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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21

        

       서로 이웃하고 있는 나라 아니랄까 봐 둘의 발상은 비슷비슷했다.

         

       무인을 이용해서 ‘합법적인’ 테러를 벌이겠다는 것.

       이는 꽤 음험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했다.

       

       물론 인명피해를 낸 무인에게 비난이 가해질 수는 있었지만, 무인끼리 대련하다가 상해나 사망이 잘 일어난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정말 누가 보더라도 살수(殺手)를 쓰는 것이 아닌 이상에야 대충 사고로 둘러댈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게다가 그런 사건이 많이 터져서 세간의 주목을 받는다고 해도, ‘최근 한국과 일본 간에 마찰이 있어 분위기가 과열되었는데, 일부 무인들이 분위기에 휩쓸려 이러한 일을 벌인 것으로 보인다.’라며 개인의 일탈로 치부해버리면 그만이다.

         

       그리고 그 후에 엄청난 변호사를 붙여주던, 사법 쪽에 이야기해서 무혐의로 빠져나오게 하건, 죄를 묻기는 하되 그것을 상회할 정도의 어마어마한 대가를 지불해주던 해주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해도 손해는 없다.

         

       죽지만 않는다면.

       무공을 사용하는데 지장이 생길 정도로 크게 다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이러한 계산으로 한국과 일본은 동시에 똑같은 일을 추진했다.

         

       참으로 기묘한 우연이었다.

         

         

         

        * * *

         

         

         

       “박진성 주술사님. 한국에서는 무인을 사용해 보복하기로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건 우연이 아닙니다.”

         

       어두운 빌딩.

       무드등 몇 개가 켜져서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는 최상층의 방에서, 양복을 입고 있는 남성이 그렇게 운을 떼었다.

         

       “제가 그쪽에 있는 게 아니라서 자세히는 모릅니다만…. 정보 쪽에 있는 사람들이 말하기를, 일본에서도 비슷한 방법을 사용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고 하더군요. 듣기로는 그…거울을 비춘 것처럼 한국이랑 흡사한 움직임을 보여서, 주목하기 싫어도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양복을 입고 있는 남자.

         

       얼마 전 진성과 마주했던 사람.

       오직 거짓밖에 없으며, 얼굴에 쓰고 있는 가면의 표정부터 입고 있는 옷과 신분까지 진실한 것이 단 하나도 없었던 바로 그 사람.

         

       국회의원 김가광의 비서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던 그 남자, 김철수가 진성의 빌딩에 찾아와 있었다.

         

       김철수는 언제나 그러했듯 꾸며낸 표정을 가면처럼 사용하며 진성의 맞은편에서 이야기를 끌어가려 하고 있었고, 몸짓 하나 손짓 하나까지 오직 훈련된 거짓에 따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그의 움직임은 하나하나가 사람에게서 빚어진 것이었으며, 하나하나가 의도로 설계된 것이었다.

         

       저 웃음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에게 편안함을 느끼게 하기 위함이요.

       김철수가 보이는 몸짓은 이야기하는 상대의 무의식에 자리 잡은 심리적 장벽을 낮추기 위함이요.

       귀에 속속들이 꽂히는 저 저음은 어두운 분위기에 어울리는,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훈련된 결과물이었다.

         

       그렇게 김철수는 진성의 앞에서 이야기를 꺼내고 있었다.

       묘하게 즐거운 듯한 기색을 보이면서 말이다.

         

       “저는 국회의원님의 비서로 들어간 후, 수많은 논문을 찾아보았습니다. 박진성 주술사님도 아시다시피 정치인은 몸짓 하나, 말 한마디에도 정치적 의사를 담아야만 하기 때문이지요. 정치인은 자신을 꾸미고 이용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은 물론, 다른 사람과 환경마저도 이용할 줄 알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배우들이 읽는다는 연기론도 찾아 읽었고, 옛날 정치인들이 자신의 정치 기술에 관해 적은 책들도 열심히 찾아 읽었어요.”

         

       김철수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진성과 눈을 마주 보았다.

         

       눈.

       어둠을 가위로 잘라서 눈동자 안에 기워 붙인 것 같은 저 눈.

       저 어둠으로 이루어진 눈동자의 뒤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 것인가?

         

       “그렇기에 저는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가 어째서 이러한 ‘보복’을 결정했는지 대충 짐작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동안 있었던 일들이 그들의 무의식에 강렬하게 틀어박혔기 때문이겠지요.”

         

       김철수는 입을 다문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진성의 얼굴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오랫동안 훈련받았던 대로, 상대방이 자신을 관찰하고 있음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자연스러운 움직임에 섞어서 말이다.

         

       김철수가 바라보는 박진성의 표정은, 예전에 보았던 것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사근사근했고, 친근했고, 친밀해 보였으며, 호감이 가득해 보였다.

       다만 속내를 알 수 없는 것이 바로 주술사라.

       눈앞에 있는 사람은 토끼같이 선한 외모를 하고 있어도 그 안에 들어차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었고, 저 어두운 눈동자 아래에는 과연 무슨 뜻을 가졌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윗사람들이 박진성에 대해 말할 때 ‘주술사이니 조심하는 게 맞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이가 어리다는 약점이 있으니 그 점을 잘 공략하면 될 것이다.’라고 말하기는 했으나, 김철수는 윗사람들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들이 여기 이 자리에 와서 거짓을 온몸에 겹겹이 두른 채 살아온 요원들조차도 아리송하게 만드는 저 주술사를 보게 된다면 그 평가를 한 과거의 자신을 욕하게 되리라.

         

       그렇기에 김철수는 진성을 과소평가하지 않았다.

         

       절대로.

