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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22

   잿빛의 화염이 일대를 일렁였다.

     

   크라슈의 한 방을 눈치챈 인간 쪽은 미리 몸을 빼고 있었지만.

   미처 빼지 못한 신들 중 몇 명이 휘말려 그대로 명을 달리했다.

     

   그렇게 죽어 나간 신들의 시체 위.

   자욱한 회색의 안개가 주위를 가득 메웠다.

     

   본래라면 보이지 않는 시야로 인해 감각을 예리하게 곤두세우겠지만.

   크라슈는 지금 그러한 행동을 할 필요 없었다.

     

   왜냐하면 안개 안쪽.

   괴존의 별빛이 선명하게 느껴지고 있었으니까.

     

   ‘온다.’

     

   이를 직감한 순간 괴존이 연기를 뚫고, 크라슈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별빛의 섬광과 함께 초고속으로 이어진 베어 가르기.

   크라슈는 코앞까지 다가온 검을 즉시 받아쳤다.

     

   채엥!

     

   울려 퍼진 검명과 함께 대기와 땅이 동시에 흔들렸다.

   두 사람의 격돌은 이제 사실상 자연재해에 가까웠다.

     

   주변 신들과 인간들은 휘말리는 게 두려워 한걸음 더 물러섰다.

     

   그사이, 크라슈는 괴존의 상태를 빠르게 훑었다.

   초근접거리에서 욱여넣은 화력을 대폭발시켰다.

     

   당연히 괴존도 멀쩡한 상태는 아니었다.

     

   고목 나무같이 말라비틀어진 그의 몸은 여기저기 그을려 있었고, 화상자국이 진하게 남아 있었다.

   특히, 가슴 쪽에 꽤 큰 타격을 입은 듯 안쪽으로 움푹 파여 있었다.

     

   오랜 기간을 통해 이미 노쇠할 대로 노쇠해 버린 괴존의 육체다.

     

   전성기의 육체라면 모를까.

   지금 상태로는 아무리 신들이 재생력을 높인다 한들 육체의 타고난 수명으로 인해 더딘 것이 현실이다.

     

   ‘앞에 아버지와 전 패황과도 싸웠으니까.’

     

   그때 이미 육체의 수명이 사실상 대부분 소모된 것이겠지.

   천상사강 둘과의 격돌은 괴존에게 있어서도 상당한 소모전이었다.

     

   하지만 괴존은 멀쩡하게 움직였다.

   그의 몸에 깃든 전쟁의 신은 괴존이 죽는다 한들 신경 쓸 신이 아니다.

     

   그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괴존의 육체가 이 이상 망가지건 말건 크라슈에게 맹공을 가했다.

     

   ‘죽음 따위 아무래도 좋다. 이거지.’

     

   크라슈가 괴존의 검을 또 한 번 받아치며 숨을 골랐다.

   그의 검 위에서 비기, 검광이 선명하게 빛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괴존과 크라슈의 검이 무수히 많이 오고 가기 시작했다.

     

   성계의 영역을 이미 오래전에 겪은 괴존의 검술은 그야말로 난해하기 그지없었다.

   일반 사람의 육체로는 그릴 수 없는 검술식을 괴존은 당연하게 펼쳤다.

     

   검이 하늘을 수놓는다.

   검이 땅을 뒤엎는다.

     

   천지 자체를 바꾸는 검술식이 괴존에 의해 끊임없이 펼쳐졌다.

     

   그 앞에 선 크라슈는 처음에는 괴존의 검을 따라가는 데 급급했다.

     

   아무리 크라슈가 성계의 영역에 진입했다 한들.

   순수한 검술 실력에서 괴존에게 밀리는 게 현실이다.

     

   무학의 정수에 도달한 괴존의 검술은 세상을 새로 그려내는 최고의 경지였다.

     

   괴존의 검과 맞닿는 크라슈조차 감탄을 금치 못할 만큼.

   괴존의 검술은 무학의 정수라 일컫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크라슈의 검술은 점점 더 괴존을 따라가고 있었다.

     

   괴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분명 처음에는 괴존의 검을 막는 데 급급했던 크라슈였다.

     

   그런 그가 자신의 검술을 이 단시간에 어떻게 쫓아 오고 있는가.

     

   크라슈가 전투 도중 성장을 해서?

   아니,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크라슈에게는 그런 재능은 없다.

     

   한때, 발하임의 수치 취급을 받을 정도로 처참한 재능을 지녔던 크라슈다.

   크라슈에게 주어진 재능이란 살아온 삶에 의해 형성된 독기와 타고난 눈치뿐.

     

   크라슈가 지닌 무력과 순간의 판단력은 전부 노력 및 경험을 통해 쌓아 올린 노력의 정수다.

     

   그리고 지금.

   크라슈를 강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 노력의 정수였다.

     

   회귀 전, 창공의 세대에서 크라슈는 그 누구보다 스킬을 많이 봐왔다.

     

   남들은 자신의 스킬에만 집중할 테지만.

