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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25

       이런 곳은 정말 오랜만이다.

        

       단순히 사람이 많은 곳이라면 종종 가보았다. 사실, 출퇴근길 정도만 해도 사람은 치이도록 많았으니까.

        

       하지만 그런 곳은 가고 싶어서 가는 곳이 아니다. 지하철을 타더라도 짜증밖에 나지 않는다. 도착지에 도착해도 앉아서 별로 하고 싶지 않던 일이나 계속하고 있어야 하니까.

        

       하지만, 지금 우리가 가는 방향은 지하철을 사람이 가득 채우고 있지 않아도 여러모로 열정이 느껴졌다.

        

       나는 알고 있다. 지금 당장은 사람이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지만, 이 드문드문 자리에 앉아있고 서 있는 사람들 모두가 특정한 지하철역에서 모두 내릴 것이라는 걸.

        

       어린 시절에는 지하철 안에서부터 아예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사람도 있었는데, 아무래도 주변에서 곱게 보지 않는 사람들도 있고, 어째서인지 열차 안에서 당당하게 옷을 갈아입는 사람들도 있어서 ‘반드시 행사장 안에서 갈아입는 것’으로 바뀌었다던가.

        

       사실 오타쿠이면서도 코스프레와는 전혀 연관이 없는 삶을 살아서, 그 이유는 전혀 알지 못한다. 나는 평소에 여자한테 말도 제대로 못 걸어서 코스어들 사진도 제대로 찍어본 적 없고.

        

       그래도 코스프레용 표를 따로 사야 한다는 것은 알아서 다행인가.

        

       우리는 모두 각자 가방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안에는 물론 각자 입을 코스튬이 있었다. 모두 만화나 게임에 나온 옷들이다.

        

       사실 우리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캐릭터는 당연히 우리 각자의 이미지겠지만, 솔직히 그냥 평상복 입고 다니는 것보다는 이렇게 하는 쪽에 훨씬 덜 억울하지 않겠는가. 어차피 돈도 더 내는데.

        

       우리 주변에서는 우리에게 호기심 어린 시선이 조금씩 와닿고 있었다. 이 중에서 우리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캐릭터로서가 아니라 인터넷 방송인으로서 아는 사람이라던가.

        

       뭐, 그거야 코스프레 하고 나면 알 수 있겠지.

        

       “여기서 내립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며 몸을 일으키자 다른 아이들도 나를 따라 일어났다.

        

       그리고—

        

       “어.”

        

       클레어가 조금 놀란 듯한 소리를 냈다.

        

       우리뿐만이 아니라 자리에 앉아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타쿠, 라고는 하지만, 여름이 아니라면 그걸 분간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뭐, 안경 끼고 조금 살집이 있거나 비쩍 마른 사람들은 보이지만, 겨울에는 그냥 점퍼 하나 입어버리면 굳이 티가 나지 않으니까.

        

       그러니 그런 사람들 모두 내릴 준비를 하는 것이 조금 신기할 것이다.

        

       그리고.

        

       열차 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모두 우르르 내렸다.

        

       일부는 꽤 빠른 걸음으로, 일부는 거의 대놓고 뛰고 있었다.

        

       “와.”

        

       앨리스는 솔직하게 감탄했다.

        

       “여기 타고 있던 사람들 모두 우리와 같은 곳으로 가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나는 딱히 서두를 것도 없이 느긋하게 걸었다.

        

       입장 시작 한참 전에 왔는데도 이 정도다. 나는 참가할 때마다 최대한 빨리 출발해서 열차가 만원이 되는 것을 본 적은 없었지만, 듣기로는 조금 늦게 출발하면 꽉 찬 열차를 타고 와야 한다는 모양이었다.

        

       “어차피 급하게 가더라도 이미 늦었습니다. 사람들이 잔뜩 와서 줄 서 있을 테니까요.”

        

       “이 시간에요?”

