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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23

   도둑의 신.

   갑자기 신들이 준비한 문 너머에서 등장한 그녀를 보고, 크라슈는 멍한 얼굴을 하였다.

     

   그도 그럴 게 여기서 도둑의 신과 마주할 거라고는 전혀 상상 못 했으니까.

     

   “네가 왜.”

     

   거기서 나오냐고 크라슈가 질문하자 그녀가 몸을 마저 빼내었다.

     

   [ 알려주러 왔어. ]

     

   그 순간 크라슈의 머릿속에 직접 그녀의 목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언령, 전쟁의 신이 사용한 것과 같은 기술이다.

     

   “알려주러 왔다니. 무엇을?”

     

   크라슈가 되묻자, 그녀는 주위를 가볍게 훑었다.

   신들은 인간들에게 패배하고 하나둘 무너지고 있었다.

     

   길지 않은 시간 안에 신들은 전부 패배하겠지.

     

   [ 상황이 이러니 빠르게 말해 줄게. ]

     

   신들이 중간계에 현현한 시점.

   이 시점이야말로 신들의 눈을 가장 피할 기회다.

     

   그들도 중간계 개입을 마치고, 돌아가려면 시간이 걸리니까.

     

   [ 신들은 이 세계에 현현함으로써 균형을 부수려 했어. ]

   “균형이라면.”

   [ 세계 침식의 분포가 높아질수록 신들은 자신의 힘을 중간계에 더 많이 개입할 수 있으니까. ]

     

   크라슈는 뒤늦게 금역이 종식되고, 신들이 부여하던 스킬의 수가 줄었다는 걸 떠올렸다.

   설마 그게 세계 침식과 연관 되어 있었을 줄이야.

     

   [ 세계 침식의 다른 세계의 힘이니까. 신 또한 그 틈을 파고들어 중간계에 개입할 수 있었어. ]

     

   하지만 크라슈로 인해 세계 침식의 분포율은 극단적으로 줄어들고 말았다.

   그 결과, 신들은 더는 중간계에 힘을 과시할 수 없어졌다.

     

   ‘스킬을 부여한 대가로 인간의 사후에 받게 되는 재능.’

     

   이러한 재능은 신의 성장을 위한 먹이다.

   신들로서는 애가 탔겠지.

     

   자신들의 먹이 저장소인 중간계가 갑자기 문을 닫아 버렸으니까.

     

   그렇다면 신들이 할 것은 단 하나.

   닫힌 문을 억지로 다시 여는 수밖에 없다.

     

   [ 이 문은 묵시록의 4기사를 불러내는 문이야. ]

     

   크라슈의 눈이 부릅떠졌다.

   이 미치광이 신 놈들은 자신들이 중간계에 개입하기 위해 묵시록의 4기사까지 불러 세계 침식률을 높이려 했다.

     

   오롯이 자기 욕심만을 위해서.

     

   분노가 치밀었다.

   신이란 것들은 원래 상종할 놈들이 아니라고 생각하긴 했으나.

   진실을 알게 되니 상상 이상으로 끔찍한 족속이었다.

     

   “이 새끼들이.”

     

   크라슈가 대놓고 분노를 드러내자, 도둑의 신은 문을 두 번 두드렸다.

     

   [ 묵시록의 4기사는 이 문으로 넘어오지 않을 거야. 내가 막아 놓았으니까. ]

     

   그나마 다행인 이야기다.

   묵시록의 4기사의 끔찍함은 크라슈도 잘 알고 있으니까.

     

   [ 대신, 오늘 일이 있었다 해도 신들은 멈추지 않겠지. ]

     

   자신들의 욕심만으로 살아가는 신들이다.

   그들은 앞으로 무슨 짓을 해서라도 중간계에 개입할 방법을 찾으려 할 것이다.

     

   크라슈의 얼굴이 확 찌푸려졌다.

   크라슈 또한 신들이 쉽게 포기하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었다.

     

   [ 그건, 내가 막아줄 수 있어. ]

     

   그리고 크라슈의 시선이 도둑의 신에게 닿았다.

     

   [ 그리고 그건 네가 도와줘야만 해. ]

     

   도둑의 신은 천천히 웃었다.

   그 웃음에서 크라슈는 어째선가 다른 신들에게서 받은 기분과 같은 걸 느꼈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이라도 가리지 않는 욕망.

     

   그 욕망이 그녀의 눈동자 속에서 느껴졌다.

     

   ‘이제 알겠네.’

     

   도둑의 신이 지금껏 크라슈에게 무상으로 블랙 후드를 주고, 도와줬던 일.

   그 모든 것들이 오늘을 위해서였음을 말이다.

     

   이건, 거래다.

