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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2

       디모나 이단심판관이 찾아왔다.

         

       "지금 뭐 하고 있어요?"

       "보면 몰라요?"

         

       나는 쓱 바닥을 닦던 밀대를 가리켰다.

         

       "걸레질하고 있지."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디모나가 미간을 꾹꾹 눌렀다. 코피가 쓱 흘러내렸다.

       나는 다급히 휴지를 건넸다.

         

       "방금 막 닦았어요!"

       "야 이 새끼야! 내 걱정부터 해!"

         

       디모나가 힘없이 빈 의자에 앉았다.

         

       "왜…왜 걸레질을 하고 있는데요. 뭔가 자신만만하게 갈아엎을 것처럼 이야기하더니…왜 걸레질을 하고 있냐구요…"

       "바닥이 더러워서?"

       "내가 당신 걸레질하는 거 보려고 데려온 줄 알아?!"

       "귀 나가겠네. 좀 진정해요. 물이라도 좀 갖다 줄까요? 아니면 특제 음료수 만드는 중인데, 한 번 마셔볼래요?"

       "특제…뭐요?"

         

       나는 앞치마를 갈아입었다. 디모나가 뒷목을 잡았다.

         

       "가사 전반…도우미를…데려온 게 아니라고…요…나는…"

       "제가 만든 거 제법 인기 있는데. 드셔 보세요."

       "…왜 맛있어?!"

       "그쵸?"

         

       음. 역시 난 요리의 재능이 있는 거 아닐까.

         

       음료를 원샷한 디모나가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탁자에 엎드려 눈물을 훌쩍였다.

         

       "나…나는…그래도 버텨보겠다고 했는데…노력하는데…기껏 데리고 온 말썽쟁이는…가사도우미나 처 하고 있고…"

       "알코올 성분은 안 넣었는데. 이상하다."

       "들으라고 한 소리에요! 주사가 아니라!"

       "자. 진정하시고."

         

       나는 밀대를 내려놓았다. 앞치마를 쓱 벗었다.

         

       "알아서 잘하고 있는데 왜 찾아왔어요?"

       "왜긴 왜에요?! 헛짓거리하고 있다길래 찾아왔죠! 사도라며! 라의 선택을 받았다며?! 근데 하는 게 고작 가사 전반 도우미냐고!"

       "누가 가사 전반 도우미래요? 대체 누가!"

       "하, 하지만 하는 일이…"

       "디모나님."

         

       나는 그녀를 딱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제가 진짜 뭘 하고 있는지 몰라요?"

       "…서, 설마!"

         

       디모나가 벌떡 일어섰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요! 뭔가 생각이 있는 거였죠? 하긴. 당신은 좀 싸가지 없기는 해도 머리 하나만큼은 똑똑하니까!"

       "새로운 음료수 레시피도 개발 중인데 드셔 보실래요?"

       "야 이 개새끼야!"

         

       장난은 여기까지 할까.

         

       "우리 유능한 이단심판관 디모나님."

       "뭐요."

       "제5 이단심문소 2군에 파벌 생긴 거 알고 있어요?"

       "…예?"

         

       그럼 그렇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데, 제대로 된 1군 성기사가 육성될 리 있냐.

         

       "자. 보세요."

         

       나는 그동안 간단히 정리해둔 노트를 내밀었다.

         

       "이게 뭐예요?"

       "뭐긴 뭐예요. 무해한 소동물로 변장해서 기록해둔 것들이지."

         

       나는 그동안 청소와 식사만 담당하고 있던 게 아니었다. 잡일을 처리하면서 슬쩍 안의 동태를 살폈다.

       내 소문은 허다하게 퍼져 있었다. 날 모르는 이단심문관들에게 견제를 받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만약 스스로 잡부를 자처한다면?

         

       의심의 눈길은 하나둘씩 꺼졌다. 내 요리를 먹고 감탄한 이들이 오히려 칭찬하면 지나갔다.

         

       인망을 얻는 것.

         

       그것이 내가 한 일의 첫 번째였다. 나와 함께했던 이단심문관들은 모두 1군이었으니,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나에 대한 칭찬만 자자했으니.

