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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2

    어둑어둑한 저녁 시간, 폭죽이 하늘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박람회의 개회식이었다.

    개회식이 열릴 즈음이 되자 연구소 직원들의 노력으로 아무것도 없던 ‘세희 연구소 부스’도 꽤 구색이 갖춰져 있었다.

    반가운 얼굴도 볼 수 있었다.

    피아노 치는 도마뱀!

    도마뱀을 보고 나서야, 내가 완전히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뭐, 잘 관리되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면 괜찮은 거 아닐까?

    파란 도마뱀은 박람회장에 간이 격리실이 설치된 뒤 이송되어 왔다.

    유리로 된 격리실, 그리고 중앙에 커다란 피아노가 놓여있는 간단한 구성의 격리실이었다.

    도마뱀은 박람회장으로 오자마자, 신나게 연주를 시작했다.

    여전히 마음을 울리는 훌륭한 연주였다.

    박람회장에는 사람들이 잔뜩 올 텐데, 이러다가 도마뱀 죽는 거 아냐?

    [만 명에게 동시에 기립 박수를 받는다.]

    만 명에게 동시에 기립 박수를 받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 괜찮겠지?

    박람회장에는 ‘귀여운 강아지’도 왔는데, 대우가 썩 좋아보이진 않았다.

    격리실 안에 쇠못을 박아두고 목줄을 묶어둔 수준이었다.

    예전이었으면 몸집을 잔뜩 키워서 발광했을 정도의 푸대접이었다.

    ‘귀여운 강아지’가 착해진걸 보면 왠지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다.

    뭐, 성질을 못 죽이고 또 발광하면 ‘화창한 공원’을 한 번 더 해서 기강을 잡아주면 될 일이다.

    세희 연구소에 격리된 오브젝트들이 하나둘 옮겨 오는 가운데, 박람회장에서 마음에 안 드는 점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내 격리실이다.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침대와 TV가 준비되어 있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나머지 시설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알록달록한 미끄럼틀과 볼풀이라니! 

    내가 어린앤 줄 아는 건가?

    ***

    “오예린, 우리는 개회식 갔다 올게.”

    그런 말들을 남기고 다들 개회식을 여는 행사장으로 향했다.

    다들 개회식을 가고 싶어 하길래, 솔선해서 집 보기를 맡겨달라고 했다.

    그래서 혼자서 카운터에 앉아 ‘세희 연구소 부스’의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아직 일반 관객의 입장이 허가되지 않아서 박람회장은 한산하기만 했다.

    개회식을 못 봐서 아쉽지는 않았다. 

    사신이를 보는 게 더 재밌으니까!

    뒤를 슬쩍 돌아보자, 사신이의 격리실이 훤히 보였다.

    사신이는 처음 격리실이 설치됐을 때만 해도 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뭔가 마음에 안 드는 점이라도 있었던 걸까?

    시간이 좀 지난 지금은 꽤 신나 보였다.

    볼풀 안에서 공을 던지고 그 안을 헤엄치면서 격리실을 만끽하고 있었다.

    팔다리를 휘적거리면서 투명하게 비쳐 보이는 볼풀 안을 헤엄치는 사신이라니! 

    이런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야하는데!

    하지만 눈치가 빠른 사신이는 다가가거나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분명히 눈치채겠지.

    몰래몰래 보면서 뇌 내 사진으로 저장하는 걸로 만족해야겠다.

    ***

    개회식이 끝난 늦은 시각, 볼풀 안에서 발장구를 치며 세희와 예린의 언쟁을 구경하고 있었다.

    “세희 언니. 사신이를 데리고 나가는 게 이득이라니까요.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문제가 생길 게 뻔해요.”

    “아니, 그냥 네가 사신이랑 나가서 놀고 싶어서 하는 말이잖아.”

    예린과 세희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로 다투고 있었다.

    나를 데리고 박람회장 구경을 나가느냐 마느냐 하는 이야기였다.

    “어차피, 이대로 사신이를 가둬둬도 시간 좀 지나면 슬그머니 혼자서 나가서 구경할 걸요?”

    헉, 어떻게 알았지.

    슬슬 볼풀도 질려가고 있어서 박람회장에 뭐 신기한 오브젝트라도 있나 구경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사신이가 혼자서 빠져나가면 대참사지만, 연구원이랑 같이 나가면 사고처럼 안 보이니까 오히려 괜찮지 않을까요?”

    그 뒤로도 꽤 길게 이어지던 논쟁은 결국 예린의 끈기에 밀린 세희의 패배로 끝났다.

    “하아, 이런 상황이 될 게 뻔해서 주최 측에 경고했는데도 사신이를 부른 건 그쪽이니까 괜찮겠지. 그럼, 내일 사신이랑 같이 나갔다 와.”

    ***

    서울 한복판에 광활한 부지를 차지한 저택.

    오브젝트 사태가 터진 뒤, 안전한 땅이 현격하게 줄어든 지금 서울에서 이런 넓은 부지를 가진 저택은 엄청난 가격을 자랑했다.

    그런 고가의 저택의 한적한 안뜰에서 노인과 중년의 남성이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예정대로 박람회가 개최되었습니다. 슬슬, 재판을 진행시킬까요?”

    노인은 중년 남자의 말에 대꾸를 하지 않고 그저 차를 마실 뿐이었다.

    이런 상황이 익숙한지, 중년 남성은 노인에게 꾸벅 인사를 한 뒤 저택을 나섰다.

    중년 남성은 저택을 나선 뒤, 서둘러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오무룡 어르신 재판은 조금 더 기다려야겠어.”

    전화를 하는 남성은 손짓만으로 운전기사에게 명령을 하고는 전화를 이어나갔다.

