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422

        

         

       “하지만 이런 프레임이 어쩌면 박진성 주술사님께는 큰 기회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김철수는 그렇게 말을 이었다.

         

       기뻐하라는 듯 말이다.

         

       “정부에서 일을 하다 보면 온갖 정보가 들어오는 법입니다. 그중에는 음…. 박진성 주술사님에 대한 것도 있었지요. 아, 특별히 찾아본 것이 아닙니다. 그저 토종 주술사에 관한 관심이 곧 정보가 돌아다니는 결과로 이어졌고, 저는 그 정보를 주워들은 것뿐이니 꺼림칙하게 여기지는 않으셨으면 합니다.”

         

       이게 다 토종 주술사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섞인 것이니까요.

         

       김철수는 그리 말하며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들었다.

         

       “…해서 정부에서는 박진성 주술사님이 이번 일을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였습니다. 이건 박진성 주술사님께 큰 기회가 될 것입니다. 어쩌면…저번에 방송에 나온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정말로 커다란 기회가 말이죠.”

         

       김철수가 내민 서류에는 이러한 글자가 적혀 있었다.

         

       『 독도 정화 작전. 』

         

       독도.

       정화.

         

       두 단어만 보더라도 정부가 제안할 것은 분명했다.

         

       독도에 있는 악귀들을 쫓아내달라는 제안일 것이리라.

         

       “지금 독도는 커다란 횡액을 겪고 있습니다. 일본의 재침입과 점거…. 거기다가 악귀가 들끓고 있기까지 하죠. 다행히 일본인들은 대부분 물러나기는 했지만, 그들이 물러나도 일은 다 해결된 것이 아닙니다. 독도경비대와 일본 해상자위대를 학살한 것으로 추정되는 악귀들이 득시글거리고 있거든요.”

         

       김철수는 잠시 말을 멈추곤 진성에게 사진을 내밀었다.

         

       군 소속의 마법사가 특수 장비를 착용한 후 염사(念寫, thoughtography)를 통해 그려낸 악귀의 모습이었다.

         

       얼핏 풍선처럼 보이는 귀신.

       피부의 질감은 다 녹아버린 것이 물귀신과 흡사했고, 풍선처럼 굴러다니는 모습은 지옥에 떠다니는 부레옥잠이 있다면 딱 이런 모양새가 아닐까 싶은 모습이다.

         

       “꽤 강력한 녀석인지 특수 장비로도 완벽히 찍을 수가 없더군요. 흐릿하거나, 왜곡되거나, 빠지거나. 그래서 군 소속의 마법사가 아티팩트를 사용해서 그림으로 그려냈습니다.”

         

       김철수는 그렇게 말하곤 진성의 표정을 잘 살펴보았다.

       혹여나 악귀의 모습에 인상을 찌푸리거나, 겁을 먹은 기색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진성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보기만 해도 끔찍하고 모독적인 귀신의 모습을 앞에 두고 있음에도 아까와 똑같은 표정, 똑같은 기색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몸에도 그 어떠한 신호도 보이지 않았다.

         

       ‘일단 귀신에게 겁먹지는 않았다는 건데…. 그나마 홀리거나 패닉 상태에 빠져서 헛짓거리를 벌일 가능성은 조금은 줄어든 것 같고.’

         

       김철수는 이러한 진성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림만 봐도 겁을 집어먹는다면 아예 독도에도 가지 못할 것이 분명했으니까.

       적어도 첫 번째 관문은 통과했다고 여겼다.

         

       “주술사님께 묻겠습니다. 이 악귀를 퇴치할 수 있겠습니까?”

         

       “흐음.”

         

       “참고로 박진성 주술사님을 도울 사람들은 대기 중입니다. 최전방에서 귀신과 싸우던 군인과 군종장교들, 퇴마와 파사에 효과가 있는 주물들, 거기에 악귀를 상대해 본 경험이 있는 무인들까지 있지요.”

         

       진성은 김철수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할 것 같습니다. 악귀라는 존재는 물리력을 발휘할 수 있는 만큼 물리력에 취약한 면을 가지고 있지요. 충분한 백업과 주물이 있다면 쉬이 퇴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까? 다행이군요.”

         

       김철수는 진성의 확답에 미소를 지었다.

         

       ‘그래. 나이에 걸맞지 않게 실력이 있다고 했지? 실력은 모르겠지만 담력은 좀 있는 편이군. 기회도 잡을 줄 아는 것 같고.’

