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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2

       

       

       이하율 수사관의 끈질긴 수사를 겪은 지도 어언 이주일.

       

       이대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은 나는 결심했다.

       

       

       “작가님.”

       

       [네?]

       

       “그냥 해버리죠.”

       

       [···괜찮으세요? 위험하다고 하셨잖아요.]

       

       

       그래. 위험하다.

       

       수사가 계속되고 있다. 그것도 의심이 아니라 반쯤 확신했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집요하게 따라붙고 있으니, 꽤 위험하겠지.

       

       하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죽이는 것도 작가님이 반대하고, 알리바이를 위해 빌런 세 명을 더 썰었는데도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움직이지 않는 건, 더 말이 안돼.

       

       

       “여유 있을 때 지워둬야 하니까요. 그 빌런들.”

       

       [···으윽.]

       

       

       작가님이 별다른 반박을 하지 못하고 침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야 자기 잘못이니까.

       

       어떻게든 개연성을 챙기기는 했지만, 빌런 2,400명은 아무리 생각해도 많아도 너무 많았다.

       

       줄일 수밖에 없다고.

       

       

       “그리고,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어요. ”

       

       [어쩔 수 없다···?]

       

       “라이라를 너무 많이 써버린 것 같아서요. 부작용이 나타났거든요.”

       

       

       인터넷에 올라오는 글들을 바라보았다.

       

       과격한 댓글들이 주르륵 달린 뉴스의 댓글에는, 아라크네를 응원하는 댓글들이 잔뜩 달려있었다.

       

       이래도 의심할 거야? 이래도? 싶은 느낌으로 라이라를 활용했는데, 그게 부작용이 되어버린 걸까.

       

       다른 지역의 빌런을 썰어 재끼거나. 수업 시간에 빌런을 썰어 재끼거나.

       

       아예 교도소 내부의 빌런까지 한번 썰었는데도 의심을 접지 않는 모습을 보고 포기했다.

       

       도대체 왜? 왜 나를 의심하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무심코 본 뉴스의 댓글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버렸다.

       

       

       “비밀 조직이니 뭐니, 그런 걸 생각하고 있었을 줄이야.”

       

       [···뭐, 이상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요. 이곳저곳에서 나타났으니까.]

       

       “그거야 그렇긴 하죠···.”

       

       

       의심을 피하려고 이곳저곳에서 빌런을 썰어버린 탓일까.

       

       어느샌가 아라크네는 개인이 아니라, 조직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의심을 풀지 않을 만도 하죠. 제가 저지른 게 아니라, 제가 소속된 조직이 한 짓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그래도 멋있지 않나요? 비밀 조직.]

       

       “하아···.”

       

       

       작가님이 나의 한숨에 당황하는 게 느껴졌다.

       

       당연히 좋아할 거라 생각했던 걸까.

       

       ···뭐, 솔직히 말하면 엄청나게 좋아한다. 비밀 조직, 멋있잖아.

       

       그런데 왜 한숨을 내쉬었냐고?

       

       작가님이랑 수준이 비슷해진 건가 하는 생각에 한숨을 쉬지 않을 수가 없었어···.

       

       

       “그래서, 잘 배치해두신 건 맞죠?”

       

       [네, 네! 십이지 세 명과 빌런 600명! 확실해요!]

       

       “좋아요, 그럼. 가볼까요.”

       

       

       마침 지금은 귀찮은 수사관도 없는 시간대다.

       

       빨리빨리 없애버려야지.

       

       목표는 네 명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것.

       

       하지만 한 명씩 처치하면 언제쯤 끝날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그러니 세 명을 한꺼번에 잡으면 조금 낫겠지.

       

       빌런의 숫자는, 뭐.

       

       대충 간부 넷에 부하 800명 언저리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것도 충분히 많잖아.

       

       사천왕이 왜 소설에 자주 나오는지 깨달아버렸다.

       

       간부는 네 명이면 충분한 것 같아···.

       

       

       [그, 그런데 만약에 들키면 어떻게 하나요?]

       

       “들킨다니요?”

       

       [수사관이요. 죽여야 할까요? ···히잉. 하지만 너무 아까운데.]

       

       “그런 생각을 하고 계셨구나.”

       

       

       이하율 수사관에게 들키면 어떻게 하냐니.

       

       그거야 쉽지.

       

       

       “협회를 주무르면 되잖아요.”

       

       [네?]

       

       “협회의 내부에 깊게 침투한 비밀 조직. 멋있죠?”

       

       [···! 네, 엄청!]

       

       

       그냥 들켜도 상관없으면 되는 거 아냐?

       

       기왕 비밀 조직 취급 받는 거, 진짜로 하나 만들지 뭐.

