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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24

       한 나라의 공주로 태어났으나 연이은 외신의 습격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거대한 제국의 여왕이 된 베니는 오늘도 서류와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하늘에서 내린 기적처럼 찾아온 한 사람이 세계를 멸망해서 구원해준 것은 사실이다.

       

       그로 인해 대륙 각지의 사람들이 기쁨에 축제를 벌이고 있기도 하고.

       

       허나 베니는 거기에 끼어들지 않았다. 아직 처리해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았으니까.

       

       전쟁 과정에서 생겨난 물자 소모의 문제.

       

       황폐화 된 대지로 인해 부족해질 식량.

       

       많은 이들이 죽었기에 문제가 될 인력의 부족.

       

       빠르게 대처하지 않으면 커다란 재앙으로 돌아올 문제들이 한 가득이었기에 여유를 부릴 수가 없었다.

       

       아아.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너무 부족해.

       

       전선이 고착화 되는 와중에 유능한 사람들이 너무 많이 죽어버렸어.

       

       남아 있는 이들도 존재하지만 그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기엔 너무 업무가 과중하고.

       

       전체적으로 물자가 부족한 것도 문제다.

       

       모든 지역에 지원을 해주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어쩔 수 없이 몇몇 지역에 지원을 집중해야 하는데.

       

       하아. 일단 외신과의 최전선이었던 서부 쪽에 지원을 돌리는 것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고. 그와 동시에 비교적 여유로웠던 동부 쪽을 재건의 기반으로 삼자.

       

       그리고 나서 전체적으로 자원이 늘어나기 시작하면 그 때 다시.

       

       베니가 미간을 찌푸리면서 펜을 움직이던 순간 허공에 균열이 생겨났다.

       

       이전의 베니는 저를 보고서 다급히 전투를 준비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저 균열의 주인이 이 세상을 구원해준 이라는 것을 알기에 의자에서 일어나 예의를 갖출 채비를 했을 뿐.

       

       “안녕하십니까. 구원자시여.”

       “내 그런 낯간지러운 소리 좀 적당히 하라고 몇 번 이야기를 하더냐.”

       

       베니의 정중한 인사를 가볍게 털어낸 화령은 영혼이 빠져나간 듯한 파이스를 균열 너머에서 끌고 와선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던졌다.

       

       집무실 바닥을 나뒹구르던 파이스는 일어나는 대신 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울적한 목소리를 냈다.

       

       “파이스냥이는 이제 그만하고 싶다냐… 살려달라냐…”

       “진정해라. 이 놈아. 다 끝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이 난리를 피우는 게야.”

       “내 인생은 끝났다냐… 파이스냥이가 세상을 가득 채워 버릴거다냐… 이제 어디 방송만 나가면 파이스냥이를 해달라고 그럴거다냐아아아…”

       

       그 어떤 시련이 눈 앞에 닥쳐도 무너지지 않던 용사가 절망에 빠져 있는 모습은 베니에게 큰 충격을 선사했다.

       

       도대체 차원 저 너머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파이스가 저렇게 된 거죠!? 어떤 재앙을 상대했기에.

       

       “그으. 베니라고 했던가?”

       “네? 예. 맞습니다. 구원…”

       “화령이라고 해라.”

       “…화령님.”

       “재밌는 일이 있었다. 무척이나 재밌는 일이 말이야.”

       “재밌는 일을 겪었는데 왜 파이스가 이렇게 된 건가요?”

       “이 녀석의 굴욕을 담보로 모두에게 즐거움을 선사해 준 것이라서 말이다.”

       

       눈을 끔뻑이는 베니의 모습에 화령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파이스가 무슨 일을 겪은 건지 궁금하더냐?”

       “어어. 네. 궁금하긴 합니다. 제가 아는 파이스는 어지간한 일로 좌절할 사람이 아니거든요.”

       “하하하. 그것 참. 이 녀석을 무척 믿음직스럽게 생각하고 있구나.”

       “…그야. 오랫동안 전쟁을 함께한 동료인걸요.”

       

       베니가 얼굴을 살짝 붉히자 화령이 그녀의 머리를 툭툭 두드려주고는 자신의 주머니 안에서 정체 모를 물건을 하나 꺼냈다.

       

       한 손으로 쥘 수 있을만한 크기에 네모난 모양새를 갖춘 물체. 마력이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티팩트가 아닌 단순한 물건인 듯 한데.

