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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20

    루크의 계획은 사실 간단했다.

     

    루크는 그저 방학이니 아무도 사용하지 않을 조리실 하나의 허가를 얻었을 뿐이다.

     

    사실 육류를 제하면 식재료는 이미 자신의 아공간에 넘치도록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일부이긴 하지만 아린세이아의 농경지는 여전했기에 밀이나 쌀 같은 종류의 곡식은 이미 충분했고, 조금 더 뒤져보면 향신료로 쓸 수 있는 열매나 풀들도 아주 많았다.

    그러니까 루크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요리기구와 장소일 뿐이었다.

     

    게다가, 조리실은 요리 실습을 위해 기본적으로 구비해둔 현대의 향신료 등도 아주 많았다.

     

    그리고 허가는 쉽게 났다.

    어차피 사용하는 사람들도 없었고, 축제를 위해서 미리 조리실 실습권한이 있는 ‘제과제빵부’에 입부해둔 덕분에 조리실을 빌리는 당위성도 충분히 확보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루크는 그렇게 손쉽게 굶주린 아이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는 장소를 얻어냈다.

     

    “자아, 얼른 들어가서 앉거라.”

    “으, 응.”

    “……알겠어.”

    “직접 해주는 거야? 기대된다!”

     

    그렇게 얼떨결에 자리에 앉게 된 시루드와 헬레나, 그리고 메리.

    그 세명은 루크가 조리실을 뒤적이는 모습을 바라보며, 각자 당황스러움과 익숙함, 기대감을 떠올렸다.

     

    ‘으음, 냄비는 여기 있구나. 팬과 그릇도, 여기에 있고. 음, 서랍에 저번 축제 때 썼던 메이드복의 앞치마도 있군.’

     

    루크가 말했다.

     

    “조금만 기다리거라, 금방 만들어줄 터이니.”

     

    루크가 능숙하게 그릇들을 꺼내고 앞치마를 착용했다.

    그 뒤에 앞치마에 깔린 뒷머리 아래쪽에 손을 넣어 뒤로 빼어내곤, 머리를 가지런히 모아 뒤로 묶는다.

    그 모습은 뭐랄까……, 도저히 10살의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익숙하고도 성숙해 보였다.

    요리의 경험이 많은 걸까?

     

    그 모습을 보며 헬레나가 물었다.

     

    “제빵에 소질이 있는 것 정도는 알지만……. 너, 요리도 할 줄 알아?”

    “물론이지, 헬레나. 가족들에게 종종 내가 만든 식사를 대접하기도 해.”

     

    과연, 요리 정도는 숙녀의 기본소양이라는 건가?

    하지만, 그래도 불안하긴 하다.

     

    “하지만, 그냥 요리는 안될거야. 엘프가 둘이나 있으니까 말야.”

    “걱정 말거라, 내 어머니가 엘프니까.”

    “……어, 그랬어?”

     

    전혀 몰랐다.

    루크의 엄마가 엘프였다니!

    그럼, 루크는 역시 엘프와 수인의 혼혈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루크가 대답했다.

     

    “이상하구나, 내 부모를 너도 본 적이 있었을 텐데? 내 생일 때 말이다. 다이튼과 예르나. 혹시 보지 못했나?”

     

    그 말을 들은 헬레나는 잠깐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경악했다.

     

    “……잠깐, 그럼 그때 그 사람들이 네 엄마하고 아빠였다고?”

    “그래, 기억나지 않느냐?”

     

    가정부나 보디가드 같은 게 아니라?

    맙소사, 하필 그날 조금 시간에 늦는 바람에 소개를 놓친 게 자신으로 하여금 이런 오해를 하게 만들었다.

    그 뒤부터 헬레나의 머릿속에서 예르나와 다이튼의 모습은 쭈욱 가정부와 보디가드였으니 말이다.

     

    헌데 그런 오해를 할 만한 게, 일단 루크랑 생김새가 전혀 닮지 않은데다가 그 둘은 종족도 인간과 엘프로 루크와는 달랐다.

    심지어 인간인 아빠 쪽은 동안이라고 생각 하기엔 아무래도 너무 젊었다!

    게다가, 원래 같은 반이 아니었기 때문에 루크의 가정사에 대해서는 더욱이 문외한이었던 헬레나로서는 절대 연상할 수가 없는 정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둘에게서는 루크에게서 풍기는 고귀한 분위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게다가 그 뒤로 다시 마주친 적도 없으니, 헬레나로서는 당연히 루크의 수발을 드는 사람으로 오해를 할 수밖에.

     

    ‘잠깐, 그럼 루크는 내가 생각한 것 보다는 그렇게 잘 사는 집이 아닌 거 아냐?’

