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42

       성경에 따르면, 짐승의 영혼은 영속하지 않고 죽음과 함께 흩어진다한다.

       

       그 사실을 아는 탓에 그레이는 한번도 천국을 기도한 적이 없었다. 반인반수의 영혼이란 결국 짐승의 그것과 다르지 않음을 알았다.

       

       

       “사랑이신 주님, 저희에게 저희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함과,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와, 이 둘을 분별하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단지 선량함을 달라고 기도했다. 용서할 수 없는 분노가 있어 용서할 수 있는 너그러움을 달라고 기도했다. 선입관에 무고한 이를 상처주는 일이 있어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 네 원수를 사랑하라, 네 자신을 사랑하라.

       

       구세주의 가르침을 따르고자 하였다. 천주께서 우리에게 내려주신 고귀한 영혼 때문이 아니라, 그분의 가르침에 온당함이 있어 그분을 공경할 수밖에 없었다.

       

       이웃을 사랑하라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신이 아니라 노름판의 거지라고한들 한번 정도는 귀를 기울여보지 않겠는가.

       

       그 가르침에 일리가 있어 복음을 공부하게 되었다. 공부함에 마음이 움직임이 있어 신앙하게 되었다. 신앙함에 잊을 수 없는 것이 있어 생육되었다.

       

       개과의 수인이란 언제나 제 목줄을 붙잡아줄 수 있는 주인을 바라는 법이었다.

       

       복음이 그의 목줄이 되었고, 율법이 그의 입마개가 되었다. 그리하여 그레이는 평생을 천주께 봉헌하며 살아왔다. 그 자신에게 주(主)의 품에 안길 자격이 없다는 사실은 그리 중요한 문제조차 아니었다.

       

       

       “허나 저에게 주님의 지혜를 빌릴 자격이 없다면─, 그저 귀 기울이게 하소서. 그러면 제가 주님께서 제 안에 계신줄을 압니다.”

       

       

       그날도 그러했다.

       

       그레이는 구세주께 기도드리고 있었다. 증오스러운 수인의 ‘충동’이 영혼을 집어삼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드렸다.

       

       경건하게 기도를 올리는 그의 품에는 ‘어린 왕자’라는 동화책이 성경처럼 안겨있었다.

       

       이 동화를 읽을 때면 수인의 충동 따위 금방 잊어버릴 수 있었다. 그레이에게는 이 동화야말로 구세주의 은혜처럼 느껴졌다.

       

       그리하여 천주와 구세주, 호메로스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던 와중에.

       

       그의 오랜 친구이자 ‘수인’의 모습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을 대신 처리해주는 대리인이 찾아왔다.

       

       

       “아, 그레이님. 기도하고 계셨습니까? 다음에 다시 오겠습니다.”

       “아닐세. 기도야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기도를 핑계로 자네의 시간을 낭비하게 할 수는 없지. 무슨 일로 찾아왔나?”

       

       “호메로스 작가님께서 그레이님을 찾으십니다. 중요하게 말씀드릴 것이 있다고 합니다.”

       “호메로스 작가께서? 그분께서… 나를 먼저 찾으실 줄은 몰랐군.”

       

       “찾아오신다면 분명 기쁜 소식을 들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호메로스 작가께서 나를 부른시다면야, 아무런 소식이 없더라도 기쁜 일 아니겠나. 어서 나갈 채비를 하지.”

       

       “예. 마차를 준비해두었습니다.”

       “늘 고맙네.”

       

       “저의 기쁨입니다.”

       

       .

       .

       .

       

       호메로스의 부름을 받아 찾아온 그레이가 마주한 것은 교회의 사제였다.

       

       천주께 축복을 받은 수혜자들.

       

       천주께서 내려주신 고귀한 사명을 그들 자신의 특권이라 여기며 반인반수를 ‘악마’라 멸시하는 오만한 치들. 그들이 그레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순간, 그레이는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짐작할 수밖에는 없었다. 너무나도 익숙한 일이었던 탓에 바로 알 수밖에 없었다.

       

       수인들의 손을 빌린 자들을 ‘악마의 황금을 받은 자’라 멸시하며 재판하는 것이, 그렇게 드문 일은 아니지 않던가. 그레이가 ‘어린 왕자’를 읽고 대리인의 이름과 호메로스의 지혜를 빌려 아이들을 후원함에, 교회의 사제들이 이를 단죄하고자 찾아온 것이 분명했다.

       

       수인으로 살다보면 익숙한 일이었다.

       

       단지 의아한 점이 있다면, 교회의 사제들이 그를 보며 입을 다물었다는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듯 인상을 찡그린 사제들은 몇 있었으나, 곧 다른 사제들이 눈치를 주니 죄스럽다는듯 고개 숙였다.

       

       

       “아, 오셨군요. 갑작스럽게 불렀는데 바로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레이 씨.”

       “호메로스 작가께서 불러주셨으니 어찌 서둘러 나오지 않을 수 있겠소? 작가께서는 우리 수인들의 은인일 터인데.”

       

       “제가 한 건 별로 없지만요. 그보다, 오늘은 소개드리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이렇게 부르게 되었습니다.”