        

       미아가 솔직하게 놀랐다.

        

       그렇다. 이건 나도 궁금한 건데, 대체 사람들은 언제부터 와서 줄을 서길래 그렇게 많이 모여있는 걸까? 내가 새벽 네 시에 친구들과 모여 출발한 적도 있었는데, 그때도 사람들은 이미 셀 수 없이 많이 모여있었다.

        

       일 년에 몇 번이나 있는 행사인데 설마 전날부터 와서 기다리는 사람이라도 있는 걸까.

        

       봄이나 가을이면 몰라도, 지금 같은 겨울이면 얼어 죽기 정말 좋은 선택일 것 같은데.

        

       역에서 나와 바로 근처에 붙어있는 행사장에 가자, 내 예상대로 이미 수많은 사람이 나와 줄 서 있었다. 이게 그냥 체감상 그런 건지 실제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어린 시절 봤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네 사람은 벌써 질렸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래도 기술이 많이 발전해서 다행이죠.”

        

       나는 솔직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스마트폰이나 게임기라도 있는 게 어디겠어요?”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에는 직접 책을 가지고 와야 했다고. 아니면 PMP 같은 걸 따로 들고 와야 했거나.

        

       “그래도 여럿이서 왔으니 시간은 생각보다 잘 갈 겁니다.”

        

       친구와 오려다가 다들 할 일이 있어 혼자 오게 되었을 때의 서러움을 너희들이 알겠니.

        

       ……말해봐야 나만 불쌍해질 것 같아, 그 말은 굳이 꺼내지 않았다.

        

       *

        

       생각해보면, 어릴 때는 이 행사에 참여하는 외국인을 그렇게 자주 보지는 못했던 것 같다.

        

       정말로 이런 컨텐츠를 좋아하는 외국인이 굳이 살고 싶은 나라를 고른다면 그곳은 일본일 가능성이 크지 않겠는가. 국내뿐만이 아니라 웬만한 오타쿠들은 다 아는 유명 서클들도 있고, 그런 서클들이 참석하는 행사도 여러 개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한국에서 거주하는 외국인 중 이런 컨텐츠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선택지가 그리 많지 않기도 했다.

        

       그리고 그때와 시대가 달라져 한국에서 거주하는 외국인도 많아졌기 때문인지, 아니면 지금 내 외모가 외국인이고 나와 함께 사는 애들도 사실상 외국인이라 그런지, 그때보다는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 사이사이에 외국인들이 조금 더 많이 보이는 것 같았다.

        

       하긴 이쪽도 시장이 꽤 커졌으니까.

        

       “……진짜 겨우 들어왔네.”

        

       “얄궂게도 우리는 옷 갈아입고 다시 나갈 예정입니다만.”

        

       숨을 내쉬며 중얼거리는 앨리스에게 그렇게 말했더니 앨리스가 나를 흘겨보았다.

        

       “힘이 쭉쭉 빠지니까 그런 얘기는 하지 마…….”

        

       “그래도 다시 들어오는 길에 서는 줄은 그렇게 길지는 않을 겁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고 나서야 앨리스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좋아, 그럼. 옷 갈아입고 여기서 다시 모일까?”

        

       앨리스의 말에, 우리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

        

       캐릭터를 하나의 작품이나 시리즈로 정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역시 그래서는 재미가 없을 것 같았다.

        

       각자 하고 싶은 코스프레를 해야 재미있지 않겠는가.

        

       우선, 내가 고른 코스튬은 샤를로트와 같이 역사 있는 애니메이션 회사의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공주였다.

        

       그래도 한 사람은 같은 시리즈의 코스프레를 해야 조금 덜 어색하지 않겠는가.

        

       검은 단발머리에 새하얀 피부를 가진 이 캐릭터는 모티브가 백설 공주라던가. 인상은 나보다 훨씬 부드러워 보였지만 뭐 상관없지 싶었다—

        

       “실비아, 조금은 웃어보는 것이 어떨까요?”