     

    그러고보니 저번에 집에 놀러 갔을 때도 루크가 직접 인챈트했다는 충격적인 마법기술들 때문에 가려져서 그렇지, 별장 치고는 뭔가 생필품이나 가구들이 많아서 위화감이 들기는 했다.

    거기에 부모는 루크의 생김새는 물론이고 교양수준과 어울리지도 않는다.

    값비싼 도자기라던가 미술품 같은 장식품도 전혀 놓여있지 않았고, 루크의 방도 깔끔하기는 했지만 이름있는 고급품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기껏해야 예전에 생일선물로 받았던 그 곰인형 정도가 눈에 띄는 고급품이려나.

     

    그 모든 정보를 종합해보면 루크의 태생은 자신이 처음 생각했던 것 보다는 훨씬 낮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헬레나는 당사자 앞에서 그런 실례되는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는 없어 입을 다물었다.

     

    그런 헬레나의 반응에 루크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 기억이 났나보군. 예르나의 식사는 이미 꽤 여러 번 대접해 봤지. 그녀는 요리를 잘 못하거든. 그래서 엘프식은 익숙하단다.”

    “그, 그렇구나…….”

     

    그렇다는 얘기는 설마 루크의 요리실력이 뛰어난 것도 사실은, 숙녀의 기본소양이라서 전문적으로 배운 게 아니라, 그냥 어쩔 수 없이 하다보니 늘게 된 모양이다.

     

    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굉장히 열심히 살았구나, 루크는.

     

    ‘진짜 루크는 뭐든 잘 하고 빨리 배우는구나. 여자애를 좋아하는 것만 아니었으면 완벽했을텐데 말이야.’

     

    그랬으면 자신에게 시루드랑 친해질 수 있는 기회는 아마 없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역시 세상은 공평한 걸지도…….’

     

     

    ——

     

    “그럼 편하게 이야기라도 하면서 기다리고 있거라. 금방 되니까.”

     

    루크가 그렇게 요리를 시작하자 모두들 루크의 뒷모습을 바라보게 되었다.

    뒷모습만 봐도 뭔가 기분이 좋아 보이는 것 같다.

     

    살랑살랑 흔들리는 꼬리와, 비슷하게 흔들리는 묶은 뒷머리, 가끔씩 쫑긋거리는 귀와, 흘러나오는 콧노래 소리를 듣고 있으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겠지.

     

    그런데 그 모습을 가만 보고 있으니, 시루드는 뭔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이랄까?

    분명 루크가 요리를 하는 모습을 직접 보게 된 건 오늘이 처음인데 말이다.

     

    ‘대체 어디서 본 거지…….’

     

    그렇게 생각하던 순간이었다.

     

    “아, 메리. 너도 엘프식인데, 괜찮으냐?”

    “괜찮아. 나 풀 좋아해.”

    “다행이구나. 하긴, 너는 항상 뭐든 지 잘 먹었지.”

      

    그 대화를 멍하니 지켜보던 시루드는 자신을 툭툭 건드리는 누군가의 손길에 고개를 돌렸다.

    “시루드, 너 머리 좀 길어진 것 같아. 눈을 가려.”

    헬레나의 지적이었다.

    확실히, 머리카락이 길어지기는 했다.

    시루드는 거슬리게 눈을 가린 앞머리를 손으로 정리하며 말했다.

     

    “그래? 하긴, 요즘 좀 귀찮기는 해. 좀 잘라야겠네.”

    “역시 그렇지? 내가 아는 미용실이 있는데…….”

     

    그 순간, 그릇에 반죽을 섞던 루크가 끼어들었다.

     

    “머릴 자르다니, 왜 그런 짓을 하느냐? 너는 마법사니까, 머리는 그냥 두는 게 좋아.”

    “머리를 자르면 안돼? 왜?”

    “마법사의 머리카락은 가장 쓸 만한 마법적 촉매이기도 하거든. 쓸데 없이 자르는 건 좋지 않아. 낭비다.”

    “그래?”

     

    가만 생각해보니, 루크도 계속 머리를 기르고 있었다.

    저번에 머리를 한번 잘랐을 때에도, 금방 다시 기를 거라고 했었고.

    그게 그런 이유가 있었던 거였나?

     

    “혹시 그동안 계속 머리를 잘랐더냐?”

    “그, 그렇긴 한데.”

    “앞으론 그러지 말거라. 남자는 여자보다 머리카락이 길게 자라기 힘드니까. 게다가 남성이 어릴 때에는 수염도 나지 않으니 더욱 신경을 써야 해.”

     

    그런 루크의 말에 시루드는 반박했다.

     

    “그치만, 머리카락이 길면 귀찮단 말이야. 감는 것도 귀찮고, 말리는 것도 오래 걸리고.”

     

    그러나 루크는 단호했다.

     

    “익숙해지거라. 그러면 나중에 다 쓸모가 있어.”

