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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2

       “왼쪽으로 굴러, 나이틀리 학생!”

       

       나이틀리가 왼쪽으로 몸을 던지자 웨이버의 화살이 번개처럼 날아 들었다.

       

       나이틀리를 노리고 몽둥이를 후려치던 트롤의 손목에 화살이 박히며 몽둥이의 궤도가 틀어졌다.

       

       나무를 뽑아 대충 만든 무식한 몽둥이가 나이틀리를 아슬아슬 빗나가며 땅에 박히자 둔중한 진동이 울려 퍼졌다.

       

       “좋아! 잘한다, 나이틀리!”

       

       트롤의 퇴로를 막고 선 나는 머리가 마구 헝클어진 채 데굴데굴 구르는 나이틀리에게 손나팔을 만들며 소리쳤다.

       

       “젠장할…!”

       

       겨우 구르기를 멈춘 나이틀리가 욕을 하면서 손에 쥔 사냥돌을 옆으로 핑핑 돌렸다.

       

       지금 그녀가 가지고 있는 남은 사냥돌은 돌리고 있는 게 하나, 허리춤에 묶은 개 또 하나. 첫 번째 투척한 사냥돌은 완벽하게 빗나가 저기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몸 군데군데에 화살이 박힌 트롤이 분을 못 이기고 괴성을 지르며 나무 몽둥이를 뽑아 들었다.

       

       “평지에서 맞서지 마! 계속 움직여! 놈의 움직임을 느리게 만들어!”

       “뒤에서 말로 하면 누가 못하나요! 으앗!”

       

       트롤의 이어지는 공격을 피한 나이틀리가 빠르게 뛰어 우거진 수풀 사이로 사라졌다.

       

       그 뒤를 쫓으며 트롤이 와지끈와지끈 나무들을 밀어뜨리고 짓밟고 난리.

       

       “케게게게게겍!!”

       

       그러다 나뭇가지에 몸이 자꾸 쓸리고 얼키자 성이 난 트롤이 애먼 나무에 주먹질을 하고 몽둥이를 휘둘러 댔다.

       

       그때 헛발질하며 난동을 피우는 트롤의 대각선 뒤쪽 숲에서 나이틀리가 슬쩍 모습을 드러냈다.

       

       상체만 내민 나이틀리가 저쪽 경사면에서 대기하는 웨이버에게 몇 가지 수신호를 보내자 웨이버가 고개를 끄덕이며 활시위를 당겼다.

       

       활을 떠난 화살 몇 발이 정확히 트롤의 뒤통수에 박히자 트롤이 손을 허우적대며 화살을 모조리 뽑으며 뒤로 몸을 돌렸다.

       

       “여기다, 여기!”

       

       손에 쥔 화살을 바닥에 내팽개친 트롤이 곧 웨이버를 발견하고는 그쪽으로 쿵쿵 달려갔다.

       

       트롤의 진행방향 측면에 몸을 숨긴 나이틀리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있는 힘껏 사냥돌을 휘둘러 던졌다.

       

       휘르륵 날아간 사냥돌이 트롤의 오금 바로 뒤를 종이 한 장 차이로 스치며 저기 멀리 날아가 버렸다.

       

       직선으로 뛰는 트롤의 속도는 굉장히 빨라 던질 거면 조금 더 앞을 겨냥했어야 했는데, 경험이 일천하고 급박한 상황이라 나이틀리가 그것을 간과한 것.

       

       그래도 비록 두 번째 시도도 실패했지만 그 아이디어는 굉장히 좋았다.

       

       정면승부를 감당하기는 어렵지만 머리는 다소 멍청한 마물을 숲으로 유인한 뒤에 본인은 작은 체구를 이용해 수풀을 헤치고 우회매복한다.

       

       다른쪽에 있는 우군에게 유인을 시키고 마물이 그쪽으로 관심을 돌리는 틈에 측면에서 공격.

       

       만약 트롤의 달리는 속도를 감안해 사냥돌을 제대로 던졌다면 이번 판에 트롤은 그대로 고꾸라졌을 것이다.

       

       역시 나이틀리. 아카데미 수석답다. 훌륭해.

       

       그나저나 일단 웨이버부터 좀 구해줘야겠네.

