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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2

   비앙카와 크라슈가 한창 식사하던 때.

   하덴하르츠 열린 회의에서는 이야기가 오고 가고 있었다.

     

   “크라슈 발하임의 상태는 어떤가.”

     

   하덴하르츠의 회의실.

   그곳에 모인 가신들과 함께 지금 잠시 자리를 비운 아버지를 대신해 가주 대행을 하는 첫째 멜리오칸 하덴하르츠가 물었다.

     

   “무사합니다. 팔을 잃으신 것이 흠이긴 하나 팔을 복구하는 것이야 신성 왕국에서 신관을 초빙하면 어떻게든 해결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부분은 그나마 다행인 이야기였다.

   이번 사건은 자신들 영지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혹시나 발하임 쪽에서 책임을 묻는다면 그것만큼 곤란한 일은 없다.

     

   “신성 왕국 쪽에 연락은 넣어 놓았나.”

   “예, 하이 프리스트 계급을 요청 넣어 놓았습니다.”

   “돈이 꽤 깨지겠군.”

     

   멜리오칸은 침음을 내뱉었다.

   지출은 뼈아프나 발하임과 부딪쳐서 좋을 건 없다.

     

   “급한 일이니 빨리 와달라고 부탁하게.”

   “예,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 이야기일세. 자네들은 크라슈 발하임이 이번 도살견을 쓰러트린 일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크라슈의 상태와 팔에 관한 것은 어떻게든 해결하면 되었다.

   비록 신관을 통해 팔을 회복시키면 회복 기간과 그 대가가 없지는 않겠지만, 해결은 되니까 말이다.

     

   오늘 그들이 회의를 연 진짜 이유는 다름 아닌 크라슈가 도살견을 쓰러트린 그의 무위에 관한 것이었다.

     

   도살견 베르크만은 조사 결과 본디 엑스퍼트 상급에 달하는 실력자였다.

   거기에 세계 침식자의 종이 되어 한층 더 성장한 그의 현재 무력은 무려 엑스퍼트 최상급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그런 베르크만을 상대한 크라슈의 나이는 고작해야 14살.

   그는 본래 신들조차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는 발하임의 반푼이였다.

     

   그런 그가 어떻게 베르크만을 쓰러트렸는가.

     

   “최근 소문이 하나 있지 않습니까.”

     

   그 순간 가신 한 명이 최근 파다하게 퍼진 소문을 언급했다.

   별의 성지에서 아닉스를 상대로 보여주었다던 크라슈의 무위에 관한 소문 말이다.

     

   “이번 일도 그렇고, 역시 발하임의 핏줄의 힘이 뒤늦게 발현한 거 아니겠습니까?”

   “자네들 생각도 그런가?”

     

   멜리오칸이 질문하자 가신들은 다들 동의하는 반응을 보였다.

     

   “하덴하르츠에게는 낭보군.”

   “맞습니다. 그 유명한 검성, 샬롯 발하임과 완전히 같은 핏줄이지 않습니까? 그 핏줄이 지금이라도 발현됐다면 앞으로 더 거물로 성장할 것이 분명합니다.”

     

   이것은 하덴하르츠에게는 엄청난 희소식이었다.

   크라슈는 비앙카와 약혼을 맺은 상태다.

     

   만약 크라슈가 발하임에서 한자리하게 된다면 약혼 관계인 하덴하르츠 입장에서도 따라 득을 보게 되니 말이다.

     

   “하지만 멜리오칸 님, 비앙카 아가씨는…….”

     

   여기서 딱 하나, 비앙카가 마음에 걸렸다.

   비앙카는 저주받아 배척받는 아이다.

     

   원래는 크라슈도 발하임에서 버리는 카드였기에 약혼이 성사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더 이상 반푼이가 아니게 된다면 약혼 건에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멜리오칸 님, 차라리 지금이라도 약혼 대상을 바꾸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대상을 바꾸라고?”

   “예, 제니카 아가씨가 있지 않습니까.”

     

   비록 크라슈보다 두 살 연상이라곤 하나 제니카도 빼어난 미모를 지닌 여식이다.

   거기에 비앙카와 관련되면 눈이 돌아가 사고를 쳐서 그렇지, 그것만 아니면 크게 모나지 않았다.

     

   “약혼 대상을 갑자기 바꾸겠다고 하면 우리 입장도 난처해지지 않겠나?”

   “오히려 이대로 약혼이 깨져 버리는 게 더 큰 문제지 않습니까. 발하임 쪽에서도 비앙카 아가씨보다는 제니카 아가씨를 오히려 환영할 겁니다.”

     

   저주 걸린 아이보다야 정상적인 이가 훨씬 나을 테니 말이다.

     

   “제니카가 받아들이겠나.”

   “설득해야죠.”

     

   하덴하르츠를 위한 일이다.