   크라슈는 자신이 무력을 갖추지 못했기에 다른 이들의 스킬도 꾸준히 체크했다.

     

   혹여나 급박한 상황이 온다면 그들 스킬의 새로운 방향성이라도 알려줘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크라슈는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려하며 살폈다.

     

   크라슈가 지금껏 스킬을 얻을 때마다 빠르게 발상의 전환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지금껏 회귀를 통해 축적해 놓은 정보 덕분이었다.

     

   물론 이런 크라슈라도 모든 스킬을 응용하는 데는 한계점이 명확히 존재한다.

   이를 자각하고 있기에 크라슈는 지난날 자신이 훔친 스킬을 신기로 녹여내 사용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크라슈가 모든 스킬을 지워낸 것은 아니었다.

     

   크라슈의 눈동자가 괴존의 수를 읽어낸다.

   진실을 꿰뚫는 눈과 미래의 예측을 하는 눈이 각각 동시에 정보를 얻어낸다.

     

   크라슈의 다리가 일으킨 바람과 속도의 보정을 통해 더 발 빠르게 움직인다.

   피와 근육의 강화와 뼈의 강도를 높이고, 육체의 능률을 올린다.

     

   시야를 넓히고, 손가락 하나하나에 저마다 속성을 부여하며 대처 방식을 늘린다.

     

   판단력과 사고력, 모든 것들이 스킬의 부가 효과로 극대화되기 시작했다.

     

   크라슈의 이그니스가 육체 전반을 훑으며 거세게 타올랐다.

     

   바람은 이그니스의 불길을 더욱 거세게 지피고, 나무는 끊임없는 재생력으로 자라나며 장작이 되었다.

   구름을 뚫고 내려온 낙뢰가 불길에 더더욱 힘을 불어넣어 줬다.

   이그니스로 과열되는 육체의 지속성을 더 늘리고자 얼음과 물이 육체를 식혔다.

     

   크라슈가 동시에 응용하고 있는 스킬은 현재 183개.

   이마저도 계속해서 그 숫자가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었다.

     

   크라슈의 검이 점점 더 정교해지기 시작했다.

   무학의 정수 같은 것은 크라슈에게 없다.

     

   그러니 크라슈는 괴존의 무학에 맞서기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최대한으로 사용했다.

     

   그의 독기 어린 집념이 거세게 타올랐다.

     

   채엥! 챙!

     

   크라슈의 검이 보다 거세졌다.

   어느새인가 괴존이 크라슈를 몰아치고 있던 양상이 바뀌기 시작했다.

     

   점차 괴존의 검이 크라슈의 검에게 잡아 먹혀 나갔다.

   크라슈가 한 발 더 먼저 선로를 그리고, 그가 검을 휘두를 공간을 앗아갔다.

     

   괴존의 눈이 부릅떠지기 시작했다.

   괴존의 무학의 정수와 전쟁의 신의 만남으로 그의 검은 신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있는 범인 하나가.

   무수히 많은 스킬과 쌓아온 경험을 독기 어린 집념 하나로 뭉쳐 이를 넘어서고 있었다.

     

   괴존의 눈에 황당함이 서렸다.

     

   이 정도로 스킬을 동시에 응용한다는 건.

   크라슈에게 있어서도 엄청난 부담일 것이다.

     

   스킬은 신들 개개인의 신기를 담아낸 형태다.

   당연히 전부 다른 종류이며 이를 응용하기 위해서는 하나하나 다른 사고를 해야만 한다.

     

   그러나 크라슈는 뇌가 터질 지경이 돼도 이를 멈추지 않았다.

     

   곧이어 괴존은 크라슈가 어떻게 이런 식으로 스킬을 응용하고 있는지 눈치챘다.

     

   ‘저주.’

     

   그의 몸속에 깃들어 있는 저주, 사계.

   사계는 스킬을 한 번 집어삼키고, 크라슈의 몸속에 뱉어냈다.

     

   사계의 장점은 육체에 어떤 부담이 오더라도 육체가 부서지지 않도록 유지 시킨다는 것.

     

   그 덕분에 크라슈는 스킬의 동시 운용으로 엄청난 부담을 느끼고 있음에도 망가지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결국 이를 버텨내는 건 전부 크라슈의 정신력이다.

     

   괴존은 미치광이를 보는 듯한 눈을 했다.

     

   [ 너, 인간이 맞는 건가? ]

     

   정녕 이게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집념인가.

     

   크라슈의 집념이 괴존에 무학에게 닿았다.

     

   “그럼.”

     

   호흡을 쏟아내며 괴존의 검을 받아친 크라슈의 눈이 천살성의 별빛을 받아 붉은색으로 빛났다.

     

   “뭐겠어.”

     

   당치도 않는 질문 말라며 대답한 크라슈가 기어코, 괴존의 검을 쳐내며 그의 몸을 휘청이게 했다.

     

   괴존은 깨달았다.

   이 이상 자신은 크라슈의 검을 받아낼 수 없음을 말이다.

     

   크라슈의 내면에 만들어진 별이 괴존의 눈앞을 가득 메웠다.

