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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21

        

       이왕출의 머리가 기민하게 구른다.

         

       방 책사는 이미 틀렸다.

         

       뒤틀린 팔의 상세는 영영 병신으로 살게 될 중한 상태였지만, 그것도 살아남을 수 있어야 병신이 되건 말건 하는 법이다.

         

       그보다는 목의 자상이, 사람 죽이는 데에 이골이 난 살귀가 확실히 죽일 속셈으로 그어놓았다.

       애초에 목에 난 출혈을 어떻게 잡겠는가.

       출혈을 잡겠다고 목이라도 조르면?

       출혈보다 먼저 사람을 잡는다.

         

       그러니 이왕출의 고민은 방 책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가 아니다.

         

       “젠장, 사도련에서 빌려준 책사가.”

         

       문제는 사도련이다.

       수석 책사 중 하나를 빌려줬는데, 대접은커녕 간수도 제대로 못해서 죽어버렸다. (아직 안 죽었다)

         

       이를 어찌 변명할 것인가.

       측간에 가던 방 책사가 발견하고 나니 죽어 있더라고 한들 절대로 변명이 못 된다.

       연약한 책사를 측간에 혼자 가게 놔뒀냐, 너희 지방 잡사파 주제에 감히 수석 책사를 모시지 않고, 측간까지 극진히 모셔서 혹시 먼지라도 묻지 않을까 비단이라도 쫙 깔아드렸어야지, 지금 그걸 변명이라고 하느냐. 하고 오히려 분노만 살 것이 뻔했다.

       세상에 어떤 이가 측간 가는 길에까지 따라붙어 모시길 원하겠냐마는, 이것이 바로 군소 방파의 설움이었다.

         

       그러니 그나마 진노를 피할 방법은 하나 뿐이다.

         

       복수!

       적어도 그 흉수를 찾아 철저하게 복수해 천하의 사도 건아를 건드리면 이렇게 된다, 하고 크게 외쳐야 사도련에서도 참작해 줄 명분이 서는 것이다.

         

       이왕출의 눈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물론, 그렇게 끼고 살던 장자방, 방 책사가 살해당했다는 원한 때문은 아니다.

       이왕출도 사파 놈이고, 사파 놈들의 문사 혐오는 기본적인 소양이라서.

       무공은 겨우 삼류 문턱이나 넘은 주제에 꺼드럭대는 방 책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또 그래서 이렇게 죽어나간 방 책사는 아주 오지랄 병신새끼다.

         

       이왕출의 분노는 순전히 제가 입은 피해 때문이었다.

         

       시발, 이러면 사도련에 다시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잖아.

       영약 한 궤짝만 더 받으면 우리도 단숨에 현급시를 넘어 영향을 끼치는 거대 방파가 될 수 있었는데.

       이 병신같은 샌님하고 그 흉수 때문에.

         

       “어떤 새끼인지 찾아. 없어도 찾아.”

         

       없어도 찾으라는 말은 기필코 찾아내라고 하는 근성론이 아니다.

       찾아보고 없으면 하나 만들라는 소리다.

         

       그에 살월파 무사들이 일제히 장지문을 열어젖히기 시작했다.

         

         

       —-

         

         

       진해루 구조상 객실 바깥쪽에 위치한 전망대 난간이다.

       그러니 바람 쐰다고 남은 의매가 반대쪽 복도 문을 열고 들어오는 마술 같은 신기를 선보이는 것이다.

         

       “뭐야. 왜 거기서 나와?”

         

       그러자 견포희가 수줍게 미소짓고는, 청의 귓가에 입술을 바짝 붙여 달콤하게 속삭인다.

         

       “나, 오줌 싸고 왔어.”

         

       음. 정말 알고 싶지 않았던 정보인걸.

       그걸 굳이 한참 노화정탕 국물을 퍼먹는 와중에 말해야겠니. 아유, 시원하긴 하다.

       하지만 희매는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왜냐하면 희매니까.

         

       사실, 청도 고작 그 정도로 비위가 상하거나 하는 세심한 인종이 못 된다.

       청이 오히려 낄낄거리며 되묻는다.

         

       “그래서. 시원해?”

         

       “응.”

         

       “거긴 어때? 깨끗해?”

         

       “응. 좋은 객잔이라 그런가 봐.”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었다.

       깨끗한 측간은 귀하기 때문이다.