   그리고 후원을 해준 후원자가 이제는 거래를 이행하라고 크라슈를 바라보고 있었다.

     

   “잠깐만요.”

     

   그러자 아서가 이야기의 흐름이 위험하다고 느꼈는지 나섰다.

     

   “당신도 같은 신이잖아요. 무얼 믿죠?”

     

   아서의 질문에 도둑의 신은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였다.

     

   [ 믿음은 중요하지 않아. 다른 게 중요하지. ]

   “하.”

     

   그 말을 들은 크라슈가 경쾌하게 웃었다.

   크라슈는 자신의 앞을 막아섰던 아서를 지나쳤다.

     

   “그 말대로네.”

     

   도둑의 신과 크라슈에게는 믿음이라는 관계는 없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믿을만하다.

     

   정당한 대가를 내고, 거래한 이상.

   서로가 서로에게 원하는 것을 확실하게 줄 수 있을 테니까.

     

   “도둑의 신.”

     

   크라슈는 여전히 이름조차 모르는 그녀를 불렀다.

     

   “네 목적은 무엇이지.”

     

   크라슈의 질문을 들은 그녀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 신계와 중간계. ]

     

   그리고 그녀가 크라슈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 두 세계의 완전한 분리. ]

     

   신계는 더는 중간계에 개입하지 못하고, 중간계는 신계의 영향을 받지 않는 세계.

   크라슈는 지난날, 도둑의 신에 관해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그녀는 신들의 힘마저도 훔치고 다니는 신이라 하였다.

   세계에 일어난 1차 라그나로크에서 모든 신의 힘을 빼앗고, 신계에 올라가서도 같은 짓을 반복했던 그녀.

     

   ‘신계와 중간계가 완전히 분리된다면.’

     

   신들은 더 이상 성장할 수단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렇다면 그곳에서 유일하게 성장할 수 있는 이는 누구인가.

     

   ‘도둑의 신, 본인.’

     

   어렴풋이 크라슈는 그녀의 욕망이 향하는 방향을 눈치챘다.

   어쩌면 그녀는 생각보다 더한 것을 목표로 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나는 무엇을 하면 되지.”

     

   하지만 크라슈에게는 하나도 나쁠 거 없는 이야기였다.

   신들의 위협이 없어진다면 중간계는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아도 된다.

     

   그 시점에서 도둑 신의 목적은 크라슈의 목적과도 일치했다.

     

   충분히 도울만한 가치가 있었다.

     

   [ 세상의 중심. ]

     

   도둑의 신은 어느 한 방향을 가리켰다.

     

   [ 그곳에 신들이 중간계로 직접 강림하기 위해 길지 않은 시간에 하계문을 열 거야. ]

     

   신들의 직접 강림.

   계약자의 몸에 빙의해 현현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스케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큰 혼란을 초래할지 크라슈는 모르지 않았다.

     

   [ 그 문을 승계문으로 바꿔줄게. ]

     

   크라슈의 눈이 뜨여졌다.

   그녀의 계획이 무엇인지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 문을 타고, 신계로 오라 이거냐.”

   [ 맞아. ]

     

   간단히 대답했지만 절대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걸 타고 올라갔다간 크라슈에게 원한을 가진 신들이 어떤 짓을 할지 모르니까.

     

   신과 직접 싸워야 할 것이다.

     

   [ 하계문을 탈 수 있는 신은 하급 신들이야. ]

     

   중간계에는 상급신들은 법칙에 따라 깊숙이 관여할 수 없다.

     

   하물며 직접 강림이라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그런 짓을 했다간 상급신들도 오히려 피해를 본다.

     

   [ 지금의 너라면 하급 신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어. ]

     

   하계문에 대기하고 있을 하급 신들.

   그들을 도리어 사냥하라고, 도둑의 신은 말해왔다.

     

   “크라슈, 기다려. 터무니없는 짓이야.”

     

   이대로 신계로 갔다간 크라슈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더는 크라슈를 잃을 생각 없는 아서가 서둘러 그를 막아서려 하자 크라슈는 손을 들었다.

     

   “아서, 이 세계는 나와 너, 그리고 수많은 사람이 지켜낸 결과물이야.”

     

   아서가 수많은 회차를 반복했음에도 도달할 수 없었던 회차.

   그것이 바로 지금의 회차다.

     

   아서가 몸을 움찔거렸다.

   크라슈의 눈에 깃든 진심은 같은 회귀자였기에 더더욱 막아설 수 없었다.

     

   “나는 이 세계를 절대로 잃을 생각 없다.”

     

   이 세계는 크라슈가 그간 해온 노력의 결과물이다.

   그런 결과물이 위협받고 있는데 참을 수 있는가.

