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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2

       영국 음식이 맛없다는 밈이 있는데, 나는 사실 이 밈에 크게 동의하지 않는다.

        

       영국 음식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인 ‘피쉬 앤 칩스’만 해도 그렇다. 아니, 튀김과 튀김의 조합이 아닌가. 먹다가 느끼할 수는 있어도 그 자체로 맛이 없지는 않다. 물론 생선 자체를 싫어한다면 또 어떨지 몰라도.

        

       실제로 한 번 먹어봤을 때는 꽤 맛있었었고.

        

       문제는 그게 내가 전생에, 그러니까 ‘한국에서’ 먹었던 음식이라는 거다.

        

       식자재의 원산지가 조금 다를 수는 있어도 영국에서 피쉬 앤 칩스를 먹는다고 그 맛이 크게 다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 기름을 조금 더 많이 썼을 수는 있고, 뿌려 먹는 게 식초라서 또 그 향이 다를 수는 있는데, 아무리 그래도 생선에 밀가루 입혀서 튀기는 건데 맛이 달라져 봐야 얼마나 다르겠어.

        

       굳이 피시 앤 칩스가 아니더라도 영국 음식치고 먹을만한 음식은 꽤 많다……고 들었다. 굳이 누군가가 변호하는 말을 듣지 않아도 원래 씹덕들이 자주 소비하는 서브컬쳐에서 특정 인종이나 국가를 스테레오타입으로만 묘사하는 일은 흔하니까. 솔직히 영국 음식도 비슷한 사례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이 세계는 ‘한국’도 아니고, 그렇다고 ‘영국’도 아니고, ‘아제르나 제국’이라는 거다.

        

       그래.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다.

        

       아니지, 여기도 현실은 현실이니 ‘지구에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라고 하면 대충 맞는 말이겠다.

        

       그런데 말이다.

        

       이 ‘아제르나 제국’이 나오는 게임의 시리즈는 ‘아제르나 전기’라는 시리즈였고, 그 시리즈를 만드는 회사는 ‘일본’의 밀레니엄 사였다.

        

       그리고 일본 서브컬쳐에서 ‘외국인이 만든 음식’ 하면 꼭 한 번쯤 나오는 것이 영국 음식이었고, 보통 영국인들은 요리를 못하거나 영국 음식 자체가 사람이 먹을 수 없는 것이라거나 하는 식으로 묘사하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제르나 제국의 모티브 중 하나가 바로 ‘대영 제국’이었다.

        

       심지어 귀족 계층을 제외하면 민중의 인생이 개차반인 ‘산업혁명’ 시기가 배경이었다.

        

       그렇다. 아제르나 제국의 음식은 대체로 맛이 없었다.

        

       아, 고기류는 대체로 훌륭했다. 스테이크처럼 ‘구워서 먹는 고기’라면 맛있는 것이 나왔다.

        

       디저트도 그랬고, 티타임에 내놓는 차나 쿠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원래 그런 것들은 돈 있는 사람들이 여유롭게 먹는 음식들이 아닌가. 돈을 쏟아부어 만들면 원래 어떤 음식이건 맛있게 되는 법이다.

        

       가끔 론다리움의 지리를 파악하기 위해서 밖으로 나갔을 때 종종 길거리 식당이나 노점상에서 음식을 사 먹곤 했는데, 몇 펜스 하지 않는 길거리 음식의 경우 대부분 사람이 먹을 것이 되지 못했다.

        

       아니, 진짜로.

        

       ‘피쉬 앤 칩스’라고 해서 겉이 바삭바삭하게—최악의 경우 눅눅하게—익은 생선커틀릿과, 거기 함께 나오는 바삭하건 눅눅하건 그냥저냥 맛있는 감자튀김을 상상할 텐데, 이 세계의 피쉬 앤 칩스는 그런 상태 좋은 음식이 아니다.

        

       산업혁명.

        

       모든 것이 대량생산 체제로 전환되던 시기.

