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424

        

       죽음은 모든 것에 편견 없이 찾아오는 것.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던 나무도 언젠가는 썩어가는 고목이 되고, 드높이 솟아있던 바위산은 깎고 깎여 모래와 자갈로 변한다. 공포의 대상이 되었던 맹수는 송곳니와 가죽을 남긴 채 목숨이 스러지게 되며, 모든 것을 활활 태우며 번져나가던 불꽃도 언젠가는 꺼져나가고 그 자리에 시체와 같이 잿더미를 남기고 사라진다.

         

       탄생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이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한 반드시 맞이해야 할 말로라.

         

       그것은 기나긴 여정이 끝을 맺었음을 알리는 것이며, 숨 가쁘게 달려오는 것을 멈추고 영원한 휴식을 취해야 할 때가 왔음을 알리는 것이로다.

         

       이것은 법칙이다.

         

       그 누구도 어길 수 없는 지엄한 법칙이다.

         

       가장 현명했던 사람도 구더기의 먹이가 되고, 가장 용맹했던 사람은 땅속에 묻히게 되리니.

       재주가 있다고 한들 죽음을 회피할 수는 없고, 유예한다 한들 그것을 막을 수는 없다.

         

       생명도.

       무생물도.

       저 하늘에 반짝이는 별조차도.

         

       그들은 태어나고, 스러진다.

         

       그렇기에 받아들여야만 한다.

         

       죽음이라는 끝을.

         

       그런데 죽음을 얌전히 받아들이게 되면 필연적으로 의문이 솟아오르게 된다.

         

       죽음 이후에는 무엇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죽음.

       죽음이 끝인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데…그 죽음의 뒤에는 무엇이 있는가.

       새까만 어둠과 썩어가는 시체, 그 너머엔 과연 무엇이 있는가.

         

       “우드밤 착슈르바루나 수프라티캄 데바요레티.”

         

       세상은 이리도 밝은데 필멸하는 모든 것들은 반드시 어둠 속에 잠기게 되느니.

       그것을 보며 우리는 세상 모든 것이 영원할 수 없음을 깨닫고, 불멸하지 않음을 자연스럽게 인정하며 살아간다. 그렇게 살아가고 또 살아가며, 마침내 오지 않았으면 하는 죽음을 마침내 받아들인다.

         

       이는 여정이다.

         

       모든 이들이 겪는 여정이다.

         

       “수르야스탄반.”

         

       하지만 그 여정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알아도 되지 않겠는가.

         

       그저 휴식을 취하는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여정이 있는 것인지.

       온갖 종교에서 말하는 새로운 세상이 기다리고 있는지.

         

       “아비 요 비스바 부바나니.”

         

       이는 호기심이다.

       미지를 탐구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에 몸을 맡기는 일이다.

       그리고 마땅히 알아내야 할 지식을 찾아 나서는 여정이며, 새까만 어둠 속을 개척해 인류의 지평을 넓히기 위한 모험이다.

         

       그리하여 호기심에 몸을 맡기고 나아가는 이들이 생겨났으매.

         

       사람들은 그들을 수행자, 혹은 구도자라고 불렀으며.

         

       “차쉬테 사 만윰 마르트에쉬바 치케타.”

         

       그들이 귀신을 연구하여 죽음 이후의 것을 연구하는 것을 보고 이름 붙이기를.

         

       강령술사(降靈術師)라 하였도다.

         

       “우드밤 착슈르바루나 수프라티캄 데바요레티 수르야스탄반 아비 요 비스바 부바나니 차쉬테 사 만윰 마르트예쉬바 치케타. 아비 요 비스바 부바나니 차쉬테 사 만윰 마르트예쉬바 치케타.”

         

       그리고 이곳에 강령술사가 자리를 잡았다.

       이 작달막한 섬의 구석진 곳에, 깡마른 강령술사가 자리를 잡았다.

