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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2

       “이게…… 무슨 의미라고 받아야 할지.”

       

        한석구가 조심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종이에 써서 내민 액수는 간단했다.

       

        ‘0’.

       

        “딱히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은 생각은 없거든요. 기업, 정부, 용병. 어디에도요.”

       

        히어로의 소속이 앞날의 행보를 결정하는데 큰 역할을 담당하는 걸 알고있다. 따라서 이런 식당에서 일성에 투신하는 건, 제법 충동적인 행동이 분명했다.

       

        “으음. 돈으로 혜성 님을 살 수 없을 거라는 딸아이의 조언이 있었지만, 의외입니다. 혜성 님은 현재 풍족과 거리가 제법 먼 생활을 보내고 있다고 여겼습니다.”

       

        한석구가 당황한 기색을 숨기며 안경을 만지작거렸다.

       

        늙은 중년 사내라 할지라도, 그는 일성의 황태자다. 면접, 계약 그 사이의 무언가인 지금의 만남 전, 내 뒷조사 덕에 ‘돈’이라는 거래에 응할 것이라 여겼을 수도.

       

        “돈? 물론 많으면 많을 수록 좋겠죠. 다다익선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니.”

       

        히어로의 ‘소속’은 세상을 향해 도약을 준비하는 ‘날개’가 될 수도, 작은 행동 하나가 히어로 경력을 바닥에 처박는 ‘족쇄’가 될 수도 있다.

       

        내 목표는 편안하고 무사히 이야기의 끝으로 향하는 것.

       

        그렇기에 앞서 말했듯, 지금 시점에 일성과 손을 잡는 건 너무나도 섣부른 판단이었다.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돈은 중요하지만,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건 물질을 넘어선 정신이다.”

        “……!”

       

        내 달변에 놀란 걸까?

       

        한석구가 멍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세계를 주름잡는 대기업의 이인자 치고는 참 동네 아저씨 같은 반응이다.

       

        “소, 솔직히 놀랍습니다. 임혜성, 당신이 생각보다 더 대단한 존재처럼 느껴집니다.”

        “대단한 존재는 아니죠. 그저 제 생각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일 뿐입니다.”

        “자유, 자유라…….”

       

        굳어있던 한석구의 얼굴이 침착하게 가라앉았다.

       

        그는 내 말에서 느끼던 것이 많았는지, 한참을 음식 그릇 옆에 놓인 찻잔의 손잡이를 만지작거렸다.

       

        그리고는.

       

        드르륵!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건지, 그의 눈엔 ‘일성’의 이인자 같은 카리스마가 가득 묻어났다.

       

        “죄송합니다.”

       

        이어서 그는 내게 허리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그런 돌발행동에 나는 진중한 표정으로 한석구를 바라보았다.

       

        한석구가 사과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내 프라이드를 보고, 존중하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나를 Z급 히어로… 즉 랭커로 생각하는 것과 다름 없는 행동이다.

       

        “섣부른 언변으로 결례를 범했습니다. 임혜성 님의 큰뜻을 모르고 돈으로 당신의 환심을 사려 했으니, 참으로 침통한 심정입니다.”

       

        안타까움 가득한 얼굴의 한석구가 말했다.

       

        “부회장님은 참 신기하신 분이네요.”

       

        한석구의 사과에 나는 허탈안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신기한 사람이라는 뜻은……?”

        “대기업 오너 가문을 현대의 로얄 패밀리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그런데 뭔가, 이렇게 만나 대화를 나눠보니 저와 같은 사람이라는 게 느껴지네요.”

       

        내 솔직한 반응에 한석구가 쓰게 웃었다.

       

        그도 마음에 걸리던 구석이 있었는지, 자리에 다시 앉은 그가 잠시간 뜸을 들이더니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기업’의 사람들을 두고 이리 말하죠. 냉혈한, 돈에 미친 놈들, 돈이 되는 것이라면 사람의 목숨 따위는 우습게 여기는 족속.”

       

        생각할 것이 많았던 건지, 테이블 위에 두 팔을 올린 한석구는 미간을 찡그렸다.

       

        그리고 앞서 그랬던 것처럼 깍지를 끼고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저도 비슷한 사람이었습니다. 다만, 그런 성격이 누군가를 만나 바뀌었을 뿐이죠.”

        “누군가?”

        “예. 임혜성 님도 아주 잘 아는 사람입니다.”

       

        한석구가 쓰게 웃었다.

       

        “설마…….”

        “예상하신 바가 맞습니다. 제 딸아이인 한유리, 바로 그 녀석이 세상에 태어난 후입니다.”

       

        그리 말하는 한석구의 얼굴엔 이전과 확연히 다른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세상 사람들은 저 미소를 두고 ‘아빠 미소’라고 말하더라.

       

        “임혜성 님에게 사과드리며, 오늘 일은 없던 것으로 하고 싶습니다. 괜찮겠습니까?”

        “저야 고급 레스토랑에서 밥도 먹고, 좋죠.”

       

        조금은 식어버린 스테이크를 입에 넣으며 말했다. 그러자 한석구 역시 자신의 앞에 놓인 음식을 한입 크게 먹으며 환하게 웃었다.

       

        “오늘은 그저 식사 약속 자리라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미묘한 분위기의 식사는 그리 시작되었다.

       

        그러다 한가한 잡담과 함께 음식이 바닥을 드러냈고, 내가 포만감에 배를 두드릴때 한석구가 내게 물었다.

       

        “다음 경기 상대가 누구인지 알고 계십니까?”

       

        다음 경기 상대라, 딱히 물어볼 필요도 없이 승천전의 16강을 말하는 거겠지.

       

        “모르겠네요. 이미 목표는 달성한 상태라.”

