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42

       * * *

       

       

       최악의 경우도 생각해야 한다.

       

       

       “검은 남작도 아시겠지만 혁명 당시 아버지에게 등을 돌리고 혁명파에 빌붙은 군대가 많았습니다. 이번 전쟁에 참전하겠다 하면 안톤 데니킨 휘하의 군대가 등을 돌린다든가 그런 일은 없겠습니까?”

       “안톤 데니킨 대장 휘하의 군대는 황녀님께서 친히 차리친을 공격하실 시절에 함께 했던 차르의 군대나 다름없습니다. 그날 전장에서 활약하신 황녀님의 모습을 알 것인데 감히 저들이 다른 생각을 품겠습니까.”

       

       

       흠. 그래도 문제가 많은데.

       

       이 모든 것을 피할 수 없어 공격한다 치자. 그럼 안톤 데니킨이 승리할 수 있느냐 없느냐다.

       

       

       “안톤 데니킨 대장이 해낼 수 있겠습니까? 케먈은 지금 영국과 프랑스를 두들겨 패는 걸로 압니다만.”

       “확실히 케먈이 영웅인 것은 저 역시 부정하지 않습니다만. 그건 현재 열강이 힘을 제대로 못 쓰는 이유도 한몫합니다. 무엇보다 안톤 데니킨 대장이 지금 적극적으로 아나톨리아로 가고 싶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렇겠지.

       

       작정하고 영프가 제대로 움직이면 아타튀르크도 버티지 못할 거다.

       

       그 둘만이 아니라 그리스도 있잖아.

       

       물론 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군대와 침략하고 점령하기 위해 들어온 군대와 마음가짐 자체가 다르겠지만.

       

       

       “흐음.”

       

       

       나는 손가락으로 책상 끝을 톡톡 두드리며 고민에 빠졌다

       

       그래. 원래 역사보다 아타튀르크는 지금 허리띠를 졸라매고 악착같이 싸우는 것이다.

       

       여기에 남부집단군을 투하해 둔다면 확 바뀌겠지.

       

       제아무리 잘 싸운다고 해도 싸울 군대가 없다면 중과부적이다.

       

       

       “황녀님께서는 마음에 들지 않으시는지요.”

       

       

       그건 아니다.

       

       아직 바빠 제위에도 오르지 못하고 끽해야 몽골 대칸에 러시아군 대원수 자리나 유지하는 실정이다. 

       

       세묘노프는 몽골까지 가서 대칸의 자리에 정식으로 오르자고 하는데. 아무리 봐도 이건 좀. 그렇고.

       

       당장 내전 복구가 바빠 황위에도 오르지 못하는데. 역시 이건 좀 도박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지.

       

       그래. 굳이 도박을 할 거면 더 뜯어내야 하지 않는가.

       

       

       “안톤 데니킨 대장이 실패하면요?”

       “그럼 안톤 데니킨 대장을 독자적으로 움직인 군벌로 취급하고 책임을 전부 뒤집어씌우면 되지 않겠습니까? 안 그래도 안톤 데니킨 대장은 너무 독립적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패배하면 그쪽에 책임을 씌우는 것도 방법입니다.”

       

       

       그렇군. 양날의 검인 제안을 검은 남작이 받고 싶다는 것도 그런 까닭이 있어서인가.

       

       군구를 나누면 어쨌든 안톤 데니킨의 군대만 움직이는 꼴이니까. 뭔 일이 터지면 그 자에게 전부 넘길 수 있다 이거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터졌다.

       

       

       “실패하면 실패하는 대로 책임을 돌려 건방진 안톤 데니킨을 떨어트리자. 성공하든 실패하든 다 좋다 그거로군. 검은 남작께서도 그쪽으로 유도하셨고요.”

       “꼭 그런 건 아닙니다. 하지만 너무 군벌처럼 커버린 것이 좀 있어서 그게 걱정일 따름입니다.”

       “괜찮습니다. 그럴 수 있죠. 다만 이번에 좀 더 뽑아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말입니다. 결국, 급한 건 영프 아닙니까?”

