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424

       샤를로트는 그날 바로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야 당연한 일이다. 식사 자리에는 아이들이 모두 같이 있었으니까.

        

       사실 식사 자리뿐만이 아니라 우리는 거의 언제나 함께 행동했다. 방에 혼자 있을 때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보통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은 거실이었다.

        

       다 같이 이불 깔고 뒹굴거리며 TV를 보고 있는데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심지어 샤를로트는 자기가 나를 신경 쓰고 있다는 것조차 조금도 티 내지 않았다. 이 자리에 있는 아이들 모두 한 눈치 하는 아이들이다. 나를 흘끗흘끗 쳐다봤다면 다들 금방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래서, 샤를로트가 나에게 그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은 바로 그다음 날이었다.

        

       “샤를로트, 짜장면이랑 짬뽕 중에서 뭘로—”

        

       “잠깐 이야기 좀 해요, 우리.”

        

       중국집에 배달시키기 전 메뉴를 물어보려고 방문을 열었던 나는 그대로 샤를로트에게 잡혀 방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무슨 벽장 괴물이 어린애 잡아가는 것 같은 분위기. 물론 잡혀가는 쪽은 나였지만.

        

       탁.

        

       문이 닫히고—

        

       “……그거, 일부러 그런 거죠?”

        

       “오늘 점심을 중국집으로 정한 것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원치 않으신다면 다른 것으로 골라드릴 수도 있습니다만.”

        

       “…….”

        

       샤를로트가 나를 살짝 노려보길래 나는 더 장난하는 것은 위험하겠다고 판단했다.

        

       “일부러 그런 것이기는 합니다.”

        

       나는 순순히 인정했다.

        

       “어째서죠? 역시 절 놀리고 싶은 건가요?”

        

       그야 당연히 놀리고 싶지. 컨셉질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컨셉을 벗겨내는 거야말로 묘미가 아니겠는가.

        

       내가 당했던 것처럼.

        

       ……절대로 그게 억울해서 그러는 건 아니다.

        

       “딱히 놀리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물론 그렇다고 그걸 진짜로 말할 수는 없었다. 안 그래도 샤를로트는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나를 보고 있었으니까.

        

       “저는 그저, 여기서는 그냥 마음 놓고 지내보는 것이 어떨까 싶었을 뿐입니다.”

        

       샤를로트가 입을 열려고 해서, 나는 손을 살짝 들어 보이며 계속 설명했다.

        

       “물론 당신이 이곳에 있는 타국 황족과 귀족들에게 나름대로 체면을 차리고 싶다는 것은 이해하고 있습니다.”

        

       아카데미에서부터 얼굴을 알고 지냈다는 사실 때문에 종종 잊고는 했지만, 샤를로트는 외국인이다. 여기서 사는 나머지 네 사람과는 국적이 다르다는 소리다.

        

       아무리 친구처럼 지낸다고 해도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고, 다 같이 음식을 정해도 혼자 식성이 안 맞을 수 있다는 소리였다. 물론 아직은 샤를로트가 대놓고 그런 기미를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마 샤를로트가 우리 앞에서까지 최소한의 가면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런 벽도 한몫할 거다.

        

       저쪽 세상에서 나한테 친구라고 수줍게 말하긴 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누구에게나 완벽하게 솔직해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역시, 이 경우에도 내 인터넷 속 흑역사를 들켜버린 점이 매우 억울하게 느껴졌지만, 굳이 그걸 짚고 넘어가지는 않기로 했다.

        

       “그러니, ‘남들 모르게’ 솔직해지는 겁니다.”

        

       “……남들 모르게요?”

        

       좋아.

        

       샤를로트가 조금씩 넘어오고 있었다.

        

       “공주 복장, 입고 싶으시죠?”

        

       “저는—”

        

       샤를로트가 나의 말에 얼굴을 붉히며 황급히 입을 여는 순간—

        

       찰칵.

        

       문이 살짝 열려서, 우리는 동시에 입을 다물고 문 쪽을 보았다.

        

       열린 문틈으로 미아의 얼굴이 살짝 보였다.

        

       “어…… 혹시 중요한 이야기 하고 계셨나요?”

        

       “아닙니다. 샤를로트가 메뉴를 고르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혹시 뭔가 추가하고 싶으신가요?”

        

       “아, 저, 그럼, 제 짜장면은 곱빼기로, 괜찮을까요?”

        

       문을 살살 열고 몸을 안으로 들이밀면서 미아가 환한 얼굴로 말했다.

        

       “물론입니다.”

        

       나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스마트폰을 조작해 미아에게 보여주었다.

        

       “고마워요!”

        

       미아는 기분이 한껏 좋아진 채 다시 방문을 조심스럽게 닫았다.

        

       “…….”

        

       “…….”

        

       문 너머로 미아의 발소리가 멀어지는 것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저는 그런 적 없어요!”

        

       샤를로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분명히 마법 소녀 복장을 몸에 대보고 있지 않으셨습니까?”

        

       “이, 입어볼 생각은 없었다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샤를로트의 목소리는 거의 비명이었다. 물론 목소리는 최대한 낮춰서 문밖까지 들리지는 않았겠지만.

        

       “제가 말했던 행사가 어느 행사인지는 알고 계십니까?”

        

       “알고 있어요. 어젯밤에 검색해봤으니까.”

        

       샤를로트는 조금 화가 난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꺼내 나의 눈앞에 보여주었다.