   제니카가 싫다고 한들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리하지. 제니카를 불러오게. 비앙카에게도 돌아오라고 해둬야 하니 불러오고.”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정작 두 사람은 모르게 하덴하르츠의 회의가 그리 끝마쳤다.

     

     

   * * *

     

     

   그 시각 크라슈는 비앙카와 함께 복도를 거닐고 있었다.

     

   “이제 눈 좀 떠지냐.”

   “네, 잘 보여요.”

     

   크라슈가 힐끗 보니 확실히 비앙카의 커다란 본래 눈이 드디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 부어있긴 하나 저녁때쯤이면 대충 가라앉으리라.

     

   “감정을 되찾으니 어때.”

     

   크라슈는 혹시나 비앙카가 또 백귀와 같이 될까 싶어 슬쩍 물어보았다.

     

   “잘 모르겠어요. 어제 처음 울었을 때는 느껴졌는데 지금은 그냥 그래요.”

     

   그러자 정작 비앙카는 아리송한 반응을 보였다.

     

   어제 펑펑 울었던 것과 달리 그녀의 표정은 무표정했다.

   이 모습을 본다면 남들은 그녀가 감정을 되찾았는지 아닌지도 구분 못 하리라.

     

   하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이야기였다.

   평생 얼굴 근육을 써본 적 없는 그녀는 표정을 어떻게 지어야 할지 몰랐다.

     

   “그럼 화나는 일 같은 거 떠올려 보던가.”

   “화나는 일이 뭔가요?”

   “그건 너만 알겠지. 뭔가를 남한테 뺏겼다던가 남들보다 못해서 분하다든가 하는 게 흔히 화나는 일 아니겠냐.”

     

   크라슈의 말을 듣고, 비앙카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삐죽하고 눈썹이 살짝 움직였다.

     

   무표정에서 살짝 변한 것이긴 했지만 장족의 발전이었다.

     

   “뭐, 생각한 거냐?”

     

   비앙카가 화나는 일이란 게 무엇일지 궁금하여 묻자 그녀가 크라슈를 돌아보았다.

     

   “달링 님이랑 친하게 지내던 크라슈 님이요.”

   “그게 왜 화가나?”

   “모르겠어요.”

     

   이상한 녀석.

     

   “그럼 기쁜 일은 어떤 건데.”

     

   슬픔이야 어제 마음껏 겪어봤으니.

   이번에는 기쁨도 알아봐야 하지 않겠는가.

     

   비앙카는 화날 때를 고민하던 것과 달리 의외로 기쁨은 이미 알고 있다는 반응이었다.

   그러곤 대뜸 크라슈의 왼손을 잡더니 자기 머리 위에 텁하니 올렸다.

     

   그러곤 아직은 어색한 표정으로 입꼬리만 올렸다.

     

   “이러면 기뻐요.”

     

   비앙카를 잠시 바라보던 크라슈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여전히 작은 비앙카의 머리는 크라슈의 손을 따라 좌우로 흔들렸다.

     

   어쩐지 피식하니 웃음이 새어 나온 크라슈였다.

   비앙카의 머리에서 손을 뗀 크라슈는 그대로 내려 그녀의 볼을 감쌌다.

     

   “기왕 웃을 거면 제대로 웃어야지. 입꼬리만 올리면 웃는 거냐?”

   “저 웃고 있어요.”

   “퍽이나. 입꼬리가 이 정도 올리고, 눈은 이렇게 돼야지.”

     

   크라슈는 왼손으로 비앙카의 얼굴을 이리저리 만졌다.

   부드러운 찐빵 같은 감촉은 생각보다 중독성 있었다.

     

   “이렇게요?”

     

   하지만 정작 나온 결과물은 애매했다.

   입꼬리는 올라갔고 눈매는 감겼지만 웃음과는 아직 거리가 멀었다.

     

   “오늘부터 표정 연습 좀 해야겠다.”

     

   그래도 언젠가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웃는 날이 오겠지.

   비앙카가 백귀와 같은 결말을 맞이하지 않는다면야 아무래도 좋았다.

     

   “비앙카.”

     

   그러는 순간 복도 끝에서 한 사람이 나타났다.

   순백색의 머리카락과 비앙카와 닮은 얼굴.

     

   그녀는 다름 아닌 제니카였다.

   그리고 그녀는 비앙카를 지독히도 괴롭힌 범인이었다.

     

   그 순간 비앙카가 크라슈의 등 뒤로 스리슬쩍 숨었다.

   본래라면 비앙카가 하지 않을 행동이었다.

     

   감정이 없는 그녀에게 두려움이라는 감정 또한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감정을 되찾은 지금 비앙카는 제니카를 마주하기 힘들었다.

     

   그것을 느낀 크라슈는 비앙카를 가리고 서며 제니카를 보았다.

     

   “무슨 볼일이라도?”

     

   크라슈가 질문하자 제니카가 크라슈 쪽을 보았다.

