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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2

    <42 – 이런 이벤트가 아니었는데>

     

    챕터보스는 강하다.

    기본적으로 동급생들 십여 명은 양학을 하다시피 박살을 낼 수 있다.

     

    ‘모르니 저러는 거겠지만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공포영화를 보는 기분이네.’

     

    사람을 찢을 수 있는 헤스티아를 대놓고 집단따돌림을 하다니.

    그것도 식당에서 봤던 견습여기사 입학생을 괴롭히던 때보다 수위가 훨씬 세다.

    삼삼오오 모여서 웃으며 남을 흉보길 좋아하는 이들의 가벼운 놀림감이 되는 수준을 넘어서 작정하고 모인 상급반 입학생들에게 모욕을 당하고 있다.

    그것이 부당한 모욕임을 알면서도 헤스티아를 돕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외모 때문에 그런가?’

     

    마나의 압축, 질을 올리는 마나연단법.

    마나의 총량, 양을 늘리는 마나연공법.

    헤스티아는 강하지만 마나연공법이나 마나연단법을 익히지는 못했다.

    근육의 압축을 하지 못했으니 몸은 여성스럽지 못하게 근육으로 벌크업이 되었고 평판도 귀족이 즐비한 아카데미에서 미천한 용병출신이다.

     

    반면, 그녀의 편을 들면 적이 될 이들은 대륙 중앙을 차지한 제국귀족들만 무려 다섯 명.

    하나도 적으로 두기 두려운 이들이 다섯이나 뭉쳤다.

    잘못 찍히면 아카데미 안에서든 밖에서든 큰일이 된다고 여기는 입학생들이 부지기수였다.

     

    ‘무슨 메인보스가 저렇게 구박을 받고 다닌담?’

     

    조금 황당하기는 해도 이곳은 기본적으로 판타지 배경의 게임세계.

    잠재력이 높고 근육질에 척 봐도 강해보이는 여자가 말라빠진 귀족여자한테 힘으로 밀리는 일이 실제로 벌어질 수 있다.

    물론 헤스티아의 힘은 연공법이고 연단법이고 나발이고 전부 다 찢을 수 있지만.

     

    “언니들. B그룹 입학생들이죠?”

     

    당당하게 소리 높여 말을 걸었다.

     

    “130이나 겨우 넘는 작은 키에 똘망똘망한 눈을 지닌 귀여운 아이. 그래… 네가 오크노디구나?”

    “오크노디라면 A그룹 상급반의 유망주로 손꼽히던 북부대공녀 아이린과 서부귀족연합의 프레첼 대공가문의 안데르센 대공자를 꺾고 수석을 기록한 애?”

    “알만하네요. 변방의 수준도.”

     

    손을 들어 입을 가리며 비웃는 제국귀족영애들.

    이쪽을 비웃는 눈웃음에 악의가 스쳤다.

    모욕만 일삼던 식당에서의 패거리와 달리, 이쪽은 손찌검도 할 생각인지 기세가 사납다.

     

    “시비라면 충분히 걸었잖아. 할 말 다했으면 꺼져.”

    “어머. 애 앞에서 체면이라도 지키려는 건가요?”

    “계속 잠자코 있으면 좋았을 텐데요. 그럼 아픈 꼴은 당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아군학살자 주제에.”

    “어머, 주먹 떠는 것좀 봐요.”

    “야만적이기도 해라. 휘두르는 건가요? 당신네 용병친구들을 탈락시킬 때처럼.”

     

    헤스티아는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그녀의 동료들이 탈락한 것은 헤스티아의 잘못이 아닌 용병들의 욕심 때문이니까.

    점수에 눈이 먼 용병들이 건드리면 안 될 상대를 건드렸다가 대판 깨지고, 자기들끼리 점수경쟁을 벌이다가 자멸해버리는 추한 몰락을 겪는다.

    이것이 서부용병연합이 몰락한 진상.

    내막 따위 관심도 없는 B그룹 귀족영애들은 아랑곳 않고 헐뜯었다.

     

    ‘챕터보스가 아니라도 보기가 불쌍하네.’

     

    헤스티아의 직업은 버서커Berserker.

    광전사라고도 불린다.

    분노를 힘으로 맞바꾸는 직업.

    종종 이성을 상실하는 탓에 아군를 공격하기도 한다.

    당연히 인기는 최악.

    전위직업인 주제에 후열로 향하는 적을 묶어두지도 않고, 아군을 무시하고 위협까지 하는 거친 직업인 탓에 인기와 인식 모두 최악이다.

    대보스전이나 강력한 개인과의 결투에서는 큰 효용을 발휘하는 파티원이지만 다루기가 까다로운 탓에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도 비주류 직업이다.

    아무도 원치 않는 파티원.

    신용도는 최하.

    어쩌면 그래서 더 마음이 갔던 걸지도 모른다.