         

       그렇기에 김철수는 정보의 비대칭이나, 경험의 부족을 약점으로 삼아 협상하는 대신,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내는 것처럼 ‘진실’의 일부를 풀어 진성을 관찰했다. 진성이 알고 있다면 운을 떼는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서, 진성이 모르고 있다면 이러한 정보로 흥미를 끌어 ‘협상’을 더 유리하게 할 수 있도록 말이다.

         

       하지만 보라.

         

       저 주술사의 모습을.

         

       경험이 부족한 젊은 사람이라면 으레 보일법한 동요가 보이질 않지 않은가.

       표정의 변화야 훈련받으니 그럴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동공의 움직임과 몸 전체에서 보이는 신호마저도 통제할 수 있을까?

         

       이러한 모습은 둘 중 하나라는 것이다.

         

       이미 알고 있었거나.

       모르고 있었지만 완벽하게 신체를 통제하고 있거나.

         

       하지만 훈련받은 요원들이나 할 수 있는 수법을 어찌 저 주술사가 할 수 있겠는가?

       어디 험한 곳에서 굴러먹거나 특이한 성장 과정을 거친 것도 아닌, 재벌 집안에서 지원받으면서 주술만 파고 살았던 주술사가 말이다.

         

       ‘역시 특이하단 말이지….’

         

       김철수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말을 이었다.

         

       “예전에 읽었던 논문에서 본 글귀가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은 틀에 의해 재단되고, 그 틀에 맞춰서 형성되고 변화된다는 글귀였지요. 그 말이 참으로 흥미로워 의원님께 이 이야기를 하자, 의원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정치인들이 프레임을 짜는데 그렇게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둘 중 어느 것일까?

         

       알고 있을까?

       모르고 있는데 내색하지 않는 걸까?

         

       어느 쪽이건…저 박진성이라는 주술사는, 참으로 특이하고 흥미로운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이건 제 생각입니다만…. 최근 한국과 일본에 일어났던 사건들이 이러한 틀을 만드는데 일조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한국에서는 의문의 능력자가 벌인 사채업자 학살 사건, 전국의 산에 갑자기 출몰한 괴물에 대한 일, 진성이 천황과 관련된 유물을 찾으면서 벌어진 일, 일본 외교관이 살해된 사건 등의 끔찍한 일들이.

       일본에서는 갑자기 일본 곳곳에서 발견된 불길한 징조와 산사태 사건, 그 산사태 사건에 연관된 무인과 그 무인이 벌인 주술 의식의 흔적이 발견된 사건, 정치인이 무인에 의해 살해당한 사건, 한국 대사관에 테러가 벌어진 일, 테러 이후 부촌을 중심으로 물이 오염되는 사건 등의 끔찍한 사건까지.

         

       하나같이 불길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것들이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이러한 흉흉한 일이 연달아서 터졌지요. 게다가 무인, 혹은 주물과 연관이 되어 있는 일들이 많아요. 흉흉하기 짝이 없는 일에 이러한 키워드가 무의식중에 각인이 된 상태인데, 악귀에 의해서 독도에 문제가 일어나기까지 했지요.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서는 무인을 떠올릴 수밖에 없게 되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프레임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김철수는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아주 흥미로운 관점이로군요. 연달아서 벌어진 사건이 프레임을 만든다…. 사람의 생각은 그 프레임을 벗어날 수 없고, 그 프레임이 허용되는 범위 내에서 해결책을 낸다…. 정말로 흥미로운 말씀입니다.”

         

       진성은 김철수와 마찬가지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

         

       토끼같이 순하고 귀여운 웃음이었다.

         

       “그렇다면 김철수 비서님. 이러한 사건들을 인위적으로 발생시킨다면, 거대한 움직임에 영향력을 끼치는 것도 가능하겠군요?”

         

       “그렇기는 하지요. 이론적으로는 말입니다. 뭐, 현실적으로는 힘든 일이지요. 변수를 완벽히 예측하고 통제하는 것은 현재 개발하고 있다는 양자 컴퓨터 수백, 수천 대를 연결해서 만든 슈퍼컴퓨터를 사용해도 힘들 텐데…. 사람이 어찌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게다가 정보가 범람하고 있는 현대에서 무의식에 영향을 줄 정도라면 정말로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일으켜야만 할 텐데, 그 정도가 가능한 건…. 강대국이거나, 국가만큼 강한 힘을 가진 능력자? 그것도 아니라면 국가급의 권력을 가지고 있는 권력자도 가능하겠군요.”

         

       “하지만 그런 존재가 움직인다면 어떻게든 그 움직임이 보일 것이고, 흔적이 남을 테니….”

         

       “그렇지요. 그러니 박진성 주술사님이 하신 이야기는 좀 흥미롭기는 하지만…. 흠. 이론적으로만 끝날 것 같군요.”

         

       “그렇지요. 모든 변수를 통제하는 건 강대한 국가도, 초월자조차도 하지 못할 테니까요. 그게 가능하다면 정말 신이라 불려도 무방한 존재일 겁니다.”

         

       진성은 그렇게 말했다.

         

       진실을 왜곡하고 숨기며.

         

       진성은 변수를 힘겹게 예측하지도 아니하였고, 통제에 애를 쓰지도 않았다.

         

       미래를 직접 겪어보았으니 변수를 어설프게나마 예측을 하는 것과 같으니 그 이상의 예측은 필요가 없었으며.

       방향과 결과만 대충 비슷하게 들어맞으면 그만이니 통제도 크게 하지 않았다.

         

       그가 한 것은 오직 거대한 움직임이 특정 방향으로 대충 움직이게 만든 것뿐이라.

         

       이것이 바로 개인이 거대한 움직임에 개입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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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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