       

        내가 한 대답대로, 나는 이미 목표를 이루었다.

       

        애당초 승천전 참가의 목적이 랭크의 승급이며, 더 많은 지원금을 타내기 위한 의도가 깔려있었다.

       

        나는 이미 64강에서 <뇌전검> 양하나를 꺾었고, 랭커 <공간왜곡> 김인만을 쓰러트렸다. 심지어 압도적인 경기 내용으로 말이다. 그러니 승천전의 목표는 이미 이뤘다고 해도 좋겠지.

       

        “이해는 갑니다. 다음 승급 발표에 임혜성 님이 ‘랭커’에 진입할 것은 기정 사실이니 말입니다.”

       

        후루룩!

       

        식사를 마친 한석구가 진한 커피를 한모금 마셨다. 그리고는 나를 바라보며 슬며시 운을 띄웠다.

       

        “이런 것은 어떻습니까? 일성에서 소정의 후원금을 지급하는 겁니다.”

        “……아직 포기하지 않은 겁니까?”

        “아니요! 그런 의도는 아닙니다!”

       

        정말 놀란 건지, 한석구가 손사래를 치며 소리쳤다.

       

        그리고.

       

        “유망주의 탄생은 거대 세력들의 관심을 부릅니다. 특히나 그 유망주가 소속을 결정하지 않았을 때엔 더더욱 그렇지요.”

       

        맞는 말이다. 원작에서도 아주 짧게나마 언급하고 지나간 부분이니까.

       

        “그렇기에 거대 세력들은 유망주에게 ‘선물’을 건네는 것이 업계 관행입니다.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일성에서 조금이나마 임혜성 님에게 잘 보이기 위한 수단이죠.”

       

        한석구의 설명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스포츠 유망주가 모종의 단체에게 금품을 받으면 신문이나 뉴스에 대서특필되는 현대와 달리, 이 히어로 업계는 그것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는 것이니.

       

        “선물이라면 부담 없이 받겠습니다. 계약과 다른 이야기니까요.”

        “허허! 그리 말씀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짧게 읍한 한석구는 곁에 앉아 음식을 깨작이던 중년 사내를 바라보았다. 한석구가 중년 사내에게 눈짓하자, 자리에 앉아있던 남자는 서둘러 테이블을 떠났다.

       

        “애당초 ‘일성’이 히어로들에게 매력적인 곳이란 평가를 받는 이유는 ‘돈’ 그 자체입니다. 그러니 저희가 드리는 선물은 그쪽입니다.”

       

        선물, 선물이라.

       

        초거대 기업 일성에서 내게 주는 선물이니, 나도 모르게 약간의 기대를 품을 수밖에 없었다.

       

        띠링!

       

        “……?”

       

        짧은 대화를 끝으로. 대뜸 핸드폰에서 알림이 들려왔다.

       

        “확인해보시죠.”

       

        슬쩍 고개를 들어 한석구를 바라보니, 흡족한 미소를 지은 그가 손을 뻗어 내게 문자를 확인할 걸 권했다.

       

        ‘미친.’

       

        핸드폰 잠금을 해제한 나는 이내 상단 팝업창의 문자 메세지에 놀란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게 얼마야?’

       

        0이 많다. 그것도 아주.

       

        [ WEB발신) 히어로은행/입금/500,000,000원 ]

       

        “……액수가 너무 많은데요?”

       

        절로 놀란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아니, 세상 어느 누가 대가도 없이 흔쾌히 5억원이라는 돈을 선물로 건넬 수 있냐고!

       

        “허허! 이거, 혜성 님은 본인의 잠재가치를 너무 낮게 평하시는 것 같습니다.”

        “…….”

       

        한석구의 말에 입이 꾹 다물어졌다.

       

        아니, 나도 안다. 차기 랭커 변동에서 반쯤 랭킹 진입이 확정이라는 것도, 저마다 혜성처럼 등장한 내게 군침을 흘리는 것도.

       

        “그저 임혜성 님에게 밉보이지 않고 싶을 뿐입니다.”

        “허.”

       

        역시 대기업 부회장은 부회장이다. 선량한 히어로 아카데미 학생 하나 구워삶는 실력을 보니 평범한 동네 아저씨처럼 보이던 것이 우스울 지경이다.

       

        “뭐, 그렇다고 거부할 수는 없겠죠. 이건 ‘조건’ 없는 선물이니.”

        “물론입니다.”

       

        한석구의 대화를 끝으로 나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다시 넣었다.

       

        첫번째 스카웃 제안을 거부했는데 대신 어마어마한 거금이 생겼다. 이 아이러니를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리고…… 임혜성 님에게 묻고 싶은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묻고 싶은 것? 그게 뭐죠?”

       

        생각지 못한 거금이 생긴 탓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기에 냉수 한잔을 벌컥벌컥 마시고 있는데, 한석구의 질문이 내게 날아들었다.

       

        “저희 딸아이… 그러니까 유리와는 어떤 관계십니까?”

        “…….”

       

        갑자기?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뭐라고 해야할까.

       

        전남편? 아니면 그냥 아는 사람? 그것도 아니면 친구의 친구?

       

        “허허! 허허! 곤란하게 해드렸다면 죄송합니다. 그저 하나밖에 없는 딸의 연애사가 궁금한 아저씨의 호기심이었습니다.”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한석구의 반응. 거기에 더해 묘하게 누그러진 분위기.

       

        ‘도대체 뭔 생각을 하고 있는 건데?’

       

        착각은 자유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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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Hiding My Power at Hero Acad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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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Hero. Everyone admires them as they wield supernatural powers that defy the laws of physics. The ability I possess is to 'reject' those p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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