         

       다른 이들이 돕는다고 하더라도 악귀 앞에 나서는 것은 그리 내키지 않는 일임이 분명한데도 박진성 주술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것이 무엇이냐?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거나,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기회를 잡을 의지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을까?

       잠깐 DMZ에 왔다 간 기록이 있기는 하지만, 박진성이라는 주술사는 온실 속에서 자란 주술사다. 재벌가의 지원 속에서 풍족하게 자라났고, 큰 어려움을 겪지 않은 채 자라났다는 것이다. 피와 죽음, 사악한 괴물과 귀신에는 면역이 없어야 정상이었다.

         

       그렇다면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후자.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기회를 잡는다는 것인데….

         

       ‘꽤 권력과 친밀한 주술사로군. 좋은 일이야.’

         

       재벌가 출신의 주술사이기 때문일까?

       권력에 초연하거나, 권력을 배척하는 성향이 아닌 권력에 친숙하고 권력을 이용할 줄 아는 것으로 보였다.

         

       국가를 위해 일하는 김철수 입장에서는 참 좋은 정보라 할 수 있었다.

         

       세속적인 가치를 멀리한 채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다른 주술사와는 달리, 진성과는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거래가 가능하다는 뜻이었으니까 말이다.

         

       김철수는 예감했다.

         

       어쩌면 이 주술사와는 오랫동안 볼지도 모르겠다고.

       이 사람은 높은 자리에 올라갈 것이고, 이 사람의 옆에 딱 달라붙어 있으면….

         

       ‘운이 좋다면 나도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

         

       김철수는 박진성 주술사를 담당하게 된 것이 일생의 행운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진성 주술사님. 독도 정화 작전에 참여해주시겠습니까? 이것을 성공적으로 해내면, 대한민국 국민 중 박진성 주술사님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진성은 김철수의 말에 기껍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기꺼이 참여하겠습니다.”

         

       그렇게 진성은 한국의 독도 정화 작전에 참여하게 되었다.

         

         

         

        * * *

         

         

         

       “신주님. 다케시마 정화 작전에 참여해주시지 않겠습니까?”

         

       같은 시각.

         

       일본에서도 같은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일본풍과 서양풍이 적절하게 뒤섞인 별장 안.

       일찍이 ‘축복’을 받았던 정치인과 가면을 뒤집어쓰고 있는 기묘한 분위기의 신관이 있었다.

       신관은 빨간 방석에 무릎을 모은 채 앉아 있었고, 그 맞은편에서는 양복을 입은 정치인이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은 채 신관에게 부탁하고 있었다.

         

       신관은 그러한 정치인의 부탁에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다케시마 말씀이신지요?”

         

       그 말은 참으로 공손하였고, 여우가 사람을 홀리려는 듯 부드럽게 사람의 귓가에 파고들었다.

       하지만 이러한 달콤해 보이는 목소리는 실제로는 참으로 기괴하기 짝이 없었으니, 신관의 목에서 튀어나온 목소리는 무저갱에서 튀어나온 것과 같은 저음이었고, 가면 안에서 울리기라도 한 것인지 윙윙거리는 소음이 섞여 있었다. 게다가 부드럽게 귓가에 파고들었다가 그 소음을 드러내며 뇌를 살짝 살짝씩 흔들기까지 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을 진정으로 홀리는 목소리라.

         

       여우의 말처럼 달콤하고, 너구리의 말처럼 부드럽고, 뱀의 말처럼 독을 품었도다.

         

       듣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심령을 어그러뜨리고, 제대로 된 사고를 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음성이었다.

         

       게다가 더 끔찍한 것은 이 목소리가 그러하다는 것을 당사자는 눈치채지 못한다는 것.

         

       이는 이 목소리가 사람을 홀리는 힘이 있기 때문이요, 심령을 제압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며.

         

       이 목소리를 듣는 이는 이미 홀려있는 상태이기도 하였기 때문이라.

         

       “예. 지금 다케시마는 무도하기 짝이 없는 악귀들에 의해 오염이 되어있는 상태입니다. 필시 한국의 관리 소홀로 표류하여 온 사악한 것들이겠지요.”

         

       정치인은 초점이 살짝 흔들리는 눈으로 말했다.

         

       “그 악귀들 때문에 죄 없는 해상자위대원들이 죽었고, 일본의 소중한 구축함이 다케시마에 부딪혀 좌초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이 끔찍한 악귀들은 그곳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독도에 주둔하고 있던 한국 경찰마저 죽였고, 한국과 일본 사이에 전쟁을 일으킬 뻔했지요.”

