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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2

       ‘은막’ 아르노.

       성별도, 나이도, 외모도, 본명도 알려지지 않은 환상 마법의 대가.

       초회 서커스 그랑프리 본선 진출자.

       20년 넘게 서커스단을 이끌어온 업계 원로 중 한 명.

       마법사 마야의 스승.

         

       그러나 그런 거창한 설정과 별개로 게임에서 그의 역할은 별 볼 일 없었다.

       그는 구출 후에도 파티에 합류하지 않았다.

       대신 캠프에 앉아서 플레이어들이 가져다주는 메모리 디스크를 재생하는 역할을 했다.

       이벤트 신을 기록해두고 플레이어들이 원하는 때 다시 틀어주기도 했다.

         

       다른 게임에서의 ‘갤러리’와 같은 역할.

         

       환상 마법사라는 직업에 잘 어울리긴 했지만, 플레이어 입장에서 상당히 맥 빠지는 일이었다.

       3명의 용사 중 한 명의 스승이라는 타이틀로 기대는 잔뜩 시켜놓고, 하는 일이라고는 캠프에서 동영상이나 틀어주는 게 다라니.

         

       덕분에 그에겐 도촬범이나 DVD 대여점 사장님 같은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붙었다.

         

       하지만 그건 게임에서의 역할이 그랬다는 것일 뿐.

       이곳에서는 한 서커스단의 단장다운 카리스마를 보였다.

         

       그는 자신 앞에 놓인 환영들을 차례차례 살펴보더니, 철저하게 그 레벨에 따라 대응을 달리했다.

         

       아예 상대할 가치가 없는 조잡한 환상은 바로 지나쳐버렸다.

       조금 모자란 환상에 대해서는 몇 가지 지적을 하고 떠났다.

         

       잘 만든 환상 앞에서는 마법사에게 몇 가지 변형이나 동작을 요구했다.

       대개 해당 개체로 할 수 있는 복잡한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훌륭히 완수해 내면, 품에서 초대장을 건넸다.

         

       그리고 마침내 마야의 차례가 왔다.

         

       나는 그녀의 가면 사이로 새어 나오는 숨소리를 듣고 그녀가 긴장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는데.

         

       마야의 환상은 천막 안에 있는 누구의 것보다 정교하고 사실적이었다.

       앞서 초대장을 받은 사람들의 것도 전부 마야의 것보다 못한 것들이었다.

         

       나는 미래를 알고 있었다.

       그녀가 은막의 서커스단에 들어가는 것은 정해진 역사였다. 절대 탈락할 리 없었다.

         

       “흐음.”

         

       마야의 앞에 선 아르노는 턱을 만지작거리며 그녀가 만든 환상을 내려다봤다.

         

       고양이, 풍차, 마차, 그네.

       누가 봐도 모두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환상이었다.

         

       그의 평가 역시 다르지 않았다.

         

       “완벽하군.”

       “고맙습니다.”

         

       처음으로 나온 ‘완벽’이라는 평가에 모두의 시선이 마야에게 집중되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어린아이 낙서 같은 환상이나 겨우 만들던 그녀였다.

       그런데 고작 며칠 새에 이렇게 발전했다는 게 다들 믿기지 않는 것이다.

         

       -엄청난 완성도야.

       -정말 있구나. 천재라는 게.

       -외모에 머리까지. 세상 참 불공평하다.

         

       웅성거리는 사람들 사이로 선망과 시기의 눈빛이 오갔다.

         

       “그러면.”

         

       아르노가 입을 열자 사람들은 금방 다시 조용해졌다.

       그는 손가락으로 고양이를 가리켰다.

         

       “뒷다리로 일어서게 해서 춤을 추도록 해봐라.”

         

       진지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로 어울리지 않는 황당한 요청을 했다.

       다른 사람들의 환상에는 좀 더 정밀하고 섬세한 동작을 요구했는데…….

         

       환상 마법사들끼리 통하는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당황하는 것으로 보아 아무도 모르는 듯했다.

         

       한 명.

       마야를 제외하고는.

         

       그녀가 손을 꽉 쥐었다 폈다.

       명백히 긴장한 것이다.

         

       “춤이요? 어떤 춤……?”

       “아무 춤이나. 간단한 것이어도 좋아. 어쨌든 이 고양이가 추지 않았을 법한 춤이면 뭐든지.”

         

       추지 않았을 법한 춤?

       그의 말에 뼈가 있었다.

         

       마야는 잠시 숨을 고르고는 환상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녀의 손에서 빛이 새어 나오더니 고양이가 반응을 보였다.