    박람회 개최식이 있던 밤, 중년 남성의 차량이 한적한 도로를 질주했다.

    ***

    이른 아침부터 예린은 즐거워 보였다.

    “흥, 흐흥.”

    예린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목에 거는 표지판을 준비하고 있었다.

    표지판에는 이런 글자가 쓰여 있었다.

    <세희 연구소. 회색 사신.>

    <회색 사신은 안전합니다!>

    <호기심이 많은 오브젝트이니 따뜻한 눈으로 지켜봐 주세요.>

    그렇다.

    예린은 지금 나를 데리고 박람회장을 돌아다닐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도 혼자서 유령화로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예린이랑 같이 실체화 상태로 다니는 게 좋으니까, 준비가 끝나는 것을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됐다!”

    예린은 직접 그린 표지판을 들어 올리며 큰소리로 외쳤다.

    표지판에는 글자 말고도 그림도 그려져 있었는데, 꽤 그럴싸했다.

    와, 예린이는 그림도 잘 그리네.

    표지판을 목에 걸고, 나를 번쩍 들어 올린 예린은 나를 목말 태웠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예린은 씩씩하게 외치고는 당당한 걸음걸이로 세희 연구소 부스를 나섰다.

    ***

    사실 이렇게 공공연하게 다녀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괜찮았다.

    오히려 무서워하는 사람이 많아서, 쾌적하게 구경이 가능했다.

    다들 가까이 오려고 하질 않고, 멀리서 웅성거리기만 했다.

    예린과 함께 구경중인 박람회장은 신기한 오브젝트가 꽤 많았다.

    보고 싶은 오브젝트가 있으면 발을 파닥파닥 흔들어서 신호를 보내면 되었다.

    그림자로 만들어진 것 같은 작은 돌멩이가 보이자, 발을 흔들어서 예린에게 신호를 보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예린이가 잘 알아들어서 편했다.

    파닥파닥.

    (저쪽으로 가자.)

    “저기 부산 연구소 격리실이 보고 싶다는 거지?”

    내 신호에 예린이 멈춰 서자,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격리실에는 커다란 전등이 빛을 내리쬐고 있는 새까만 돌멩이 하나가 있었다.

    <그림자 늑대인간 돌멩이.>

    <돌이 빛을 쬐면 그림자로 만들어진 늑대인간이 발생합니다.>

    <사람에 대한 맹목적인 공격성을 가지니 주의해 주십시오.>

    너무 직관적인 이름의 오브젝트였다.

    돌에 빛을 쬐면 그림자로 만들어진 늑대인간이 나타나서 사람을 도륙한다는 흉흉한 오브젝트였다.

    이런 거 반입해도 되는 거 맞아?

    게다가 지금도 전등으로 빛을 강렬하게 쏘고 있고 말이다.

    밑의 설명을 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 오브젝트가 그림자 속에 완전히 잠기면 그림자 속에 녹아들어 사라집니다.>

    <사라진 뒤 나타나는 위치는 완전히 무작위로, 지구 어딘가에서 갑자기 나타나게 됩니다.>

    <격리를 포기할 생각이 아니라면 절대로 빛의 조사를 멈추지 마십시오.>

    그럼, 괴물이 나타나는 것을 염두에 두고 계속해서 빛을 쬐어야 하는 거네?

    그럼 늑대인간은 어디 있는 거지? 하고 생각하며 주변을 돌아보니, 격리실 안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둥근 그림자가 보였다.

    그 곳에서 오브젝트의 존재감이 느껴졌다.

    작은 그림자 안에 엄지 손가락만한 늑대인간이 인간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빛을 비출 경우 나타나는 그림자 늑대인간은 돌멩이에서 가장 가까운 그림자에서 만들어집니다.>

    <오브젝트의 본체인 돌멩이에는 그림자가 생기지 않습니다.>

    <늑대인간의 크기는 그 그림자의 크기에 비례합니다.>

    <늑대인간은 그림자 밖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돌멩이와 늑대인간을 이리저리 살펴본 뒤 예린에게 신호를 보냈다.

    파닥파닥.

    (다른 곳으로 가자.)

    그렇게 돌아다니던 중, 굉장히 인상적인 오브젝트를 하나 더 발견할 수 있었다.

    컴퓨터 한대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격리실이었는데, 무려 일본에서 찾아온 연구소였다.

    그렇게 위험한 오브젝트는 아니었지만, 어떻게 잡았는지 감도 잡히지 않는 오브젝트였다.

    친절하게 한글로 번역되어있어서 오브젝트 설명을 읽을 수 있었다.

    <인터넷 망령.>

    <절대로 이 컴퓨터를 네트워크에 연결하지 마십시오.>

    컴퓨터 데이터로 격리 중인 오브젝트로, 네트워크에 연결하면 달아나버리니까 조심해야 하는 오브젝트였다.

    네트워크에 연결되면 그 내부를 돌아다니면서 하루 종일 여론 조작과 분란을 일으키는 일을 반복하는 오브젝트였다.

    이거 진짜 어떻게 격리한 거지? 

    궁금한데 그런 건 이 연구소의 노하우니까 안 써놓은 거겠지….

    계속해서 박람회의 여러 연구소를 구경하던 도중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부천 연구소 부스에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는 음울한 연구원들이었다.

    물론, 너무 피곤해 보여서 이상하다는 건 아니고 인간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랬다.

    그들은 인간 같아 보이는 외모, 행동과 다르게 오브젝트였다.

    저 연구원들은 ‘황금뿔 증후군’ 같은 병에 걸린 걸까?

    그런데 전신 오브젝트 화라니? 좀 신기하긴 하네.

    연구원들 뒤로는 거대한 황금 나무가 우뚝 서 있었다.

    그런데 저거… 전보다 살짝 밝아진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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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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