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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25

        

         

       여우 가면을 쓴 남자는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앞에 나섰다.

         

       “일한 관계가 그리 좋지 않은 것은 저도 익히 알고 있습니다만,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란 걸 모두 잘 알고 있잖습니까?’

         

       그의 목소리는 기묘했다.

       동굴 속에서 울리는 듯한 목소리라고 해야 할까.

       어쩌면 한국어와 일본어가 동시에 나오고 있어서 그렇게 느끼는 걸지도 모른다.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이렇게 베이스캠프를 만들기는 했습니다만, 그만큼 우리는 더 주의를 해야 합니다. 밤에 악귀들이 사나운 공세를 할지도 모르니,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준비를 하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아티팩트일까?

       아니면 알려지지 않은 기계장치일까?

         

       여우 가면을 쓴 남자는 한국어와 일본어를 동시에 하고 있었다.

       딜레이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번역이 함께하는 걸까?

         

       남자는 마치 입이 두 개라도 달린 것처럼 일본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말하고 있었다.

       음성 두 개가 거의 겹쳐서 들리기 때문에 난잡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기괴하게 느껴지기도 했으나…. 적어도 두 언어 중 하나를 모국어로 삼고 있는 사람이라면 정신이 산만하기는 하지만 들을 수는 있는 수준인지라, 남자의 말을 알아듣는 것에는 큰 문제는 없었다.

         

       “….”

         

       “….”

         

       사람들은 앞에 나선 신관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한국어와 일본어가 동시에 나오고 있기에 과하게 집중했기에 이러한 모습을 보이는 것일 수도 있었고, 어쩌면 묘하게 사람을 홀리는 것 같은 목소리가 한국어와 일본어로 동시에 흘러나오자 그 분위기에 취해서 신관을 멍하니 바라보게 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과열되었던 분위기가 저 신관 덕분에 가라앉았다는 것.

       요사스러워 보이는 여우 가면만큼이나 요사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에 의해 금방이라도 멱살잡이를 할 것만 같았던 분위기가 해소되었다는 것이다.

         

       짝짝짝.

         

       “옳은 말씀입니다. 지금 대비를 해둬야 악귀의 위협에서 몸을 지킬 수 있겠죠.”

         

       그리고 신관의 이러한 말에 동의를 표하는 이가 있었으니.

         

       구석진 곳에 조용히 앉아 있던 젊은 남성이었다.

         

       명품 양복을 입고, 그 위에 치렁치렁한 장식이 달린 트렌치코트를 입고 있는 남성.

         

       박진성이었다.

         

       진성은 진정으로 감탄했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손뼉을 쳤다. 그 박수가 어찌나 거셌던지 바닥에 닿아있던 트렌치코트의 옷자락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바닥을 쓸어내리며 흙투성이가 되어갈 정도였다.

         

       하지만 진성은 그런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되려 이 정도는 되어야 사람들의 주의를 끌 수 있다는 듯, 한국과 일본 두 진영에게 주목받을 수 있다는 듯 강하게 손뼉을 부딪쳐 소리를 낼 뿐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신관의 말을 이었다.

         

       “여러분. 지금까지 순조롭기에 조금 방심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지금 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것은 악귀입니다. 출현하면 능력자들이 출동해야 하는 것은 물론, 그 강함에 따라 군대까지 동원되어야 하는 바로 그 악귀 말입니다.”

         

       진성은 사람들에게 경고했다.

         

       방심하지 말라고.

       우리가 싸워야 하는 것은 악귀라고.

         

       그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가라앉았던 경계심을 다시 위로 끌어올렸고, 머릿속에 경종을 울렸다.

         

       “악귀는 사람을 찢습니다. 사람을 잡아먹고, 사람을 토막을 냅니다. 그 강력함 때문에 몇몇 악귀는 요괴나 신으로 숭배받는 일도 있을 정도죠. 뭐, 이건…일본 분들이 더 잘 알거라 믿습니다.”

         

       악귀는 물리력이 통하는 존재다.

       하지만 물리력이 통한다고 해서 방심해도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도리어, 물리력에 얽매이는 만큼 강력한 힘을 가졌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아무리 약한 악귀라고 해도 어지간한 능력자의 힘 정도는 우습게 낼 수 있고, 정말로 강력한 악귀의 경우에는 능력자들이 떼거리로 덤벼도 상대하기 힘든 일도 있었다.