       “혹시 그 ‘소개드리고 싶은’ 사람들이라는 것이, 뒤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는 저 사제들이오?”

       

       “하하…. 네. 그렇게 되겠네요. 이냐시오 사제님?”

       “예. 호메로스 가경자님. 다른 사제들은 아직 마음에 혼란함이 남아있는 것 같으니, 제가 묻겠습니다.”

       

       

       이냐시오라는 이름의 사제는 사제답지않게 정중한 태도로 그레이와 마주섰다.

       

       그리고 그레이의 목에 목줄처럼 걸려있는 묵주를 잠시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어 질문했다.

       

       

       “구세주를 공경하십니까?”

       “그분을 어찌 공경하지 않을 수 있겠소? 매일, 매 시간, 매 순간 기도드린다오.”

       

       “결혼은 하셨습니까?”

       “수인은 혼인 성사를 받을 수 없는 탓에 결혼은 하지 못하였소. 결혼한 일이 없으니 여인과 관계를 맺은 일도 없구려.”

       

       “지금 저희는 슬픈 시기를 지키고 있습니다. 형제님께서도 그러합니까?”

       “형제라….”

       

       

       그 낯선 호칭에 잠시 멍하니 사제를 바라보던 그레이가.

       

       곧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수인이 구세주의 죽음을 슬퍼하지 못하도록 우리에 가둬둔 것은 그대들이 아니오? 허나, 그렇소. 슬퍼하고 있지.”

       “…십자가를 짊어지셨습니까?”

       

       “그분께서 짊어지셨다오. 우리는 부족하나마 그분의 십자가를 함께 지고갈 뿐이지.”

       “제 질문은 여기까지입니다.”

       

       

       이냐시오라는 사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사제들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그들을 응시했다.

       

       

       “저는 호메로스 가경자님의 지혜에 틀림이 없다고 판단하였는데, 다른 형제님들께서는 어떠하십니까?”

       “…주님, 감사합니다.”

       

       “이견이 없는 것으로 알고 복음을 전파하겠습니다. 그레이 형제님.”

       “말하시오. 듣고있으니.”

       

       “침수례와 주수례 중에서는 어느 것을 선호하십니까?”

       “…음?”

       

       “수인은 물을 싫어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침수례에 거부감이 있다면 주수례를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하겠습니다.”

       “잠시만, 지금 무슨 이야기를─.”

       

       “세례를 받으시게 될 겁니다.”

       

       

       이냐시오라는 사제는, 모든 미혹과 망설임을 벗어던진 단호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는.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덧붙였다.

       

       

       “천주를 신앙하고 구세주를 공경하는 수인들이 더 있다면, 그들도 불러주십시오. 그들 또한 세례를 받을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그제서야 이것이 무슨 상황인지 깨닫게 된 그레이가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이것이 현실인지, 저 사제들이 무슨 장난을 꾸미는 것은 아닌지, 드디어 스스로가 미쳐버린 것인지 의심했다. 그레이가 알고있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니까, 지금 사제들이 한 말이.

       

       

       “우리 수인들에게 세례를 내려주겠다는 말이오…?”

       

       

       세례를 내려주겠다, 그 말인가?

       

       

       “주님의 복된 음성과 바른 뜻을 찾아가려는 사람이 있다면, 어찌 자비이신 천주께서 그들의 죄를 씻지 않으시겠습니까?”

       “허허….”

       

       

       “그동안 우리는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고 있었지요…. 진리란 이토록 선명하고 단순할 터인데 말입니다….”

       “허, 허허…! 하! 하하! 하하하─!”

       

       

       그 믿을 수 없는 현실을 이해한 그 순간.

       

       그레이는 웃었다.

       

       바라 마지않았던 은혜를 받음에, 기쁨에 겨워 웃었다.

       

       

       “하하…. 끄, 끄흑…. 끄으윽….”

       

       

       그리고 울었다.

       

       감히 바라지조차 못했던 은혜를 받음에, 기쁨에 겨워 울었다.

       

       

       “고맙소…. 정말… 고맙소….”

       “감사는 저희가 아니라 주님과 호메로스 가경자님께 하시지요.”

       

       

       그런 즉 구세주의 기적이라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었으니.

       

       눈물에 젖은 햇살이 휘광처럼 밝게 반짝이는 그레이의 눈에.

       

       사제들의 뒤에서,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고 있는 ‘구세주’의 모습이 비치었다.

       

       그 구세주의 이름을.

       

       호메로스라 하였다.

       

       

       [“하지만, 대체 무슨 이유로 그 친구가 이런 황당한 속임수를 썼겠나?”]

       [“자네가 한번도 그 사람을 제대로 보려고 한 적이 없기 때문이지.” ]

       

       .

       .

       .

       

       짧았지만 나름의 성과가 있던 ‘신교’와의 만남이 끝나고.

       

       [셜록 홈즈 X 아르센 뤼팽 2차 창작 공모전]의 결과 발표일이 다가왔다. 개인적으로는 신교와의 만남보다 이 ‘공모전’이 더 의미있게 다가왔다.

