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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2

       ‘우리보고 기사들을 상대하라고? 미안하지만 난 마법 연구를 하느라 바쁘다.’

        ‘그보다 무슨 생각으로 무법자들을 미궁에 들여보내신 거에요? 네? 물론 저들을 잡게 되면 학파의 명예가 서긴 하지만…….’

        ‘허어억, 이 사진들은……!? 알았다. 바로 내려가지.’

        ‘잠깐 아르투르, 거기 서세요! 지금 뭘 본 거죠!?’

       

        마리엘은 이상함을 느꼈다.

        정확히는 이상함 이라기보다 ‘수상함’이었다.

        라운지에서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미티어와 글레시아 학파의 마법사들.

        쎄한 분위기에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니 예상대로 클락이 19층에 와 있었다.

       

        “거기, 당신.”

        “예?”

        “저와 실력을 겨루는 것이에요.”

        “갑자기? 그, 그럴까요……?”

       

        위치노트를 덮고 먹던 파르페를 내려놓은 그녀는 다짜고짜 옆에 있던 마법사를 대련실로 끌고 갔다.

        땡땡이치던 것을 걸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붉고 푸른 로브에서 홀로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는 모습은 너무나 쉽게 눈에 띄어 귀신같이 찾아낼 게 분명했다.

        그럼에도 이런 차림을 고수하는 이유는 단순히 세상 물정 모르는 귀족 영애 흉내를 내기 위함이 아니었다.

       

        “아이작 가델이라 합니다. 미티어 학파의 2위계 마법사로, 네빈스 가문 출신입니다.”

        “마리엘 레반시아. 학파는 비공개고 출신은 제하프의 홀크로프트 백작가여요.”

        “비공개라? 뭐, 좋습니다. 다른 학파에서 초청으로 오신 듯한데 되도록 힘조절 하여…….”

        “그럴 필요 없고 빨리 시작하는 것이에요.”

       

        가문이 멸문했던 날, 화마에서 건져내어 이곳까지 힘겹게 끌고 온 옷가지들.

        더는 무도회에 나갈 일도 사교계에 몸담을 일도 없지만 아직도 홀크로프트의 여식이었던 자신의 정체성을 아직까지 지키고 있었다.

        도망치지도 숨지도 않는 것이야말로 ‘원칙’이었기에.

        사용인 하나 없는 기숙사 생활을 전전하면서도 긍지를 버릴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물은 벼랑에 흐른다, 붉은 아름다움이 사멸하지 않도록.”

       

        그 집념으로 일궈낸 핏방울은 조각난 톱니바퀴의 틈 사이에 끼어 세계를 거꾸로 되감고.

       

        “풍요 속의 기근, 이윽고 들불이 되었노라.”

       

        중첩된 시간선을 파고들어 기초적인 마법 만으로 상당한 파괴력을 선사한다.

       

        “불? 아니, 연기? 커억……!”

       

        손끝에서 ‘들불’과 ‘낙수’가 동시에 시전된 순간 엄청난 양의 안개와 함께 충격파가 발생했다.

        본래는 동일한 좌표에서의 마법 발현 술식의 교차로 인해 불가능하지만, 신비에 의해 강제력이 부여된 결과였다.

       

        허무하게 느껴질 만큼 깔끔한 승부.

        가슴께에 머무르던 불쾌한 시선이 사라짐을 확인하며 황금빛 동공이 클락을 곁눈질했다.

        감각이 예리한 그는 방어 마법 너머에서도 진동을 느꼈는지 위치노트만 보고 있던 고개를 든 참이었다.

        드레스 자락을 손끝으로 잡은 채, 그녀는 물안개 속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도취감 가득한 미소는 덤이었다.

       

        “관리인! 간만인 것이에요. 제가 없는 동안에도 방은 깨끗하게 유지 중이어요?”

        “시킨대로 연습은 잘 하고 계시는 모양이네요.”

        “시킨대로라뇨? 저는 언제나 스스로 노력하는 것이에요.”

        “뻔뻔함도 여전하시군요. 보기 좋습니다.”