       

       

       원래 이런 건 뽑아낼 수 있을 때 뽑아야지.

       

       어떻게 백계 러시아가 승리하자마자 이런 기회가 찾아오냐.

       

       각종 개혁이 실시되면서 러시아가 이제 미래가 보이니 두마의 사회주의 성향 의원들도 관심을 보이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밀어붙일 때, 얻어내야지.

       

       

       “그렇지요.”

       “오스만 북부를 가져가야겠습니다. 그리고 내전으로 피해를 입은 도시도 있으니 금융치료. 그러니까 돈 좀 받아야겠어요.”

       

       

       그 정도는 받아 내야 로마의 후손이라 할 수 있겠지.

       

       표트르 브란겔도 거기까진 생각지 못한 건지 헛숨을 삼켰다.

       

       

       “저들이 받아들이겠습니까?”

       “독일이 빨갛게 물들어가고 있고, 오스만은 어떻게 잡아야 한다면 우리의 손을 잡지 않겠습니까. 물론 적당선에서 조율은 해야겠지만.”

       

       

       솔직히 그냥 던지는 거긴 하다.

       

       원래 이런 건 엄청 큼지막한 것을 집어넣어야 조율할 때도 적당히 많이 받아 낼 수 있는 법이거든.

       

       아니면 아닌 거고.

       

       둘 중 하나만 받아도 좋다.

       

       실제 역사에서 소련은 빨갱이 새끼라고 무시당하지만 지금 백계 러시아는 다르니까.

       

       오스만 북부까지 얻어 옛 로마의 영토를 수복하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사실 뭐 지금 만 해도 콘스탄티노플은 확보된 거잖아.

       

       동로마의 계승자로서. 정교회의 수호자로서 얻을 건 얻어낸다는 소리다.

       

       문득 생각해 보니까.

       

       만일 콘스탄티니예. 아니, 콘스탄티노플을 수복하면 거기서 로마 황제를 칭해도 될 거 같은데.

       

       러시아의 그 어떤 황제도 이루지 못한 일을 해내는 거다.

       

       아나스타샤의 위상은 하늘을 찌를 거 같은데.

       

       소련 당시에는 러시아는 로마의 후계임을 포기해 버렸다.

       

       하지만 내가 있는지금은 다르지.

       

       로마의 후계인 러시아제국이. 뭐 이제는 두마를 통해 정식국호는 대러시아 합중국이 되었지만. 여전히 로마의 후계를 칭하는 제정은 남아 있으니까.

       

       국뽕 빨 수 있다 이 말이다.

       

       무너진 황실의 체면은 물론이오 위용이 차고 넘치겠지.

       

       문제는 지금 그 모든 것이 이번 지원이 성공적일 때나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한편으로는 아타튀르크에게도 사람을 보내 봐야지.

       

       전투 없이 승리하면 그것만으로도 좋은걸 아닌가.

       

       

       “일단 던져만 보세요. 그리고 따로 튀르키예 대국민의회의 영웅 무스타파 케먈에게도 사람을 좀 보내 봐야겠습니다.”

       “항복을 받아들이겠습니까?”

       

       그건 모른다. 그것도 던져 보는 거지.

       

       하지만 그래도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지금 아타튀르크는 죽을 맛일 거다.

       

       실제 역사와 달리 소련도 없어서 지원은 이탈리아 물자로 아마 지금 겨우 싸우고 있을 것이다.

       

       여기에 협상국들도 독일의 굴복으로 독일에 쏟아야 할 힘을 오스만 찢는 것으로 돌렸으면 조금이나마 여유가 있을 것이다.

       

       즉, 아타튀르크에게는 실제 역사보다 더 하드 난이도라는 거다.

       

       그래 놓고도 힘든 거 보면 미군이 빠지고 이놈들이 세계대전 치르고 남은 게 풍선 근육임을 대외적으로 인증한 꼴인데. 물론 그 풍근들이 뭐라도 얻기 위해 전리품으로 오스만 분할로 돌렸다는 거다.

       

       식민지 군대를 모조리 꼬라박아서라도 자존심은 챙기려 들겠지.

       

       아타튀르크도 인간이다.