       

       나는 이제 몰라.

       

       잡으려고 들든 말든. 알아서 하라지.

       

       윗선에서 압박이 들어오거나 하면 알아서 그만두지 않을까.

       

       이제 어떻게든 증거를 찾아도 의미 없을 거다.

       

       이렇게까지 해버리면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 꺼려졌지만, 어쩔 수 없지.

       

       가만히 내버려 뒀다가는 훨씬 귀찮아질 것 같으니까.

       

       ···아아, 그런데 비밀 조직이 나와 라이라 두 명뿐이면 조금 어색하지 않을까?

       

       재밌는 녀석 한 명쯤 어디서 튀어나왔으면 좋겠다.

       

       

       

       ***

       

       

       

       “흐암. ···귀찮게. 왜 이렇게 경계를 심하게 하는 거야?”

       

       “너도 알잖아. 요즘 아라크네니, 뭐니 난리가 난 거.”

       

       “아, 그거? 모르모 님이 죽었다고 했던가.”

       

       

       어두운 밤, 사람들이 오가지 않는 폐공장 내부.

       

       무장한 빌런들이 웃고 떠들고 있었다.

       

       

       “그래. 그런 일을 겪었으니까 어쩔 수 없지. 뭐, 금방 평소대로 돌아올 거야. 그분은 솔직히 강하지는 않으니까.”

       

       “···그렇지. 다른 간부님들에 비하면 약하셨으니까.”

       

       “그러니까 경비나 잘 서자고. 그곳에 비하면 사람 수는 여기가 세 배는 많아. 올 수 있을 리가 없지.”

       

       

       -덜컹!

       

       

       “···? 무슨 이상한 소리 들리지 않았냐?”

       

       “모르겠는데. 잘못 들은 거 아냐?”

       

       “아니, 분명 들렸어. 여기 어딘가에서 소리가···커흑?!”

       

       “끄흑···?! 수, 숨이···!”

       

       

       순식간이었다.

       

       무언가 이상한 소리를 들은 빌런 한 명이 환풍구 내부를 조사하기 위해 가까이 다가갔고, 나머지 한 명도 미심쩍게 그를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간 순간. 휘릭, 하고.

       

       순식간에 실 두 가닥이 두 명의 목을 조였다.

       

       

       “끄, 흑···! 사, 살려···.”

       

       “···.”

       

       

       잠깐의 발버둥 끝에 축 늘어진 빌런 둘을 가볍게 목에 걸린 실을 조종해 환풍구 속으로 당겨 시체를 은닉했다.

       

       ···이거 생각보다 어렵네.

       

       영화나 게임처럼 환풍구 속에서 움직이는 건 생각보다 들키기 쉽구나.

       

       

       [독자님이 좋아하는 잠입, 직접 해본 기분이 어떠세요?]

       

       “기분이요? 말해서 뭐 해요.”

       

       

       당연히 최고지.

       

       너무 재밌었다.

       

       어둠 속에 숨어들어 적을 처치하는, 그런 거.

       

       다들 한 번쯤 생각해보잖아?

       

       상상 속에서나 해보던 걸 직접 하는 기분이라 너무 좋았다.

       

       죽기 직전에 엄청 현실적인 VR 게임 같은 거 나오면 그제야 해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들키기 쉬운 건 단점이었지만, 체험학습 같은 분위기가 있었다.

       

       

       “아무래도 600명은 너무 많았던 것 같네요.”

       

       [독자님이 600명 가능하다고 하셨잖아요!]

       

       “아니, 그게···. 이렇게 경비가 삼엄할 거라고는 생각 안 했거든요···. 그러니까 죄송하다니까.”

       

       

       내가 착각했던 점 하나.

       

       ···옷을 갈아입을 시간은 있을 줄 알았다.

       

       저번의 그 허술했던 경계를 봤으니까.

       

       한 100명 정도 썰고 옷 갈아입은 다음에 다시 썰고 옷 갈아입고.

       

       그거 반복하면 될 줄 알았지.

       

       하지만 아니더라.

       

       간부 한 명이 죽고 빌런들 수백이 한꺼번에 죽어서일까?

       

       그 범인이 아직도 빌런들을 썰고 다닌다고 뉴스에 나와서일까?

       

       경계심이 상당했다. 이대로라면 싸우기 힘들어.

       

       대놓고 들어가서 싸워버리면 600명이랑 연속으로 싸워야 한다.

       

       질 거라는 생각은 요만큼도 하지 않았지만, 문제는 옷이 부족하다는 것.

       

       200명을 잡았을 때도 옷 한번 갈아입었는데, 600명을 상대로 옷을 갈아입지 않을 수는 없었다.