         

       검기를 씌워도 몸에 생채기만 나는 경우도 있었고, 몸을 토막을 내도 진흙처럼 녹아내린 뒤 다시 원상복구 되는 일도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시체를 갑옷처럼 두르거나, 시체를 재료로 몸을 키우는 일도 있기도 했다.

         

       당연하게도 이러한 악귀의 능력은 재앙 그 자체나 다름이 없었다.

         

       현대에 이르기 전, 종종 등장했던 악귀는 역사서 속에서 요괴나 악신, 악마 등으로 묘사되어 사람들에게 공포와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했을 정도다.

       총과 대포가 발명되고, 마침내 지구를 멸망시킬 수 있는 무기까지 발명된 지금에서야 이러한 악귀에 대한 공포가 많이 희석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악귀는 악귀.

       조심해서 나쁜 일은 없으리라.

         

       “게다가 여기 오기 전에 정보를 숙지하지 않았습니까? 이 악귀들이 물 위에서 둥둥 떠다니며 활동했다는 것을요. 그것만 보더라도 이 악귀들이 물귀신에서 시작된 악귀임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그들이 상대해야 하는 악귀는 그냥 평범한 악귀가 아니다.

         

       물귀신.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독하고 집요하고 악독하기 짝이 없는 귀신이다.

       한 번 노린 사냥감은 무슨 일이 있어도 홀려서 물속으로 끌고 들어가 익사를 시키는 데다가, 달래서 천도하려고 해도 말을 들어 먹지를 않고, 힘으로 퇴치하려고 해도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원한과 어마어마한 음기(陰氣) 때문에 퇴치조차도 힘든 귀신.

         

       그런 귀신이 무려 악귀가 되었다.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는 악귀가.

         

       위험하지 않을 리가 없지 않은가.

         

       백번 조심해도 모자랄 지경이다.

         

       “여러분. 잠시 갈등이니 뭐니 하는 것은 다 내려놓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지금, 이 순간 우리는 같은 적을 상대로 싸워야 하는 전우입니다. 그러니 이런 무의미한 싸움보다는 힘을 합쳐서 밤을 대비하도록 합시다.”

         

       진성은 그렇게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 가라앉은 분위기에 쐐기를 박듯이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진성의 호소는 먹혀들었다.

       차가워진 분위기 덕분에 정신이 든 무인은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일본 무인들과 거리를 벌렸고, 일본 무인들 역시 약간의 앙금은 가지되 더 이상 일을 크게 벌이지 않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크흠. 이 젊은이의 말이 맞소. 이 섬을 보자마자 불길하기 짝이 없는 기운들은 다들 느꼈을 거 아니우? 내 몸주도 덜덜 떨 정도이니 그 사악함이 얼마나 될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데, 이리도 싸우니 내 걱정이 좀 있었소이다.”

         

       “그래, 저 말이 맞기는 하지. 저 한국 주술사 말대로 적어도 지금은 이 섬에 퍼져있는 악귀를 정리하러 온 동료가 아닌가? 같은 적을 상대로 힘을 합쳐 싸우면 전우가 되는 법. 그러니 잠시 사감은 접어두고, 저 사악하기 짝이 없는 것들을 상대하는 것을 궁리해보도록 합시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악귀를 물리치기 위해 힘을 합치자.’라는 분위기가 되었다.

       지금 상황을 우려스럽게 보고 있던 한국 능력자와 일본 능력자들은 이때다 싶어 의견을 말했고, 무인들을 자연스럽게 뒤로 보내면서 자신이 전면으로 나섰다.

         

       언제든 돌발행동을 보이며 상대측과 충돌할 위험이 있는 무인들이 앞에 나서느니, 차라리 자신들이 나서는 게 낫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그렇게 구도는 아까와 정 반대가 되었다.

         

       무인이 앞에 나서고 다른 이들이 뒤에 있었던 모습은 뒤집혀, 무인이 뒤로 빠지고 다른 이들이 앞에 나서는 구도가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있었다.

         

       앞에도 뒤에도 나서지 않는 이들.

         

       가만히 상황을 관망하는 이들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그대로였으니까.