       

       싸울 군대가 없는데 뭘 어쩌겠냐고.

       

       

       “이번 전쟁에 개입하면 여러 의미로 복잡해집니다. 최대한 전투를 피하면서 우리가 이익을 볼 수 있으면 좋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영 전투를 못 피해서 말아먹으면 모를까. 안톤 데니킨 대장에게도 연락은 해 두세요. 아나톨리아로 진입하되 진격은 바로 하지 말라고. 이 말을 안 들어먹고 갖다 박고 실패하면 그때 책임을 씌우면 됩니다.”

       

       

       어차피 협상해서 우리 몫이 남아 있는 이상, 싸우지 않고 얻을 수 있으면 얻는 게 좋다는 거지.

       

       

       “차리나께서는 무슨 뜻을 품고 계십니까?”

       “제가 직접 가겠습니다.”

       “황녀께서 직접 말입니까?”

       

       

       뭘 그렇게 놀라고 그래.

       

       이미 늘어진 엿가락 마냥 늘어져 골골거리는 튀르키예군이 붉은 군대보다 더할까?

       

       

       ”예. 남러시아의 백군이 차리친 공략 때 저와 함께 했다면 제가 가는 편도 나쁘지 않겠죠.”

       

       

       자, 이렇게 하면 나름 그래도 무게감 있어 보이잖아.

       

       안톤 데니킨이 적당히 아나톨리아로 들어가 활약할 시점에 내가 들어가는 거다.

       

       나야 민심 다독인다는 이유로 한번 남러시아로 갔다가 빠르게 튀르키예 다녀오면 되는 일이고.

       

       원래 세상이라면 좀 겁 좀 났겠지만.

       

       지금은 이런 몸이라 전장에 들어가도 무섭지도 않다.

       

       그러다 묘안이 딱 떠오른 것이 있어 손가락을 튕겼다.

       

       

       “그리고 독일이 빼돌리고 있는 무기 말입니다. 그게 정말 프랑스 공격을 위해 쓰이는 거라면 우리가 압수해서 가져도 되는 거 아닙니까? 애초에 밖으로 빠져나가기 전에는 우리 땅에서 생산되었으니 우리 거잖습니까.”

       “그거 묘안이로군요.”

       

       

       또 전쟁을? 우방국 프랑스를 위해 이 물건은 압수하겠다!

       

       이런 거지.

       

       혁명으로 지금 정신이 없는 독일이 이걸로 따질 수 있을까.

       

       

       “그래도 국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니 이렇게 합시다. 전쟁이 아닌 ‘특별군사작전’. 동맹국을 위해 콘스탄티노플을 보상으로 받고 용병만 파견하는 걸로 보이는 거죠.”

       

       

       설마 저 단어를 내가 이곳에서 쓰게 될 줄은 몰랐지만 말이야.

       

       어감만 들으면 나쁘지 않잖아?

       

       이렇게 내전 중으로 오늘내일하던 러시아가 단숨에 떡상하는 거다.

       

       이게 바로 대체역사지.

       

       

       

       * * *

       

       

       러시아의 제안을 받은 협상국은 어이가 없었다.

       

       다 죽어가는걸 살려놨더니. 뭐 하자는 건가.

       

       실제 역사와 달리 아직 튀르키예 독립 전쟁에서 이탈하지 않은 프랑스도, 아직 해볼 만 하다고 여긴 영국도 어이가 없었다.

       

       

       “오스만 북부를 전부? 허. 다 죽어 가는 거 살려놨더니 이건 좀.”

       

       

       다만 내전의 경험과 더불어 오랫동안 국제관계를 살펴온 백계 러시아도 할 말은 있었다.

       

       

       “상식적으로 이제 막 내전을 끝낸 우리에게 지원군을 보내라니. 너무한 거 아니오? 애초에 내전에서 영프가 지원한 것은 공산주의의 태동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었소? 이번 내전에서 우리나라는 수백만이 죽거나 다치고 볼셰비키에 의해 망가진 도시가 많소. 이 상황에서 국민을 설득하고 백군을 지원한다는 건 그만한 보상이 따라야 가능하오.”