       있다가 나도 다녀와야겠다, 하고.

         

       그때였다.

       뭔가 바깥에서 와장창 우당탕 부서지고 깨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온다.

       누군가는 고함을 지르고, 누군가는 꺄악 째지는 비명을 막 질러대는 것이다.

         

       그에 화룡조 인원들이 짜기라도 한 모양으로 모두 움직임을 멈추고 입을 다문다.

       핏발 선 눈빛으로 원독을 줄줄 뿜으며 창빈을 노려보던 조학체가 언제 그랬냐는 듯 진중한 표정이 되어 식탁을 두드린다.

       그러자 바깥쪽 주탁에 자리한 청년들이 난간 쪽 장지문을 열어 밤공기를 들인다.

       그리고 일시에 피어오르는 자욱한 주정.

       화룡조 인원들이 동시에 술기운을 날려 보내는 통에 자욱하게 술 안개가 차오른다.

       괜히 장지문을 열어놓지는 않았으니, 금방 스르륵 밤공기에 녹아들기는 했지만.

         

       오. 그럴듯한데.

       청이 감탄했다.

         

       이것이 바로 정파의 저력…… 이 아니라 그저 무림육화의 두 명 더하기 하나 초미인 셋이 들어선 술자리라서 그렇다.

       사내들끼리만 있었거나, 혹은 기녀들 끼고 있었으면 이렇게 멋들어지게 곧장 전투 준비에 들지는 못했으리라.

       그러니 어찌 보면 순전히 눈치 없이 끼어든 청의 덕분이라고도 하겠다.

       혹은 술과 요리라면 정신 못 차리고 일단 얼굴부터 들이미는 그 아귀 같은 식탐이 한 건 이뤄낸 쾌거.

         

       한편, 우당탕 으악 꺄아악 소음이 점차 가까워지더니, 마침내 빵! 장지문이 문틀을 벗어나 허공을 가른다.

       옆으로 미시오인 중원의 문 개폐 예절을 개무시하고 굳이 앞으로 밀어내고 등장한 살월파 무사가 기세등등하게 소리친다.

         

       “꿇어! 이 새끼들……아?”

         

       일단 기선제압으로 멋지게 들이닥쳤는데.

       살월파 무사가 제게 향하는 병기 서른 자루쯤을 보고 말끝을 흐렸다.

         

       화룡조 인원 서른 명. 덤으로 세 명.

       도기와 검기의 무수한 악수 요청들.

         

       살월파 무사가 사도 건아의 비기, 없었던 일처럼, 마치 시간이 거꾸로 뒤감기는 듯이 자연스럽게 뒷걸음질을 치는데-

       쐐액, 귓가를 스치는 살벌한 소리.

       뭐가 지나갔는지 눈으로 보지도 못했다.

         

       살월파 무사가 우뚝 멈춰선다.

       그리고는 이내 비장한 표정이 되어 입을 여는 것이다.

         

       “꿇을까요?”

         

       조학체가 근엄하게 고개를 끄덕.

       살월파 무사가 털썩 무릎을 꿇고 대도를 내려놓았다.

         

       이 자리에서 최소한 두 명을 빼고는 모두 정파의 협객들이다.

       그러니까 최소한 두 명 빼고는 전의를 잃고 얌전히 무력화를 택한 상대를 굳이 베어 참살하려 들지는 않는다는 뜻이었다.

         

       조학체가 한결 누그러진 태도로 점잖게 입을 연다.

       조학체는 여인만 보면 눈깔이 돌아가서 그렇지, 본성 자체는 정파의 모든 후기지수(사내)들이 입을 모으는 대형인 것이다.

       정파의 모든 후기지수(여인)에게는 제일 꼴 보기 싫은 인물 일 위, 부담스러운 인물 일 위, 마주치기 싫은 인물 일 위로 꼽히기는 해도.

         

       “이보게, 여러 사람이 쓰는 주루에서 이 무슨 못된 소란이란 말인가? 물론 사람이 화가 나서, 더군다나 술에 취하면 물론-”

         

       “아앗! 이놈들, 이놈들이다!”

         

       좋게 타이르는 조학체의 말허리를 싹뚝 자르는 외침이 있었다.

         

       그리고 우다다다 몰려오는 발소리들.

