 취급이라 느끼게 했다면 그 점은 교관이 사과하마. 본의는 아니었다.”

       “……저희야말로 죄송합니다.”

         

       평균 열아홉 혹은 스물.

       성인의 나이지만, 성인이라 하여 저들이 어른인 건 아니다.

         

       아직은 여물지 못한 나이다.

       그러니 아직은 앳되고, 칭얼거리는 면이 있는 것을 이해하는 게 어른의 의무인 법.

         

       이한의 진심 어린 사과였고, 그들은 괜한 울컥함을 느꼈다.

         

       “이해해줘서 고맙다.”

         

       어딘지 감동적이고 괜히 훈훈한 분위기가 감돈다.

         

       이한은.

         

       “그런 의미에서 특별히 본 교관이 다시금 대련을 해주도록 하마. 덤벼라.”

         

       “……예에?”

         

       “다른 놈들을 특별 취급해준 만큼, 너희도 특별 수련이 있어야겠지. 이런 기회 쉽게 없다. 빨리 일어서도록.”

         

       “…….”

         

       와장창 부서지는 감동.

         

       참고로 별로 중요하진 않지만, 이한의 전생 MBTI 성향은 T였다.

         

       * * *

         

       …기어이 오늘도 회복실 사제를 고생시키게 된 것 같지만.

         

       이한은 뿌듯했다!

       나름 교육자다운 행동을 한 느낌이랄까?

         

       ‘전생에 나보고 공감 못 해준다는 녀석들 다 틀렸어. 이 얼마나 확실한 공감이냐.’

         

       성장하길 원했으니, 그 바람을 이뤄주길 위해 최선을 다 해 가르침을 줬지 않은가.

       그야말로 공감의 정석이다.

         

       크나큰 만족감을 느끼는 그였고, 이렇게 된 거 오늘 유격 하는 놈들도 두 배로 더 굴려야겠다는 의무감이 든다.

         

       ‘야간 훈련에 뭘 더 추가할까?’

         

       각개전투랑 절벽 오르기도 추가할까 싶다.

         

       팽배하게 돌아가는 머리였고, 그의 머리가 팽배하게 도는 만큼 오늘 밤 악몽이 예정된 안타까운 새싹 조였다.

         

       괜한 성실함이 독이 되는 경우였다.

         

       멈칫.

         

       “…?”

         

       발걸음을 옮기는 그때, 이한의 기민한 감각은 낯선 것을 느꼈다.

         

       “이건….”

         

       그가 이질감을 느낀 건 연무장에 덩그러니 있던 허수아비였다.

       검술수련을 할 때 쓰는 허수아비지만, 이한이 검술학부 교관이 된 이후로 사용된 적은 없다.

       그는 허수아비를 치는 것보다 실전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으니.

         

       하여 허수아비는 이제 생도들도 그다지 건드리지 않는 연무장 장식물 취급을 당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이한의 기민한 감각은 허수아비가 늘 보는 것과 달리 묘한 차이점이 있음을 알게 해주었다.

         

       “틀린 그림 찾기냐?”

         

       진짜 장식물도 아닐진대, 허수아비 목에 걸린 천조가리.

       원래는 없던 거였고, 이한은 어떤 놈이 장난친 건가 중얼거리며 느슨히 풀린 천조가리를 풀어 손에 쥐자.

         

       “……호.”

         

       묘한 미소를 머금게 되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고전적인 놈일세?”

         

       천조가리에 문장이 한 줄 남겨져 있었다.

       마치 전형적인 옛날 연극에서 나올 법한 고전적인 방식.

         

       허나, 방식은 고전적일지라도…….

         

       “흠, ‘마법사를 죽이면 안 된다’라, …이놈, 이거.”

         

         

       ─어떻게 알았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그의 속내를 꿰뚫는, 흥미로운 내용이 아닐 수 없었다.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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