       

       

       기껏 전쟁이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또 튀르키예로 군대를 보내야 한다.

       

       물론 지금 백군의 사기는 하늘을 찌르고 성녀의 군대란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이들은 앙카라로 진격하라고 하면 단숨에 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보상은 받아야 하지 않은가.

       

       

       “돈은 도와줄 수 있어도 으으음.”

       “어차피 오스만을 찢자면 나쁘지는 않지만. 음. 그럼 차라리 폰토스 그리스인들의 폰토스 공화국을 인정하고. 5년 후 투표로 러시아가 가져가는 건 어떻겠습니까.”

       “그리만 하면 확실히 지원해 준다는 겁니까?”

       “캅카스 군구 남부집단군 20만을 지원한다는군.”

       “동트라키아는 우리 그리스의 몫입니다!”

       

       

       그리스는 동로마는 자신들이 이었다며 징징거렸지만 어림도 없었다.

       

       애초에 케먈에게 두들겨 맞을 때부터 가능성 따위는 없었으니까.

       

       

       “지금, 이오니아 지방이나 에게해도 못 가져가게 생긴 거 안 보이시오? 그러게 지지 말았어야지!”

       “이탈리아가 철군하면서 물자지원으로 튀르키예 대국민의회를 열심히 지원했습니다. 러시아의 지원이 지금 절실합니다.”

       

       

       이탈리아가 뒤로 빠진 이상, 그만한몫을 러시아가 대신 가져가는 것뿐이다.

       

       그렇게 여기면 간단한 문제였다.

       

       열강들의 고민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탈리아가 작정하고 엿먹이면서 빠지고, 그리스는 뭔가 더 진격할 만한 역량도 없을 뿐더러. 프랑스도 독일에 이어 코뮌이 내부에서 날뛰느라 국민이 마음에 들어 할 결과물을 내야 했다.

       영국도 지금 마냥 전쟁을 지속하며 튀르키예에 힘을 뺄 때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대국민의회와 협상하기에는, 무조건 완전한 영토 보존을 걸고 넘어졌으니. 열강의 선택은 하나뿐이었다.

       

       백군의 도움을 받는 편이 차라리 나았다.

       

       이 무렵, 튀르키예 대국민의회 케먈의 군대는 한참 독립을 해낼 수 있다고 확신하면서 튀르키예 전국에서 그리스군을 비롯한 열강들을 괴롭히며 기세를 올리고 있었다.

       

       정말 신이 돕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연거푸 터지는 기적의 승리.

       

       물론 피해는 대국민의회. 튀르키예인들의 피해가 협상국 측보다 더 커지고 있었으나, 제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이들과 전쟁의 피로도가 극에 달한 침략자의 차이는 분명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그리 여길 무렵. 러시아가 참전했다.

       

       1922년 8월. 안톤 데니킨의 군대가 협상국의 수송선을 타고 아나톨리아로 넘어오고 있었다.

       

       

       “차리나께 제2의 로마를 바치자! 대러시아의 백군이여 특별군사작전이다! 동로마의 계승자로서 당당하게 튀르크를 찢자!”

       “““우라아아아!””” 

       

       

       안톤 데니킨이 이끄는 남러시아의 백군이 시원하게 치고 들어왔다.

       

       이번에 아나톨리아 파병에 나갈 안톤 데니킨의 군대는 사실상 차리친 전투에서 차리나와 함께 전투를 치른 군대로. 아나스타샤의 영웅적인 면모를 직접 본 이들이었다.

       

       이들에게 제2의 로마를 찾는데, 두려움 따위는 없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작품 내에서 찢는 것과는 별개로 개인적으로 작가는 튀르키예를 좋아합니다.

    한국 쪽은 이왕가가 독립운동을 하면 결국 대한제국 부활이라 이왕가를 중심으로 돌지는 않을 거 같습니다.

    한국 쪽은 나중에 비중이 나온다면, 김구&안창호&이범석. 루트가 될듯합니다.

    선작, 추천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Status: Ongoing Author:
I became a Russian princess destined to die in a revolutio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