       

       “백날 설명하는 것보다 한 번 보여주는 편이 낫지.”

       “…화령님!?”

       

       집무실에 오고 나서 처음으로 고개를 든 파이스는 그 네모난 물건을 보고서 경악어린 목소리를 냈다.

       

       저게 도대체 뭐기에? 처음 보는 물건에 베니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동안에도 파이스는 다급하게 목소리를 이었다.

       

       “아니죠? 지금 제가 생각하는 그거 아니죠!?”

       “네가 생각하는 그것이 뭔지는 모르겠다마는. 이 안에 그대의 굴욕이 담겨 있음은 분명할 것 같구나.”

       “이런 사악한! 당신이 그러고도 인간입니까!? 저를 낭떠러지로 밀어 넣으셨으면서 이젠 그 시체를 들고와 전시까지 하시겠다고요?!”

       “얼마 전부터 계속 인간이 맞느냐는 이야길 들어서 말이다. 어쩌면 본인은 인간의 마음을 모르는 듯 해.”

       

       두 사람이 무슨 일을 겪고 온 것인지 몰라 베니가 당황하는 동안에도 두 사람의 목소리는. 아니 정확하게는 파이스의 목소리만큼은 한층 더 거칠어지고 있었다.

       

       “아무리 화령님이라도 그것은 허락할 수 없습니다!”

       “호오. 허락할 수 없다면 어찌할테냐. 어디 한 번 본인을 막아볼 것이야?”

       “예. 막을 겁니다! 제 모든 걸 걸고서!”

       

       다소 비장한 목소리를 내어 보인 파이스는 이내 마력으로 스스로의 몸을 강화시켰다.

       

       과거의 용사가 조금도 쇠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리는 듯한 위엄어린 모습에 베니가 당혹을 표한다.

       

       파이스는 진심이야. 진심으로 화령님을 막으려고 하고 있어. 저 네모난 물건이 도대체 어떤 물건이기에 저렇게까지 격한 반응을 보이는 거지?!

       

       아니. 일단 그전에!

       

       “파이스! 여기에서 당신의 전력을 내버리면 곤란해요!”

       

       여기는 집무실이고 실내라고요!

       

       당신이 전력을 다해 힘을 펼치면 여기가 부서질지도 모른다고요!

       

       “파이스. 곤란하다 그러지 않으냐.”

       

       베니의 필사적인 외침에 동승하듯 화령이 앞으로 나서더니.

       

       “적당히 하거라.”

       

       파이스의 머리를 주먹으로 가볍게 내리쳤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 대단할 것 없는 후려침이었지만 그 일권이 낳은 결과는 달랐다.

       

       세상을 악신의 손에서 구원한 용사가.

       

       대륙의 역사에 남을 강자라 여겨졌던 파이스가.

       

       꿀밤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그 일권에 박살이 나버린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권에 의해 충격을 받은 것이 파이스 뿐이란 점이었다.

       

       진심을 다하던 파이스를 무너트린 일권이니만큼 주변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쳐야 정상일 터인데 그녀의 권은 오롯이 파이스에게 타격을 가했을 뿐 다른 곳에는 자그마한 상처조차 내지 않았다.

       

       저 몸 안에 얼마나 많은 역사를 쌓아야 저런 기행을 펼칠 수 있게 되는 걸까.

       

       한 번의 공방 속에서 베니가 새삼 화령이 지닌 경지를 마주하던 그 때에 화령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왔다.

       

       “자. 이리 오거라. 저 녀석도 조용하게 만들었으니 재미난 걸 보여주마.”

       “안…돼요… 베니… 그거…”

       

       …어. 정말 봐도 괜찮은 걸까?

       

       파이스가 저렇게까지 격하게 반응한다는 건 지금 화령님이 보여주는 것은 결코 봐선 안 될 거라는 거일 텐데?

       

       어쩌면 정신에 큰 영향을 끼치는 물건일지도 몰라.

       

       그렇지만 화령님의 배려를 무시할 수는 없어.

       

       대륙에서 최강의 영역에 도달했던 파이스를 저리도 말끔하게 제압하시는 분이 말하시는 걸 거절했다가 분노를 사게 된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대에게 해가 될 것은 아니니.”

       

       베니의 망설임을 눈치챈 것일까. 화령이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화령님. 그런 것이 아니라.”

       “괜찮다. 두려워하는 것도 이해하니. 다만 생각을 해보거라. 본인이 안 좋은 마음을 품고 행동을 했다면 이런 자잘한 수작질을 부릴 리 없지 않으냐.”