        

       그곳에는 다양한 사진들이 있었다. 행사장을 배경으로 온갖 색깔의 가발을 쓰고 캐릭터 복장을 한 채 포즈를 잡은 사람들이나, 입구에 길게 줄 서 있는 사람들.

        

       “이,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그런 복장을……!”

        

       “그건 조금 이상한 말씀입니다만.”

        

       나는 조금 정색하면서 말했다.

        

       “혹시 지금 그 사진 속의 사람들이 이상한 복장을 하고 있다는 뜻입니까?”

        

       “그건 아니지만……!”

        

       “그리고, 저희는 이미 그런 복장을 하고 방송까지 진행했었습니다만.”

        

       “그건 사람들의 얼굴이 보이는 건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심지어 저는 그 복장을 하고 매우 민망한 춤까지 췄습니다만, 저를 그런 눈으로 보고 계시는 줄은 몰랐습니다. 친구로서, 정말 슬픕니다.”

        

       “…….”

        

       샤를로트의 눈이 다시 가늘어졌다.

        

       어라.

        

       “……마지막에 그 친구로서 슬프다는 말은 하지 않는 편이 저를 속이기에 더 좋지 않았을까요.”

        

       역시 정치적인 집안에서 자라온 진짜 왕녀다운 판단력이었다.

        

       나는 얼굴에 짓고 있던 슬픈 표정을 싹 지우면서 말했다.

        

       “아무튼, 오히려 이런 곳이기에 별다른 걱정 없이 코스프레가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변명할 생각도 하지 않네요. 뻔뻔하기도 하셔라.”

        

       “공주 복장, 정말로 입어 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

        

       샤를로트의 말을 말끔하게 무시하고 다시 물어보자, 샤를로트는 입을 다문 채 조금 생각하는 표정이 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샤를로트의 편입니다. 어차피 그곳에 가면 저희도 그런 복장이 될 거고요. 누구도 당신이 그런 것을 동경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할 거고, 설령 안다고 해도 저쪽 세상에서 아무 데서나 떠들 생각은 없습니다.”

        

       “그건…… 알고 있어요.”

        

       “그렇다면, 여기서는 정말 누구 신경도 쓰지 않고 편하게 지내다가 돌아가는 것은 어떨지요. 어린 시절부터 엄격한 집안에서 자라온 사람들이라면 더없이 훌륭한 기회가 아닙니까. 앨리스를 보시죠.”

        

       아무리 봐도 칠칠맞은 취미가 생긴 앨리스를 떠올리고, 샤를로트의 표정이 미묘하게 풀렸다. 말하자면 조금 현자 타임이 온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리고?”

        

       “오늘 점심 뭐 드실지 아직 안 고르셨습니다.”

        

       내가 샤를로트에게 그렇게 말하며 스마트폰을 건네자, 샤를로트는 결국 피식 웃고 말았다.

        

       *

        

       샤를로트가 아무리 프라이드가 높아도, 이런 상황에서 혼자 거부하는 것이 산통을 깨버리는 행위라는 건 잘 알고 있다. 아니, 오히려 남들 눈치를 보면서 자라온 아이였으니 더 확실하게 느끼고 있으리라.

        

       나의 주장대로, 샤를로트는 결국 못이기는 척 코스튬을 골랐다.

        

       그리고 그 코스튬은, 어떤 엄청나게 유명한 만화영화 속의 공주였다.

        

       요술 지팡이를 들고 마법을 부리는, 푸른 드레스를 입은 공주님.

        

       “오!”

        

       그리고 클레어는 샤를로트가 그 복장을 하고 나온 것을 보고 눈을 반짝였다.

        

       “일부러 그 공주로 고른 거야?”

        

       우리가 집에서 영화나 만화를 볼 때마다 가장 즐겁게 즐기는 클레어였기에, 그 분장이 누구의 분장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은발인 공주 캐릭터였다. 샤를로트와 똑같은 색의 은발.

        

       “무, 물론이죠.”

        

       샤를로트는 클레어에게 말했다.

        

       “이 공주가 저와 머리카락 색이 같으니까요. 굳이 분장한다면 최대한 비슷한 인물로 분장하는 쪽이 낫지 않겠어요?”

        

       그리고 그럴싸한 변명을 했다.

        

       “그러게. 정말 잘 어울린다.”

        

       클레어가 그렇게 말하자, 앨리스와 미아도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영어만 배우면 실사 영화 주인공으로 나와도 되겠네요.”

        

       “그, 그렇게까지 잘 어울리는 건 아니에요.”

        

       진짜 공주라는 점에서 정말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하는데. 물론 영화 촬영이라면 아무리 짧아도 몇 개월은 촬영해야 할 테니 다른 세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우리로서는 조금 그렇긴 했다.

        

       본인이 진짜 출연할 생각은 없어 보이니 뭐 상관없으려나.

        

       “어울린다니 다행이네요. 저는 다시 갈아입고 나올게요. 아무리 그래도 오늘 이러고 계속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샤를로트는 그렇게 말하고는 방으로 다시 들어갔다.

        

       “샤를로트가 좋아해서 다행이다. 그렇지?”

        

       “그렇습니다.”

        

       클레어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만화를 엄청나게 감명 깊게 본 것 같더라. 다른 영화를 볼 때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였다고 해야 하나.”

        

       클레어가 즐겁게 말하는 것을 듣고, 나는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뭐, 나만큼 정확하게 아는 것은 아니지만,

        

       샤를로트, 이미 다 들켜버린 것 같습니다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