        

       —하지만 여기, 상관없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게 그렇게 중요합니까?”

        

       “그리고, 말투도 조금은 부드럽게 하는 게 좋겠어요.”

        

       “…….”

        

       “황녀이던 시절은 어쩔 수 없죠. 당신이 살아온 인생역정을 들어보면 그런 말투와 감정을 숨기는 태도를 보이는 것도 이해할 수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 황녀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공주를 연기하고 있는 거잖아요?”

        

       공식에서 정해준 코스프레가 아니라면 굳이 성격까지 맞출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자, 자, 얼른!”

        

       누가 봐도 엄청나게 신난 표정이다.

        

       옆에서 대화하는 우리 두 사람을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는 나머지 세 사람을 보고, 나는 내가 도망칠 구석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말없이 씩 웃어 보였다.

        

       “그렇게 이를 드러내고 웃으라는 게 아니에요.”

        

       아, 거, 엄청 까다롭네.

        

       “조금 더 자애롭게, 다른 사람이 보고 마음에 평안을 얻을만한 미소를 지어 보이도록 해요.”

        

       “그러는 샤를로트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있지 않습니까?”

        

       “그야 당연히 저는 그런 성격의 캐릭터가 아니니까 그렇죠.”

        

       샤를로트가 정색하고 말했다.

        

       “…….”

        

       그래.

        

       여기 데리고 온 사람은 나니까.

        

       솔직히 샤를로트가 숨기려는 기색을 조금만 더 보였어도 숨기는데 협조해주려고 했는데, 이렇게까지 대놓고 티를 내면 나도 어쩔 수 없었다.

        

       그냥 될 대로 되라지.

        

       내가 입을 닫고 입술로만 빙긋 웃어 보이자, 샤를로트는 그제야 만족한 듯 웃었다.

        

       *

        

       수많은 사람 앞에서 포즈를 잡고 서는 것은 생각보다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런 식으로 촬영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이미 봐서 알고 있었지만, 직접 겪어보는 것은 조금 이야기가 달랐다.

        

       몇 사람은 그것 말고도 개인적으로 말을 걸고 싶어 하는 것 같았지만, 그건 칼같이 잘라버렸다. 우리가 연예인인 것은 아니었지만 인터넷 방송하며 어느 정도 얼굴이 팔린 사람들이다. 괜히 이상한 쪽으로 꼬여서 이미지가 망가지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가장 인기 있는 상대는 아무래도 미아였다. 보라색 원피스라는 마법 소녀 복장이 매우 잘 어울렸기 때문이리라. 거기에 미아 자신의 표정이나 포즈도 마법소녀물을 훌륭하게 고증하고 있었고.

        

       앨리스는 어느 러브코미디물의 히로인 중 한 명이라는 것 같다.

        

       나는 앨리스가 만화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 보고 있었던 걸까?

        

       역시 피규어를 모으던 때부터 알아봤다니까.

        

       클레어는 그런 앨리스와 같은 만화에 나오는 또 다른 히로인. 생머리의 클레어는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사진은 찍힐 만큼 찍혔으니, 슬슬 들어가서 뭐가 있는지 좀 보도록 할까요.”

        

       “좋아요!”

        

       내 말에 샤를로트가 잔뜩 흥분해서 외쳤다.

        

       그 모습이 정말로 마법소녀물에 나오는 활기찬 여주인공 같아서, 나는 그만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았다.

        

       “그거에요, 실비아. 지금 잘하고 있어요.”

        

       …….

        

       샤를로트, 너무 흥분한 것 같은데.

        

       설마 나를 아예 동료로 끌어들여 버릴 생각인 걸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작중에서 나오는 ‘공주 캐릭터’는 저작권을 회피하기 위해 디●니와는 완전히 다른 별개의 회사에서 만들어진 별개의 캐릭터라는 설정입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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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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