       

       바닥에 굴러다니는 돌을 집어 들어 웨이버가 있는 경사면을 네 발로 기어 올라가는 트롤에게로 집어 던졌다.

       

       쇄애애애애액- 날아간 돌이 트롤의 항문 쪽을 정확히 강타하자 트롤이 기괴한 비명과 함께 경사면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손으로 엉덩이를 문지르며 주변을 두리번거린 트롤이 나를 발견하고는 이번에는 이쪽으로 또 쾅쾅대며 달려온다.

       

       여기서 찌르면 여기로 가고 저기서 찌르면 저기로 가고, 아무리 멍청하다지만 저렇게나 멍청해서야 원.

       

       트롤이 거의 내 앞에 치닫자 오러를 일으켰다.

       

       오러의 파장에 부딪힌 트롤이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치더니 이내 겁에 질려 반대편으로 다시 도망친다.

       

       “나이틀리! 이번에는 진짜로 끝장내!”

       

       그런데 어째 나이틀리가 보이지 않는다? 또 수풀에 숨기라도 한 건가?

       

       자세히 보니 저기에 숨은 나이틀리가 보인다. 그런데 숨을 시간이 부족했는지 수풀 밖으로 옷이 다 보이는데?

       

       내가 당하고 애먼 곳에 화풀이할 대상을 찾던 트롤이 나이틀리의 삐져나온 옷을 보고는 그쪽으로 뛰어갔다.

       

       조심하라고 소리치려던 나는 뭔가 이상한 것을 알아채고는 그만 미소를 짓고 말았다.

       

       트롤이 막 수풀 틈에 드러나 있는 나이틀리의 옷을 찢어발기는 순간 나무 위에서 상의를 입지 않은 나이틀리가 트롤의 뒤쪽으로 도약했다.

       

       허공에서 팔을 뒤로 뻗은 나이틀리가 몸을 뒤집으며 자신을 등진 트롤의 다리로 사냥돌을 있는 힘껏 집어 던졌다.

       

       매섭게 회전하며 날아든 사냥돌이 트롤의 다리를 살아 있는 촉수처럼 휘감아 양쪽 쇠구슬이 서로 교차되자 나이틀리가 바닥에 등부터 떨어지며 소리쳤다.

       

       “됐다!”

       

       그 소리에 몸을 돌리던 트롤이 다리가 엮이며 기우뚱하더니 균형을 잃고 옆으로 장대하게 쓰러졌다.

       

       사냥돌을 뜯어 내려는 트롤의 손목에 화살 몇 방이 파바박 박혔고 그 사이에 나는 얼른 뛰어가 트롤의 머리쪽에 쪼그리고 앉았다.

       

       “얌전히 있어라.”

       

       손가락을 튕겨 이마에 딱밤을 때려박자 트롤이 눈을 뒤집어 까며 기절하는 것으로 상황 종료.

       

       “대단했어, 나이틀리 학생!”

       

       경사면을 미끄러져 내려온 웨이버가 나이틀리를 극찬했다.

       

       “정말 기발한 발상이었어! 허수아비를 쓰는 건 종종 사냥꾼들이 쓰는 방식이지만 아무런 준비도 없이 사냥 도중에 그것을 생각하고 실천에 옮겨 성공한 건 정말정말 대단한 거야! 특히나 트롤 같은 것을 상대하는 이런 긴박한 상황에!”

       “감사합니다, 교수님.”

       

       웨이버에게 인사한 나이틀리가 이번에는 내 차례라는 듯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잘했어, 나이틀리. 솔직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어느 정도 하다가 우리가 나서려고 했는데, 네가 진짜로 잡아 버릴 줄이야.”

       “당연하죠. 저는 아카데미 수석이니까요.”

       “좋아좋아. 최고야, 너.”

       

       엄지손가락을 치켜 들자 나이틀리가 콧방귀를 뀌며 잘난 체하듯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런데 너 안 춥겠냐?”

       

       상의를 허수아비로 트롤에게 내어주고 얇은 민소매 속내의 차림인 것을 가리키자 그제서야 나이틀리가 약간 얼굴을 붉히며 몸을 돌렸다.

       

       “왜 그렇게 자세히 보세요?”

       “자세히 본 게 아니라 걱정돼서 그래.”