         

       귀신을 망토처럼 둘러 햇살로부터 몸을 감췄고.

       구깃구깃 접힌 악귀를 잘 펴서 의자로 삼고 침대로 삼아 거처를 만들었으며.

       죽은 이들이 남기는 것으로 만든 물품들을 몸에 주렁주렁 걸친 채, 어두컴컴한 곳에서 자리 잡은 채 그렇게 이곳에 있다.

         

       “아비 요 비스바 부바나니 차쉬테 사 만윰 마르트예쉬바 치케타.”

         

       강령술사는 흔들흔들 움직인다.

       짠 내가 섞여 있는 바닷바람에 휘청휘청 휘청휘청. 갈대가 흔들리는 것처럼 그렇게 몸을 슬쩍슬쩍 흔들며 그 자리에 앉아 있다. 광택과 윤기가 없는 새까만 피부를 지닌 채, 중간중간 입을 헤 벌려 듬성듬성 빠져 있는 치아를 드러내며 그렇게 그는 웃음을 짓는다.

         

         

         

        * * *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배는 마침내 목적지에 도달했다.

         

       한국의 배와 일본의 배는 거의 같은 시간에 독도에 도착하였으며,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서 그렇게 독도로 발을 디뎠다.

         

       한국 사람들은 섬 전체에서 느껴지는 찌릿하고 음울한 기운에 섬찟함을 느끼며 긴장하였고, 일본 사람들 역시 악귀들이 숨어있을 만한 곳이 있나 경계하면서 배에서 내렸다.

         

       그들의 경계는 각 배에 실려 있던 퇴마용 주물이 설치되었음에도 계속되었다. 무인들은 악귀들에게서 다른 인원을 지키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자신의 무구를 들고 있었고, 언제든 튀어 나가 후려칠 수 있도록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하였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아무런 이변이 일어나지 않았다.

       배에 실려있는 장비가 전부 독도로 옮겨지고, 내린 인원들이 장비와 이능을 이용해 베이스캠프를 만들 때까지도 말이다.

         

       “아직 해가 떠 있으니 그런 걸까요?”

         

       “흐음. 정말 강력한 녀석들은 해가 떠 있어도 어느 정도 활동할 수 있긴 합니다만….”

         

       “그렇다면 이 시간에 보이거나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은, 그렇게 강한 녀석들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로군요?”

         

       “그럴…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속단은 이릅니다. 어딘가에 함정을 파고 기습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그냥 밤에 습격하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기다리고 있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너무나도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에 의문을 품은 사람들도 있었다.

         

       섬 전체에서 느껴지는 불길함은 언제 귀신이 튀어나와서 그들을 습격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인데, 이렇게 순조롭게 베이스캠프를 건설하고, 퇴마용 주물들을 설치하고, 마법사들이 장비를 이용해 보호막을 칠 수 있을 줄은 예상치 못했다.

         

       못해도 저 멀리서 바위를 던진다거나 떨어진 사람을 잡아가려는 시도 정도는 있을 줄 알았는데….

         

       기이하게도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하다못해, 시선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귀신들이 어딘가로 숨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아니, 어쩌면 숨은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숨었다면 이렇게 확연한 불길한 존재감이 느껴질 리가 없으니까.

         

       어쩌면 귀신들은 숨은 것이 아니라 몰려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막 섬에 발을 들인 싱싱한 인간보다도 훨씬 더 먹음직스러운 무언가를 맛보기 위해서….

         

       혹은….

         

         

         

        * * *

         

         

         

       “의외로 깔끔한데?”

         

       베이스캠프는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건설하고, 공동으로 사용하는 형태가 되었다.

         

       이번에 일어난 두 나라의 충돌이나, 역사적으로 두 나라가 사이가 좋지 않았음을 생각해본다면 따로 떨어지는 것이 나았을지도 모르지만…. 안타깝게도 이 두 나라는 반드시 한 숙소를 쓰고, 같이 움직여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이는 두 가지.

