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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20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

   엔마이아 산.

     

   검존이 거주하는 그곳에 넝마가 된 사내가 하늘을 보고 뻗어 있었다.

     

   ‘난 지금 살아 있나.’

     

   검존이 성계의 영역을 알려준 이후.

   크라슈는 검존에게 조금이라도 더 배우고자 검을 맞대었다.

     

   화력이라면 몰라도 검술만큼은 검존에 비해 햇병아리에 지나지 않는 크라슈다.

     

   덕분에 많은 것을 깨닫고, 고쳐야 할 점들을 알아냈지만.

   배우고 나니 이렇듯 탈진 상태에 빠져 뻗어 버리고 말았다.

     

   ‘죽겠구만.’

     

   몸 여기저기가 쑤신다.

     

   검존의 검을 그렇게나 받아 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한편으로는 새삼 자신의 재능에 아쉬움을 느끼기도 했다.

     

   누군가는 전투 중에 끊임없이 성장한다고 하던데.

   크라슈는 전투가 끝나고 나서 한 번 더 곱씹은 끝에 겨우 성장할까 말까한 재능을 지녔다.

     

   ‘내가 샬롯이었다면.’

     

   분명 오늘 검존의 가르침을 통해 무수히 많은 것을 얻어 갔겠지.

     

   ‘세계 최고의 재능이랑 비교해서 뭘 하겠어.’

     

   아무래도 체력이 바닥나니 생각이 이것저것 나는 것 같다.

   크라슈는 고개를 좌우로 털어냈다.

     

   그러자 이마에 어느샌가 따스한 기척이 느껴졌다.

     

   “어때, 많이 배웠어?”

     

   머리 위에 느껴진 기척의 정체는 다름아닌 아서였다.

   그녀는 손을 들어 크라슈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그녀의 자상한 손길이 닿자, 머리가 조금 비워졌다.

     

   그래도 그녀의 손길은 부드러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서의 손 또한 노력의 증거를 보여주듯 여기저기 흉지고,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여성의 손이 아닌 무인의 손.

   그녀가 게을리하지 않고, 매일 같이 검을 휘둘렀다는 증거였다.

     

   “너는 배우지 않아도 되냐.”

     

   크라슈가 묻자, 아서가 짧게 웃었다.

     

   “나는 내 한계를 알거든. 검존의 검은 내가 배울 수 있는 게 아니야. 나랑은 방식이 너무 다르니까.”

        

   하긴, 10회차나 반복한 회귀다.

   아서도 깨닫는 게 있었겠지.

      

   “그런 한계에 돌입했기에 나는 어쩌면 포기했던 걸지도 모르고.”

     

   세계를 구한다.

   그 막중한 책임 앞에 아서는 결국 검을 내려놓았다.

     

   아무리 자신이 여기서 더 강해지고, 노력한다 한들.

   이 세계는 변함없이 멸망하고, 다시 시작했으니까.

     

   결국 아서는 크라슈라는 차선책을 선택했다.

   그리고 크라슈는 훌륭하게 세계를 지켜 보였다.

     

   문제는 이 망할 놈의 세계는 지키고 나서도 자꾸 말썽을 일으켰다.

   사람이 편히 쉬는 꼴은 보지 못하겠다는 거겠지.

     

   크라슈가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이 정도면 얼추 회복했다.

     

   “아서, 넌 포기한 적 없어.”

     

   크라슈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서의 금발 머리카락을 손으로 헝클어뜨려 주었다.

   그러고는 얼빵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아서에게 미소 지어 보였다.

     

   “네 노력은 내가 어떻게든 이어받았잖냐. 노력의 성과가 눈앞에 있는데 딴소리하지 마.”

     

   아서가 눈을 깜빡였다.

   그러다가 이내 그녀는 천천히 웃음을 흘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내 눈앞에 증표가 있었네.”

     

   웃는 걸 보아하니 한결 나아진 모양이다.

     

   “가는군.”

     

   그러는 순간 검존의 목소리가 들렸다.

   크라슈가 뻗어 버리고 난 뒤로도 자신의 검을 휘두르던 그는 크라슈에게 고개를 돌렸다.

     

   “신들이 술렁이고 있다.”

     

   크라슈의 시선이 하늘에 닿았다.

     

   “아마 모두가 같은 의견인 건 아니겠지.”

     

   신들의 술렁임은 다름아닌 다른 신들의 행동 때문이다.

     

   세계 침식을 다시 세계에 재림시키기 위해 신들이 중간계에 직접 개입한 상황.