       “걱정되면 망토나 벗어주시지 그러세요?”

       “어이구, 저 싸가지 좀 봐.”

       

       웃으며 망토를 벗어 던지자 나이틀리가 그것을 낚아채 자신의 몸에 둘렀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하신 겁니까?”

       

       한편 웨이버는 쓰러진 트롤을 이리저리 살피던 웨이버가 놈의 이마 쪽을 보더니 내게 물었다.

       

       “이놈, 어지간해서는 기절시키기가 어려운데요.”

       “트롤은 여기가 약점이야.”

       

       허리를 숙여 트롤의 움푹 들어간 미간을 가리켰다.

       

       “여기에 충격을 주면 골이 흔들려서 기절하게 되어 있다.”

       “그건 트롤이 아니라 드래곤이라도 마찬가지죠. 문제는 그 충격의 강도인데….”

       “딱밤을 제대로 먹였어.”

       “예예, 아무렴요. 전투수석이신데 딱밤으로 트롤 정도는 기절시켜야죠.”

       

       가운데 손가락을 구부렸다 튕겨 보이자 내가 실없는 농담을 한다고 생각한 웨이버가 낄낄 웃었다.

       

       “진짜라니까?”

       “알겠습니다. 더 여쭙지 않겠습니다. 사냥꾼들도 집안마다 전해지는 비법은 절대 타인에게 말하지 않는 법이니까요.”

       

       웨이버가 다시 트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여튼, 이놈 잘만 관리하면 회복물약 몇 수레는 거뜬히 만들겠습니다.”

       “그렇지? 그거는 황성 안보실에 상납하자. 현장요원들 쓰라고. 2황녀님께서 좋아하실 거야.”

       “그럼요. 우리 차상급 지휘관이신데 잘 보여야죠. 그래야 졸업생들도 좋은 곳에 여기저기 꽂아주실 거고.”

       

       웨이버는 철사를 엮어 만든 질긴 쇠줄로 트롤의 발목과 손목을 칭칭 동여매기 시작했다.

       

       매듭짓는 것을 보니 퀴라나 사냥꾼 특유의 포박법으로 어지간한 완력이 아니고서야 절대 풀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놈은 제가 지키고 있겠습니다. 수석교수님께서는 아카데미에 지원 요청을 좀 해주십시오. 아무래도 우리 셋이서는 못 옮길 듯하니까요.”

       “그래, 알았어. 수고했다. 가자, 나이틀리.”

       “수고하셨습니다.”

       

       웨이버를 남겨 놓고 나와 나이틀리는 나란히 숲을 빠져나와 아카데미 동문으로 향했다.

       

       “어때, 나이틀리? 실제로 마물과 싸워 보니까.”

       “정신 없어요. 정말로 현장에 나가면 이렇게 해야 하나요?”

       “사실 마물과 직접 마주칠 일은 거의 없어.”

       “뭐요?!”

       

       나이틀리가 눈을 치켜떴다.

       

       “그러면 왜 이런 개고생을 시키신 건데요?!”

       “솔직히 너도 짜릿했잖아? 트롤이 넘어질 때는.”

       

       맞는 말인지 나이틀리는 입을 꾹 다물었다.

       

       “트롤과 직접 붙어볼 기회는 흔치 않잖아. 그리고 요원이라고 해서 항상 사람하고만 맞부딪치는 건 아니다.”

       “그렇긴 하죠….”

       “오늘의 경험이 다 피가 되고 살이 될 거야. 정말 잘했어, 나이틀리.”

       “뭐… 수석이니까요.”

       

       나이틀리가 망토 앞섶을 여미며 중얼거렸다.

       

       “그런데 교수님. 저도 궁금한데, 트롤을 대체 어떻게 기절시킨 거예요?”

       “딱밤 때렸다니까?”

       “하하…. 말해주기 싫으면 하지 마세요.”

       

       웨이버처럼 내 진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인 나이틀리가 이번에는 다른 질문을 했다.

       

       “또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요. 교수님은 그냥 길만 막고 있었는데 왜 트롤이 교수님을 자꾸 피해서 반대편으로 온 거죠? 그건 어떻게 하신 거예요?”

       “오러를 일으켰어.”

