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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23

       벌컥.

        

       “!”

        

       방문이 열리는 걸 보고 샤를로트의 머리에 느낌표가 떴다.

        

       “어, 저기, 혹시 주문 끝났나요?”

        

       자기가 지내는 방인데도 방문을 살짝 열고 조심스럽게 안을 들여다보며 그렇게 묻는 미아가 조금 웃겼다.

        

       “아뇨, 아직 샤를로트와 메뉴를 정하는 중이었습니다.”

        

       “마, 맞아요! 뭘 먹을지 고민하고 있었어요.”

        

       사실은 그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지만, 바로 조금 전에 샤를로트가 이 이야기는 하지 말아 달라고 했으므로 나는 일단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다행이다.”

        

       미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다른 메뉴로 바꿔드릴까요?”

        

       “아뇨, 그건 아니고, 여기 추가하고 싶은 게 있어서…….”

        

       미아는 안에 들어가는 재료를 더블로 바꾸었다. 많이 두꺼워질 텐데, 입에 물 수 있을까?

        

       하긴 미아는 자기 앞에 있는 먹거리는 어떻게든 다 먹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시원해진 표정으로 미아는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다른 거 더 추가할까요? 쿠키를 따로 하나 더 추가해드릴 수도 있습니다만.”

        

       “아뇨,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어?”

        

       웃는 얼굴로 대답하던 미아의 시선이, 한순간 자기 침대 위로 향했다.

        

       침대에는 샤를로트가 나를 따라 나오면서 던져놓은 미아의 마법 소녀 옷이 있었다.

        

       한순간 샤를로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말 그대로 얼어붙었다고 해도 좋은 정도다.

        

       “……응?”

        

       자기 자리로 가 그 옷을 집어 든 미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이십니까?”

        

       “아뇨, 분명히 이 옷은 저기 옷장 앞에 걸어두었던 것 같은데요.”

        

       확실히, 눈에 보였으니 자기 몸에 대본 거지, 옷장 안에 넣어놨었다면 샤를로트가 굳이 그걸 꺼내 입지는 않았을 것 같다.

        

       “평소에 옷장 앞에 걸어두십니까?”

        

       “아, 네. 언제나 입고 있기에는 조금 부끄럽지만, 이렇게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져서요.”

        

       그러니까 약간 포스터 같은 느낌인 모양이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그려진 옷 같은 것도 일부러 옷장 밖, 벽 같은데 걸어놓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았으니까. 확실히 언제나 입을 수 없는 굿즈인데 그렇다고 안에 넣어두기만 하면 아까울 것 같기도 하고.

        

       “제가 착각한 걸까요?”

        

       “그,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요?”

        

       샤를로트가 얼른 말했다.

        

       “평소에도 종종 손에 들고 몸에 대보곤 하잖아요.”

        

       “역시 그렇겠죠? 샤를로트가 굳이 이걸 손댈 이유가 없으니까요.”

        

       미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옷장에 다시 옷을 걸어두고 밖으로 나갔다.

        

       “배달 도착하면 불러드리겠습니다.”

        

       “고마워요!”

        

       그렇게 말하며 나가는 미아를 보고 있다가, 나는 다시 슬쩍 문을 닫았다.

        

       “미아가 당신을 믿는다는 사실에 감사하십시오. 미아의 기억력은 굉장히 좋은 편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건 거의 ‘속아줬다’라고 할 정도입니다만.”

        

       미아는 머리가 좋다. 단순히 공부를 잘한다거나 그런 문제가 아니라, 한때 나를 암살하려는 계획도 짰던 아이다. 마음을 놓아버린 뒤에는 그냥 속 편하게 사는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자기 물건의 위치가 달라지거나 하는 것은 마음만 먹으면 바로바로 떠올릴 수 있을 거다.

        

       여기서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어서 안 할 뿐이지.

        

       “……알고 있어요.”