        

       피쉬 앤 칩스의 ‘원료’가 되던 그 ‘피쉬’—일반적으로는 대구—도 증기선을 이용해 마구잡이로 잡아들이던 시기다.

        

       그리고 그 엄청나게 많은 생선을 한꺼번에 많이 처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끓는 기름에 대충 넣어 튀기는 것이었다.

        

       아무렇게나 유통되어 상하기 직전의 저질 생선을, 그저 저질 기름에 튀기면서 생선이 기름에 찌들지 않게 방어하기 위한 용도로 밀가루를 묻혀 어떻게든 ‘익히기만 한’ 요리가, 이쪽 세계의 피쉬 앤 칩스였다.

        

       그 저질 기름을 머금은 튀김옷은 일반적으로 벗겨서 그냥 버린 뒤 살만 먹는 것이 일반적인 ‘먹는 방법’이다.

        

       그렇다. 생선커틀릿처럼 뼈가 발라져서 나오거나 하는 일은 없다. 그냥 구워 먹는 것만 못한 하얀 생선 살을 굳이 뼈와 가시를 발라가면서 먹어야 한다는 말이다.

        

       피쉬 앤 칩스 만이 아니다. 이쪽 세계의 대부분의 서민 음식은 그런 식으로 오로지 생존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대부분이었다.

        

       식빵을 구워 소금으로 간한 뒤 다시 식빵 사이에 끼워 먹는 샌드위치를 먹어본 적 있는가? 나는 그 식빵 샌드위치도 한 번 먹어봤다. 소금 맛 나는 퍽퍽한 식빵 맛이었다. 아니 대체 누가 이런 걸 ‘팔’ 생각을 했을까? 만들 생각이야 그렇다 쳐도. 부디 지구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음식이길 바란다.

        

       그 실상을 한 번 체험해본 뒤로, 나는 이쪽 세계의 ‘서민 음식’은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 그나마 식민지 쪽에서 들어온 음식 중에서 카레가 있기는 했지만…… 이쪽 세계에 오고 나서도 토속적인 한국인 입맛을 가진 나로서는 그 생소한 향신료 냄새가 영 취향에 맞지 않았고.

        

       그나마 순대 비슷한 맛이 나는 블랙 푸딩이나, 아제르나 제국의 또 다른 모티브 중 하나인 독일에서 따온 자우어크라우트는 내 입맛에 굉장히 잘 맞았는데…… 둘 다 메인 음식은 아니었다. 게다가 둘 다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음식이라 ‘쿨뷰티’가 좋아할 것 같지는 않았고.

        

       “짜잔!”

        

       우리를 자리에 앉혀둔 뒤 시킨 음료를 받으러 갔던 클레어가 우리에게 보여준 음식은, ‘서민 음식’에 대한 나의 이미지를 깰 만큼 훌륭했다.

        

       아니지, 서민 음식이라고 할 수는 없으려나?

        

       따지자면 싼 가격은 아니다. 그렇다고 귀족만 먹을 수 있는 가격도 아니다. 서민이라면 큰맘 먹고 먹을 수 있을 법한 음식이었다. 물론 먹고 난 다음 일주일 정도는 식단이 몹시 부실해지겠지만.

        

       하긴, 이 주변이 그렇게 못 사는 동네는 아니지. 적어도 아제르나 제국에서는 가장 치안이 좋은 곳이기도 했으니까.

        

       열대 지방의 과일, 아마도 망고를 베이스로 깔고, 그 위에 생크림을 듬뿍 얹고, 다시 한번 과일을 깔고, 그 위에 생크림을 다시 듬뿍 얹은 뒤, 다른 과일들을 종류별로 다시 듬뿍 올려두었다.

        

       유리컵에 담겨있어서 그냥 보면 케이크처럼도 보였다.

        

       “이 가게의 자랑, 파르페야!”

        

       한 종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종류별로 다 다른 형태였다.

        

       “가격 보고 별로 기대는 안 했었는데, 대단하네.”