    “흠…….”

     

    시루드가 내키지 않은 듯 보이자, 루크가 말을 이었다.

     

    “그래, 제대로 기른다면 머리카락을 촉매로 이용해 할 수 있는 것들에 관한 마도서를 주마.”

     

    그 제안에 시루드는 곧바로 대답했다.

     

    “알겠어, 기르지 뭐.”

     

    시루드도 결국은 새로운 마법을 원하는 마법사였다.

    마도서는 어쩔 수 없지.

     

    “…….”

     

    그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던 헬레나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미용실 소개를 빌미로 이야기를 좀 나누려고 했더니, 루크한테 방해받았다.

     

    ‘시루드한테 관심 없는 거 맞지……?’

     

    —-

     

    그렇게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고 있으니, 식사가 하나 둘 완성되어 나오기 시작했다.

     

    “자아, 하나씩 들거라.”

     

    루크의 손에 의해 접시에 담겨져 테이블에 하나씩 옮겨지는 음식들을 바라보며 아이들은 저마다 감탄을 내뱉었다.

     

    “엄청 맛있어보인다! 이게 진짜 고기를 하나도 안 써서 만든 거야?”

    “이건 거의 우리 집 요리사 수준이잖아……?”

    “이, 이게 정말 방금 만들어 낸 거라고?”

     

    맛있어보이는 음식을 돋보이게 하는 멋진 플레이팅과, 더불어 좋은 향기.

    그건 까다로운 입맛을 지닌 귀족 아이들의 눈으로 보기에도 정말로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이었다.

     

    “그래, 보지 않았느냐? 그러지 말고 어서 먹거라.”

    “으, 응…….”

    “잘 먹을게!”

     

    테이블에 하나씩 음식이 담긴 접시를 올리며 미소짓는 루크의 모습에, 아이들은 각자 접시를 하나씩 받아 식기를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그 음식의 맛은, 이 짧은 시간에 만들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굉장히 훌륭했다.

    그동안 먹은 좋은 음식들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어때, 입맛에 맞느냐?”

     

    루크의 질문에 아이들이 대답했다.

     

    “너무 맛있다!”

    “응, 맛있어.”

    “제, 제법이잖아?”

     

    그러자 루크는 눈에 띄게 안심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 입맛에 맞아 다행이구나. 많이 만들었으니, 많이 들거라!”

     

    “응!”

     

    그리고 아이들은 그 말에 대한 무게를 너무 얕잡아 보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말았다.

     

    루크의 음식은 맛이 좋았다.

    다만, 양이 너무 많았다.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루크에게 많은 양을 맛있게 만들 수 있는 것은 필요한 능력이었다.

    파이리스를 보유하고 있는 루크의 집에서 식사는 언제나 대용량으로 만들어지곤 했으니.

    그렇다고 루크는 양을 줄인다는 것도 할 수 없었다.

    과거 레시피를 멋대로 수정했다가 음식을 망쳐버린 경험이 있었기에 그런 행위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으므로.

     

    게다가, 시루드가 ‘굶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절대 어린아이를 굶주리게 둘 수는 없는 노릇.

     

    “자아, 음식은 많으니까 걱정하지 말거라.”

     

    그러나 접시를 비워도 비워도 줄지 않고 계속해서 나오는 루크의 음식들을 바라보며 시루드가 물었다.

     

    “……저기, 루크. 음식이 언제까지 나오는 거야? 나 이제 배부른데.”

     

    그러나 그 질문에 대한 루크의 대답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응? 아직 많이 남았는데. 본 메뉴와 디저트도 준비되어 있단다.”

    “……잠깐, 이게 본 메뉴가 아니었어? 거기다 디저트까지?”

     

    맙소사, 그 말은 이제 간신히 쓰러트린 적이 사실은 단순한 정찰병중 하나였다는 소리처럼 들렸다.

     

    “루크야! 나도 이제 배불러! 괜찮아!”

    “에이, 메리. 아이들 앞이라고 너무 사양 말거라. 이건 살찌는 음식도 아냐.”

    “진짜 그게 아니라아……!”

     

    그 순간, 오븐에서 알림음이 들려왔다.

     

    -띵-!

     

    “오, 쿠키가 완성됐나보구나. 잠시만 기다리거라!”

     

    그렇게 오븐을 향해 뛰어가는 루크를 바라보며 아이들은 넋이 나간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루크 오늘 왠지, 명절에 가끔 보는 할머니 같아.”

    “아, 맞아.”

     

    왠지 아까부터 묘한 기시감이 들더라니!

    가끔 외할머니를 찾아가면 볼 수 있던 바로 그 모습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할무니! 저 진짜 배불러요!

    Ps. 선생님들은 오늘 급식사 아주머니들이 안 오셔서 도시락 챙겨와서 먹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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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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