         

       하나는 그것이 훨씬 안전하기 때문이었다.

         

       귀신이 가장 먼저 노리는 것은 무리에서 떨어진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도움을 청할 수 없는 사람은 귀신에게 현혹당하거나 찢겨 죽을 가능성이 커지는 법.

         

       같은 이치로, 무리의 숫자가 적을수록 위험성이 커진다.

         

       그러니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는 한군데에 뭉쳐있는 것이 옳았다.

         

       그리고 두 번째는…이 정화 작전에 정치적 목적이 듬뿍 묻어 있었다는 것.

       한국과 일본은 세계에 ‘우리 두 나라 사이는 양호합니다. 아무 문제 없어요.’라고 광고하기를 원했다. 그것도 아주 노골적으로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화해의 분위기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두 나라 사람들이 ‘힘을 합쳐서’ 문제를 해결하는 장면이 아니겠는가.

         

       실제로 힘을 합치냐 안 합치냐, 기여도가 어느 정도 되냐까지 따질 생각은 없다.

         

       하지만 둘은 적어도 겉으로만큼은 힘을 합치는 것처럼 보여야만 했다.

         

       그래야만 미국이 끼어들어서 생긴 긴장감을 완화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덤으로 정신이 돌아버린 미국에 괜히 개입할만한 명분을 주지 않을 수도 있을 테고.

         

       이러한 의도에 따라 한국과 일본은 같은 곳에 머물게 되었다.

         

       하지만…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이들이 모이면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있었으니.

         

       툭.

         

       “아, 씨발! 눈 똑바로 뜨고 다녀!”

         

       “は? シバル?”

         

       그것은 바로 충돌이었다.

         

       얼마 전까지 전쟁 직전까지 갈 정도였던 두 나라 사람들이 같은 곳에 머물렀는데 일이 터지지 않을 리가 없지 않은가. 한국과 일본의 무인들은 어깨만 부딪쳐도 서로에게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싸움을 벌일 듯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했으며, 다른 사람들 역시 서로를 못마땅하게 바라보거나, 소리가 들릴 정도의 위치에서 대놓고 욕을 하면서 기분을 나쁘게 하는 등의 일을 벌였다.

         

       빈말로라도 좋은 분위기라고는 할 수 없었다.

         

       “서로의 전력도 알아보고, 작전도 공유하고 해야 하는데….”

         

       “흠. 저쪽에 학회에서 친분을 나눈 마법사가 있는데…. 이거 분위기가….”

         

       물론 이러한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학자에 가까운 성향 때문에 ‘국가’라는 틀에 크게 얽매이지 않는 마법사들이나, 한국 사람이든 일본 사람이든 상관없이 자기끼리만 뭉쳐있는 음양사, 반쯤 정신이 나가서 자기 귀신을 붙잡고 있는 영능력자 같은 사람들 말이다.

         

       그들은 무인이 주축이 되어 만드는 험악한 분위기를 못마땅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못마땅해할 뿐, 목소리를 높이려 하진 않았다.

         

       굳이 머리에 열이 오른 사람들 사이에 끼어들어 험한 꼴을 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하물며 그것이 ‘단순 무식하다’는 이미지가 있는 무인이라면 더더욱.

         

       그렇기에 그들은 누군가가 총대를 메고 나서기를 바라고 있었다.

         

       상황이 더 심각해져서 정말로 멱살을 잡거나 주먹이 오가기 전에 말이다.

         

       그리고 이들의 소망은 이루어졌다.

         

       정말로 누군가가 분위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나선 것이다.

         

       “여러분. 잠시 진정해주시지요.”

         

       이 험악한 분위기 속에 끼어들 정도로 용기 있는 자는 일본 쪽에서 나왔다.

         

       여우 가면을 쓴 채로.

         

       

         

       

       

    다음화 보기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