    내가 아카데미에서 습득을 노리는 직업도 기피직업 중 하나니까.

     

    “들개들은 맹수를 마주치면 겁을 먹고 짖는다던데, 언니들이 딱 그런 꼴이네요.”

    “하아?”

    “들개?”

    “감히 제국귀족을 상대로 그따위 망언을 입에 담다니, 미치기라도 한 건가요?”

    “아, 미안해요.”

     

    미안하다는 말에 금방 우쭐한 표정들을 짓는다.

    순순히 사과라도 할 줄 알았니?

     

    “여럿이서 한 명을 괴롭히며 천박한 말만 일삼아대어서 제국귀족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었거든요. 가정교육을 받지 못한 점을 헤아려야 했는데.”

     

    B그룹 상급반 입학생들의 표정이 험해졌다.

    그중 한 명이 우리 주변에 눈치를 주었다.

     

    “아앗, 다리에 힘이.”

    “누가 자꾸 미는 거람?”

     

    주변의 팬티스타킹녀 몇 명이 은근슬쩍 이사벨에게 다가와 팔꿈치를 들어 옆구리를 찍고 무릎으로 허벅지를 가격했다.

     

    “윽.”

     

    비겁한 수작에 억눌린 신음을 흘리는 이사벨.

    그 꼴을 그냥 두고 볼 내가 아니었다.

     

    “아앗, 몸이 흔들려서 떨어질 것 같아~”

     

    덥썩.

     

    “꺄아악!”

    “당장 이 손 놓치 못해욧?!”

     

    머리카락을 꽉 붙잡히자 비명을 지르는 팬티스타킹녀들이 마구 손을 뻗었다.

    이판사판으로 이사벨과 내 옷을 잡아당기고 머리끄덩이를 붙잡으려는 손길을 교묘하게 팔을 휘둘러 방해하니 근처 사람들이 모조리 물러났다.

     

    “으아앙!”

    “아파아아..”

     

    머리카락이 잔뜩 뽑힌 팬티스타킹녀들이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너희 아주 막나가는구나?”

    “갑자기 위험하게 막 달려든 쪽이 잘못이죠.”

     

    험한 꼴을 보기 싫은 일반학생들은 전부 물러났다.

     

    “애초에 여기 헤스티아씨는 A그룹의 일원. 저와 같은 시험을 치렀던 경쟁자였어요. 제 경쟁상대를 모욕한다면 A그룹 수석인 제 성과를 무시하는 거죠.”

     

    B그룹 상급반 입학생들이 씩씩거렸다.

     

    “기껏해야 변방 촌뜨기들 사이에서 수석 한 번 거뒀다고 콧대가 높구나?”

    “말로만 해서는 안 되겠네.”

    “롯토 양. 본때를 보여주세요.”

     

    맨살을 드러내지 않는 제국귀족의 전통에 따라 팬티스타킹을 입는 교복차림의 영애들 사이로, 한 사람만 다른 복장을 한 이가 앞으로 나섰다.

    살을 전부 덮기만 한다면 팬티스타킹이 아니어도 된다. 그런 지론 하에 바디슈트Bodysuit라는 파격적인 복장을 한 어깨길이의 단발을 한 여학생.

     

    타닷 탓

     

    가볍게 스텝을 밟으며 나온 그녀가 허공에 킥을 날리자 강한 풍압이 일었다.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궤적의 날카로움이 사람의 뼈 정도는 박살내기에 충분해보였다.

     

    “꺄악! 롯토님 너무 멋져요!”

    “윙크 한 번만 해주세요!”

     

    제국귀족영애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는 롯토.

    그녀의 시범에 상급반 학생들도 기가 살았다.

     

    “봤지? 가문에서 붙여준 전문 격투가에게 격투기술을 배운 몸이야. 이 앞에 대련장이 있지만 나랑 대련하면 많이 아파질걸?”

    “지금이라도 언니들한테 사과하는 게 어때? 바닥에 엎드려서 품위 없는 변방의 야만인이라서 죄송합니다, 라고 하면 봐줄 수도 있는데?”

    “어머.”

    “쿡쿡.”

    “어머 야해라~ 그런 짓을 해버리면 수치스러워서 죽고 싶을지도 모르겠네? 푸후후.”

     

    헤스티아가 욱하며 앞으로 나섰다.

     

    “비겁한 녀석들. 불만이 있으면 내게 덤벼. 제국귀족이라는 것들은 이런 꼬마아이한테까지 손찌검을 하지 않으면 체면치례를 못해?”

    “괜찮아요, 헤스티아씨. 저, 일단은 A그룹의 수석입학생인걸요.”

     

    나는 본보기로 롯토라 불리던 여학생을 지목했다.

     

    “그렇게 자신 있으면 대련장으로 와요. 한 번 붙어줄 테니.”

