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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23

   나는 아카데미 던전을 올라가면서 머릿속으로 지도를 그렸다.

   

   벌써부터 다음을 준비하기 위한 건 아니었다.

   

   아카데미 던전은 최소 열 개 이상의 구성을 지니고 있거든.

   

   이 중에서 하나를 안다고 당장 뭐가 바뀌겠어?

   

   물론 던전의 구성을 모두 다 암기할 예정이긴 하지만.

   

   그를 통해서 최적화 루트를 짤 생각이긴 하지만!

   

   지금 내가 굳이 아카데미 던전 내부를 모두 둘러보면서 나아가는 이유는 훗날이 아닌 지금을 위함이었다.

   

   던전의 구조를 분석하다보면 자연스레 경향성이 보이니까. 그를 기반으로 다음 기믹이 어떤 건지 추측하려고 그러는 거야.

   

   그러면서 내가 느낀 건 지금 이 던전이 확실하게 내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이다.

   

   노골적인 단서와 은근슬쩍 집어넣은 단서들이 뒤섞여 있는 부분이라거나.

   

   기믹의 파훼를 중점으로 하는 전투지만 물리력으로 돌파가 가능한 부분이라거나.

   

   출제자의 의도에서 벗어났다 확신하는 부분에도 결말이 준비되어 있다거나 하는 부분들이 말이다.

   

   당장 지금만 봐도 그래.

   

   49층에서 몰려든 구울들을 신성마법으로 정화해 주었더니 감사인사를 건네고 사라졌는걸.

   

   심지어 걔네들 나한테 단서까지 던져주고 가려고 하더라.

   

   내가 개짓거리하지 말라고 짜증을 낸 덕분에 미수로 그치긴 했지만 말야.

   

   아. 다시 생각해봐도 짜증나네. 왜 시키지도 않은 스포를 하려고 그러지?

   

   던전이라는 건 미지의 무언가를 공략하는 맛이 있는 건데 왜 지들이 내 재미를 뺏으려고 그러냐고.

   

   투덜투덜거리면서 보스룸 앞에 도착한 나는 아무 망설임 없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은 부정형의 액체였다.

   

   강함도. 약함도. 신성함도. 불온함도. 징그러움도. 뭣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그것은 너무나도 텅 비어 있어서 되레 사람을 질리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못 보던 종류의 몬스터네.

   

   이번에 새로 만든 녀석이려나.

   

   그 녀석이 바닥을 기어 다니는 걸 구경하던 나는 액체가 송곳 마냥 뻗어 나오는 걸 보고 방패를 움직였다.

   

   채앵!

   

   방패 너머로 전해지는 충격은 그럭저럭 강한 편이었다.

   

   싸움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방금 일격으로 죽어버렸겠는데.

   

   이번 아카데미 1학년들 던전 공략하다가 되레 트라우마가 생기는 거 아닌가 몰라.

   

   이어지는 연격을 몸을 비트는 걸로 회피한 나는 메이스로 액체의 중심을 후려쳐 보았다.

   

   그러자 퍼억!하는 소리와 함께 액체가 주변으로 비산했지만 액체의 공격은 그치지 않았다.

   

   물리적인 공격은 의미가 없나.

   

   다음에는 신성을 담아 공격을 해보았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액체는 흩어진 상태에서도 자의를 지닌 채 나를 공격했다.

   

   흐으음. 단순하게 때려서 부술 수 있는 종류는 아닌가.

   

   나는 주변으로 비산한 액체들에게서 쏘아지는 공격을 회피하며 보스룸 내부를 둘러봤다.

   

   돌로 만들어진 어두운 지하실의 풍경. 여기저기에 널려있는 유리조각들. 바닥에 그러져있었으나 이제는 흐려진 몇 개의 마법진들.

   

   그 모두를 눈에 담은 나는 상황이 곤란해졌음을 깨닫고 입술을 우물거렸다.

   

   이거 아무리 봐도 마법 관련 지식을 필요로 하는 곳 같은데.

   

   <드디어 고전의 순간이 찾아온 게냐.>

   ‘…할아버지. 왜 걱정을 안 하고 흥미진진한 것처럼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그야 던전 안에서 너를 걱정하는 것만큼 쓸데없는 일이 없으니까 그렇지.>

   

   입장을 반대로 해서 생각해보라는 할아버지의 이야기에 나는 저도 모르게 납득을 해버렸다.

   

   내가 여태까지 할아버지한테 보여 준 기행을 생각해보면 걱정이 안 되는 게 정상이긴 하지.

   

   근데 이성적인 납득과는 별개로 짜증이 나는 건 어쩔 수가 없네.