       순식간에 장지문이 박살이 나서 쓰러지며 도를 손에 쥔 살월파 무사들이 일렬로 쭈욱 포위망을 짠다.

       그리고 마침내, 문주님 입장하신다!

         

       이왕출이 고수의 여유를 부리며 한껏 거만하게 등장한다.

       진짜로 여유가 있어서는 아니고 이렇게 등장해야 멋이 산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실제로도 뭔가 있는 놈인가 하고 상대를 겁박하는 용도로 유용한 생활의 지혜였다.

         

       그렇게 한껏 무게 잡으며 등장하던 이왕출의 시선이, 문득 꿈에도 본 적 없는 절세의 미인……이 아니라 그 옆에 조금 수수한(이래서 모난 돌 옆에 있으면 정을 맞는다) 미인이 눈에 들어온다.

       저거 진설이잖아. 저게 왜 여기에 있어.

         

       진설이 없었다면 그냥 칼 든 애송이들이라 생각했겠지만, 진설이 자리를 잡고 나니 그냥 애송이들이 아닌 것이다.

         

       “흠, 흠. 본인은 살월파 문주 이왕출이라 하오. 뭔가 착오가 있었던 모양인데, 수하들이 사도련의 책사를 무참히 살해한 흉수를 찾으러 분노한 상태라 실례를 범한 것 같소이다.”

         

       문주의 선택은 빠른 후퇴다.

       모양은 빠지지만 어쩌랴.

       하지만 일단 쪽수에서 밀리고 잘못 건드렸다간 사도련이 문제가 아니게 생겼으니 한 방파의 수장으로서는 합격점을 줄 수 있는 판단이었다.

         

       조학체가 잠시 생각에 빠진다.

         

       살월문이면 분명 사파 놈들이지.

       머리 수는 우위에 있지만 늙은 놈들은 저쪽이 더 많으니, 무턱대고 칼부림을 하기엔 조원들을 챙길 의무가 있는 조장이다.

       게다가 흑룡조는 강호 경험도 쌓고 인맥도 넓힐 겸 편성된 후기지수들의 예비 전투조였으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죽협대의 큰형님들도 모시고 올 것을 그랬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장단을 맞춰 줄 수밖에는.

       

       “사도련의 책사를 살해한 흉수라니? 그게 무슨 말이오? 이 밤중에 갑자기 그런 협사, 아니 참담한 일이 벌어졌단 말이오?”

         

       이왕출의 눈썹이 살짝 꿈틀한다.

       어린놈이, 아무리 정파 사파 사이라고 해도 내가 한참 어르신이고 선배님인데 하오라니?

       그러나 좋게 말로 넘어가자는 신호는 잘 알아들었다.

       애초에 무슨 일이냐고 묻는 자체가 지금 방을 잘못 찾아왔다고, 우리랑은 상관없는 일이니 괜히 들쑤시지 말고 얌전히 꺼지라는 소리가 아니겠는가.

       그러니 반공대가 기분 나쁘다고 들이받을 수는 없다.

         

       “크흠, 연회 중 잠시 바람을 쐬려던 사도련의 책사께서 주검으로 발견되었소. 아직 피가 흐르고 있어 흉수가 멀지 않을 것이라 판단해 수색을 펼치고 있었소만, 그 와중에 의도치 않게 흥을 깨고 말았소이다.”

         

       “아. 그러시오? 음.

         

       그때였다.

       돌연 청이 끼어들어 목소리를 높인다.

         

       “이미 깨져버린 흥을 다시 기워다 붙일 수도 없지 않나? 정 미안하면 술값이라도 좀 대신 내 주든가. 말로만 미안하다고 하면 뭐해?”

         

       그에 화룡조 조원들의 입가에도 슬그머니 미소가 번진다.

       사파 놈들 패악질에 사죄의 의미로 술을 얻어먹었다 하면, 제법 멀리멀리 소문이 퍼질 영웅담이 아니겠는가.

         

       반대로 이왕출의 표정은 구겨진다.

       이 새파랗게 어린 년이 누구 체면을 구겨놓으려고 수작질인지.

         

       하지만 정파 사파 사이에는 사소한 시비라도 진지한 승부가 된다.

       이왕출이 제가 실언을 했음을 깨달았다.

       이쪽이 잘못했다는 식으로 말해버리고 말았으니, 그걸 곧장 미안하다는 말로 못을 콱 박아버린 것이다.