         

       녀석이 두 다리로 벌떡 일어섰다.

         

       그러나……그 형태는……

       사람들이 기대하던 것이 아니었다.

         

       참혹했다.

         

       으지직.

       우직.

         

       고양이의 몸이 일어서는 속도 그래도 가속되더니 허리가 뒤로 꺾였다.

       고양이의 목이 뱀처럼 길쭉하게 늘어났고, 머리가 땅에 질질 끌렸다.

       눈알이 주변 피부를 뚫고 툭 튀어나왔고, 혀가 정신없이 사방팔방 요동쳤다.

       꼬리는 몸을 뚫고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했고, 일어선 뒷다리는 그대로 수수깡처럼 동강동강 무너지고 말았다.

         

       찬물이라도 끼얹은 것처럼 장내가 침묵에 빠졌다.

       마치 오류라도 일으킨 것처럼 참살당한 고양이의 환상.

         

       “아.”

         

       그녀의 손은 이제 다른 사람들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눈에 띄게 흔들리고 있었다.

       목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이 보였다.

         

       이 정도면 그녀에게 있어서 다른 사람의 ‘절규’와 비슷한 감정이다.

         

       어째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환상 마법의 대가는 그 답을 가르쳐주었다.

         

       “네 환상은 완벽했다. 지나칠 정도로. 하지만 정해진 색깔, 정해진 형태, 정해진 동작을 입력한 그대로 반복하는 오토마톤(Automaton, 자동기계)에 불과해. 우리 환상 마법사는 ‘상’이라는 실로 환상이라는 꼭두각시를 조종하는 인형 곡예사다. 기록한 그대로 재생할 뿐인 너는 메모리 디스크와 다를 바 없지.”

         

       메모리 디스크.

       그는 마야를 그렇게 정의했다.

         

       고양이의 환상이 무너진 것은 그래서였다.

       두 발로 일어서는 동작 따위 준비하지 않았으니까.

         

       “네 재능은 칭찬할 만하다. 수십만 개의 빛 알갱이를 미리 정한 규칙에 따라 단체로 군무를 추게 하는 것. 그게 너의 환상이지. 속인다는 의미에서 훌륭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상의 신비를 모르는 너는 환상 마법사가 될 수 없다.”

         

       그 말을 끝으로 아르노는 그대로 돌아서서 떠나버렸다.

         

       마야는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멍하니 자신이 만든 환상을 바라봤다.

       아직도 사지를 늘어뜨리며 대롱거리고 있는 죽은 고양이의 환상을.

         

         

       ***

         

         

       키우던 고양이가 죽었다.

       그것은 사고였다.

       토반이 무너지면서 생긴 낙석에 그만 머리를 강타당해 즉사하고 만 것이다.

       두개골이 함몰되고, 팔다리가 이상한 각도로 휘어지고, 내장이 쏟아져 나왔다.

         

       마야는 덤덤히 고양이의 상태를 관찰하고는 결론지었다.

         

       아, 죽었구나.

         

       그리고 그녀는 집으로 돌아와 평소와 똑같이 생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물었다.

       고양이가 어디 갔냐고.

         

       마야는 솔직히 대답했다.

       고양이가 죽었다고.

         

       그러자 사람들은 되물었다.

       시체는 어쨌냐고.

         

       시체?

       그것이 중요한 것일까.

       그것은 이제 그저 부패하는 유기물일 뿐이었다.

         

       그냥 내버려 두고 왔다는 말이 그렇게 당혹스러운 것이었을까.

         

       물론 지금은 계속된 가르침을 통해 마야도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익숙해지긴 했다.

         

       아,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나랑은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고 있었구나.

         

       더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 깊이로는 동감하지 못했다.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대해서.

         

       그날 이후로, 사람들은 그녀가 어떤 악마적인 행동을 벌이는 것은 아닌가 걱정했다.

         

       그건 기우였다.

       마야는 괴물이나 악마가 아니었다.

       다른 사람과 같았다.

         

       그녀도 가족을 아꼈고, 사랑에 감사했고, 불의에 화낼 줄 알았다.

       다만 그것을 표정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이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점이 다른 사람들과 다를 뿐이었다.

         

       -마음이 없는 사람은 결코 환상 마법사가 될 수 없어요.

       -너는 환상 마법사가 될 수 없다.

         

       제멋대로들 지껄이긴.

       나도 마음이 있어.

       다만 당신들과 다를 뿐이야.

         

       하지만 그들은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같은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상을 느껴라.

       신비를 받아들여라.

