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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2

        

       그녀의 마음은 흙탕물처럼 혼란스러웠다.

       일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언제든 박살 나기 쉬운 것이었고, 평온할 것이라 여겼던 자신의 삶에 광기가 가득한 것을 깨달았고, 재앙이라 여겼던 것이 사실은 그녀를 구해준 것임을 깨닫기도 했으며 그것이 온건한 방법이 아닌 공포와 폭력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상의 파괴.

       인식의 역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확장된 세계.

         

       그 모든 것이 그녀가 간절히 절을 하도록, 간절히 절을 하며 눈앞에 보이지 않는 존재에게 빌도록 만들고 있었다.

         

       “마치 너는 수행자와 같구나.”

         

       그녀의 기도가 닿았던 것일까?

       절을 하는 그녀의 눈앞에 진성이 나타났다.

         

       “무녀(巫女)의 미덕은 맹신이거늘, 너는 다른 것을 쫓고 있구나.”

         

       진성은 그렇게 말하며 리세를 일으켜 세웠다.

         

       리세는 진성의 손길에 몸을 맡기며 멍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신주님(神主様)? 어떻게….”

         

       리세는 진성을 신주라고 불렀다.

         

       “신주, 신주라. 들어도 들어도 참으로 묘한 표현이로다.”

         

       신주(神主).

       한국에서는 위패나 지방(紙榜)처럼 죽은 사람을 모실 때 쓰는 나무 조각을 신주로 불렀다.

       진성이 알고 있는 주술 중에는 신주를 재료로 신줏단지를 만들고 사용하는 주술도 있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이 신주라는 표현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신관을 부르는 다른 표현이자, 신체(神體)를 제압하고 강탈해 주인으로 들어앉은 신사의 주인이라는 두 가지 뜻이 있는 표현이었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주술사를 감시하는 일본의 상황을 생각해본다면, 진성에게 있어서 형편에 좋은 표현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가요?”

         

       리세의 입장에서도 이것보다 더 좋은 표현은 없었다.

         

       진성은 신을 모시지 않는 사람이지만 신을 제압하고 신사를 수중에 거두었으니, 신주라 부르기에 모자람이 없었으니까.

         

        “그래, 무녀야. 너는 무엇을 원하고 갈망하길래 그리 미혹에 빠져 있느냐?”

         

       진성은 그렇게 말하며 그녀의 눈을 마주 보았다.

       리세의 눈은 깊게 침잠되어 있었고, 그 형태가 올바르게 음(陰)의 방향으로 나간 것이 아닌 미혹으로 인해 가라앉은 것임을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아니, 쉽게 알아보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그리움마저 느낄 수 있었다.

         

       ‘용병 시절에 많이 보았던 눈이로다.’

         

       용병은 항상 피와 죽음과 함께한다.

       그리고, 세계 전체가 전화(戰禍)에 휩싸인 상태라면 그 둘은 더 짙어진다.

       피 냄새에 오감이 모조리 미쳐버리고, 죽음 때문에 가치 없는 쓰레기처럼 버릴 수 있을 정도로 감각이 마비되는 것이다.

         

       본래 용병이라는 직업 자체가 거친 사람들이 많이 들어오는 직종이다. 제 마음속에 솟구치는 살의나 폭력에 대한 갈망을 주체하지 못해서 들어오는 이도 있고, 돈에 미쳐서 제 목숨을 칩으로 삼는 놈도 있었고, 견딜 수 없는 과거에서 벗어나기 위해 들어오는 이도 있었다.

         

       리세가 보이는 눈은 바로 도피를 위해 용병 짓을 하던 사람들이 자주 보이던 눈빛이었다.

         

       “나는 너와 같은 눈을 안다. 목적도 없고, 갈 곳도 잃어버린 채 방황하는 놈들이 자주 보이는 눈빛이니라.”

       “목적도, 갈 곳도….”

         

       리세는 그 말에 반응했다.

         

       “…맞아요.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갈 곳이 없다.

       리세의 집은 박살이 나버렸다.

       자상했던 아버지는 약쟁이인 데다가 리세를 아무렇지도 않게 버릴 수 있는 인간이었고, 한때 집이었던 공간은 진성에게 빼앗겨 광기의 전염원이 되어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한때는 몸을 감싸며 그렇게 따스하게 느껴졌던 신력은 이제는 무기질적인 에너지로 느껴졌고, 자신을 보호하고 가호해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무쿠리코쿠리노이누가미는 슬라임에 붙잡힌 채 신력을 짜내기만 하는 기계 같은 처지가 되어있다.

         

       목적도 없다.

       옛날부터 리세는 레일이 깔린 인생을 살아왔다.

       그녀의 친구들이 대학에 진학하고, TV에 나오고, 무공과 마법을 익히며 미래를 개척하는 것과는 다르게 그녀에게 주어진 미래는 오직 데릴사위로 들어온 남편을 훌륭한 신관으로 만들기 위해 내조하는 것밖에 없었다.