        

       앨리스는 순수하게 감탄 어린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렇지? 나도 처음에는 별다른 기대 없이 시켰었어!”

        

       앨리스와 클레어 두 사람의 대화를 만약 아제르나 제국의 노동자 계층이 들었다면 혁명이 마려워 참지 못했을 거다. 이쪽 세계의……프롤레타리아, 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그 계급에서 돈 주고 사 먹기에는 심히 부담스러운 디저트니까.

        

       물론 일단 ‘사 먹을 수는 있다’는 점에서 귀족 기준으로는 싼 음식이 맞긴 했다. 황녀인 앨리스라면 더 그렇고.

        

       “훌륭하네요. 제 고향에서 봤던 것과 비교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아요.”

        

       파르페라는 말은 프랑스어니까. 문화적 모티브가 프랑스와 벨기에를 적당히 섞어둔 것 같은 가상의 나라인 벨부르 기준으로는 그냥 평범한 디저트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먹어보기 전에는 모르는 법이지만요.”

        

       샤를로트는 조금은 기대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솔직히, 아카데미에서 나오는 빵은 그다지 맛있지는 않았으니까요.”

        

       “응?”

        

       샤를로트의 말에 앨리스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어…… 아카데미 음식이 맛이 없다고?”

        

       이제 보니 앨리스뿐만이 아니라 클레어와 레오, 그리고 무려 미아 크로우필드까지 충격받은 표정으로 샤를로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네?”

        

       그리고 샤를로트는 그 반응이야말로 충격적이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지금…… 그 빵들을 맛있다고 한 건가요?”

        

       “아니, 맛있잖아? 그렇지?”

        

       샤를로트가 조금 얼빠진 목소리로 하는 말을 들은 앨리스가 당황스럽다는 듯 클레어와 레오 쪽을 보면서 물었다. 그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긴 해.

        

       사실 내가 한국에서 먹었던 빵보다 맛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먹었던 빵 대부분은 공장에서 나온 편의점 빵이었으니까.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구워낸 빵이라면 맛있을 수밖에.

        

       하지만, 샤를로트는 ‘맛의 왕국’ 벨부르 출신. 심지어 그 모티브 중 하나가 프랑스다.

        

       프랑스. 바게트 만드는 법이 무려 법으로 제정되어있는 나라.

        

       아제르나 제국이 고기와 홍차, 쿠키의 나라라면 벨부르 왕국은 빵과 포도주, 그리고 초콜릿의 나라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제과제빵이 다양하게 발전한 영국이 모티브이므로 아제르나 제국의 빵도 최고 수준인 것이 정상이겠지만, 뭐랄까. 제작사에서 나라마다 특별한 개성을 넣고 싶어 했다고 해야 할까? 이쪽 세계에서 빵이 가장 맛있는 나라는 벨부르였다. 설정집에서도 언급이 될 정도로. 누가 더 좋아하고 말고를 떠나 ‘공식 설정’이라는 뜻이다.

        

       아마 이쪽 세계에서는 ‘상식’으로 통하겠지.

        

       “알리스. 벨부르 왕국에 와본 적이 있지 않나요? 그때 빵 먹어보지 않았어요?”

        

       “아, 아니, 맛있었어. 맛있기는 했는데! 한쪽이 엄청나게 맛있다고 해서 다른 한쪽이 맛이 없는 것이 되는 게 아니잖아? ‘더 맛있다’는 몰라도.”

        

       “아니요, 절대 그렇지 않아요. 아제르나 제국의 ‘빵’은 맛이 없어요.”

        

       참고로 어원이 어원이듯 이쪽 세계에서 ‘빵’은 벨부르어다.

        

       “아니, 그러니까 둘 다 맛있는데 벨부르 쪽이 더 맛있는 거지.”

