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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2

       

       나는 지금 중대한 일을 눈앞에 두고 있다.

       

       “후우…”

       

       세계수의 가지를 앞에 놓은 나는 작은 도끼를 두 손에 꽉 쥐었다.

       

       무당이기 이전에 남자로서 그냥 넘어갈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남자는 장비빨이다.

       

       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나는 아직 장인이 아니다.

       

       애동제자로서 좋은 장비는 필수다 이 말이다.

       

       “솔직히 무당이 전쟁까지 참여 했으면 이 정도는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끄덕.

       

       세레나가 내 의견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세레나는 내가 뭐라고 말해도 고개를 끄덕였을 것 같다.

       

       내 모든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중이었으니까.

       

       “세레나, 눈 좀 돌려줄래?”

       

       그녀에게는 한없이 잔인한 장면일지도 모른다.

       

       눈앞의 가지는 엄밀히 말하면 세계수의 손가락쯤 되는 물건이었으니까.

       

       “….?”

       

       “아, 부채를 만들 거야.”

       

       “….?”

       

       “무당들이 쓰는… 그런 게 있어.”

       

       무속인으로 살다 보면 기본적으로 눈치가 좋아진다.

       

       나만 해도 영혼들의 표정과 몸짓만 보며 의사소통하지 않던가.

       

       세레나가 말이 없어도 그럭저럭 소통을 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럼 만들어 볼까?”

       

       가지를 다 쓸 필요도 없다.

       

       큰 줄기에 달린 잔가지를 떼어내서 쓸 생각이었다.

       

       이미 세계수에다 대고 기도도 올렸다.

       

       부채를 만들 테니 어여삐 여겨 달라고 말이다.

       

       무언가 마음에 안들어하는 듯했지만···.

       

       스윽 –

       

       도끼를 힘차게 들어 올려서 잔가지를 내리찍었다.

       

       퍼억 –

       

       “어라?”

       

       “…..?”

       

       도끼가 가지에 정확하게 적중하기는 했다.

       

       다만 손톱만큼도 파고들지를 못 했다.

       

       나는 다시 한번 도끼를 휘둘렀다.

       

       퍼억 –

       

       “….”

       

       역시나 이번에도 도끼가 그대로 튕겨져 나왔다.

       

       집에서 쓰는 장작은 다 이 도끼로 자른다.

       

       이미 많은 장작을 패며 그 성능이 확실하게 증명된 도끼다.

       

       도끼의 잘못이 아니었다.

       

       “세계수라서 그런가…?”

       

       몇 번 더 도끼를 휘둘러봐도 변함이 없었다.

       

       나무는 도끼를 견뎌 냈고, 결국 쪼개지지 않았다.

       

       “이상하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이상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

       

       버렸던 인형이 집에 다시 돌아온다던가, 무덤에 손이 붙었다가 술을 부으니 떨어졌다 등의 이야기.

       

       내 직감이 이건 그런 종류의 기이한 이야기라고 말하고 있었다.

       

       “흐음…이게 아닌가?”

       

       일단 물건 자체가 보통 물건이 아니니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런데···.

       

       “야, 대가리. 뭘 쪼개냐?”

       

       – ….

       

       대가리와 잡귀들이 웃고 있었다.

       

       그냥 비웃음이라면 참겠지만, 이놈들은 생김새가 흉측하다.

       

       저런 식으로 웃으면 얼굴이 기괴해 질 수밖에 없다.

       

       특히 대가리 저놈은 머리를 손으로 들고 웃고 있으니···.

       

       일단은 다시 가지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세계수님…부채 하나만 만들겠습니다.”

       

       휘익 –

       

       퍼억 –

       

       “부채 하나만요…네?”

       

       퍼억 –

       

       “하…”

       

       나무를 때리는 소리가 울리는데 상처가 하나도 나지 않는다.

       

       이게 무얼 뜻하는 거냐면 나무 자체가 부채를 만들기 위해 준비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기도로 합의를 봐 놓고 이제 와서 이러시면…”

       

       혹시나 해서 세레나에게 물었다.

       

       “혹시, 오러 블레이드 쓸 수 있어?”

       

       도리 도리.

       

       “마법으로 쪼개는 건? 이건 좀 그런가…?”

       

       부채를 못 만든다면 역시···.

       

       나무를 안고 고민하면서 계속 떠오르는 게 있었다.