       그저 관성처럼 그것을 받아들이고, 결혼한다면 훌륭하게 내조를 해야겠다는 생각만이 남아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레일이 모조리 박살이 나버렸다.

         

       사위를 데려와 훌륭한 신관이 되도록 내조하라고 닦달할 아버지는 미쳐서 동료들을 납치하고 있었고, 모셔야 할 신체(神體)는 한낱 돌덩어리가 되어버렸다. 거기다가 신관이 아님에도 그녀는 진성이 만든 슬라임에게 무한정 신력을 공급받을 수 있게 되어 어지간한 이능력자만큼 강한 힘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강자가 되었다.

         

       제 또래에서는 적수가 없다는 시오리도, 마법에 재능을 보여 외국에서 모셔간 레나도.

       어쩌면 그 둘의 윗줄에 있는 사람들마저도 간단히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리세는 이제 자유를 얻었다.

         

       진성에게 복종해야 했지만, 그것이 무슨 문제인가?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이 노예가 아니듯, 리세 역시 노예가 아니었다. 그저 여러 곳에 얽매이며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처럼, 조금 튼튼한 줄에 묶인 채 얽매여 살아가는 자유인일 뿐이다.

         

       그렇기에 리세는 방황하고 있었다.

         

       갑자기 목줄이 풀려서 어찌할 줄 모르는 사냥개처럼.

       좁은 우리에서 살다가 자연으로 방생되는 동물처럼.

         

       갑작스레 맞닥뜨린 캄캄하기 짝이 없는 미래를 혼란으로 받아들이고, 그 혼란을 행복의 부재로 인한 것이라 받아들이며.

       그렇게 방황하고 있었다.

         

       진성은 그런 리세의 속을 꿰뚫어 보았다.

         

       “너는 행복을 원한다고 했느니라. 맞느냐?”

       “네. 저는….”

       “행복하지 않다고?”

       “…네. 행복하지 않아요….”

         

       행복하지 않다며 중얼거리는 그녀의 모습에 진성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참으로 기이하다. 어찌 이렇게 수행의 길에 입문한 자들과 똑 닮았을까!”

       “네?”

         

       그는 말했다.

         

       “그것은 심마(心魔)이니라.”

       “네? 심마요? 그건….”

       “그래. 수행자나 무공을 익히는 이들에게나 찾아오는 것이다. 그런데 너는 그 심마를 겪고 있으니, 이를 참 기이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심마(心魔)란 마음에 깃든 어둠을 말한다.

       심마(心魔)란 본질에 끼어있는 미혹을 말한다.

       심마(心魔)란 정신에 묻어 있는 얼룩을 말한다.

         

       하지만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을 보면 그 안쪽이 잘 보이지 않듯이 보통 사람들은 심마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미혹에 방황할지라도 그것만을 인지하고 본질을 인식하려 하지 않으니 그것이 심마라는 것은 알지 못한다.

         

       오직 심마를 제대로 인식하는 이들은 수행에 수행을 거듭하는 이들과, 도를 구하며 정신의 세계를 탐구하는 이들과, 무공으로 정신과 육체를 가다듬는 이들이었다.

         

       “어쩌면 너는 신사가 아니라 절에서 태어나야 할 인재였을지도 모르겠구나.”

         

       마음속의 어둠을 마주 보고 자신의 본질을 깨닫고, 미혹에서 벗어나 정신을 확장하고 성장한다.

         

       이것은 훌륭한 재능이었다.

       심마에 들기 위한 최저의 조건은 생각이 많아야 한다는 것이었고, 생각을 많이 한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인재….”

       “무의식에서 별을 본 것이 네 정신의 확장에 큰 역할을 했음이 분명하다. 너는 재능이 있구나.”

       “재능…이요.”

       “그러하다. 심마에 드는 것도 재능이 있어야 하는즉, 너는 분명히 재능이 있느니라.”

         

       짐승은 심마에 들지 않는다.

       정신을 확장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귀신은 심마에 들지 않는다.

       어둠을 밝히는 대신 그 속에 숨는 것을 택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심마에 든다는 것은 인간이라는 증거이며, 분명한 축복이다.

         

       하지만 그것은 벗어날 수 있어야 축복이지, 벗어날 수 없다면 끔찍한 저주와 다름이 없다.

         

       “하하하, 참으로 운이 좋구나. 여기 훌륭한 재목까지 발견했으니 이를 운이 좋다고 하지 않으면 무어라 말할까!”

         

       진성은 부수입을 얻었다는 듯 기분 좋게 웃었다.

         

       “그래. 나는 분명히 너에게 복을 준다고 했으니 그 말에 책임을 지겠다.”

         

       진성은 허공을 움켜잡아 저 멀리에 놓였던 방석을 끌고 와 그녀의 앞에 놓아주었다. 그리곤 그녀를 앉힌 뒤 맞은편에 앉았다.

         

       ‘꿈….’

         

       그 모습이 상담을 받았던 의사의 모습과 닮아서, 리세는 자신의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이 몽글몽글 솟아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배신감이나 공포가 아닌, 긍정적인 감정에 가까웠다.