   이 상황에 관해 불만을 가진 신들도 없지 않을 것이다.

     

   “듣던 중 다행인 이야기네요.”

     

   신계 전체랑 맞서 싸우면 골치 아프겠다는 생각이었는데.

   그래도 조금은 덜 수 있는 모양이다.

     

   크라슈는 어딘가로 연락 하나를 미리 넣어 놓았다.

   이러면 어련히 알아서 성역으로 모아주겠지.

     

   “아서, 성역으로 간다.”

     

   검술 준비는 마쳤다.

   남은 건 성역에 모인 신들을 치는 것뿐.

     

   제2의 라그나로크를 끝장 볼 시간이다.

     

     

   * * *

     

     

   옛 과거 신들의 잔재가 남아 있는 성역.

     

   본래 신성한 곳이라 하여 누구도 들어서지 않는 곳이나.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성역의 자욱한 안개 앞.

   철장 안에 갇힌 사람들과 그 앞을 지키는 무수히 많은 사람이 성역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아악, 놔줘!”

     

   그러는 성역 앞.

   커다란 키의 여성이 사내 한 명을 든 채로 나타났다.

     

   흑발의 짧게 친 머리카락을 흩날린 여성은 왜인지 우중충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세만큼은 남들과 차원이 달랐다.

     

   완벽에 가까운 육체의 조형.

   천무지체를 타고난 그녀의 정체는 다름아닌 메리 다이아나였다.

     

   시즐리에게 황녀 시해 건을 용서받은 이후.

   그녀는 지금껏 그녀의 밑에서 수하로서 철저히 일을 수행해 왔다.

     

   한 번 황녀 시해라는 건을 저지른 만큼.

   그녀를 사용해 주는 곳은 시즐리말고는 없었기에 메리로서도 방법이 없었다.

     

   “시즐리 님, 이 남자가 마지막입니다.”

     

   그녀가 데려온 남자는 수배가 걸린 스킬 사용자였다.

   시즐리는 고생했다며 손짓으로 옆에 있는 철장을 가리켰다.

     

   그러자 메리는 그녀의 명령을 따라 철장에 다가가 남자를 밀어 넣었다.

   남자는 처음에는 발버둥 쳤지만, 철장 안에 기색을 느끼고는 점차 몸을 움츠러트렸다.

     

   철장 안에 있는 이들은 어째선가 하나 같이 메리를 두려운 눈으로 보고 있었다.

     

   “막내, 운이 좋았군.”

   “시간이 없어서 별문제 없이 잡혀 온 모양이야.”

     

   엉망진창으로 두들겨 맞은 모습의 그들은 사내를 부러운 듯 바라봤다.

   그들의 말대로 마지막으로 잡혀 온 사내는 시간이 없어 메리에게 손쉽게 제압당해 온 것이다.

     

   메리는 수배자를 상대로 손속을 전혀 두지 않았다.

     

   남자를 넣어둔 메리는 무표정하게 돌아섰다.

   그러고는 시즐리의 곁에 다가간 그녀는 곧 무표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저저, 시즐리 님.”

     

   메리는 긴장과 애타는 표정으로 시즐리를 조심스럽게 불렀다.

     

   “응, 왜 그러느냐.”

   “그, 그게 정말로 크라슈 님이 오시는 건가요?”

     

   메리가 이토록 긴장한 이유는 단 하나.

   오랜만에 크라슈를 마주하기 때문이다.

     

   크라슈에게 철저히 당해 망가져 버린 이후.

   오히려 그를 자신의 인생에 구원자라고 여긴 메리는 지금도 여전히 크라슈를 위해 살고자 했다.

     

   그런 만큼 메리는 오랜만에 크라슈를 본다고 하니 몸이 긴장되다 못해 움츠러들 지경이었다.

     

   시즐리는 손가락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이미 온 모양이다마는?”

     

   그 말을 듣고, 메리가 놀라 홱 하니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그녀의 눈에 보인 것은 흩날리는 금발 머리카락이었다.

     

   저 머리 색.

   분명 눈에 익는다.

   오래된 기억 속을 더듬어 머리카락 색의 주인이 누구인지 깨달은 순간.

     

   “어, 어?”

     

   메리의 입에서 당혹스러운 음성이 터져 나왔다.

     

   저 머리 색은 분명 아서의 머리 색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눈에 보이는 사람은 기억 속 남자가 아닌 여자였다.

     

   “아, 서 님?”

     

   메리가 그 이름을 멍하니 불렀다.