       

       다만 이걸로는 그걸 만들 수가 없다는 게 문제다.

       

       “엄청 작을 텐데…”

       

       자꾸만 그것이 머리를 떠다니는 게 맞는 것 같기도 한데···.

       

       “결국 확인해 봐야 하나?”

       

       방울을 흔들면서 질문을 던졌다.

       

       딸랑 –

       

       “부채를 만들고자 하는데 원하시는 게 따로 있으신가요?”

       

       딸랑 –

       

       또다시 그것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딸랑 –

       

       “이걸로 만들면 크기가 많이 작습니다.”

       

       떠오르는 것에 변함이 없었다.

       

       도대체 세계수가 이걸 어떻게 알고 만들라고 하는 건지···.

       

       내 기억 속에 있는 걸 봤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하…일단은 해보자.”

       

       방울을 허리에 꽂아 넣고 다시 도끼를 들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모호하다.

       

       “아니, 이렇게 작은 장승이 어디 있어?”

       

       장승이란 것이 원래 굉장히 크다.

       

       거기다가 만들려면 보통 쌍을 지어 만들어야 한다.

       

       지역마다 조금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잘 알려진 장승이라면 보통 두 개가 한 쌍.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의 장승이다.

       

       “진짜로 장승을 만들라고…?”

       

       가지의 크기가 딱 내 다리길이.

       

       이걸 반으로 가르면 내 무릎 높이의 장승 두 개가 만들어진다.

       

       그렇게 작은 걸 장승이라고 부를 수가 있냔 말이다.

       

       “…장승을 만드려고 하니 보살펴 주소서.”

       

       손에 잡은 도끼를 휘둘렀다.

       

       애매한 마음으로 혹시나 해 살살 휘두른 도끼였다.

       

       퍼억 –

       

       우직 –

       

       “진짜 장승이네.”

       

       거짓말처럼 가지가 두 동강이 나며 부러졌다.

       

       심지어 때리지도 않은 부분이 뚝 부러지며.

       

       기이한 일이었다.

       

       “….”

       

       나무가 쪼개진 건 좋은 일이지만 문제가 있다.

       

       나는 조각 쪽으로는 소질이 없다는 것.

       

       내가 장승을 깎아 봐야 제대로 된 모양은 안 나온다.

       

       “남한테 맡기면 안 될 것 같은데…”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게 딱 느껴졌다.

       

       무당 인생에 이런 느낌이 들었다면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는가.

       

       해야 할 일은 해야지.

       

       “내 팔자에 조각도 다 해 보네.”

       

       조각을 하는데 쓸 만한 단검을 가져오니 세레나가 의자와 나무를 가져다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고마워.”

       

       나무가 아까처럼 버티지만 않으면 그래도 해볼 만 하리라.

       

       그런 마음으로 칼끝을 가져다 대니 나무가 쉽게 깎여나갔다.

       

       서걱 –

       

       스거억 –

       

       아까의 그 단단하던 나무가 맞기는 한 걸까.

       

       마치 흙이라도 되는 듯 방해 없이 쉽게 조각이 이어졌다.

       

       “진짜 별의별 걸 다 해 보는 인생이네.”

       

       벼락도 맞아보고, 하늘도 날아보고.

       

       심지어는 장승도 깎는다.

       

       그것도 세계수로 말이다.

       

       서걱 –

       

       잔가지를 쳐 내고 껍질을 까버리니 제법 그럴듯한 가지가 탄생했다.

       

       점점 더 얇아지고 있다는 것만 빼면.

       

       “으음…아무리 봐도 이건 아닌데…”

       

       이렇게 얇고 작은 장승이라니.

       

       가지의 살을 발라내며 원기둥과 비슷하게 만들어 놓으니 크기가 참 초라했다.

       

       신성하기로는 어느 장승도 못 따라 올 테지만 크기가 어떠한 장승도 따라가지 못했다.

       

       “크기보단 질이 중요하지.”

       

       장승이란 것이 일단 얼굴이 중요하다.

       

       그래야 잡귀들이 겁을 먹고 도망을 친다는 말이다.

       

       신성한 기운에 다부진 얼굴.

       

       귀신이 되어 본 적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잡귀들에게는 한없이 무섭게 느껴지는 존재.

       

       정성을 들여 얼굴을 조각했다.