   

   조언을 해줘야 할 인간이 팝콘을 뜯고 있으면 열이 받는 게 정상이잖아!

   

   정당한 보복이라고!

   

   ‘어이쿠. 손이 미끄러져버렸네~’

   <…루시야?! 이게 무.>

   

   슬쩍 할아버지를 액체 속으로 던져버린 나는 인벤토리에서 여분의 메이스를 꺼내 들었다.

   

   할아버지에 비하면 실로 쓰레기 같은 물건이지만 이 보스를 상대하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 없을 거야.

   

   이 놈은 물리력으로 상대해야 하는 적이 아니니까.

   

   오물에 가까운 액체 속에서 넘실대는 할아버지를 구경하며 키득거리던 나는 한군데 뭉쳐 질량으로 날 누르려는 액체를 회피하며 다시금 보스룸 안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일단 미적감각으로는 뭐가 보이는 게 없어. 있는 거라고는 여기에 있는 게 하나 같이 역겹다는 대답 뿐.

   

   하지만 약점파악은 달라. 이 곳의 보스가 들키고 싶어 하지 않는 장소를 내 눈에 선명하게 비춰주고 있거든.

   

   문제는 그게 저 더러운 액체의 한 가운데라는 점이지만.

   

   으으으. 저기에 뛰어 들 생각을 하니까 좀 그렇네.

   

   어떻게 하면 좋으려나.

   

   아. 그래. 생각해보니까 굳이 저 액체 속으로 들어갈 필요 없잖아.

   

   그냥 저 액체의 가운데를 기점으로 날려버리면 되는 데 왜 그런 걸 고민해야 하지?

   

   간단히 결론을 내린 나는 메이스의 끝에 신성을 끌어 모았다.

   

   할아버지가 아닌 일반적인 메이스는 신성을 매끄럽게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지금의 내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가 막 신성을 다루게 되었을 때야 이걸 가지고 헤맸었지.

   

   신성을 숨 쉬듯 다룰 수 있게 된 지금의 내게 이건 아무것도 아냐.

   

   내 메이스 끝에 모여드는 신성을 보면서 이상을 감지한 듯 액체가 나를 향해 맹렬히 공격을 퍼부었다.

   

   집어삼키려 하고.

   

   뭉개버리려 하고.

   

   꿰뚫으려 했지.

   

   허나 그 모든 공격은 내 방패에도 닿지 못했다.

   

   공격의 전조가 너무도 뻔하고 뻔해서 도저히 맞아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액체의 중심부 인근에 도착한 나는 위로 뛰어 올라서 액체의 중심을 내리침과 동시에 메이스에 담긴 신성을 터트렸다.

   

   그러자 충격을 버티지 못한 액체가 주변으로 비산하며 약점 파악이 지목한 곳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단 겉으로 보이는 건 없는데.

   

   이 아래 쪽인가. 좋아. 그럼 메이스를 다시 한 번.

   

   …어라? 내 손에 있던 메이스의 머리가 왜 사라져 있지?

   

   방금 전에 액체가 터질 때 같이 터져버린 건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흘리던 나는 손잡이만 남은 무기를 내다 버리고 주먹 위에 신성을 끌어 모았다.

   

   그리고 나서 주먹으로 바닥을 후려친 순간 숨겨져 있던 공간과 함께 마법진의 위에서 액체를 조종하던 보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흐응. 왜 내가 이 아래의 기척을 못 알아챘나 했더니 이 바닥 위에 감지를 방해하기 위한 온갖 마법들이 있어서 그랬구나.

   

   여러모로 공을 들였네.

   

   그래봐야 이제는 의미 없지만.

   

   아래에 숨어 있던 마법사는 나를 보자마자 자신이 직접 마법을 펼치려고 했지만.

   

   그것보다 내가 놈의 목을 잡아 비트는 것이 더 빨랐다.

   

   액체를 조종할 마법사가 사라짐에 따라 오물에 가까운 액체가 구멍으로 흘러들어간다.

   

   오만상을 찌푸린 채 그를 구경하던 나는 액체와 함께 떨어지려는 할배를 손끝으로 붙잡아 들었다.

   

   으. 디러라. 이거 정화마법으로 청소가 되려나.

   

   만약 안 되면 어쩌나 싶었지만 다행히도 정화마법은 오물을 처리하는 걸로 제 역할을 다했다.

   

   말끔해진 할아버지의 모습을 확인한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할아버지를 손에 꼭 쥐었다.

   

   ‘할아버지. 죄송해요. 제가 실수를 하는 바람에.’

   <…실수? 실수우우우?>

   ‘많이 힘드셨나보네요. 그치만 잠시였잖아요. 이제는 깨끗해지기도 했고.’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끄햑!?”