         

       문제는 제5 이단심문소의 미래이자 밥벌레들인 2군 성기사들이었다.

         

       "2군은 전적이 화려하던데요? 그냥 아예 다 받아들였던데? 북부에서 온 야만인 그룹부터 해서…수인…돈 좋아하는 수녀에다가…진짜 무능력한 왕따들도 있던데요?"

       "그 특성을 일주일 만에 파악했어요?"

       "쉽던데?"

       "진짜 괴물인가…"

         

       정리한 노트를 휙휙 넘기던 디모나가 눈을 반짝였다.

         

       "그러면요? 그다음은요?"

       "당연히 하나죠."

         

       나는 앞치마를 싹 벗어던졌다.

         

       "파벌은 총 셋으로 나뉘어 있어요. 2군의 문제아들이라고 할 수 있죠. 북부 야만인 출신 노르드가 첫 번째고, 두 번째는 교단 지부에서 올라온 이자벨이에요. 세 번째는 무능력한 왕따지만, 인망이 높은 오스틴이 이끄는 파벌이죠."

       "이들을 어떻게 하려고요?"

       "어떻게 하긴요."

         

       나는 씨익 웃었다.

         

       "원하는 것을 손에 쥐여줘야죠."

         

         

         

         

       . . .

         

         

         

       북부야만인 출신 노르드. 전형적인 강자지만 머리에 든 것이 없는 녀석이었다.

       2군의 문제아라고 여겨지는 이유는 그가 동료 성기사를 주먹으로 패고 다니기 때문. 몇 번 주의를 시켰었지만 고쳐지지 않았다고 한다.

         

       폭력이 최고인지 아는 녀석. 그렇기에 더 다루기 쉬었다.

         

       단순 힘으로 찍어누르기는 내 전문 분야지!

         

       "부엌데기가 여긴 무슨 일이지?"

         

       노르드가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덤벼. 새끼야."

       "…호오. 지금 전사의 결투를 신청하는 거냐?"

       "무슨 개소리야."

         

       나는 주먹을 풀었다.

         

       "하극상이지!"

         

       노르드가 뻗는 데는 1분도 걸리지 않았다. 피가 튀고 뼈가 부러지자 노르드가 외쳤다.

         

       "그, 그만! 그만! 내가 졌다!"

       "지긴 뭘 져! 네가 부러트린 성기사들 뼈만 하더라도 삼백 개라던데! 오늘 한 백오십 개만 부러지자!"

       "바, 반죽음은 싫다!"

       "그럼 4분의 1만 죽여줄게!"

       "미친 새끼 아니냐! 이거!"

         

       노르드는 내게 굴복했다. 법보다 가까운 것은 주먹이었으며, 주먹보다 더 가까운 건 내 발길질이었다.

       노르드가 내 다리에 엉겨 붙었다. 피를 쏟으며 훌쩍였다.

         

       "살…려주십시오…"

       "오냐. 살려주마."

         

       나는 주변을 쓱 둘러보았다. 노르드 패거리는 눈이 마주치자 움찔했다.

         

       "할 말 있으신 분?"

       "우…우리가 고작 너 따위에게 쫄 줄…"

         

       빠각!

         

       "따르겠습니다!"

         

       노르드 파벌을 흡수하는 데 반나절도 채 걸리지 않았다.

         

         

         

       . . .

         

         

         

       교단 지부에서 올라온 이자벨은 돈을 무척이나 밝히는 수녀였다. 그녀를 따르는 이들은 금전적인 관계에 얽매여 있는 경우가 많았다.

       2군이라고 하더라도 월급은 나오는 모양. 그리고 그것을 자본으로 이자벨은 2군의 일부를 먹어치웠다.

         

       "전 돈이 좋아요. 돈은 무엇이든지 해결해 주죠."

       "그렇게 돈이 좋다 이거지."

         

       나는 작성해놓은 서류를 쓱 내밀었다. 이자벨은 눈을 게슴츠레 뜨고 서류를 확인했다.

         

       "…이게 뭐죠?"

       "뭐긴 뭐야. 사업계획서지."

         

       종이가 쓱쓱 넘어갔다. 이자벨의 눈이 커졌다.