       

       그…것도 그렇네요. 외신을 쓰러트릴 정도로 강대한 힘을 지니신 분께서 악행을 하실 생각이셨다면 귀찮은 수작을 부릴 이유가 없으니까요.

       

       베니가 화령의 말에 납득하며 고개를 주억거리는 동안 화령이 네모난 물건을 만지작거렸다.

       

       그러자 물건의 검은 면에서 빛이 새나오더니 면에 그림이 새겨졌다.

       

       …이건 뭐지!? 마력이 움직이는 것이 전혀 보이지 않았거늘 검은 면에서 마법이 펼쳐지다니!

       

       이게 화령님과 파이스가 넘어온 세상의 기술력인가.

       

       그러고 보면 예전에 파이스가 자신이 살던 곳에선 마법이 없어도 마법과 같은 걸 할 수 있다 그랬었어.

       

       그 때는 농담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농담이 아니었던 건가?!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그리 놀라면 곤란하다.”

       

       화령의 웃음소리에 체통을 잃었단 걸 깨달은 베니가 다급히 표정을 가다듬었지만 그 표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파이스냥이다냥!”

       

       그녀의 눈 앞에 고양이귀를 단 파이스가 이상할 정도로 노출이 많은 메이드 복을 입고서 애교를 부리는 영상이 펼쳐졌기에.

       

       “안돼애애!”

       “…이건?”

       “말했잖으냐. 저 녀석의 굴욕으로 모두의 즐거움을 만들어냈다고. 이것이 바로 그 굴욕이니라.”

       

       *

       

       “…세상에 이 무슨 망측한.”

       

       베니는 파이스냥이의 영상을 보면서 망측하다느니. 품위가 없다느니. 사내가 해선 안 될 행동이라느니. 이야기를 했지만 정작 그 영상 속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녹아내리려는 입술을 억지로 붙잡은 채 화면을 노려보는 그 눈에는 누구라도 알 수 있을 선명한 욕망이 담겨 있었으니.

       

       적당히 몇 가지 부분만 보여주고 말 생각이었던 본인은 어느새 베니에게 스마트폰을 빼앗겨버리고 만 상태였다.

       

       ‘모에모에뀽!’

       “세상을 구원한 용사님께서 이런 복장을 입고 처음 본 여인네에게 애교를 부리다니!”

       “…베니. 감상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제발 입 밖으로 감상을 내뱉진 말아주시겠어요? 저 그럴 때마다 진짜로 죽고 싶어지거든요?”

       

       파이스가 진지하게 어떤 식으로 자살을 해야 편하게 죽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었을 무렵.

       

       뒤늦게나마 정신을 차린 베니가 헛기침과 함께 스마트폰을 돌려주었다.

       

       “보길 잘했지?”

       “그. 저어. 그러니까… 넵. 정말 감사합니다.”

       “혹여 영상을 기록할 수단이 있다면 이 화면을 기록하는 건 어떻느냐.”

       “화령님?!”

       “정말 그래도 괜찮을까요?! 잠시만요! 제가 수정구를!”

       “베니!? 당신까지!”

       “…아니. 아닙니다.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요. 영상을 기록했다간 계속 그것만 보고 있을 것 같아서.”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있는데 사적인 곳에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단 베니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어냐. 세계의 위기가 해결되었으니 조금 여유를 부려도 괜찮은 것 아니더냐?”

       “전선에서 고생해주신 분들은 그래도 괜찮지만. 전 모두를 책임져야하는 입장이니까요.”

       

       베니가 입밖으로 낸 것은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였다.

       

       길고도 긴 전쟁으로 인해 황폐화 된 대지. 바닥을 드러내는 물자. 수많은 인재의 소모. 본인이

       

       세상을 멸망에서 구원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세계는 위기로 가득 차 있었다.

       

       “힘들겠구나.”

       “그래도 해야죠. 그게 제 책임이니까.”

       

       본인 같은 바지사장이 아니라 진정한 위정자의 모습에 감탄하던 중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파이스.”

       “뭔가요. 이미 사회적으로 죽어버린 저에게 무슨 용무이신가요.”

       “그대가 희생해 준 덕분에 본인이 위기에서 벗어났으니 그대에게 자그마한 보답을 선사하마.”

       

       이 세상의 재건에 도움을 주도록 하겠다.

       

       본인과 본인 주변의 힘을 빌린다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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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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