        

       “기왕 이렇게 된 거, 그냥 속 편하게 말해버리는 건 어떻습니까?”

        

       “안 돼요.”

        

       “어째서?”

        

       “왕녀로서의 위엄은 지켜야 하니까요. 심지어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타국의 황족과 귀족들이잖아요?”

        

       “저를 그냥 친구라고 생각한다고 한 적이 있지 않으십니까?”

        

       “…….”

        

       “그리고 그렇게 따지자면 저는 수백 명의 사람 앞에서 엉덩이를 흔들며 춤도 췄습니다만.”

        

       “…….”

        

       나의 말에 샤를로트는 잠깐 말이 없다가,

        

       “그, 그래도 안 돼요.”

        

       그렇게 억지 부리듯 말했다.

        

       그러니까 결국 그냥 자존심 때문이란 소리다.

        

       지금까지는 우리 중에서 가장 어른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마냥 그런 건 아닌 모양이다.

        

       나는 어깨를 으쓱해버린 뒤 스마트폰을 샤를로트에게 보여주었다.

        

       “그래서, 메뉴는 무엇으로 하시겠습니까?”

        

       “…….”

        

       내가 너무나 평온하게 그렇게 물어보는 것을 보고, 샤를로트는 잠깐 할 말을 잃은 것 같았다.

        

       *

        

       내가 샤를로트의 그 기행을 보고도 이렇게까지 흔들림이 없을 수 있었던 건, 사실 어느 정도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내가 실제로는 나와 열 살 넘게 차이 나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깍듯한 존댓말을 쓸 수 있는 원동력이 어디서 나오겠는가.

        

       그렇다.

        

       바로 컨셉질에서 나온다.

        

       내가 웬만큼 덥지 않으면 어깨에 코트를 이고 다녔던 것도, 그 코트에서 한겨울용 털을 굳이 떼지 않고 있었던 것도, 진짜 엄청나게 추운 곳이 아닌 이상 코트를 입지 않고 어깨에 걸치기만 했던 것도, 결국에는 쿨한 컨셉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지금이야 그 컨셉 유지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시간을 돌리는 능력을 잃었으니 그냥 놓아버린 것이지, 나는 그래도 꽤 오랫동안 별다른 감정 없는 쿨한 미소녀 스나이퍼라는 컨셉을 잘 지킬 수 있었다.

        

       샤를로트의 그 위엄있는 왕녀 코스프레도, 내 기준으로 보면 충분히 이해하고 넘어갈 만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만화에 나오는 공주들은 어떻습니까?”

        

       그런데 말이다.

        

       “만화에 나오는 공주?”

        

       “예. 특히 미국 쪽에서 나오는 공주들. 그런 공주들은 공주로서 위엄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걸 놀려먹고 넘어가지 않으면 사람이겠냐고.

        

       하고 있던 영화에 대한 잡담과 연결하기에는 조금 억지스러운 질문이었지만, 다들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을 보면 내 질문이 나름대로 흥미로운 질문이긴 했던 것 같다.

        

       평생을 황녀로 살아온 앨리스나, 여신이 새로 만들어냈던 그 허상 속에서 나름대로 황녀의 위치에 있었던 클레어는 꽤 진지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미아도 흥미롭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이쪽 세상만큼은 아니지만, 아제르나에서도 황녀와 왕녀라는 지위는 나름대로 동경 받는 지위다. 이쪽 세상처럼 관련된 동화도 꽤 있었다. 애초에 진짜 왕족, 황족이나 그 근처까지 갈 수 있는 높은 귀족이 아닌 이상 그 지위에 있을 때 느끼는 진짜 감정을 상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보통은 그 고귀한 분위기에 반해서 그저 동경하기만 할 뿐.

        

       미아가 마법 소녀를 좋아하는 것은 어린 시절의 동심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황녀와 얽힌 적이 있는 귀족이라서 현실의 공주를 동경하지는 않겠지만, 그게 미국 만화풍의 공주라면 또 이야기가 다르다.