         

       "이…이게 무슨…이런 게 가능…아, 아니 애초에! 애초에 이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요?"

       "왜 안 되지?"

       "이게 가능하게 하려면…어마어마한 양의 원액이 필요하고…하지만 그런 원액이 이 세상에 존재할 리가…"

       "있지."

         

       나는 활짝 웃었다.

         

       "나는 가능해."

       "……"

         

       이자벨이 나를 쳐다봤다. 가능성을 점쳐보는 얼굴이었다. 나는 슬쩍 의자에 몸을 기댔다.

         

       "싫으면 말고."

       "…제가 얻는 건 뭐죠?"

       "간단해. 난 네 수완을 높게 사. 너는 돈을 좋아하는 만큼, 상업에도 눈이 밝잖아? 솔직히 말해, 사제들은 아무래도 장사 수완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

       "…다른 사제들은 저를 보고 천박하다고 말했는데도요?"

       "누가 그래? 돈은 많을수록 좋지. 나는 네가 좋아. 이자벨. 너만큼 능력 있는 여자가 나와 함께해준다면 바랄 게 없지."

         

       나는 손을 내밀었다.

         

       "어때. 사업 파트너. 내가 가진 자본과, 네가 갖춘 능력을 이용해서 떼돈을 버는 거야…너는 금화 더미 위에서 목욕하겠지…이래도 나를 안 따를래?"

       "…자, 잠시만요. 좋은데…너무 솔깃하기는 한데…당신이 이 물건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가 어디 있죠?"

       "보여줄 테니까 의심하지 마. 어떻게든 구해오기만 하면 되잖아? 너는 내가 넘겨준 물건을 대신 팔아주면 될 뿐이야."

       "……."

         

       이자벨이 홀린 듯 서류를 다시 쳐다보았다.

         

       "좋…아요."

         

       그녀가 내 손을 잡았다.

         

       "당신의 밑에 들어가겠어요. 돈은 거짓말하지 않으니까. 그…그리고…"

         

       이자벨이 손을 꼼지락거렸다.

         

       "절 보고 능력 있다고 말해준 사람은…당신이 처음이니까…"

       "탁월한 선택이야."

         

       이자벨 파벌을 흡수하는 데는 불과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다.

         

         

         

       . . .

         

         

         

       교단 본부에서 가끔 아이들을 거두어들이고는 했다. 하지만 모두가 고위 사제가 되는 건 아니었다.

       어중간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 버리기에는 애매하고, 그렇다고 거두기에는 어딘가 조금 찝찝한 사제들.

         

       그것이 오스틴의 정체였다. 어중간한 재능으로 올라와, 막상 어딘가에 쓰기 모호하자 버리다시피 한 파벌이 그들이었다.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희를 왜 찾아온 거죠?"

       "난 너희가 필요해."

       "저희는 무능력합니다. 아무 힘도 없어요. 머리도 멍청하고, 운동 신경도 그리 뛰어나지 않죠."

         

       오스틴이 씁쓸히 웃었다.

         

       "저희를 끌어들여 봤자 얻을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없긴 왜 없어?"

         

       나는 성화를 일으켰다. 오스틴이 홀린 듯이 성법을 바라보았다.

         

       "그건…"

       "잿불의 상위 버전이지. 하지만 잿불 정도라면 너도 할 수 있잖아?"

       "하지만 할 수 있는 것과 능숙하게 다루는 것은 다릅니다. 저희는 그걸 해내지 못해서 소외되었고요."

       "그래도 자기를 객관적으로 볼 수는 있나 보네. 인성도 합격점이고. 좋아."

         

       세 파벌 중에 제일 다루기 쉬운 녀석들이란 말이지. 의욕이 없다는 점만 빼면, 매우 쓸만하다.

         

       "강해지고 싶지 않아?"

       "…희망은 이미 버렸습니다. 남들과 똑같은 양을 해도 우리는 절반밖에 따라가지 못해요."

       "버리긴 뭘 버려. 당장 주워담아. 네 앞에 기회가 떨어졌는데 줍지도 않을 생각이야?"

       "기회라니요?"