        

       앨리스는 제국 황녀라는 자존심 때문인지, 절대로 물러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벨부르 왕국의 빵이 ‘더’ 맛있다는 말은 아제르나 제국의 빵이 ‘덜’ 맛있다는 뜻이고, 그 말은 제국의 빵이 왕국의 빵보다 맛이 없다고 할 수 있다는 말이죠. 솔직히, 객관적으로 봤을 때 아제르나 제국의 음식이 맛있다고 할 수 있는 음식인가요? 그저 신선한 재료를 굽고 찌고 끓인 게 다일 뿐이잖아요?”

        

       “뭐, 뭐!?”

        

       앨리스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이었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원재료의 맛을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와인으로 덮어버리는 벨부르 왕국의 음식이야말로 죄악이지! 먹히기 위해 죽어간 소가 불쌍하지도 않아!?”

        

       벨부르 음식은 포도주가 자주 사용되는 것으로 유명하다. 심지어 가난한 서민 계층에서도 포도주를 사용할 정도로 생산량이 많은 나라니까.

        

       아제르나 제국의 귀족, 황족 층에서도 최고의 포도주로 치는 건 벨부르 산이다.

        

       “벨부르 와인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도 최고의 술이잖아요. 당연히 그런 재료를 이용한 음식이 최고일 수밖에 없잖아요? 게다가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가 먹고 있는 음식도 원류는 벨부르 왕국이고요.”

        

       “익……! 제국에도 맛있는 디저트는 많거든!?”

        

       “그 ‘맛있는 디저트’들을 전부 제쳐놓고 지금 우리가 먹으려 하는 디저트는 벨부르 왕국의 디저트군요.”

        

       “아무리 그래도 아제르나 제국의 음식만 먹을 수는 없잖아!”

        

       “저는 벨부르 음식만 먹고 지내도 별다른 탈이 나지 않는걸요.”

        

       “아니, 내가 지금 하려는 말은 그게 아니고……!”

        

       “……언니?”

        

       열심히 논쟁을 벌이던 두 사람의 말이 딱 끊어졌다.

        

       음식으로 싸우는 거, 다 부질없는 짓이다. 솔직히 영국이 모티브라는 게 부각되어서 그렇지, 어쨌거나 아제르나 제국의 모티브 중 하나는 독일이었다.

        

       이쪽 세계에서 소시지는 아제르나 제국의 음식이고, ‘소시지’ 하면 떠오르는 것도 아제르나 제국인데, 뭘 빵 하나 가지고 그렇게 열띤 토론을 펼칠까.

        

       이렇게 맛있기만 하면 그만인데.

        

       “……언니가, 웃고 있어……?”

        

       제일 먼저 입이 벌어진 사람은 클레어였다. 그다음이 레오였고, 마지막으로 동시에 경악한 사람이 앨리스와 샤를로트.

        

       미아 크로우필드는 이야기를 따라잡지 못하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실비아?”

        

       “이, 이 파르페가 그렇게 맛있나요……!?”

        

       앨리스가 멍한 표정으로 내 이름을 중얼거리고, 샤를로트는 경악한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맛있다마다.

        

       이쪽 세계의 서민 음식을 몇 번 먹어본 나는, 이런 음식에 감사하는 법을 알고 있다.

        

       그것은, 굳이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논쟁하지 않고, 그저 겸허하게 음식을 음미하는 것이다.

        

       훌륭하게 달콤한 디저트를 먹고 웃지 않는 이가 있다면, 그자는 미뢰가 파괴되었거나 감정이라는 것이 없는 이겠지.

        

       ……뭐, 그렇다고 이런 표정을 벌써 보여줄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다.

        

       미소를 보여주는 건 진짜 중요한 순간이어야 하니까.

        

       게다가……

        

       나는 몹시 황녀다운 동작으로 냅킨을 집어 입가에 묻은 생크림을 닦아냈다.

        

       그리고 작게 숨을 내쉰 뒤 중얼거렸다.

        

       “다시.”

        

       기왕 이렇게 된 거, 눈앞에 있는 파르페, 전부 맛보도록 할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실비아가 보여준 미소는 그냥 흐릿한 미소가 아니라, 완전히 바보처럼 헤실헤실 풀어진 미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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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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