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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2

   

    당찬 포부와는 다르게 서준은 당장 담제일과 비무를 치를 수는 없었다.

   

    부전승으로 올라간 서준의 다음 상대는 담제일이 아닌 서복우라는 무인이었기 때문이다.

   

    “잘 부탁드리오. 비유검관의 서복우라 하오.”

   

    포권하는 사내에게 서준 역시 포권했다.

   

    “춘봉이 오빠 이서준이요.”

   

    서복우의 표정이 묘해졌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보아하니 서복우의 경지는 일류쯤 되어 보인다. 진지하게 우승을 노리기보다는 경험을 쌓고자 출전한 듯싶었다. 

   

    사실 애초부터 여기 있는 무인들 중 절정경은 많이 없었다. 대부분이 일류, 혹은 이류. 

   

    아마 본선은 절정경끼리의 경쟁이 될 터였다. 

   

    “크흠.”

   

    헛기침해 이목을 끈 화산파의 무인이 둘과 시선을 교환한 뒤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시작!”

   

    화산파 무인의 손이 올라가는 것과 동시에 서복우가 달려들었다.

   

    검에 어린 뿌연 검기. 어깨를 노리고 찔러들어오는 검이 꽤 매섭다.

   

    하지만 춘봉이에 비할 바가 아니다.

   

    적당히 검을 뽑아든 서준이 운류청천으로 검을 흘려내며 사내의 목에 검을 가져다댔다.

   

    그걸로 끝.

   

    순간 비무장이 고요해졌다.

   

    “…승자, 이서준!”

   

    화산파 무인의 선언이 떨어지고 나서야 구경하던 무인들이 입을 열었다.

   

    “이서준…? 들어본 적 있으시오?”

    “전혀. 저 서복우라는 무인 역시 얕볼 만한 실력은 아니었는데….”

   

    멍하니 입을 벌리고 서있던 서복우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떨리는 손으로 포권했다.

   

    “…한 수 배웠소.”

    “수고했습니다.”

   

    적당히 예를 갖춘 서준은 비무대에서 내려와 목을 긁적였다.

   

    ‘예선이라 그런가.’

   

    그다지 만족할 만한 실력은 아니었다.

   

   

    *

   

   

    담제일은 다른 무인과 한 번 더 대련을 치러 승리를 따냈다.

   

    이미 두 번의 대련을 치른 담제일과 한 번의 대련을 치른 서준.

   

    불공평하다며 불만을 토할 만도 했지만, 이 자리의 누구도 그런 불만을 토해내지는 않았다.

   

    천 명이 넘는 인원이 참가하는 예선전에서 그런 불만을 토해봐야 들어줄 리 없다는 걸 모두가 알았으니까. 

   

    물론 평범한 비무 대회였다면 무인들이 불만을 속에만 담고 있지는 않았을 터다. 

   

    일단 칼부터 휘두르고 보는 무림인들에게 한 번쯤 생각할 침착함을 부여하는 것.

   

    그게 화산파의 힘이었다.

   

    “아까 보니 꽤 잘 싸우더만! 그래도 내 상대는 안 돼! 괜히 다치지 말고 항복하는 게 어때?”

   

    담제일의 말에 서준이 귀를 후볐다.

   

    사내 새끼들 사이에 파묻혀 있다보니 그냥 빨리 춘봉이 볼따구나 만지고 싶어졌다.

   

    “이서준, 담제일, 나오시오.”

   

    심판의 말에 서준이 벌떡 일어나 비무장으로 향했다.

   

    담제일 역시 혀를 차며 뒤를 따랐다.

   

    담제일과 마주 보고 선 서준은 멍하니 검을 만지작거렸다.

   

    농담이 아니라 슬슬 금단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손이 벌벌 떨리고, 심장이 쿵쿵 뛴다.

   

    당장이라도 춘봉이의 볼따구를 만지지 못하면 담제일의 배때지에 칼을 쑤셔넣을 것만 같았다.

   

    “아재요.”

    “엉?”

    “잘 막아야 돼요?”

   

    서준이 허리춤의 검을 뽑자 담제일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어이가 없군! 네 녀석 걱정이나 해라!”

   

    둘에게 시선을 준 심판이 선언했다.

   

    “시작!”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담제일이 거친 발걸음으로 달려들었다.

   

    쿵-! 쿵-!

   

    비무장이 부서질 것처럼 무거운 걸음이다. 그러면서도 신형은 날래게 다가오니 과연 일절의 신법이라 할 수 있었다.

   

    서준은 심호흡하며 움켜쥔 검을 비틀었다.

   

    ‘죽이면 좆된다. 진짜로.’

   

    화산파 친구들이랑 진득한 집착물 하나 찍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담제일. 그의 커다란 도가 서준의 어깨를 향해 떨어져내린다.

   

    “흐압…!”