       

       계속 싸우다가는 옷 한 올 걸치지 않은 치녀 상태로 잡혀버릴걸.

       

       그래서 생각한 게 잠입.

       

       우선 수뇌부의 모가지를 딴 후에, 혼란에 빠진 놈들을 천천히 잡으면 괜찮을 거다.

       

       작전을 짤 놈들이 없어지면 사기도 떨어질 거고, 판단력이 떨어질 테니까.

       

       계속 싸우면 내가 더는 싸울 수 없다는 걸 깨닫지 못하겠지.

       

       그 틈을 타서 옷을 갈아입고 나머지를 쓸어버리면 끝.

       

       쉽지?

       

       

       “야, 너희들 왜 대답이 없···흐억?!”

       

       “미, 미친! 적···으읍! 읍! 으으으읍!”

       

       

       ···문제가 하나 있다고 한다면, 이미 그 작전은 망해버렸다는 점일까.

       

       환풍구가 생각보다 소음이 크더라.

       

       아니, 영화에서는 잘만 돌아다니길래 나도 할 수 있을 줄 알았지.

       

       포복하면서 움직이다가 가슴이 거슬려서 자세를 고쳐잡는 와중에 덜컹거리는 소리 났을 때는 깜짝 놀랐다니까.

       

       

       -치지직. ···답하라.

       

       “음?”

       

       -응답해, 어서. ···무슨 일이지? 1분 내로 대답이 없다면 습격 경보를 울리겠다. 어서 대답해!

       

       [아, 이거 들키겠는데요.]

       

       “그러게요. 하하, 어쩐담.”

       

       

       안타깝지만, 이 잠입 놀이는 아무래도 여기서 끝날 모양이다.

       

       죽을 거라는 생각은 요만큼도 하지 않았다.

       

       그야 작가님은 내가 없으면 안 되는걸. 어떤 식으로도 살아남긴 하겠지.

       

       다만, 위버멘쉬의 일원을 마음껏 죽여댄 내가 멀쩡히 살아나갈 수 있을까?

       

       작가님을 온전히 믿을 수는 없다.

       

       그야, 갑자기 ‘피폐 히로인이 요즘 유행이래요!’ 하면서 내 손모가지 정도는 잘라버릴 수도 있잖아.

       

       ···의수가 멋있기는 하지만, 그걸 달고 살고 싶지는 않았다.

       

       손에서 에너지 빔을 쏘는 건 조금 끌리긴 하지만, 나는 사지 멀쩡한 게 좋다고.

       

       그저 내가 죽지는 않는다는 보장일 뿐. 사지가 멀쩡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니 잠입은 그만두기로 했다.

       

       숨는답시고 숨었다가 들키면 그 순간 큰일 날 테니까.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고?

       

       어렵지 않지.

       

       

       “어디, 여기가 공장 한가운데니까···.”

       

       [간부들은 세 명 모두 상황실에 있어요!]

       

       “좋아요.”

       

       

       거의 사용하지 않아 멀쩡한 반장갑을 꽉 조였다.

       

       ···한번 해 보고 싶었어, 이거.

       

       생각보다 별 느낌 없구나.

       

       

       “좋아요, 그럼. 잠입으로 올 만큼 왔으니,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겠죠.”

       

       

       사방이 적이고, 더 이상 숨어서 가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뚫고 지나갈 뿐.

       

       

       “스피드런, 시작할까요?”

       

       

       유명한 잠입 액션 게임에 이런 유행어가 있었던가.

       

       목격자 하나 남기지 않고 다 죽이면 암살이라고.

       

       오늘은 그게 정말인지 실천해보기로 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힘들어도 글은 써야한다

    그게, 독자들과의 약속이니까 (끄덕)

    ***

    피폐는사랑입니다 님, 6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오히려 제가 글을 봐주셔서 감사한걸요! 언제나 감사합니다!

    이니안 님, 1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100! ···으음, 한번 더! 100!

    분뇨조절장애 님, 5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즐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만, 분뇨는 조절하셔야 하는 게···?

    비공개 후원자 님, 3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연참은···죄송합니다. 이걸로 봐주세요. 요즘 몸이 좋지 않아서 일일연재도 꽤나 힘드네요.

    너부리이 님, 5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아무런 말도 없이 후원···음. 즐겨주시는 걸까요. 재미있으셨다면 좋겠습니다!

    비공개 후원자 님, 108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108나한마저 감동한 세계···! 엄청 있어보이네요! 감사합니다!

    율연 님, 1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언제나 아무말 없이 1코인 을 던져두고 가시네요! 오늘도 1코인 펀치!

    do 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으음, 이번에는 10코인···! 10코인 펀치! 10코인 펀치! 10코인 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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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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