       “오러요…? 고등기사들이나 쓴다는 그거…? 하아… 그래요….”

       

       더는 말도 하기 싫다는 듯이 나이틀리가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 딱밤으로 트롤을 기절시키고 오러를 일으킬 줄 아시는 분이 왜 여기서 교수를 하고 있어요? 최소한 교장을 하거나 아니면 황성에서 중요한 일을 하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 그거. 원래 교장을 하라고 했는데 내가 싫다고 했어. 사실은 아카데미에 올 생각도 없었는데 친구가 애 낳는다고 자기 대신 여기서 일해 달라고 해서, 그래서 온 거야.”

       “뭐라고요…?”

       

       나이틀리가 진심으로 미친 사람 보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하긴 나 같아도 누가 이런 말하면 못 믿겠다.

       

       “그렇다고 치고… 그럼 그 친구는 누구인데요?”

       “라이너스 경.”

       “제발!”

       

       대륙의 영웅 라이너스의 이름이 나오자 결국 나이틀리가 짜증을 냈다.

       

       “제발 가끔은 진지하셔도 좋잖아요!”

       “엥? 나 진지해, 지금.”

       “이게 뭐가 진지해요! 딱밤으로 트롤 기절시켰다고 하고 고등기사처럼 오러를 쓴다고 하고 그런 대단한 분이 아카데미 교수나 하고 있고 그것도 원래 교장하려던 것을 교수로 일부러 스스로 강등시키고 그마저도 애 낳는 친구 대리로 어쩔 수 없이 온 거고 심지어 그 친구가 마왕을 죽인 라이너스 경이라고 하는데 누가 믿냐고요! 장난도 정도껏 하셔야죠!! 차라리 아예 마왕을 죽인 특임대 소속이었다고 하시지 그러세요?”

       “어, 맞어. 나 그거였어.”

       “교수님!”

       

       나이틀리가 발까지 동동 구르며 화를 냈다.

       

       “그 사람들 다 귀족 작위 받고 출세했는데 왜 교수님은 그게 아닌데요? 말이 안 되잖아요!”

       “그냥 괜한 관심 받기 싫어서 다 싫다 하고 돈만 챙겨서 한적한 곳에서 살았어. 그게 맘 편하잖아.”

       “그러니까 역사에 길이 남을 위업을 달성해 영웅 칭호에 귀족 작위에 영지에 온갖 것을 다 보장받을 수 있는데 그 모든 것을 마다했다 이거죠? 그냥 관심 받기 싫다는 이유 하나로? 세상 어느 누가 그런 말을 믿어요! 그거 미친놈이잖아요!”

       “듣고보니 또 그러네.”

       “됐어요!”

       

       믿든 말든 나야 아무래도 좋지.

       

       막 경비병들에게 인사하며 동문을 통과한 나는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저쪽 건물 모퉁이에 학생들 여러 명이 몸을 숨긴 채 머리만 내놓고 이쪽을 보고 있었다.

       

       

       # # # # #

       

       

       “헉! 뭐야?”

       “소피에가 한 말이 진짜인가 본데?!”

       

       막 동문으로 들어오는 디안과 나이틀리를 본 학생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두 사람 모두 마치 땅에서 격하게 뒹굴기라도 한 듯한 흙과 나뭇잎 투성이 몰골.

       

       땀에 절은 머리칼이 얼굴에 잔뜩 달라 붙어 있고 옷도 모두 축축했다.

       

       게다가 나이틀리는 상의를 입지 않고 민소매 속내의 차림에 디안 교수의 망토를 어깨에 두르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다리를 바들바들 떨기까지?!?!

       

       두 사람, 숲속에서 대체 뭘 하고 온 거야!?!?!?!?!

       

       “소피에! 소피에! 진짜 네 말이 맞나 봐!”

       

       굉장히 수상쩍은 모습에 학생들이 서둘러 소피에를 찾았다.

       

       그러나 힌드라스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 방금까지 같이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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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Quietly 은퇴한 조력캐는 조용히 살고 싶다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causing chaos with my knowledge of the original work, I assisted the protagonist.

I successfully completed the story and now planned to retire and live peacefully.

However, it seems the protagonist still needs my help.

An academy professor? That’s nothing much.

But why is the state of the academy so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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