   

    도가 닿기도 전에 풍압이 어깨를 짓누른다. 서준은 그 내리누르는 힘에 저항하지 않고 오히려 이용해 그대로 몸을 회전시켰다.

   

    왕씨도법의 묘리는 간단히 말해 일격필살.

   

    회전하는 서준의 검에 선명한 금빛 도기刀氣가 어렸다.

    

    말이 안 되는 일이었으나, 이미 벌어진 일이다.

   

    거칠게 휘둘러진 서준의 검이 담제일의 도를 베어냈다.

   

    “무슨…!”

   

    담제일의 눈이 크게 떠졌다.

   

    서준의 검이 계속 나아간다.

   

    궤적 끝에 놓인 것은 담제일의 두툼한 목.

   

    얇은 피부. 두꺼운 근육. 힘줄과 핏줄. 중심의 단단한 뼈.

   

    중앙을 지나면 다시 힘줄과 핏줄. 두꺼운 근육. 얇은 피부.

   

    서준의 입꼬리가 찢어질 듯 올라갔다.

   

    “어휴, 씨발. 좆될 뻔했네.”

   

    담제일의 목을 살짝 베어낸 검이 가까스로 멈춰섰다.

   

    “허억…! 허억…!”

   

    숨을 몰아쉬던 담제일이 다리에 힘이 풀린 듯 그대로 넘어졌다.

   

    그의 목에서 얇은 핏줄기 하나가 떨어져내린다.

   

    목을 붙잡고 계속해서 심호흡을 하던 그는, 이내 서준과 시선이 마주치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비무장 바닥이 누런 액체로 축축해졌다.

   

    “아오! 씹!”

   

    기겁한 서준이 담제일에게서 후다닥 멀어졌다.

   

    “아니 아재요! 요실금이야!? 그 정도 나이는 아니지 않냐!?”

    “끄윽….”

   

    기어코 담제일이 기절했다.

   

    서준이 입을 쩍 벌렸다.

   

    “아니…. 어이가 없네 진짜….”

   

   

    *

   

   

    칠십팔 조를 담당하는 운벽은 방금 막 비무를 끝낸 무인을 바라보았다.

   

    ‘이서준이라 했나.’

   

    태도가 지나치게 가볍기에 시정잡배인 줄 알았거늘, 그의 솜씨는 예상 외로 뛰어났다.

   

    특히 일전의 그것.

   

    휘두르는 검 위로 희미하게 어렸던 도의 형상.

   

    심상에 도라는 개념이 강하게 틀어박힌 무인에게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었다. 

   

    운벽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본래 쓰는 무기는 검이 아닌 도인가 보군.’

   

    가끔 있었다. 상대에게 혼란을 주려 자신의 무기를 감추는 이들이.

   

    하지만 운벽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저 정도 실력이라면 어느 정도까지는 올라가겠군. 하지만 운이 아무리 좋아봐야 한두 번 더 이기는 게 전부.’

   

    도기의 정순함은 봐줄 만했으나, 도법은 부족하지 않을 뿐 아주 뛰어나다 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자신이 담당하는 조에 속한 것 역시 인연. 가볍게 응원을 하는 것 정도는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본선 진출을 축하드리오.”

   

    운벽이 서준에게 다가가 패 하나를 건넸다. 패에는 칠십팔이라는 글자가 크게 적혀있었다.

   

    “본선 진출을 증명하는 패요. 잃어버리지 않도록 주의하시오.”

    “아, 네. 그래서 혹시 이제 다 끝난 건가요?”

    “그렇소. 조언을 하나 하자면, 본선에 나가서는 부….”

   

    쐐액-!

   

    눈앞에서 사라진 서준의 신형에 운벽이 눈을 껌뻑였다.

   

    “허어….”

   

    한동안 굳어있던 운벽이 불편한 심기를 숨기며 비무장을 돌아보았다.

   

    소변 위로 쓰러진 채 절여진 담제일.

   

    운벽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빌어먹을….”

   

   

    *

   

   

    서준은 황룡도하의 수법을 응용해 빠르게 이동하며 백이십오 조의 위치를 찾았다.

   

    ‘저기 있네.’

   

    마침 춘봉이가 곧 대련을 치르려는 듯 상대와 마주하고 있었다.

   

    죽립을 푹 눌러쓰고 얼굴에 면사까지 두른 수상한 차림새의 금춘봉.

   

    근데 키가 쬐깐해서 그냥 귀엽다.

   

    “춘봉이 화이팅!”

   

    춘봉이가 고개를 홱 돌리더니 어깨를 으쓱였다.

   

    급격하게 마음의 평안이 찾아온다.

   

    서준은 곧 열반에 들 것 같은 표정으로 자리에 주저앉아 비무를 관람할 채비를 갖췄다.

