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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2

   <오른편 골목을 돌면 바로다. 속도를 늦춰라.>

   ‘또요?’

   <그래. 또다.>

   

   이상한 일이다.

   

   아르고스를 만나는 빈도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최대한 아르고스를 만나지 않는 루트로 걷고 있음에도 불구하고도 그랬다.

   

   이건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꼭 아르고스들이 내 위치를 파악하고서 움직이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단순히 기분 탓이라고 생각을 하고 싶지만 여태 이 빌어먹을 세상에서 살아온 나는 알고 있다.

   

   이게 착각일 가능성보다는 상황이 최악으로 흘러가고 있을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을.

   

   이럴 땐 최선보다는 최악을 가정하는 게 훨씬 나아.

   

   설령 이게 내 호들갑일지라도.

   

   다급히 머릿속으로 새로운 경로를 짜냈다.

   

   나는 원래 이 실험실의 A구역을 빙빙 돌며 아르고스들을 피해 도망치기만 할 생각이었다.

   

   안전하게 시간을 떼운다는 측면에서는 이게 최선의 전략이었으니까.

   

   전투도 뭣도 할 필요 없이 그저 타이밍에 맞추어 움직이는 것으로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데 이것보다 좋은 전략이 어디 있겠는가.

   

   허나 내가 걷는 곳이 아스팔트 위인지 아니면 금이 간 빙판 위인지를 파악할 수 없는 이상 같은 전략을 고수할 순 없다.

   

   전략을 바꾸어야 할 때다.

   

   ‘좀 빠르게 움직일 게요.’

   “허접분들. 속도 높일 테니까 따라와요.”

   

   플랜 자체는 생각해둔 것이 있다.

   

   소울 아카데미의 던전에는 안전구역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흔히 세이브 구역이라고 말하는 장소.

   

   몬스터들이 리스폰 되지 않음은 물론이고 그 곳에 가면 체력과 마나를 회복시켜 주는 곳 말이다.

   

   물론 이 세상은 게임이 아니라 현실인 만큼 세이브 로드 같은 건 불가능하다.

   

   또한 체력이나 마나의 완전 회복 기능도 없다.

   

   그렇지만 단 하나.

   

   몬스터가 리스폰되지 않으며 그 안에서 적을 공격하는 게 아닌 한 다가오지 않는단 사실은 같다.

   

   이는 지난 번 에반스의 던전을 공략할 적에 포셀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니 분명하다.

   

   그 곳에 도착할 수 있다면 우린 더 이상 몬스터의 위협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

   

   이를 알면서도 내가 안전구역으로 향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 곳에 가기 위해선 반드시 적과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안전구역으로 가는 길목엔 그 곳을 가로 막고 있는 몬스터가 하나 있다.

   

   당시엔 전투 한 번 없이 돌파하는 걸 방지하기 위한 기믹이겠거니 생각을 했지만 이게 현실이 되니 상당히 좆같은 부분이었다.

   

   그 몬스터의 종류가 뭐냐고? 모른다.

   

   이건 완벽하게 랜덤이다.

   

   물론 보스나 네임드급 몬스터가 나오는 건 아니다.

   

   ‘연금술사가 머무르는 곳’에 존재하는 일반 몬스터 중에서 아무거나 등장할 뿐이다.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다.

   

   그 몬스터 중에서는 마주하게 되면 정말 위험한 종류도 존재하기에 난 안전구획을 향하는 계획을 뒤로 미뤄두었다.

   

   그렇지만 무언가 변수가 생기고 있다는 확신이 든 이상 이젠 플랜 B를 플랜 A로 격상시킬 때였다.

   

   일단 수문장 역할을 하는 몬스터가 뭔지만 확인을 해보자.

   

   충분히 가능하다는 판단이 서면 때려잡고 아니라면 다른 방법을 강구하면 그만인 거잖아.

   

   수문장이 기다리고 있는 곳까지 향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전에도 같은 곳을 빙글빙글 돌면서도 전투를 회피하던 우리들이다.

   

   앞으로 나아가며 적을 만나지 않는 건 그닥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안전구획 바로 앞에 있는 길목에 도착한 나는 길목을 지키고 있는 몬스터를 볼 수 있었다.

   

   땅바닥에 닿을 듯이 기다라면서도 만지면 부러질 듯이 얇은 팔과 만화 속 캐릭터마냥 얇고 뭉툭한 다리.

   

   비정상적으로 커다란 붉은 색의 눈동자와 머리를 숨기는 거대한 고깔모자.

   

   ‘연금술사가 머무르는 곳’에 나오는 몬스터 중 하나인 키메라 ‘마녀’.

   

   저 녀석은 일반 몬스터 중에서 까탈스러운 녀석 중 하나다.