       

       굉장히 재미있고 새로운 소설들이 많았다.

       

       대부분은 추리소설이었지만, 인물과 인물 사이의 관계에 집중한 로맨스 소설도 몇 있었다.(셜록 홈즈와 아르센 뤼팽의 금단의 사랑을 다룬 소설은, 기존 캐릭터들의 캐릭터성을 대놓고 무시했다는 이유로 어떠한 상도 수상하지 못했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나는 시상식이 이루어지는 작은 공연장에 와있었다.

       

       축사를 위해 공연장에 미리 와있던 킨더슬리 사장님이 나를 보더니 깜짝 놀랐다. 라이안 사장님으로부터 별다른 말을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앗, 작가님! 시상식에 직접 참여하실 생각이세요?!”

       “네? 네. 원래 그런 이야기 아니었나요?”

       

       “그건 그렇지만, 이번에도 뭔가 마법을 써서 모습을 바꾸거나 대리인을 고용하실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어차피 ‘하프 앤 하프’의 라이안 사장님도 이 모습을 알고있으니 별로 상관없겠다 싶어서요.”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를 출판하던 시절의 나는 누가봐도 앳된 티가 나는 소년같은 모습이었지만….

       

       이제는 나름 아슬아슬하게 ‘청년’이라고 불릴 정도는 되었다. 물론 ‘코난 사가’를 연재하던 시절을 기준으로 나이를 역산해보면 터무니없는 천재라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겠지만─.

       

       어차피 그 정도 유명세는 각오했다.

       

       오히려 이 ‘어린 천재’라는 겉모습이 내가 ‘호메로스’라는 소문이 나오지 않도록 나를 지켜주는 역할도 할 테고 말이다.

       

       

       “뭔가, 뭔가 진 기분이에요….”

       “네?”

       

       “작가님께서 가장 먼저 연재를 시작하신 건 저희 출판사인데, ‘본모습’을 먼저 드러내는 게 ‘하프 앤 하프’ 출판사의 공모전이라니… 이건 비겁하잖아요! 확 축사를 망쳐버리고 싶을 정도라구요!”

       “그러지는 말아주세요….”

       

       “안 그래요! 그냥, 그정도로 억울하다는 얘기죠!”

       “네….”

       

       

       끙, 앓는 소리를 낸 돌링 사장님이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리고 한숨을 한번 내쉬더니.

       

       어쩔 수 없다는듯 허탈하게 웃으며 나를 걱정해주었다.

       

       

       “작가님의 신변에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그때는 정말 큰일이라구요….”

       “그때는 제 시종에게 제가 숨겨둔 원고들을 전부 킨더슬리 사장님께 보내라고 할 테니, 걱정 않으셔도 괜찮아요.”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작가님을 공격해버릴 것 같은데요…?”

       “하하….”

       

       .

       .

       .

       

       시상식에 참여한 작가들 중에는 특이한 사람들이 많았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2차 창작 공모전과 비교해보자면, 보다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이 시상식장에 모여있는듯 보였다.

       

       나 역시 그때와는 달리 긴장하지 않고 시상식을 진행할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당황스러운 일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수상자의 이름을 불렀는데, 갑자기 남자 두 명이 일어나 난동을 부리는 일도 있었다.

       

       

       “하하! 내 이름이 먼저 불렸으니 나의 승리다! 자네와 나 사이에는 넘어설 수 없는 격차가 있다는 걸 이제 알겠나?”

       “웃기는 소리! 자네 이름이 앞순에 오기에 먼저 불린 게 아닌가! 똑같이 우수상으로 입선했으니 무승부다!”

       

       “하, 승패를 인정하지 않다니 추하군! 자네가 그러고도 남자인가?”

       “자네야말로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억지를 쓰는군! 나와 다시 겨루는 게 두려워서 그런 게 아닌가?”

       

       “뭣이? 자네 지금 말 다 했나?”

       “다 못했다!”

       

       “이이, 결투다!”

       “바라던 바다!”

       

       

       갑자기 결투를 하려고 하던 우수상 수상자 두 명은 결국 시상식장에서 쫓겨났다.

       

       세상 참 이상한 일들도 다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냐시오가 그레이에게 던진 질문은 일본의 ‘잠복 키리시탄’ 일화에서 빌려왔습니다.

    본래는 키리시탄이 사제에게 던지는 질문이나, 여기에서는 사제가 수인에게 질문하는 것으로 각색되었습니다.

    다음화 보기


           


Surviving as a Plagiarist in Another World

Surviving as a Plagiarist in Another World

Surviving as a Plagiarizing Author in This World 이세계에서 표절 작가로 살아남기
Score 4.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literature of this other world was atrocious.

So, I plagiarized.

Don Quixote, Anna Karenina, 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 The Metamorphosis… I thought that unraveling the literature of the original world would advance the literature of this other world.

“Those who dream and those who do not, who really is the mad one?”

“To live or to die, that is the question.”

“No matter how fatal the mistake, it is different from a sin.”

But then, people began to immerse themselves too deeply in the novels I plagiarized.

Can’t a novel just be seen as a novel…?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