   그녀는 크라슈의 팔을 보더니 움찔거리곤 거기에서 시선을 피했다.

     

   얼마 전 기사가 시체가 되어 죽은 모습이 트라우마로 남은 탓이었다.

     

   “……오빠가 비앙카를 데리고 같이 오라고 해서.”

     

   그러면서 그녀는 크라슈 등 뒤에 숨은 비앙카 쪽을 힐끗거렸다.

   그날 비앙카가 제니카 대신 도살견과 함께 몸을 던졌을 때, 그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멍하니 추락하는 비앙카를 보고 있는 것뿐.

   한참을 그렇게 있던 그녀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곤 절벽을 타고 올라왔다.

     

   그 과정에서 손이 까지거나 했지만 아픔보다 머리가 더 혼란스러웠다.

     

   비앙카가 자신을 구했다.

   대체 왜?

     

   그녀를 매일 같이 괴롭혔던 자신이다.

   그런 자신을 왜 그녀가 구한단 말인가?

     

   제니카의 입술이 깨물어졌다.

   그 작은 애가 자신을 구했다.

   그것도 언니인 자신을 말이다.

   자신은 정작 그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는데 비앙카는 누구보다 용감하게 움직였다.

     

   그 사실은 스스로에게 깊은 혐오감을 느끼게 하였다.

   무기력함이 강하게 그녀를 눌렀지만, 그런 그녀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도 혐오감이었다.

     

   비앙카가 만약 이대로 죽는다면 그녀는 자신을 용납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러니 그녀는 그 뒤 하덴하르츠로 돌아와 이 사실을 전하고, 로칼 산을 기사들과 함께 뒤졌다.

     

   비록 크라슈가 먼저 발견해 구하긴 했지만, 그녀는 눈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밤새워 가면서까지 비앙카를 찾았었다.

   하지만 그것은 면죄부가 되지 못한다.

     

   그러니 제니카도 지금의 비앙카를 어찌 대해야 할지 몰랐다.

   이제는 자신 스스로가 더 미웠으니 말이다.

     

   사과를 하는 것마저 그것이 비앙카를 위한 일인지 자신을 위한 면죄부인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오빠가 나를 불렀어. 그리고 비앙카, 너도 오래.”

     

   제니카는 그렇게 말하고 몸을 돌려 먼저 가버렸다.

   도망치듯 자리를 뜨는 그녀가 사라지고 나서야 비앙카는 크라슈의 뒤에서 나왔다.

     

   크라슈는 제니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회귀 전 비앙카의 이야기 속 제니카는 분명 용서 아닌 용서를 구했다 하였다.

     

   그리고 방금전 태도를 보니 크라슈의 눈에도 제니카가 변하기 시작한 걸로 보였다.

     

   “비앙카.”

     

   크라슈는 자신의 부름을 따라 고개를 빼꼼히 내미는 비앙카를 바라보며 말해주었다.

     

   “제니카가 너에 대한 태도가 바뀌더라도 네가 딱히 용서할 필요는 없어.”

     

   제니카는 용서는 구할 수 있을지언정 그 용서를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비앙카의 몫이다.

   용서를 구한다 해서 예전에 했던 잘못들이 전부 없어지지 않으니까.

     

   그 사실을 잘 아는 크라슈는 비앙카에게 말했다.

     

   “그러니 마음에 안 들면 그냥 다 무시하고 나와. 집으로 데려가 줄 테니까.”

     

   비앙카가 하덴하르츠에 있는 게 싫다면 그녀를 데리고, 청송관으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이제 청송관 또한 그녀의 집이니까.

     

   크라슈의 말을 듣고, 비앙카는 잠시동안 크라슈를 바라보았다.

   그러곤 자기 검지 두 개로 자기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지금 느끼는 건 기쁨이에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곤 걸음을 옮겼다.

     

   “다녀올게요.”

     

   짧은 다리로 열심히 가는 그녀를 뒤에서 보던 크라슈는 피식 웃었다.

     

   “생각보다 잘 웃네.”

     

   자기 손으로 입꼬리를 올리기 전부터 본인이 웃고 있었다는 사실은 몰랐던 모양이다.

     

   “에벨아스크, 근처에 있지.”

     

   비앙카가 사라지고, 크라슈가 에벨아스크를 호명했다.

   그러자 창문 쪽에서 쥐 한 마리가 올라왔다.

     

   한쪽 눈이 없는 쥐는 이미 옛날에 죽은 시체였다.

     

   “귀 좀 빌리자.”

     

   크라슈가 부탁하자 쥐는 곧바로 복도를 가로질러 달려갔다.

   허튼소리를 하기만 해봐라.

     

   앞뒤 없는 발하임 반푼이가 깽판 치는 게 뭔지 보여 줄 테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삽화 및 일러스트를 총정리해서 인스타에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인스타에 ‘무화꽃란’ 입력하시면 업로드를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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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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