       

        모두의 시선을 빼앗는 아리따운 자태.

        허나 클락의 시선은 어느새 위치노트로 돌아가 있다.

        대체 하루 종일 뭘 보고 있는지 파딱인 그녀보다 더 갤러리에 파묻혀 사는 듯했다.

        물어볼 때면 매번 ‘눈팅’이라며 얼버무리기에 몇 번 엿보려 시도한 적이 있었지만, 압도적인 신체능력의 격차로 번번히 실패했다.

       

        다른 것보다 마리엘은 개탄스러웠다.

        이런 미모에, 이런 차림을 하고 있는 자신이 고작 칙칙한 마분지 묶음 따위에 밀리다니.

       

        “에잇!”

       

        그래서 정수리를 두드리려는 손을 쓱 피하며 기습적으로 점프했다.

        이번에야말로 항상 얼굴의 절반은 가리고 있는 저 종이짝을 찢든지 확인하든지 할 요량이었다.

        호기심과 더불어, 그녀가 새롭게 세운 원칙 때문이기도 했다.

       

        ‘클락에 대해 더욱 깊게 알 것.’

       

        홀크로프트의 긍지를 꺾지 않는다는 ‘대원칙’에서 파생된 규율 중 하나.

        중첩시전과 더불어 수련의 층에서 새로 만든 마법들의 뿌리가 바로 이것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창술과 전지의 비석 앞에서 했던 발언 등, 수상한 점이 한가득이지 않은가.

        그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될수록 원칙의 시계탑은 더욱 강해질 것이었다.

       

        따악!

       

        “응?”

        “아악!?”

       

        허나 귀신같은 반사신경을 가진 그의 손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위치노트를 쥔 손의 딱딱한 주먹뼈가 이마를 정확히 가격했다.

        멍청하게 달려든 것은 마리엘 쪽이었지만, 클락의 반사적인 방어기제가 신비의 발동을 이끌어냈다.

        시계(視界)가 푸르게 물들며 체내에서 마나가 썰물처럼 빠지기 시작한다.

       

        길을 걷다 화분이 떨어진다든가, 지갑을 노린 도둑이 부딪혀 온다든가.

        일상적인 행동 속에서도 종종 있는 일이었기에 마리엘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된 이상 다음에는 스텝을 밟아 왼쪽으로 접근해볼까 고민하던 찰나.

        먹먹해진 공간 속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이거.”

       

        빠직!

       

        간섭기 — 소마(消魔)

       

        클락의 손이 넘어지려는 마리엘의 허리를 붙잡음과 동시에 돌아가려던 시간이 다시 흘렀다.

        연습을 통해 익숙해진 감각으로 ‘원칙회귀’를 파훼한 것이었다.

        이윽고 물밀듯 밀려오는, 그의 마력에 ‘간섭’당하는 감각.

        마리엘은 황급히 자신의 가슴을 두손으로 가리었다.

       

        “읏, 흐읏……!”

       

        집요한, 그리고 어딘가 피학적인 쾌락이 부풀어오른 육체의 첨단으로부터 울컥울컥 샘솟는다.

        얇은 천자락이 스치는 자극조차 견딜 수 없이 예민해지는 이 경험은 혼란스럽고도 지독하게 중독적이었다.

        더욱이 서로의 마력이 얽힐 때마다 피어나는 어느 감정 때문에 정수리가 한없이 뜨거워지는 기분이었다.

        그 사실을 모른 채 클락은 아르투르를 쫓다 포기하고 돌아온 세라와 대화를 나누었다.

       

        “역시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었어요? 미궁에서부터 저희 쪽에 끼워달라 하셔서 대충 예상은 했지만…….”

        “뭐가 그렇고 그래?”

        “저야 상관 없는데, 비나 교수님께는 안 들키는 게 좋을 거에요. 응? 괜찮으세요?”

       

        이러다 나중에는 주체할 수 없는 쾌락에 스스로 애원해 버릴지도 모른다.

        이미 갤러리의 파딱이라는 약점을 잡혀 어쩔 수 없이 마법을 내어주는 것 뿐이라며 합리화하기 시작했으니까.