   그러자 때마침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그녀의 눈동자는 분명 메리의 기억 속 아서와 똑 닮아 있었다.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아서다.

   분명 아서다.

     

   그리고 곧 그녀는 그런 아서의 옆에 크라슈가 있음을 깨달았다.

   검푸른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걸어온 크라슈는 아서와 무척이나 익숙하게 대동하고 있었다.

     

   “메리.”

     

   그리고 곧 메리와 눈이 마주치자, 크라슈가 가볍게 손을 들어 보였다.

     

   “잘 지냈냐.”

     

   크라슈가 살갑게 되묻자, 메리의 몸이 움찔거렸다.

   그녀는 아서를 금세 잊고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에!”

   “스킬 보유자를 잡는 데 도움 줬다면서 고생했다.”

   “아, 당연히 해야 할 일이죠!”

     

   메리가 헤실거리며 웃었다.

   크라슈의 칭찬 한마디에 그녀는 완전히 녹아버린 얼굴이었다.

     

   아서는 그런 메리를 힐끗 보고는 크라슈에게 말했다.

     

   “메리를 저렇게까지 구워삶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본인에게 어울리는 자리를 줬을 뿐이야.”

     

   크라슈는 여전히 메리에게는 박하게 평가했다.

   메리의 성격상, 괜히 자리를 줬다간 또 일을 그르칠 게 뻔하니.

     

   지금도 앞으로도 이 정도 수준이 딱 알맞았다.

     

   “무엇보다 지금은 시즐리가 있으니까.”

     

   고삐를 쥐는 녀석이 있는 만큼 메리는 써먹어도 되는 패다.

     

   “왔느냐.”

     

   시즐리가 크라슈를 반겼다.

   그리고 곧 그녀는 크라슈의 옆에 있던 아서를 빤히 바라보곤 ‘쯧쯧’ 하고 혀를 찼다.

     

   “감당할 수 있겠느냐?”

     

   아서를 곁에 뒀다간 나머지 아내들이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

     

   시즐리야 타고난 머리 탓에 결국 일이 이렇게 될 것이란 건 어렴풋이 예상하였지만.

   나머지 아내들은 아닐 테니 말이다.

     

   “감당 해내야지. 다른 애들은?”

   “근처 숙소에서 쉬고 있다. 낭군이 온 걸 지금쯤 들었으니 곧 이곳으로 오겠지.”

     

   그쪽은 차차 만나기로 하고.

   크라슈는 손을 두둑 풀며 감옥 안에 갇혀 있는 스킬 보유자들을 돌아봤다.

     

   자진해서 스킬을 바치러 온 자들은 어차피 알아서 잘 대기 해줄 것이다.

     

   그러니 지금.

   자신만 알던 이 이기적인 놈들의 스킬을 죄다 강탈해 줄 시간이다.

     

   쿵-

     

   크라슈가 철장 문을 열었다.

     

   그러자 안에 박혀 있던 스킬 보유자들이 빠르게 일어났다.

   표정을 보아하니 이참에 어떻게든 도망이라도 가볼 속셈인 모양이다.

     

   스킬을 뺏길 바에야 죽기 살기로 도주라도 쳐보겠다는 생각이겠지.

     

   크라슈는 그들에게 그것이 얼마나 멍청한 생각인지 일깨워 주기로 했다.

     

   구구구구-

     

   크라슈를 중심으로 공기의 흐름이 바뀌기 시작했다.

   바뀌어 나간 공기의 흐름은 서서히 기류가 되었다.

     

   “윽, 뭐, 뭐가 뜨거운데.”

   “으아아, 저, 저쪽으로 가지 마! 몸이 탄다!”

     

   그러자 철장 안 녀석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철장 안을 메우기 시작하는 뜨거운 기류가 자신들을 억누름을 깨달았다.

     

   그 기류는 상대의 경지에 따라 보이는 게 달랐다.

     

   경지조차 없는 약자는 뜨거움 자체에 몸서리치며 구석으로 도망쳤다.

   반대로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춘 강자는 기류에 포함된 터무니 없는 살의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물러섰다.

     

   그들은 전부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도망쳐 보겠다고 발버둥 치는 순간.

   자신들의 처우가 어떻게 될지 말이다.

     

   “차례대로 줄 서라.”

     

   크라슈가 용황이라는 위치가 어떤 것인지 그들의 머릿속에 확실히 각인시켜 줬다.

     

   “그래야 안 아프게 훔쳐 가줄 수 있으니까.”

     

   결국 그들이 하는 것이라고는 얌전히 스킬을 빼앗긴 것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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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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