   

   일단 원거리인게 꼴받고,

   

   마녀라는 이름에 걸맞게 다양한 저주나 마법으로 유저를 괴롭히는 부분도 짜증나고,

   

   뭣보다 전위보다 후위를 노리는 식으로 설계되어 있는 게 가장 열받는 부분이다.

   

   대신이라고 해야 할까.

   

   디버프와 후위 공략에 중점을 둔 저 녀석은 마법의 데미지가 약하다는 패널티를 안고 있다.

   

   이게 게임이었다면 저 씹 새끼 또 나왔네. 소리를 하며 한숨을 내쉬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저 녀석이 지닌 모든 장점은 후위에 있는 파티원들을 붕괴시킬 수 있다는 전제하에 쓰여진 것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후위를 공격하지 못하는 저 녀석은 이 곳에 존재하는 여러 몬스터들보다 낮은 스펙을 지닌 쓰레기에 불과하다.

   

   그런데 지금 나한테는 나보다 한참 레벨이 높은 기사인 포셀에게 먹힐 정도로 사기적인 성능을 지닌 도발 스킬이 있단 말이지.

   

   ‘여러분들…’

   “허접들. 이제부터 우린 저걸 쓰러트릴 거에요.”

   

   “…저걸 말인가요?”

   

   내 말에 조이는 망설이듯이 물었고 제이콥은 입을 열진 않았지만 겁을 먹은 기색이 역력했다.

   

   그럼에도 난 내 의견을 꺾지 않았다.

   

   내가 생각했던 것 중에서 최상에 가까운 상황이 펼쳐졌다.

   

   저 난관만 넘으면 우리는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있는데 물러설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네. 그래야 해요.’

   “뭐에요. 겁먹은 건가요? 겁쟁이들 같으니.”

   

   “그렇지만.”

   

   ‘걱정마세요…’

   “걱정 마요. 허접 여러분은 위험한 일 없을 테니까. 겁쟁이답게 뒤에서 지원이나 하면 돼요.”

   

   두 사람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 이 파티를 이끌고 온 내 지휘권을 인정해 준 것이다.

   

   역시 신뢰를 만들어 내는 건 실적이라니까.

   

   두 사람에게 대략적인 전투 방향을 지시한 나는 방패를 잡은 손에 힘을 더하고서 골목 바깥으로 나왔다.

   

   마녀와 나의 눈이 마주치고 마녀의 커다란 눈이 초승달마냥 굽어졌다.

   

   <여아야. 저 녀석은 강하다.>

   ‘알아요.’

   

   앞에 쓰레기라고 이야기 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이 던전을 기준으로 했을 때의 이야기다.

   

   지금의 나와 비교하면 스펙은 훨씬 더 높을 것이다.

   

   <위험할 수도 있다.>

   ‘안다니까요?’

   

   어쩌면 그냥 하던 것처럼 몬스터를 피해다니는 게 옳은 일일지도 모른다.

   

   괜히 변수라 생각을 해서 위험 속에 직접 발을 내딛어 버린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젠 되돌릴 수 없다.

   

   적이 나의 앞에 있으니까.

   

   <두렵지 않으냐?>

   ‘괜찮아요.’

   

   마음속에 생겨나는 두려움을 나의 스킬이 짓누른다.

   

   도망치고 싶다는 나약한 생각을 나의 스킬이 막아낸다.

   

   그러니 나는 용기를 낼 수 있다.

   

   <후회하지 않는다면 최선을 다해 도우마.>

   ‘부탁드릴게요.’

   

   마녀는 장난스러운 눈길로 나를 바라보다 자신의 기다란 팔을 움직이며 키득키득 웃는다.

   

   약해 빠진 장난감이라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게임 속에선 정해진 동작밖에 하지 못했던 녀석에게 인격이 생겨나니까 진짜 거슬리네.

   

   숨을 크게 들이킨다.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은 정해두지 않았다.

   

   무언가를 정해두고 이야기를 하는 건 메스가키 답지 않잖아?

   

   “웃기게 생긴 녀석이네?♡ 팔은 징그럽고, 다리는 인형 같고, 얼굴은 역겹다니♡ 널 만든 사람이 누군진 모르겠지만 널 싫어하는 게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야 이 따위로 만들 리가 없잖아?♡”

   

   도발을 들은 마녀의 눈이 초승달에서 만월로 변했다가 일자로 바뀐다.

   

   장난스레 움직이던 팔과 다리가 굳고 몬스터의 주변에서 마나가 요동치는 게 보인다.

   

   그와 동시에 스킬의 고양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여아야. 온다.>

   

   땅에서 발을 떼어내기 무섭게 마녀의 앞에 마법진이 그려진다.

   

   <그림자 손이다! 이건…>

   ‘설명은 됐어요!’

   

   그림자 손이란 마법에 대해선 모르지만 무슨 마법인진 알 것 같다.

   

   마녀가 사용하는 패턴을 모두 외우고 있으니까.