         

       “전쟁이라….”

         

       “하하. 고작 악귀 때문에 끔찍한 일이 벌어질 뻔한 셈입니다. 다행히 오해를 풀어 전쟁은 일어나지 않긴 했습니다만…. 하지만 한국과 일본이 오해를 푼다고 하더라도 일은 다 끝난 것이 아니지요.”

         

       “그렇군요. 악귀가 남아 있겠군요.”

         

       “예. 악귀가 다케시마에 남았습니다.”

         

       정치인은 살짝 한숨을 쉬고는 말을 이었다.

         

       “이 악귀가 다케시마에 계속 남아있으면 좋은 것이 없습니다. 섬을 거점으로 삼아서 바다를 점령해 지나다니는 배를 공격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이번에 일어난 일처럼 한국의 배나 일본의 배를 공격해서 탈취한 뒤 일본에 그대로 좌초할 수도 있는 일이지요.”

         

       그렇게 된다면 좌초되어 피해를 보고, 상륙한 악귀들에 의해 또 피해를 볼 것이니 재앙이 아니겠습니까?

         

       그는 그렇게 말을 한 뒤 사명감에 불타는 눈으로 신주를 바라보며 말했다.

         

       “태풍이나 지진 같은 사람이 막을 수 없는 일이라면 모르겠습니다만, 충분히 퇴마하고 봉인할 수 있는 악귀가 상대라면 힘을 써야 하는 것이 지도자의 의무가 아니겠습니까. 해서, 제가 아는 한 가장 뛰어난 신관이신 신주님을 찾아뵌 것입니다.”

         

       “허어….”

         

       가면을 쓴 신관은 정치인의 말에 감격한 듯 목소리를 내었다.

         

       “정부에 뛰어난 음양사 분들도 많을 것이며, 커다란 신사에 계신 신관분들이나 명망 높은 주지 스님 같은 분들이 많을진대, 어찌 이 보잘것없는 신관에까지….”

         

       “하하. 겸손하시군요. 하지만 제가 단언하겠습니다. 신주님께서는 재야에 묻혀계셨을 뿐, 그들과 비교해서 전혀 모자람이 없으신 분입니다. 아니, 오히려 더 대단하실 수도 있겠지요.”

         

       정치인은 자기 머리털을 슬쩍 쓰다듬었다.

       그가 손을 가져다 대자 풍성한 머리카락이 손바닥을 간지럽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M자 탈모가 진행되고 있었던 머리이건만.

       신주가 준 ‘축복’ 한 번에 이렇게 머리가 자라났다.

       탈모가 진행된 것이 거짓말이라는 듯, 아주 풍성하게 말이다.

         

       게다가 모발이 어찌나 굵고 검은지!

         

       몸이 가벼워진 것과 겹치자, 젊었을 때로 회춘한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이러한 기적의 축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어찌 이름난 음양사나 신관보다 모자랄 수 있겠는가?

         

       정치인은 확신했다.

         

       이 사람은 재야의 고수라고.

       은둔해 있던 기인이며, 젊었음에도 두각을 드러내는 천재라고.

         

       ‘게다가 이러한 생각을 가진 게 나뿐만이 아니지.’

         

       본디 주머니 속의 송곳은 존재감을 드러내는 법.

         

       정치인의 눈앞에 있는 신주는, 이 능력 있는 인재는 수많은 권력자와 정치인에게 알음알음 알려진 듯했다.

       당장 그가 ‘다케시마에 갈 사람을 추천하고자 한다.’라며 신주를 찾아간다고 했을 때, 좋은 생각이라며 맞장구를 친 이들이 허다할 정도였으니.

         

       “하니 신주님. 다케시마로 가서, 사악한 악귀들을 퇴치해 주시지요. 그 실력을 화려하게 선보여 한국의 기를 죽이고, 일본의 기상을 세워주셨으면 합니다.”

         

       정치인은 신주에게 청했다.

         

       머리털을 풍성하게 만들어준 신주에게 보답하겠다는 마음과 ‘인재를 천거해서 일을 훌륭하게 처리했다.’라는 치적 한 줄을 추가하겠다는 사욕을 담아서.

         

       그리고 신주는 이러한 정치인의 부탁에 마땅히 해야 하는 답변을 하였으니.

         

       “기꺼이 그리하겠습니다.”

         

       그것은 승낙이었다.

         

         

       

         

       

       

    다음화 보기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