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422

       “그런데, 솔직히 조금 불공평해.”

        

       식사 끝나고 설거지 도중에 클레어가 투덜거렸다.

        

       “설거지 말입니까?”

        

       “응? 아, 아니아니, 이거 말고.”

        

       내가 조금 놀란 눈으로 묻자 클레어는 얼른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혹시라도 클레어가 집안일을 돌아가면서 하는 것에 불만을 느꼈나 싶어 내심 놀랐던 나는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샤를로트의 취미 말이야.”

        

       “요리 말씀이십니까?”

        

       “응.”

        

       클레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뭔가 좀…… 우리 네 사람이랑은 다른 차원에 있다고 해야 하나, 혼자 어른스럽잖아.”

        

       그러니까 뭐 대단한 불만은 아니고 그냥 약간의 질투심인 모양이다.

        

       “그런 식으로 질투하는 게 오히려 어린아이 같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그런데 사실 어린아이 맞긴 하다. 우리는 주민등록증만 어른이니까. 물론 나야 진짜로 어른이었던 적도 있긴 했지만.

        

       나의 말에 클레어는 볼을 부풀렸다.

        

       “어른다운 것이 좋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약간의 동심이 있는 편이 삶이 더 즐거운 법이죠.”

        

       그런 클레어를 달래듯 말했다.

        

       “만약 클레어가 만약 어른스럽기만 해서 ‘산타는 없다’느니 ‘귀신같은 것은 없다’라고 했다면 우리 집에 호박이나 크리스마스트리가 들어오는 일도 없었을 겁니다. 연말을 연말답게 즐기려면 그런 것을 마음껏 즐기는 마음도 가지고 있어야죠.”

        

       “……그런가?”

        

       나이를 먹는다고 마냥 어른이 되어가지는 않는다.

        

       어린 시절 동경했던 것, 가지고 싶었던 것, 가고 싶었던 곳. 그런 것들은 계속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다가, 어른이 되어 조금 돈이 생기고 여유가 생기면 결국 그때 하고 싶던 것을 하나하나 해보게 된다.

        

       그리고 그건 의외로 즐거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그런 점이 없는 것이 불쌍하다는 것도 아니고. 요리가 즐거우면 요리를 하면 되는 거 아니겠는가.

        

       게다가—

        

       “따지고 보면, 클레어의 취미도 상당히 건전하다고 생각합니다만.”

        

       “그, 그래?”

        

       “그렇습니다. 운동해서 몸을 만드는 취미는 다른 사람들도 많이 가지는 취미니까요.”

        

       적어도 앉아서 게임만 하는 취미보다는 건강에 더 좋지 않을까?

        

       “하지만 내 최종 목표는 바디 프로필 촬영인데.”

        

       “이쪽 세상에서는 그렇게 부끄러운 일은 아닙니다.”

        

       아제르나 기준으로는 좀 많이 민망한 사진일지 모르겠다.

        

       남작가 영애가 헐벗고 찍은 사진이라니, 아마 다음 세기가 되면 ‘시대를 앞서간 여성’ 같은 책자의 한 부분을 당당하게 차지하지 않을까? 클레어가 그걸 공개할 일은 없을 테지만.

        

       “…….”

        

       클레어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설거지에 집중했다. 내가 한 말을 곱씹어보는 것 같았다.

        

       “그래도 불공평해.”

        

       하지만 결국 클레어는 입을 삐쭉거리며 그렇게 말했다.

        

       아직 어린애라니까.

        

       *

        

       세상에 아싸가 있다면 인싸도 있다. 사실 비율적으로 보면 인싸 쪽이 더 숫자가 많을지 모른다. ‘무리를 이루는’ 사람들이니까. 그 안에는 오타쿠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다.

        

       내가 보기에 샤를로트는 철저하게 전자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서브컬처에 관심은 없지만 옆 사람이 보아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대답도 잘 해주는 타입.

        

       취미도 완전 건전하고, 사회 같은 곳에서도 자기 처신을 잘 할 것 같다.

        

       본인 말로는 자기가 친구가 얼마 없다고 했었지만, 성격을 감안하면 그건 성향이 그렇기 때문이 아니라 주변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하는 상황 그 자체 때문이었다.

        

       지난번에 클레어가 투덜거리긴 했지만, 굳이 그런 샤를로트에게서 억지로 ‘오타쿠’같은 면을 찾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생각했었다.

        

       그날은 평소와는 다소 다른 아침이었다.

        

       클레어와 미아는 방송 방에서 영상을 편집하고 있었다. 앨리스는 방에서 화장품을 보는 중이었고, 샤를로트도 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방에 혼자 있었다.

        

       문득 시계를 봤더니 점심시간이 거의 다 되었다.

        

       오늘따라 밥을 차려 먹고 설거지할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아, 나는 식사를 시켜 먹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보다는 그냥 갑자기 샌드위치를 먹고 싶었을 뿐이지만.

        

       스마트폰을 들고 배달 애플리케이션을 켠 채 우선 내 침대가 있는 방으로 가 앨리스에게 메뉴를 물었다. 다음에는 방송 방으로 가 미아와 클레어의 의견을 들었다.

        

       거실로 나와 샤를로트와 미아의 방으로 가면서 나도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고른 뒤, 그대로 두 사람이 지내는 방의 문을 벌컥 열었다.

        

       “…….”

        

       “…….”

        

       그리고 화들짝 놀라 이쪽을 보는 샤를로트와 눈이 마주쳤다.

        

       샤를로트의 놀란 얼굴을 한 번 보고, 그 손에 들린 것을 한 번 보았다.