         

       “그래, 너는 행복을 원한다 하였느니라. 그렇다면 너는 지금 행복하지 않은 것이냐?”

       “네….”

         

       리세는 힘없이 대답했다.

         

       “그럼 묻겠다. 행복이란 무엇이냐?”

       “네? 그거야…그거야…기분이 좋은 상태를 말하는 것 아닐까요?”

       “기분이 좋은 상태를 말함이라. 그렇다면 단순히 마약을 해서 기분이 좋아진 것을 행복하다고 할 수 있겠느냐? 술을 마셔서 기분이 좋으면 행복한 것이고, 약을 해서 기분이 좋으면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음이냐?”

       “아니요! 그건 행복한 게 아니에요!”

         

       리세는 약쟁이 아버지를 떠올리며 저절로 언성을 높였다. 그랬다가 눈앞에 진성이 있다는 것을 퍼뜩 깨닫고는 모기만 한 목소리로 죄송하다고 중얼거리곤 고개를 푹 숙였다.

         

       “그렇다면 무엇이 행복일까. 행운과 불운이 실체가 없고 그 기분이 받아들이는 이에게 있는 것처럼, 행복 역시 실체가 없고 오직 본인이 그 판단의 기준이 되어야 하는바. 대관절 기분이 아닌 무엇이 행복의 기준이 될 수 있을까?”

       “…모르겠어요.”

       “그렇다. 너는 모르고 있다.”

         

       진성은 리세의 눈동자가 혼란에 흔들리는 것을 보며 말했다.

         

       “나는 너와 같은 이들을 많이 보았느니라. 그들은 오직 방황하기만을 하며, 마음을 채우려 하지 않으며, 그저 숨을 쉬기에 살아가는 이들이다.”

         

       태어난 김에 사는 사람.

       세계 3차 대전이 터지고 나서 많이 볼 수 있었던 이들이다.

         

       진성은 이런 이들을 참 좋아했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주술을 걸어주겠다는데도 큰 고민 없이 허락해주는, 참으로 고마운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세에게 복을 주겠다고 말한 이상 그들과 같은 존재가 되도록 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기도 했다. 진성에게는 그들이 참으로 좋은 존재들이었지만, 그들 자신은 불행했기 때문이다.

         

       “행복의 기준도 모르고 제 마음의 중심도 잡지 못하는데 어찌 행복과 불만을 알 수 있겠느냐. 너는 지금 행복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방향을 잃은 것이고, 불만이 가득한 것이 아니라 허무감이 가득 차 있는 것이니라.”

       “허무감…이요?”

       “그러하다. 마음은 물과 같아 흐르지 않으면 썩어 버리는 것. 너 역시 마음이 방향을 잃고 갈피를 잡지 못하여 제자리에 멈추게 되었고, 제자리에 멈추게 되었으니 썩어들어가게 되었느니라. 단지 그것뿐이다.”

         

       진성의 말을 들은 리세는 가만히 그 말을 곱씹었다.

         

       방향.

       마음의 방향.

         

       ‘…마음의 방향을, 잃었다고?’

         

       리세는 진성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진성이 꿈에서 보았던 의사와 겹쳐서 믿음이 가는 것과는 별개로, 그 내용은 분명히 신빙성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리세는 항상 미지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일탈을 원하면서도 두려움이 있어 과감하게 발을 딛지 못했고, 친구들을 부러워하면서도 신력을 호신용으로 사용하는 것 이상으로는 수련하지 않았다. 다른 이능을 개발하려고 하지도 않았고, 공부하거나 다른 특기를 개발한다거나 하는 일도 하지 않았다.

         

       ‘…잘은 모르겠어. 하지만 방향을 제대로 잡는다면 난 행복할 수 있을까?’

         

       자유를 얻은 그녀는 이제 어느 곳으로든 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그녀의 두려움이 되었고, 마음을 위축시키고 심마를 불러온 것이었다.

       과도한 생각이 독이 된 것이다.

         

       “저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나요?”

         

       리세는 진성에게 물었다.

       그리고 진성은 자신을 간절하게 바라보는 리세를 보며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아까는 수행자 같더니 이제는 무녀 같구나. 모시는 자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같은 방향을 걸으려 하는 것이 참으로 무녀의 귀감이다.”

         

       진성은 그렇게 웃더니 말했다.

         

       “보자. 물꼬를 트는 가장 좋은 방법은 취미를 가지는 것인데. 네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고?”

         

       취미?

       좋아하는 것?

         

       리세는 진성의 물음에 잠시 고민했다.

         

       “딱히…싫어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없었어요. 그냥 친구들이랑 노는 것 좋아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흠, 노는 것을 좋아했다?”

         

       진성은 그 말에 무언가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노는 것이라. 그것이 좋겠다.”

         

       그는 리세에게 얼굴을 가져다 대며 말했다.

         

       “축제. 축제가 좋겠다.”

         

       리세의 눈동자 속에 비친 진성의 눈은.

       휘어져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 편의 예약은 자시(子時)로 했습니다.
    그 이유는 햄스터가 귀엽기 때문입니다.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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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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