         

       개체를 정보의 집합으로 바라보는 그녀.

       그녀는 결코 사람들이 말하는 관념과 실재 사이의 세계인 신비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이 그녀를 슬프게 했다.

       그 말은 그녀는 결국 엄마가 바라보는 세상을 평생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니까.

       엄마가 남긴 영상도 자신이 열 수 없다는 말이니까.

         

       모든 오감이 차단된 공간 속에서 그녀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이것은 신비를 체험하기 위한 명상 공간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여기서 자신의 과거, 꿈, 소망 등을 마주한다고 하는데, 그녀는 그저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마주할 뿐이었다.

         

       그녀 홀로 다른 세상에 있었다.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철퍽.

       그녀의 명상 공간 안으로 소리가 침범했다.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청각과 시각이 일부 회복됐다.

         

       그녀 앞에 검은 정장에 검은 망토를 두른 금발의 남자가 서 있었다.

         

       그녀가 며칠간 작은 위안거리 삼았던 말 상대.

       원더스타인.

         

       “가세요.”

         

       마야가 무감각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나 그는 대답 대신 손수건을 내밀었다.

         

       자신이 쭈그리고 있으니 울거나 뭐 그러기라도 한 줄 아는 것일까?

         

       “필요 없어요. 저 안 울었어요.”

       “머리카락이 젖었어요.”

         

       머리카락?

         

       명상 공간이 해제되었다.

       세상이 하얗게 물들었다가, 다시 서서히 원래의 색을 회복했다.

       오감이 모두 돌아왔다.

         

       쏴아아.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녀가 쭈그리고 앉아 있던 곳은 그녀가 잡은 여관의 뒷마당이었다.

         

       아, 맞아. 나 돌아왔었지.

         

       명상 공간에 있다 보면 종종 단기적인 기억에 혼동이 생겼다.

         

       은막 아르노에게 무참하게 비난당하고, 그녀는 시연장을 떠나 숙소로 돌아왔었다.

       그리고 방으로 가지 않고 뒤뜰에 앉아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명상 공간에 들어섰고.

         

       비가 내리는 줄도 몰랐다.

         

       “어떻게 왔죠?”

       “뒤를 밟았어요.”

         

       당당하게 쫓아왔다고 밝히는 남자.

       그 얼굴엔 부끄러움도 없어 보였다.

       오히려 활짝 미소 짓는다.

       역시 이상한 남자다.

         

       “위로 같은 건 필요 없어요.”

       “위로하러 온 거 아닌데요. 그냥 궁금해서요. 앞으로 어떻게 하실 거죠?”

         

       또 오지랖.

       이 남자는 정말 어지간히 할 일도 없는 모양이다.

         

       마야는 고개를 저었다.

         

       “대답해줄 의무는 없는데요.”

         

       그녀의 싸늘한 대꾸에도 원더스타인의 입에 걸린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아, 그래. 이런 인간이었지.

         

       그는 다른 질문을 던졌다.

         

       “은막에 들어가는 걸 포기할 건가요?”

         

       또, 대답해줄 의무는 없다고 말하려던 마야는 멈칫했다.

       어차피 평행선을 그릴 대화다.

       그건 너무 소모적인 방식이었다.

         

       “……아뇨. 아직 며칠 남았어요. 더 노력해봐야죠.”

       “되겠어요? 그 방식으로?”

         

       그가 놀리는 듯한 미소로 되물었다.

         

       마야는 숨을 꾹 참으며 내뱉었다.

         

       “해봐야죠.”

       “제 조언을 들어보는 건 어때요?”

         

       조언.

       마야는 주먹을 꽉 쥐었다.

       하얀 그녀의 손바닥이 더 창백해졌다.

         

       지긋지긋했다.

       그런 조언 따위

         

       나를 이해할 능력도 안 되고, 이해할 마음도 없는 인간들.

         

       상이니 마음이니 신비니 명상이니.

       모두 내던져버리고 싶었다.

         

       “마야 양이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도와드릴게요.”

         

       남자의 말에 마야는 속으로 조소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방식?

       당신이 나에 대해 뭘 아는데.

       고작 며칠 대화 몇 번 나눈 게 전부면서.

         

       아무도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도 그녀가 바라보는 방식으로 세상을 보지 않았다.

         

       하지만 한 번 크게 무너졌기 때문일까.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그녀는 되물었다.

         

       “어떻게 한다는 거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2021년 8월 11일
    -코탱크377호 님, 4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_780 님, 5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저는 짬뽕 국물을 칼칼하게 곁들여 먹는 용도 외에는 먹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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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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