        한껏 달아오른 사고는 이 와중에도 철저히 원칙을 지키기 위해 행동하는 중이었다.

        민감해진 오감(五感)이 그의 체취나 설레는 키 차이, 옷자락 너머로 느껴지는 근육의 형태를 뇌리에 각인했다.

       

        “읏, 아아……!”

        “마리엘 님?”

        “악악, 놔 줘요……!”

        “아니 먼저 달려들어 놓고 무슨 적반하장을…… 어쨌거나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정신을 차린 마리엘의 발버둥에 클락의 손아귀에서 힘이 빠졌다.

        서서히 눈높이가 낮아져 가던 그때, 마리엘은 그의 로브 아래에서 무언가 반짝이는 것을 발견했다.

        모험가의 징표인 동, 은, 금, 백금의 형형색색 아름다운 플레이트들.

       

        그 사이에 딱 하나.

        홀로 어떠한 빛도 내지 않는 플레이트가 하나 있었다.

        무언가 강한 힘으로 훼손시킨 것처럼 재질도 형태도 알 수 없이 뜯겨져 나간 형태.

       

        극히 일부 만으로 아름다운 상아색을 은은히 뽐내는 그것은 어느 동물의 뼈처럼 보였다.

        분명 아르투르에게는 금 등급 모험가 출신이었다고 했었다는데?

        이건 의외로 큰 수확일지도 몰랐다.

       

        “관리인에겐 섬세함이라곤 하나도 없는 것이에요! 그보다 묻고 싶은 말이라뇨?”

        “단순히 궁금증이 돌아서지만…….”

       

        마리엘 님은 가문의 재건을 위해 마탑을 나갈 생각이 있으신가요?

       

        그 말을 들은 순간 옷매무새를 정돈하던 그녀의 손이 멈추었다.

       

       

       

        *

       

        몇 시간 뒤.

        나는 11층에서 은익 기사단이 미궁을 빠져나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영문을 모른 채 문하생 대표들을 따라온 미티어와 글레시아 학파의 마법사들도 함께였다.

        금방 올라올 거라고는 생각하지만 시간 때우기가 지겨웠다.

        그래서 조금 전 마리엘의 대답을 떠올리며 애착검 살살이에게 말을 걸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본인한테 연결시켜줄 걸 그랬네. 아니, 그래도 탑을 올라가야 하니 해주학파를 찾긴 했으려나?”

        — 지ㄹ투 ㅎㅐㅅㅅ어?

        “당연하지, 내가 마리엘 님을 얼마나 소중히 생각하는데. 기사단이랑 같이 탑에서 나가면 더 이상 얼굴을 못 볼 거 아니야. 그래서 필사적으로 막으려 했던 거고.”

        — ㅂㅗㄴ심으ㄴ?

        “갤러리랑 현실 양쪽에서 분탕을 쳐보고 싶었어.”

        — …….

       

        뭐, 솔직히 말하면 전자도 살짝은 진심이었다.

        아무래도 그녀가 없으면 기숙사 생활이 재미없을 테니까.

       

        결과적으로 기사단은 나의 도움을 받아 수련의 층까지 올라왔고, 마리엘을 만나기까지 앞으로 한 걸음만이 남았을 따름이었다.

        미궁 탐사로 지친 이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마법사들.

        동료들을 희생하며 한 계단씩 위로 향해야 하는 처절함.

        탑을 오를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었던 해주술사가 사실 최종보스였다는 반전까지. 

       

        — ㄱㅡ건 반전이 ㅇㅏ니ㅇㅑ

        “당연하지 나는 거꾸로 뒤집어도 선량함밖에 없으니까.”

       

        일단 마리엘의 의사를 확실히 들었으니 적당히 힘조절 해서 한 명 정도는 올려보내 주도록 할까.

        최소한 물리력으로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키는 건 막아야 할 테니까.

       

        위치노트로 미궁 안쪽의 신호를 확인하며 창대에 창날을 끼우던 내게 아르투르가 다가왔다.

        그런데 그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어이, 클락. 누군가 오고 있다.”