   

    춘봉이의 상대는 비실비실하게 생긴 사내놈이었는데, 얼굴이 꽤 잘생겨서 심기가 불편해졌다.

   

    ‘저 씹새끼, 춘봉이 몸에 흠집 하나라도 내기만 해봐라.’

   

    화산파고 뭐고 그냥 대가리를 깨버릴 거다.

   

    “시작!”

   

    심판의 선언에 선수를 취한 건 춘봉이었다.

   

    그녀는 부드럽게 앞발을 내밀어 미끄러지듯 이동하더니,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들며 빠르게 회전했다.

   

    카앙-!

   

    상대가 검을 막았다.

   

    하지만 춘봉의 검은 그대로 상대의 검에 붙어있었다.

   

    ‘착의 묘리.’

   

    서준이 감탄했다. 저건 기를 응용한 게 아니라 그냥 검술이다.

   

    상대의 검에 자신의 검을 딱 붙인 채 상대의 검을 제어하는 기술.

   

    상대가 당황한 듯 춘봉의 검을 떨쳐내보려 했지만, 춘봉의 검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상대가 검에 힘을 주는 순간,

   

    휘익-

   

    그 검에 그녀의 힘을 더해 검을 위로 올려쳐버렸다.

   

    “어엇…!”

   

    그렇게 대련이 끝났다.

   

    “승자, 춘봉!”

   

    상대는 목에 닿은 시퍼런 검날을 바라보다 고개를 푹 떨궜다.

   

    “…졌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두 무인이 인사를 나누고 나자 백이십오 조의 감독관이 춘봉에게 패를 건네며 무어라 말을 전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서준이 턱을 긁적였다.

   

    ‘무인….’

   

    어설픈 무인들을 보다 춘봉이를 볼 때면 새삼 느껴진다.

   

    제대로 된 무인의 무술은 다르다.

   

    기氣의 유무를 넘어서, 그들이 다루는 무기에 깃든 신비가 있는 것만 같았다.

   

    방금 춘봉이가 대련에서 쓴 검술은 청운신검이 아니었다.

   

    그저 착의 묘리 하나만을 보여주고 대련을 끝냈다.

   

    그럼에도 그녀가 검을 휘두르는 모습은 마치 구름이 흐르듯 부드럽고 단아해서, 대련이 아닌 하나의 풍경화를 본 것만 같았다.

   

    “역시 우리 춘봉이…!”

   

    참지 못한 서준이 날 듯이 뛰어 춘봉을 덥썩 집어들었다.

   

    “으앗…!?”

    “우리 춘봉이 장하다!”

    “아니! 야! 밖에서는 좀!”

    “높다높다!”

    “아오 씨발!”

   

    결국 냥냥펀치에 얻어맞았다.

   

    허리의 피로가 풀렸다.

   

   

    *

   

   

    춘봉이와 함께 비무장을 빠져나오던 서준이 문득 생각이 나 물었다.

   

    “근데 있잖아. 대련에서 혼원일월지는 쓰면 안 되겠지?”

    “…그걸 말이라고 하냐?”

    “하긴.”

   

    대련 상대를 고깃덩어리로 만들 생각이 아닌 이상 혼원일월지는 자제하는 게 맞았다.

   

    “혼원신공은 써도 되나?”

    “그건 뭐, 상관없을 거 같은데.”

    “그래?”

    “응. 애초에 기운 자체가 정순해서 마공이나 사술로 몰아가지는 못 할걸?”

   

    그럼 청하문주 그 아재는 뭐였지?

   

    묘한 표정으로 턱을 쓰다듬던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 정도면 상관없겠다. 오빠가 다 이겨줄게.”

    “얼씨구. 내가 이길 거거든?”

    “뭣…! 하늘 같은 오빠를 이겨먹겠다는 거냣!”

    “지랄.”

   

    낄낄 웃던 서준이 춘봉의 죽립을 통통 두드렸다.

   

    “아무튼 이제 밥이나 먹으러 가자.”

    “어머? 또 만나네요.”

   

    낯익은 목소리에 서준이 고개를 돌렸다.

   

    “와, 젖탱이.”

   

    분명 사람을 보는데 가슴밖에 안 보인다.

   

    본능적으로 검에 손이 올라가려는데, 춘봉이가 옆구리를 진짜 존나 세게 꼬집었다.

   

    “아악…!”

    “미친 새끼 아니야!”

    “왜, 왜…!”

    “뭐!? 젖탱이? 진짜 니가 미쳤지!?”

   

    아, 그걸 입으로 뱉었나?

   

    서준이 머쓱하게 웃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근데 진짜 엄청 크시네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숨 쉬듯 무례한 새끼..
쓰면서도 그냥 어이가 없네

*

참고로 표지의 처자는 압박붕대를 한 상태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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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무공 뭐 별거 없더라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fell into a phony martial world. But they say martial arts are so hard? Hmm… is that all there is t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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