     

    B그룹 영애들이야 롯토를 믿나본데.

    나는 저 여자애를 알고 있다.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헤스티아가 헤까닥 눈이 뒤집혀서 대량학살을 저지르는 시기.

    바닥에 널브러져서 사지가 찢긴 채 죽어있는 시체가 딱 저 얼굴을 하고 있다.

    혹은 조기등장 트리거를 밟은 경우.

    입학 전에 귀족영애 하나를 영/애로 갈라버리는데 그때 죽는 귀족도 딱 저 얼굴을 하고 있다.

     

    어느 루트에서든 헤스티아에게 제일 먼저 살/해 당하는 B그룹 학생.

    그것이 귀족영애들이 환호하는 <무투가 롯토>다.

     

    ‘어쩜 날짜까지 이렇게 딱 겹친담?’

     

    입학식 시작 하루 전.

    헤스티아가 날뛰지 않아도 대련 도중 사고가 발생해서 학생 한 명이 크게 다치는 이벤트가 있다.

    여기서 깁스를 차고 병원신세를 지니게 되는 크게 다치는 학생도 ‘롯토’이다.

     

    ‘제작진이 단발머리를 싫어하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어떤 루트에서든 험한 꼴을 보고, 1학년 1학기가 끝나기 전에 반드시 죽음을 맞이하는 악역 NPC.

    그런 녀석이 기고만장하게 도발을 한들, 가소로운 마음밖에 생기지 않았다.

     

    [이벤트 <그룹경쟁(2)>를 수행합니다.]

    [헤스티아 대신 대련에 나섭니다.]

     

    이기는 건 당연하고 실수로라도 죽이지 않도록 힘조절에 신경 써야할 대련이다.

     

     

    * *

     

     

    “A그룹 상급반 수석이랑 B그룹 상급반의 무투영애 롯토가 한판 붙는대!”

    “어디서?”

    “훈련동 내부 3번 대련장이야.”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다.

    대결을 보려고 모인 학생들만 천 명이 넘는다.

    981기수 입학생이 총 2130명임을 감안하면 절반가량이 모인 셈이다.

    오크노디에게는 승리확정 이벤트.

    헤스티아의 조기타락을 막기 위한 개입이었지만.

    막상 그 대치를 본 학생들의 감상은 전혀 달랐다.

     

    “아니, 저런 쪼그만 애랑 대련을?”

    “이건 너무하잖아.”

    “무술을 배운 귀족이 저래도 돼?”

     

    심지어 대결이 성립된 이유마저 가관이다.

     

    “집단따돌림을 받는 여학생을 도우려고 나선 애가 대결신청을 했다고 그걸 받아줘?”

    “귀족의 체면은 어디다 둔 거야?”

    “쓰레기 같은 놈들. 제국은 피도 눈물도 없는 악녀들만 귀족이 되는 건가?”

     

    사방에서 쏟아지는 매도와 야유.

    관중석에 들어온 귀족영애들도 수치심에 얼굴을 붉혔다.

     

    무술을 배운 귀족영애가 꼬마애를 괴롭힌다.

    그들이 생각하기에도 차마 실드를 칠 수 없을 정도로 추한 싸움!

     

    관중석의 분위기가 일방적으로 오크노디 동정론으로 쏠리자 보다 못한 B그룹 상급반 영애 한 명이 슬쩍 운을 띄웠다.

     

    “애 이름이 오크노디잖아. 오크의 혼혈이니까 힘은 차고도 넘치지 않을까?”

    “맞아. 애초에 오크 따위와 붙어먹은 핏줄이면 그걸 같은 인간으로 생각해도 되는 거야?”

     

    운을 띄운 영애의 친구도 슬쩍 한 마디를 거들었다.

     

    “믿을 수가 없어. 요즘 같은 시대에 저런 종족차별적인 발언이라니. 저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파렴치한 제국의 무뢰배들. 저런 게 우리랑 같은 귀족이라고 생각하니 소름이 다 돋아.”

    “나가 죽어.”

     

    빗발치는 비난.

    쏟아지는 야유.

    신장 133cm의 꼬마애와 꼴사나운 이유로 대련에 나선 신장 165cm의 제국귀족 무투가를 향한 비난과 야유에 가장 당황한 사람은 오크노디였다.

     

    ‘얘들 왜 이래? 게임에선 정반대였는데.’

     

    -근묵자흑이라더니 닮은꼴끼리 잘 어울리네

    -땀내 나는 근육덩어리들끼리 서로 붙어먹기라도 했나? 킥킥.

    -우욱, 상상만 해도 역겨워.

    -롯토님 파이팅!

    -못된 근육괴물들을 혼내주세요!

     

    이랬던 관중석이 180도 딴판이 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근육떡대남캐와 응애틋녀의 차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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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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