     

   크라슈는 그런 참을성 좋은 성격은 못 된다.

   그리고 그렇기에 오늘날까지 맞서왔다.

     

   “신계로 간다.”

     

   크라슈가 의사를 전하자, 도둑의 신은 이만 떠나고자 문 너머로 몸을 돌렸다.

     

   “기다려. 하나만 묻자.”

     

   크라슈는 그런 그녀를 잡아 세웠다.

     

   “넌 이름이 대체 뭐냐.”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했던 그녀의 이름.

   그 이름을 듣고자 물음을 던지자, 그녀는 크라슈를 힐끗 보고는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 직접 훔쳐봐. ]

     

   그것을 끝으로 도둑의 신은 문 너머로 사라지고 말았다.

     

   직접 훔치라니.

   그녀답다면 그녀다운 이야기였다.

     

   도둑의 신이 사라지자, 문은 완전히 그 빛이 꺼졌다.

     

   조만간 있을 승계문.

   그곳을 타고 올라가면 신계로 갈 수 있다.

     

   “크라슈, 너 정말로.”

     

   아서가 여러 생각이 깃든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숨을 내쉬었다.

     

   “갈 거라면 같이 가.”

     

   크라슈가 아서를 돌아봤다.

     

   “네 입으로 직접 위험하다면서.”

   “하다못해 둘이 가면 덜 위험할 테니까.”

     

   무슨 논리인지.

   하지만 아서는 조금도 의견을 굽힐 생각이 없어 보였다.

     

   크라슈가 갈 거라면 무조건 따라가겠다는 의사가 느껴졌다.

     

   아서의 고집은 크라슈도 잘 안다.

   이건, 어지간해서는 꺾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처음에 신계에 가자고 했던 건 크라슈 너니까.”

     

   그때는 상황이 좀 다르지 않았나 싶은데.

     

   “그리고 나도 준비해 올 거야.”

     

   승계문이 열릴 때까지.

   아서는 자기가 아는 회귀의 정보를 이용해 준비해 올 것임을 알렸다.

     

   회귀 전 아서는 묵시록의 4기사와도 맞설 만큼 강인했다.

   만약, 그 정도로 강해질 수 있다면 확실히 걱정할 건 없겠지.

     

   “알았어.”

     

   결국 크라슈는 아서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혼자보다는 둘이 낫다는 말도 있으니까.

     

   무엇보다 아서의 전력은 확실히 믿을만했다.

     

   쿠웅!

     

   그러는 순간 드디어 마지막 신이 쓰러졌다.

   크라슈는 그 광경을 눈으로 확인하고, 승리를 기뻐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제2의 라그나로크.

   신들의 현현을 오직 인간의 힘만으로 이겨낸 것이다.

     

   기뻐하는 그들을 보며 크라슈는 손을 들어 아서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보다 먼저 챙길 건 챙겨야지.”

     

   세상을 어지럽혔던 신들을 드디어 몰아냈다.

   승리의 기쁨을 조금은 다 같이 나눠도 되지 않겠는가.

     

   “정작, 크라슈, 넌 쉬지도 못할 거잖아.”

     

   아서가 쏘아보자, 크라슈는 멋쩍게 웃었다.

   크라슈는 쓰러트린 신들에게서 스킬을 완전히 빼앗아야 한다.

     

   그러려면 못해도 오늘 하루는 쉬지도 못한 채 고생하게 되리라.

     

   하지만 크라슈는 아랑곳하지 않고, 팔을 걷었다.

     

   “할 건 해야지.”

     

   승계문이 열릴 때까지 남은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그때까지 신들과 대적할 수 있을 만한 힘을 만들어 내야만 한다.

     

   “승계문이 열리는 그날, 보자.”

     

   크라슈는 아서에게 씩하니 웃으며 인사해 보였다.

   그런 크라슈를 달갑지 않은 눈으로 보던 아서는 금발을 휘날린 채 몸을 돌렸다.

     

   “나중에 만났을 때 무리한 꼴로 오지 마.”

     

   누가 할 소리인지 모르겠다.

     

   “아, 하긴, 그런 꼴로 올 일은 없긴 하겠네.”

     

   그러다 크라슈는 아서가 어느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는 크라슈가 잘 아는 얼굴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가 잘 아는 얼굴들은 다름 아닌 아내들이었다.

     

   크라슈가 움찔거렸다.

   그녀들의 눈이 아서와 함께 있는 크라슈에게 조용히 향해 있었다.

     

   “크라슈 님?”

     

   비앙카가 설명을 요구하며 짧게 웃었다.

   그 웃음을 바라보던 크라슈는 뒷목을 잠시 눌렀다.

     

   승계문을 조금 더 빨리 열어줘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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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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