   

   아마 마녀의 뒤에서 수많은 팔이 튀어 나와서 나를 사로잡으려는 메즈기겠지.

   

   잠시 멈춰서서 마녀의 등 뒤를 바라본다.

   

   검은 색으로 물든 무수히 많은 팔들이 솟아나는 게 보였다.

   

   역시나.

   

   저 기술의 파훼법은 단순하다.

   

   마음속으로 1초를 세고 앞으로 구른다.

   

   방금 전까지 내가 있던 자리에서 돌바닥이 박살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후에 일어나자마자 다시 옆으로 뛴다.

   

   나를 사로잡으려던 손아귀들이 허공을 휘젓는다.

   

   마지막으로 자세를 다잡고 앞으로 달리면 저들끼리 꼬여버린 손들은 더 이상 나를 뒤쫓지 못한다.

   

   <바로 다음이 온다!>

   

   자신의 마법이 실패했음을 깨달은 마녀는 즉시 다음 마법을 캐스팅 했지만 그 때 마녀의 얼굴에 화염구가 착탄했다.

   

   퍼엉!

   

   그 위력은 그리 강하다 할 수 없었지만 그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이 순간에 중요한 것은 마녀의 캐스팅을 막았다는 사실.

   

   그 뿐이었다.

   

   나이스. 조이!

   

   달린다.

   

   다른 건 신경 쓰지 않고 앞으로 내달린다.

   

   달리기는 어제도. 그제도. 일주일 전에도. 지난 몇 달 동안 지겹도록 해 온 일이다.

   

   그러니 속도를 높여 달리는 건 내게 너무도 쉬운 일이었다.

   

   마녀의 시야를 가리던 연기가 사라진 순간 나는 이미 마녀의 앞에 도착해 있었다.

   

   메이스가 위로 치켜 올라가자 마녀가 다급히 새로운 마법을 캐스팅했다.

   

   할배의 말을 들을 필요도 없었다.

   

   근거리에서 공격을 받을 것 같으면 캐스팅하는 마법은 하나뿐이었으니까.

   

   공격 반사의 마법.

   

   생각 없이 공격을 하다보면 자신이 내리친 공격에 카운터를 당하는 악질적인 녀석이지.

   

   그렇지만 이를 미리 예상하고 있다면 대응하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다.

   

   이 마법은 강력한 효과를 지닌 만큼 지속시간이 길지 않으니까.

   

   난 메이스를 치켜 든 채로 그대로 움직임을 멈췄다.

   

   당혹이 깃든 마녀의 눈과 나의 눈이 마주한다.

   

   “허접한 쓰레기♡ 뒈져버려♡”

   

   마법이 끝남과 동시에 메이스로 마녀의 머리를 내리 찍었다.

   

   그러자 충격을 받은 마녀가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난다.

   

   일격에 끝내진 못했지만 데미지가 들어가는 감각은 있었다.

   

   쓰러트릴 수 있어. 가능해!

   

   <틈을 주지 마라. 몰아 붙여라.>

   ‘제가 그걸 모를 것 같아요?!’

   

   다시 앞으로 내달린다.

   

   당혹스러운 얼굴로 마법을 준비하는 괴물을 때려잡기 위해서.

   

   *

   

   던전의 가장 깊은 곳.

   

   생물이 흘린 피만으로 어두운 방 안에 붉고도 붉은 노을을 그려내던 연금술사는 아이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 마냥 정체 모를 생물의 팔다리를 짜맞추다 고개를 들었다.

   

   “저주받을 아르마디의 기운이 느껴지는구나.”

   

   아르마디.

   

   질서의 이름하에 세상을 억압하는 자.

   

   어찌하여 그의 기운이 나의 실험실에서 느껴지는가.

   

   연금술사는 허공에서 생물의 뼈와 살을 엮어 만들어낸 지팡이를 꺼내들더니 그로써 땅을 내리 찍었다.

   

   그러자 연금술사의 권능이 그가 머무는 실험실 전체에 퍼졌고 얼마 안 가 연금술사는 기운의 근원지를 찾아냈다.

   

   침입자가 들어왔구나.

   

   아르마디의 축복을 받은 녀석이 실험실에 들어왔어.

   

   마력시로 침입자를 살피던 연금술사는 다 썩어들어간 혀로 입맛을 다셨다.

   

   좋은 실험체구나.

   

   비록 그 크기가 작다고는 하나 그 안에 새겨진 축복이 다양해 가지고 노는 재미가 있을 듯 해.

   

   무엇보다 아르마디의 사도의 입에서 나오는 비명만큼 아름다운 음악이 없으니 말이야.

   

   연금술사는 자신의 손에 들린 장난감을 내던지고는 그 육중한 몸을 움직였다.

   

   덫에 걸린 줄도 모르는 사냥감을 데리고 오기 위하여.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위기일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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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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