        “기사단? 아직인 거 같은데?”

        “그게 아니야. 이 마력은…….”

        “뭔데?”

       

        무언가를 망설이는 그에게 재차 되묻던 그때, 한 무리의 마법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떠한 표식도 없는 칙칙한 검은색 로브에, 온갖 인식저해 마법을 덕지덕지 발라놓아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구분되지 않는 모습.

       

        유일한 특징은 모두 오른손 엄지와 검지 사이에 검은 별 모양의 문신이 새겨져 있다는 것이었다.

       

        “여기가 맞나? 전서에 적힌 장소가.”

        “확실하다. 저 입구에서 기사단의 잔당들이 나올거라 하더군.”

        “옛날 생각이 나는구만. 그땐 나도 개고생 했었는데.”

        “수련의 층도 통과 못했던 놈이 무슨. 그나저나 여긴 사람이 왜 이리 많아?”

       

        ‘검은별’.

        대륙 전체에 악명을 떨치는 흑마법사 집단이었다.

        탑 안에 들어온 무법자를 보고 마법사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곧장 전투를 준비하려던 아르투르에게 저들의 대표로 보이는 이가 다가왔다.

        기감을 집중하자 흐릿한 로브 아래로 이글거리는 듯한 붉은 머리카락이 엿보였다.

       

        “어머, 너는 미티어 학파구나? 반가워. 나는 이자젤이라고 해.”

        “파문당한 죄인과는 할 이야기가 없다. 신비를 손에 넣기는 커녕 인지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은 더러운 자들.”

        “신비이? 아, 그거! ‘전지(全知)를 발판삼아 전능(全能)을 추구한다’였나? 나도 한때는 목 매달며 찾곤 했지.”

       

        키득거린 여인이 양팔을 치켜올렸다.

        그러자 아무런 전조도 없이 모든 마법사들의 로브에 불이 붙었다.

       

        “그런데 그거 아니? 그딴 잡기에 의존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이런 대단한 마법을 쓸 수 있거든!”

       

        면직물이 타는 냄새와 함께 매캐한 연기가 차올랐다.

        혼란에 빠진 마법사들이 황급히 진화를 시도했지만 어떤 방법도 소용 없었다.

        아르투르의 옆에 서있던 나는 살갗을 조금씩 태워가는 불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었다.

       

        “괴롭지? 절대로 끌 수 없을 거야. 내 마법은 마탑에서 가르치는 단순무식한 것과는 차원이 다르거든.”

        “큭! 이 노옴……!”

        “뒹굴고 있도록 해. 이번에는 꼬맹들에겐 관심 없으니까. 너희에게도 좋은 일이라니까? 마탑의 무법자들을 대신 처리해주기 위해 온 거거든.”

        “시끄럽다!”

        “조금만 버티면 곧 치안대가…….”

       

        소수의 인원이지만 수련의 층에 머무는 문하생들의 실력으로는 ‘검은별’의 흑마법사들을 절대 이길 수 없다.

        아무리 저들이라 해도 마탑의 한 층을 오래 점거할 수는 없을 터.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세라와 아르투르가 눈짓을 주고받던 그때.

       

        재잘대던 이자젤의 입이 갑자기 멈추었다.

       

        “거기 옆에 있는 너는 어때? 내색하나 하지 않다니 꽤 고통에 익숙한 모양이지만…… 응?”

       

        아, 기억났다.

        어쩐지 익숙한 마법이더라니.

       

        “어라? 어? 어째서? 왜?”

        “…….”

        “저, 저기…… 동료분들은 잘 지내시죠?”

       

        나는 머리에 묻은 잿가루를 털어내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내 안면, 목에 걸린 플레이트, 그리고 손에 쥔 창을 번갈아 바라보는 흑마법사에게 인사를 건넸다.

       

        “가끔 안부 인사라도 드렸어야 했는데 제가 공사가 다망해서…….”

        “오랜만이다? 산태우기.”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쓰다보니쓰다보니쓰다보니 계속 분량이 늘어나서…. 아무튼 오늘도 한편 더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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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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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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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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