        

       샤를로트는 미아가 사다 놓았던 ‘마법 소녀 옷’의 어깨 부분을 잡고 자기 몸에 대 보고 있었다.

        

       아마 맞지는 않을 거다. 미아가 이것저것 많이 먹기는 하지만 살이 놀라울 정도로 찌지 않는 체질이기도 했으니까.

        

       그보다 체형과 골격 자체의 차이가 너무 커서, 아무리 봐도 늘어날 것 같지 않은 재질의 마법 소녀 옷이 샤를로트에게 맞지는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샤를로트가 그 옷을 자기 몸에 대보고 있었던 이유는 명백하다.

        

       본인도 한번 입어 보고 싶다는 소리겠지.

        

       “…….”

        

       “…….”

        

       샤를로트가 뭔가 변명을 해보려는 듯 입을 조금 움직였지만,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나는 그런 샤를로트를 말없이 물끄러미 보고 있다가, 천천히 방 밖으로 몸을 빼면서 문을 잡았다.

        

       “잠깐만요!”

        

       턱.

        

       샤를로트가 순식간에 달려들어 닫히려는 문을 턱 잡았다.

        

       “괜찮으니 하시던 것 마저 하셔도 됩니다. 메뉴에 관한 질문은 조금 뒤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죠? 지금 뭔가 오해한 거 같은데, 그런 거 아니거든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원래 사람에게는 개인적인 취미라는 게 있는 법입니다. 그걸 다른 사람에게 알릴지, 알리지 않을지에 대한 것은 개인의 몫이죠. 우리 몰래 마법 소녀 옷을 몸에 대보고 있었다는 건, 우리에게 말하기 어려운 취미였다는 뜻이지 않습니까?”

        

       “그건 그런데, 그게 아니에요!”

        

       “걱정할 거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말하지 않을 테니까요.”

        

       “아뇨, 그게 문제가 아니라고요! 알아차린 사람이 이상한 오해를 하는 게 더 무섭다고요! 무엇보다 그 동정하는 것 같은 시선은 치워주세요!”

        

       샤를로트는 경악스러운 힘으로 닫히려던 문을 당겨 열더니, 다른 한 손으로 나의 팔을 잡아끌어 방 안으로 들여놓았다.

        

       탁.

        

       문은 조용히 닫혔다. 크게 닫으면 집 안의 모든 아이가 무슨 일인가 이쪽을 확인하러 올 것이 뻔했으니까.

        

       “설명할게요.”

        

       “안 해도 되는데.”

        

       “할 테니까 들어요.”

        

       나를 노려보면서 그 말을 하는 샤를로트의 눈에 패기가 깃들어 있어 나는 입을 다물었다.

        

       “일단, 저는 마법 소녀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니에요.”

        

       내 시선이 침대 위로 돌아갔다. 나를 쫓아오면서 옷을 침대 위에 내려놓은 모양이었다. 내팽개치듯 내려놓은 것이 아니라, 그 짧은 시간에 나름대로 정성스럽게 내려놓은 모양이다. 미아가 아끼는 거니까.

        

       “저, 저 옷의 디자인 때문이었어요!”

        

       내 눈이 가늘어지자, 샤를로트의 얼굴도 덩달아 붉어졌다.

        

       “그러니까, 저기 저 옷, 레이스가 많이 달렸잖아요.”

        

       “그야 마법 소녀 복장이니까요.”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샤를로트는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이쪽 세상의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공주들이 입는 옷이 저런 모양이잖아요!”

        

       “…….”

        

       나의 머리가 그 말을 반 박자 정도 늦게 이해했다.

        

       나는 천천히 눈을 굴리면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저 옷이 ‘공주’ 옷 같아서 몸에 대 보고 있었다는 뜻입니까?”

        

       “그래요.”

        

       “하지만, 샤를로트, 당신은 이미 벨부르의 공주가 아닙니까? 굳이 공주 자리를 동경할 이유가?”

        

       “그게, 그러니까, 달라요.”

        

       “…….”

        

       “다르다고요. 제가 있는 자리는 그야말로 정치적인 의미의 ‘공주’잖아요.”

        

       아하.

        

       조금씩 이해가 가기 시작한다.

        

       “혹시 지난번에 본 디●니 영화에 영향을 받으신 겁니까?”

        

       “…….”

        

       샤를로트의 시선이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내 시선이 그 눈을 따라 움직이자, 샤를로트는 아예 몸을 휙 돌려버렸다.

        

       “그, 그래요! 그래서요? 어린 시절에 동경하던 이야기가 그렇게 화려하게 펼쳐지는데, 저라고 별수 있겠어요?”

        

       “…….”

        

       공주가 공주를 동경한다고?

        

       나는 내심 감탄했다.

        

       “그런데 그걸 굳이 숨길 이유가 있습니까?”

        

       “……그, 너무 치기 어려 보이잖아요…… 게다가 저는 진짜로 ‘공주’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알고 있는데…….”

        

       거참.

        

       본인도 게임 속에나 나올 법한 공주면서.

        

       생각해보니 조금 기묘하긴 했다. 사실 이 현실— 그러니까, 우리가 있는 ‘지구’의 공주는 여러모로 훨씬 더 빡빡하게 사는 경우가 많으니까. 사실 샤를로트가 가진 이미지도 어느 정도는 이쪽 세상에서 ‘판타지 세계관의 공주’에게 가진 환상이 적용된 결과다.

        

       그런데 그렇게 완벽하게만 보이는 샤를로트가 사실은 미국 만화영화에서 나오는 공주를 동경한다고?

        

       “미리 말하는데, 남들한테는 비밀이에요.”

        

       샤를로트가 나에게 손을 척 가리키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샤를로트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