       "내가 바로 기회이자, 너희의 구세주지."

         

       나는 성화를 키웠다. 몸에 둘러 뱀처럼 팔을 휘감게 하였다.

       오스틴이 기겁했다.

         

       "맙소사…그건 대체 어떻게…?! 애초에 이런 성스러운 화염의 활용은 제가 보아 왔던 선생님들조차 하지 못한…!"

       "네 앞에 있는 게 누군지 알아? 희대의 천재이자, 무려 신학학술원을 한 달 만에 통과한 인재라고."

         

       나는 오스틴에게 손을 내밀었다.

         

       "널 직접 가르쳐주지. 원한다면 잡아. 그곳에 웅크려 있고 싶지 않다면."

       "…저…저라도…"

         

       오스틴이 속삭이듯 말했다.

         

       "이런 저라도…대단한 사제가…될 수 있을까요?"

       "할 수 있어. 네가 할 자세만 되어 있다면. 물론 쉽지는 않겠지. 죽고 싶은 날들이 더 많을 거야."

         

       나는 씨익 웃었다.

         

       "하지만 죽을 각오로 한다면 뭔들 안 되겠어?"

       "…절 믿어주시는 건가요?"

       "네가 날 믿어준다면."

       "……"

         

       오스틴이 울면서 내 손을 잡았다.

         

       "저…저…는…"

         

       오스틴이 무릎 꿇었다.

         

       "능력 있는 이단심문관이…되고 싶어요…!"

       "오냐."

         

       준비는 끝났다.

         

       "어디 한번 해보자고."

         

         

         

         

       . . .

         

         

         

       "이게 무슨…"

         

       디모나가 헐떡였다. 훈련하기 위해 정렬한 2군을 보고 몇 번이나 볼을 꼬집었다.

         

       "이게 대체…아니…시발…내가 몇 달에 걸쳐서 고민하던 걸 대체 어떻게…"

       "디모나님이 이단심판관이 아니었다면 가능했겠죠."

       "그게 무슨…"

       "지위가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지위라는 건 결국 좋든 안 좋든 그 자리에 선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에요. 자기보다 높은 지위의 사람이 접근하면 불편하잖아요? 속마음은 안 털어놓고 가면을 쓰는 게 당연하죠."

         

       나는 나를 척 가리켰다.

         

       "하지만 잡무나 처리하던 사람이 말을 건다면? 아랫사람에게 속마음을 더 털어놓는 건, 사람이라면 당연히 하는 짓이죠."

       "아…아하하…"

         

       디모나가 얼굴을 쓸어내렸다. 히죽히죽.

       웃음을 숨기려고 애쓰나 전혀 그러지 못했다.

         

       "이…이히히…내가 맞았어…내가 맞았어…데려오기를 잘했어…!"

       "미친 건 아니죠?"

       "미치기는 누가 미쳐요?! 그러면 지금부터는요?! 이 녀석들을 1군으로 훈련하면 되나요?"

       "말은 잘 들을 거예요. 저랑 이야기가 다 끝난 상태니까. 적절하게 다듬어주세요."

       "그러면 당신은요?"

       "저는…"

         

       미뤄두었던 일을 하러 가야지.

         

       "자금줄 좀 확보하려고요."

         

       여기에 온 이유 중 하나. 숨겨둔 성물 하나를 쓱 가져가는 거.

       딱 기다려라! 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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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팍팍 진도 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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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ladin Monopolizes the Sacred Relics

The Paladin Monopolizes the Sacred Relics

성기사가 성물을 독차지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 world where magic reigns supreme and the influence of gods wanes, a young boy finds himself unexpectedly thrust into the role of an acolyte in the declining Sun God’s Temple. Blessed with the divine stigma of the Sun God, he must navigate the temple’s internal politics, the hostility of his fellow acolytes, and the challenges that come with his newfound powers.

As he delves deeper into the mysteries of the temple, he discovers hidden secrets and powerful artifacts that could change the course of his destiny. With the guidance of an enigmatic senior acolyte and the unwavering faith in his own abilities, he sets out to prove his worth and carve his own path in a world that has all but forgotten the true power of the div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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