   

   뇌리를 뒤흔드는 할아버지의 고함에 기겁을 한 나는 할아버지에 의해 반 강제로 더러운 바닥에 정좌를 한 채 잔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루시! 너는 말이다! 존중이라는 게 너무 없다! 존중이! 나 때는 말이다!…>

   

   으으으. 이번에는 너무 막무가내였던 것 같아.

   

   다음번부터는 고의적이라는 게 안 들키도록 최선을 다하자.

   

   대충 공격 맞고 마지못해서 놓은 체를 한다면 괜찮겠지.

   

   <내 말 듣고 있느냐!>

   ‘듣고 있어요. 듣고 있으니까 너무 소리 지르지 마세요. 머리 아프다구요.’

   

   *

   

   아카데미 던전 90층의 보스를 공략하다 나가떨어진 아서는 던전 바깥에서 눈을 떴다.

   

   던전 내부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밝았던 하늘에는 어느새 노을이 져 있었다.

   

   벌써 이런 시간인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배에서 공복을 호소하는 걸 느끼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침을 먹고 던전에 들어간 후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움직이기만 했으니 배가 고픈 게 당연하지.

   

   일단은 저녁을 먹고 던전의 입구가 닫힐 때까지 공략을 이어나갈까.

   

   그리 생각을 하며 기지개를 편 그는 학생들의 성적이 적힌 판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오늘 아침까지만 하더라도 아서 일행의 이름이 맨 위에 적혀 있던 곳에는 지금 다른 사람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루시 알른. 제약에 의해 하루 늦게 던전에 들어온 그녀가 지금 아서 일행을 추월한 것이다.

   

   이런저런 방식으로 제한을 걸었음에도 저 정도인가.

   

   “역시 알른 영애의 불평을 무시하고 제약을 더 걸었어야했나 보네요.”

   

   뒤이어 던전 바깥으로 내쫓긴 조이는 루시의 이름을 발견하고 헛웃음을 흘렸다.

   

   자기들도 다른 학생들에 비해 압도적인 속도를 내고 있는데 루시는 자기 혼자서 모두들 추월해버렸으니 허탈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벌써 99층이라니.”

   “이제 와서 발악한들 역전은 불가능하겠지?”

   “그렇겠죠.”

   “하. 젠장. 어쩔 수 없지. 일단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루시 알른이 무슨 험악한 벌칙을 내밀지는 나중에 걱정하고.”

   

   속도를 낸다고 따라잡을 수 있는 차이가 아니라 생각한 아서 일행은 밥이나 먹으면서 루시가 나오길 기다리자고 이야기를 나눴다.

   

   허나 그들이 식사를 끝마칠 때까지 루시 알른은 바깥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들이 식사를 끝마치고 다시금 던전 입구로 돌아올 때까지도 루시 알른의 이름은 던전 99층에 고정되어 있을 뿐이었다.

   

   그를 보고서 아서가 고개를 갸웃거릴 무렵 조이가 근처에 있는 영애에게 루시의 이름이 언제부터 저기에 있었냐고 물었다.

   

   질문의 대상이 된 럼리 가문의 영애가 눈을 끔뻑이다 대충 두 세시간 된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하자 그 옆에 있던 남학생이 그녀의 말을 정정했다.

   

   “정확하게 두 시간 이십분 째 99층에 붙박혀 있습니다. 무언가 문제가 생긴 걸 테죠.”

   

   남학생의 이야기를 들은 네 사람은 서로 말없이 시선을 맞추고는 다시금 던전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아직 그들과 루시 알른의 내기는 끝나지 않았다.

   

   *

   

   아카데미 던전의 99층.

   

   하루 만에 던전을 공략할 기세로 내달리던 나는 맨 마지막을 앞에 두고서 벽에 가로 막혀 버렸다.

   

   뭐가 문제냐고?

   

   몬스터가 도저히 상대하지 못할 만큼 강한 건 아냐.

   

   아카데미의 모든 학생들이 공략할 수 있어야한다는 게 이 던전의 모토인데 나조차 감당하지 못할 만한 게 있을 리 없잖아.

   

   기믹을 모르겠는 것도 아냐.

   

   아카데미의 교수들이 지닌 창의력이 아무리 뛰어나봐야 결국 걔네들도 게임 속 NPC인 걸.

   

   게임 바깥에서 온갖 억까를 극복하던 나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지.

   

   그럼 뭐가 문제냐고?

   

   간단해.

   

   99층.

   

   이 개같은 장소는 4인 파티가 아니면 공략할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단 말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수님들은 조별과제를 좋아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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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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