       

       “세레나, 어때? 좀 무서워 보여?”

       

       “…”

       

       어째 반응이 시큰둥 했다.

       

       하기야 내 실력으로 얼마나 좋은 결과물이 나오겠는가.

       

       두루뭉실한 이목구비에 모자인지 뭔지 모를 머리 모양.

       

       나름 양반들이 쓰던 모자를 흉내 내 보았는데 나 말고는 알아 보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흐음…”

       

       천하대장군이라는 글자를 정성 들여 몸에 새겨 넣었다.

       

       그렇게 완성된 대장군 장승.

       

       세워 보니 내 무릎까지 오는 게 장승이라기보다는···.

       

       “방망이에 더 가까운데…?”

       

       들고 휘두르면 딱 좋은 크기였다.

       

       손잡이만 얆게 만들면 바로 방망이로 써도 될 정도.

       

       “….”

       

       지하여장군 장승을 만들 나무를 손에 쥐었다.

       

       작업이 제법 길어질 기미가 보이자 세레나가 할 말이 있는 듯 쭈뼛쭈뼛 거렸다.

       

       “왜?”

       

       무언가 결심을 한 듯 오물거리는 입.

       

       그리고 세레나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식사 준비할게요.”

       

       세레나는 말을 할때마다 저랬다.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세레나에게는 공포인 것이다.

       

       정신에 남은 상처라고 해야 할까.

       

       “고마워.”

       

       장승을 다듬으며 시간이 흘렀다.

       

       한참을 공들여 만들다 보니 이제는 제법 그럴싸했다.

       

       물론 내 실력으로 만든 것치고는 그렇다는 이야기다.

       

       여전히 이목구비들은 두루뭉술 했다.

       

       “이 정도면 됐지.”

       

       장승 두 개에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천하 대장군, 지하 여장군.

       

       나름 이쪽 세계에 맞도록 한자가 아닌 이곳의 언어를 새겨 넣었다.

       

       그렇게 해 놓으니 상당히 독특했다.

       

       “효과만 있으면 되지…”

       

       품고 있는 기운이 보통이 아니니 충분할 것이다.

       

       아마도···.

       

       “이걸 어디다 심어야 하나?”

       

       우리 집은 울타리가 없다.

       

       입구라고 할 만한 게 없었다.

       

       “입구에다가 세워야 하는데…일단 여기다가?”

       

       마당의 중심 부분.

       

       아직 장승제도 지내지 않았으니 임시로 놔두기에는 딱 좋다.

       

       시간이 날 때마다 더 다듬어 주기도 편하고 말이다.

       

       땅을 파낸 나는 서로 마주 보게 장승을 세웠다.

       

       “음…”

       

       때마침 세레나가 나에게로 다가왔다.

       

       식사준비가 끝난 모양이다.

       

       어제 알게 된 사실인데 세레나는 요리를 아주 잘했다.

       

       드디어 집에서도 제대로 된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벌써 다 끝났어?”

       

       우리의 식사만 준비한 것이 아니었다.

       

       벌써 제삿상까지 준비가 완료되어 있었다.

       

       묘지 어르신들과 잡귀들의 것까지.

       

       세레나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텐데 제법 정성이었다.

       

       “….”

       

       세레나 덕분에 여러가지가 편해졌다.

       

       바로 물을 따로 구하러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

       

       “…운디네.”

       

       꾸벅.

       

       역시나 나에게 인사를 하는 운디네.

       

       나에게 인사를 한 운디네가 어딘가로 다가갔다.

       

       “…?”

       

       “어라?”

       

       내가 심어 놓은 장승에게로 간 것이다.

       

       “세계수라서 그런가?”

       

       친근하게 다가간 운디네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거기에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운디네?”

       

       “…?”

       

       왜 저기다 물을 주는 걸까?

       

       “가만….”

       

       그러고 보니 저 나뭇가지는 떨어져 나온 지가 한참이나 지났는데 파릇파릇했다.

       

       잔가지를 잘라 내기 전까지도 잎사귀들이 시들지를 않았으니 말이다.

       

       순간 번뜩이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말도 안 되는 크기의 장승.

       

       그럼에도 내려온 공수.

       

       내 생각이 맞다면 모두가 말이 되는 이야기였다.

       

       “이거 혹시…자라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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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판타지 세계의 무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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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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