        

       “위엄? 음, 잘 모르겠네.”

        

       앨리스의 답은 그랬다.

        

       “유능한 면이 있다고는 생각하는데, 아무래도 마냥 위엄있다고 생각하는 건 어렵겠어. 보통은 조금 어린아이 같지 않나?”

        

       앨리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이었다.

        

       “아마 보는 애들이 어린아이들이니, 그 눈높이에 맞춘 거겠지.”

        

       여기서 앨리스를 놀릴 수 있는 몇 가지 사연들이 떠오르긴 했지만, 굳이 그걸 지적했다가는 앨리스가 진짜로 정색할 것 같아서 나는 말을 아꼈다.

        

       “그래도 멋지긴 해. 솔직히 이쪽 세상에서 왜 인기 있는지는 알 것 같아. 내용이 동화적이긴 하지만, 옛날 이야기 같은 느낌을 내려면 그 정도는 감안해줘야 하지 않겠어?”

        

       클레어는 그렇게 말했다.

        

       “성인 여성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상관없지 않아? 그런 걸 하나하나 다 따진다면 우리가 하는 게임 같은 것은 할 수 없게 되겠지. 게다가 애초에 그거 만드는 사람들 본인들도 죄다 어른일 거고.”

        

       앨리스는 쿨하게 그렇게 대답했다.

        

       하긴 안 그랬으면 피규어같은 것은 모으지 않았겠지. 그것도 여자애 피규어를.

        

       뭐, 앨리스는 아직도 그게 황궁 복도 흉상과 비슷한 물건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말이다.

        

       “저는 마법 소녀 같아서 좋아요.”

        

       애초에 마법 소녀도 여아들을 겨냥하고 만들어진 거니까. 만화라는 것은 어느 정도 어린아이의 억지 같은 부분이 있어야 재미있는 법이다. 그래서 대중에게 먹히는 거고. 부모와 아이가 같이 보러 갔는데, 옆에서 쿨쿨 자고 있으면 아이들이 얼마나 상심할까? 그러니 오히려 어른들한테도 먹히도록 잘 만들어야 하는 거다.

        

       그리고 그러니까 재미있어 하는 걸 부끄러워 할 필요도 없든 거고.

        

       세 사람의 말을 들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샤를로트 쪽을 보았다.

        

       샤를로트는 필사적으로 눈을 피하면서 열심히 샌드위치를 씹었다.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은 채, 나도 내가 먹던 샌드위치에 집중했다.

        

       *

        

       “만화 행사?”

        

       내 제안에, 클레어가 눈을 반짝였다.

        

       클레어 외에는 미아도 눈을 반짝였다.

        

       내가 스마트폰에 띄워 보여준 것은, 서울이나 그 근교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서브컬쳐 행사였다. 보통 사람들은 여기서 팬 만화나 소설, 팬시 제품을 만들어 판매한다. 그걸 사고팔면서 축제 자체를 즐기거나, 아니면—

        

       “코스프레.”

        

       미아가 읽는 것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아십니까? 행사 진행원들이 다소 까탈스러운 면이 있어서, 너무 튀는 옷이면 다짜고짜 코스프레 복장이라고 몰고 가 추가 입장료를 뜯는 것이 비일비재하다고 합니다. 저희는 아예 캐릭터와 물아일체 된 모습이니, 차라리 그냥 돈을 미리 내고 각자 코스프레를 하는 것은 어떨까 싶습니다만.”

        

       “오.”

        

       클레어는 눈을 빛냈다.

        

       앨리스는 어이없다는 듯 웃음소리를 냈고, 샤를로트는 조금 당혹스럽다는 듯 나를 보고 있었다.

        

       “다 같이 입어버리면 부끄러울 일도 없지 않겠습니까?”

        

       나는 그런 샤를로트를 보며 제안했다.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이 정도 추억은 가지고 돌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뭐, 싫음 말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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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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