         

       이제 와서 어째?

         

       이왕출이 이걸 어찌해야 하나.

       술을 사주면 새파랗게 어린놈에게 쫄아서 금은을 갖다 바친 얼간이가 되어버린다.

       술값은 못 준다고 빠져도 그깟 술 한 잔을 못사는 소인배가 되고.

       그런 소리 한 적 없다. 미안하지 않다?

       그랬다간 그냥 모욕이다. 곧장 빌미를 잡혀 공격이 날아들고 만 것이다.

         

       그야말로 진퇴양난!

         

       물론, 청이 악인을 골탕먹이는 데에는 세상 그 누구보다 진심이며, 심지어 그 순간에는 두뇌 최대 출력 전행 가동으로 지능까지 치솟는 공능을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냥 어찌 칼질 한 번 해 보겠다고 시비를 걸어본 뿐이었다.

         

       안 그래도 두 개 정리하고 하나 남았지?

       문주 새끼 대가리를 깨 버리면 나머지야 뭐 오합지졸, 이참에 아예 싹 치워버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야겠다고.

         

       그것도 모르고 화룡조 조원들은 속으로 감탄 참기 일천 배, 임무 끝나면 동네방네 떠들고 다닐 왕대박사건 하나 건졌다고.

         

       천화검이 그 아름다운 만큼이나 큰 재치를 가졌구나!

         

       아주 큰 오해이며 개소리라고 하겠지만.

         

       그때였다.

         

       “어. 저 사람. 아까 그 사람인데?”

         

       견포희가 이왕출의 뒤편으로 실려나가는 방 책사의 시체를 손가락질했다.

         

       “희매? 그 사람이라니?”

         

       “자꾸 나보고 술 따르고 입 맞추고 남녀가 만나서 할 일을 하자고 손목 잡고 끌고가려고 하길래. 박살을 내놨지.”

         

       그에 모두 일시에 입을 다문다.

         

       아. 희매가 그랬구나.

       음 희매는 그럴 수 있지. 희매니까.

         

       아……. 우리 쪽 소행 맞구나.

         

       시벌, 진짜 이 새끼들이었네.

         

       같은 뜻의 생각이 모두에게 스친다.

       순간, 청이 먼저 선빵을 날렸다.

         

       “감히! 나 천화검의 의자매를 희롱하려 하다니! 희매의 미모에 눈이 돌아간 색마 새끼들이 내 희매를 희롱하고 억지로 끌고 데려가 무도한 짓을 벌일 속셈이렸다! 용서할 수 없다!”

         

       “뭣-”

         

       “문답무용!”

         

       쾅! 어째서인지 검은 먼지가 피어오르며 청의 신형이 앞으로 쭉 늘어난다.

         

       이왕출이 깜짝 놀라 도를 치드는 순간.

       데엥-!! 거대하나 시끄럽지는 않은 점잖은 굉음으로 범종이 운다.

         

       천화검 하면 여래신장, 여래신장 하면 소림사, 소림사 하면 무학대사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천화검이라는 별호를 무학대사가 지어주었으니 억지로 이어 붙이려면 그래도 좀 누더기 같지만 어떻게 말은 된다.

         

       이왕출이 그에 아차, 여래신장의 전승자, 삼두가인이니 오두대만족 등의 저속한 농담 따위에 잊고 있었던 전설적인 신공을 떠올렸다.

       그러나 이미 늦었으니, 가공할 거력을 담은 여래신장의 격공장이 이왕출의 발밑에 닿아, 와지끈!

         

       무공은 발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반대로 말해서, 발밑이 무너지는 순간엔 무공이 시작되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리고 어느새 눈앞까지 치민 천화검의 신형.

       천화검의 손이 번쩍 들린다.

         

       그 투명한 백옥과 같이 눈부신 고운 손에 들린 병기, 족발에 노을빛 강기가 서려-

         

       이왕출이 눈을 부릅떴다.

         

       족발이라니!

       족발에 맞아 죽어서는 안 된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혈압이 166인 사람을 아십니까?
    그건 바로 저, 본인을 말하는 것이올시다..

    병원 안 갔다가 뒤질뻔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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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This Murim’s Crazy B*tch

I Am This Murim’s Crazy B*tch

이 무림의 미친년은 나야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female character in a martial arts game I’ve played for the first time. I know absolutely nothing about Murim, th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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