     

   [ 아니군. ]

     

   괴존은 크라슈의 말을 정정했다.

     

   [ 곧 직접 보게 되는 날이 오겠어. ]

     

   괴존에 빙의한 이, 전쟁의 신이 확신했다.

   크라슈는 길지 않은 시간에 결국 신계에 도달할 것임을 말이다.

     

   그리고 기어코, 자신에게도 지금 저 검을 겨누게 되겠지.

     

   [ 도둑의 신. ]

     

   전쟁의 신이 두 눈을 일그러뜨렸다.

     

   [ 넌 무엇을 만들고 있는 게냐. ]

     

   그 질문에 답을 해줄 사람은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크라슈의 검이 완연한 잿빛의 불꽃을 완성 시켰다.

   잿빛의 불길이 광열을 쏟아내며 주위를 전부 녹여 나갔다.

     

   전쟁의 신이 괴존에게서 손을 뗐다.

   더는 중간계에 남아 있을 수 없음을 눈치채고, 그가 떠나간 것이다.

     

   전쟁의 신이 사라진 자리.

   괴존이 검을 천천히 늘어뜨렸다.

     

   크라슈의 눈에 괴존의 얼굴이 비쳤다.

   그는 괴기스러운 웃음을 짓고 있었다.

     

   오래전 맞이해야 할 임종을 맞이 못 한 채.

   관 속에서 그 목숨을 지금까지도 연명해 버린 노괴.

     

   그는 쥐고 있던 검을 놓았다.

     

   “노부가 조금만 젊었어도 기쁘게 맞이했을 텐데.”

     

   크라슈의 눈이 뜨여졌다.

     

   전쟁의 신에게 완전히 몸을 빼앗긴 줄 알았지만.

   그의 정신은 여전히 내부에 남아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무학의 정수와 노력의 정수.”

     

   괴존이 눈앞에 떨어지는 잿빛의 태양을 바라보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 끝을 알 수도 있는 법이었거늘.”

     

   괴존은 오래전에 검을 놓았다.

     

   “이는 후대에 맡겨야겠지.”

     

   그러니 더는 후대를 괴롭히지 않기로 하고, 이제는 길었던 생을 마치기로 하였다.

     

   멸화침식(滅火浸蝕)

   십식(十式)

   멸화(滅火)

     

   이윽고, 잿빛의 태양이 괴존을 집어삼켰다.

   전 천하제일 인으로서 세계의 정상에 섰던 괴물은 또 다른 정상의 앞에 녹아내리며 그 생을 마감했다.

     

   불꽃이 사그라드는 앞.

   크라슈가 차오른 뜨거운 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들었다.

     

   크라슈의 눈에 경악한 신들이 보였다.

   설마하니 괴존에 빙의한 전쟁의 신이 패배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한 반응이었다.

     

   그리고 그 당황을 꿰뚫은 건 인간 진영이었다.

   그들은 신들이 정신을 채 차리기 전에 공격을 감행했다.

     

   신들은 차례로 무너져 내려갔다.

   전쟁의 신이라는 마지막 구심점을 잃은 그들은 인간의 앞에 한없이 무력했다.

     

   크라슈는 그들을 두고, 시선을 옮겼다.

   그런 크라슈의 눈이 닿은 곳에는 괴존이 막아섰던 문이 있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문.

   그러나 크라슈는 신들이 나누던 이야기를 조금은 엿들었다.

     

   묵시록의 4기사.

   그들이 저 문을 통해 나올 것이란 소리를 말이다.

     

   ‘이 미치광이 신들이.’

     

   크라슈가 문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대로 문을 베어버릴 작정으로 크라슈가 검에 잿빛의 불꽃을 피워 올렸다.

     

   “크라슈, 잠깐.”

     

   그 순간 크라슈의 앞을 막아선 건 아서였다.

     

   “아서?”

     

   크라슈가 의문을 표한 순간 아서는 문을 바라보며 눈을 게슴츠레 떴다.

     

   “무언가 오고 있어.”

     

   무언가라니.

   그건 묵시록의 4기사가 아닌가?

     

   하지만 아서의 반응을 보건대 다른 것 같았다.

   묵시록의 4기사라면 아서야 말로 질리도록 봐왔으니 잘 알고 있을 테니까.

     

   “위험한 거야?”

     

   크라슈가 질문하자 아서가 크라슈를 돌아봤다.

   어째선가 아서의 눈이 조금 복잡해 보였다.

     

   “아니, 그보다는.”

     

   덜컹!

     

   그리고 아서의 말이 채 마치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

   아서와 크라슈의 시선이 동시에 문에 닿은 순간.

     

   거기에는 새까만 흑발을 흩날린 여성이 문밖으로 고개를 천천히 내밀고 있었다.

     

   이를 본 크라슈의 눈이 서서히 커지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그녀가 누구인지 크라슈는 잘 알고 있었으니까.

     

   “너.”

     

   크라슈에게 블랙 후드를 준 신.

   도둑의 신.

     

   그녀가 제2의 라그나로크가 일어난 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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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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