         

       자신들끼리 뭉쳐있는 음양사가 그러하였고, 여우 가면을 쓴 요사스러운 분위기의 신관이 바로 그러했다.

         

       그리고 방긋방긋 웃음을 지으면서도 구석진 곳에 앉아 있는 한 젊은 주술사 역시 그러하였다.

         

         

         

        * * *

         

         

         

       악귀에 대한 경각심이 심어지자 사람들은 분주히 움직였다.

       베이스캠프가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가지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여 자신들 나름으로 경계를 강화하고 악귀에 대한 대항책을 짜내기 시작했고, 그 덕분에 베이스캠프의 보안은 더더욱 강력해졌다.

       조금 어설픈 면이 있던 경계근무는 악귀 여러 개체가 쳐들어온다고 할지라도 능히 대항할 수 있을 정도로 촘촘하게 변했고, 마법사들이 설치한 장치 역시 더더욱 견고하게 변했다. 게다가 기존의 장치가 최소의 에너지 소비로 최대의 효과를 얻는…소위 말하는 ‘효율적’인 형태였다면, 지금의 장치는 가동시간이 줄어든다고 할지라도 강력한 출력을 뽑아낼 수 있도록 개조되기까지 했다.

       혹여 악귀가 생각보다 강하다고 할지라도 아티팩트의 효과를 뚫고 베이스캠프로 침입할 수 없도록 말이다.

         

       영능력자들은 자신이 데리고 온 귀신들을 달래거나 종교적 의식을 통해 가지고 온 주물이나 퇴마 물품을 강화하였다. 아티팩트를 가지고 온 사람들은 마법사를 찾아가 아티팩트를 강화하거나 문제가 있나 점검받기까지 했다.

         

       그렇게 사람들은 철저하게 준비를 계속했고….

         

       마침내 밤이 찾아왔다.

         

       햇살에 부서지던 파도는 어느새 어둠을 품은 채 철썩거리며 모골이 송연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불그스름한 빛을 내며 자신의 마지막 존재감을 발했던 태양은 어느덧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은 어둠을 품어 회색빛으로 변화하였고, 으스스한 달빛은 구름에 가렸다가 나왔다가를 반복하며 마치 눈동자가 깜박이는 것처럼 변화하였다.

         

       하늘을 바라보면 보이는 것은 별.

       구름에 가렸다가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별 부스러기들.

       바다에 가라앉았던 태양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위에 박힌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수많은 별이 어두컴컴한 밤하늘에 박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고, 인공위성인지 별인지 모를 것이 크게 반짝였다가 그 빛을 순식간에 꺼뜨리기를 반복하기도 하였다.

         

       게다가 이러한 수많은 손님의 시선을 눈치채기라도 한 것인지 밤하늘에 선 하나가 빛을 발하며 휙 낙서를 그리고 사라졌으니.

         

       그것은 바로 흐르는 별이었다.

       

       “흐음.”

         

       유성(流星).

       호선을 그리며 사라져버린 떨어진 별.

         

       진성은 그것을 보며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이거 불길하군요.”

         

       예로부터 천체에 벌어지는 이변은 불길함을 암시한다고 여겼다.

       서양에서는 혜성을 불길한 것으로 여겼고, 혜성이 출몰하면 재앙이 찾아온다고 믿었다.

         

       이는 동양에서도 마찬가지.

       유성은 재앙을 알리는 흉조(凶兆)였다.

         

       유성이 떨어지면 죽음과 관련된 재앙이 퍼져나간다고 여겼고, 오랑캐들이 군세를 끌고 와 땅을 침범하거나 가뭄이나 홍수 같은 자연재해가 일어난다고 여겼다. 그도 아니라면 역병이 퍼지거나, 하늘로부터 선택받은 천자에게 고변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믿었다.

         

       시간이 흐르며 과학이 발달하였고, 그와 함께 이러한 미신은 많이 희석되었지만….

       이러한 미신은 그대로 흔적으로 남았다.

         

       민속학이나 신화학 같은 학문은 물론이고, 예술계 같은 곳 말이다.

         

       “흐음. 유성이 떨어지면 불길하다는 이야기는 단순 미신인 줄 알았는데, 뭐 주술적으로 의미가 있는 것이었나?”

         

       하지만 흔적으로 남았을 뿐 그것이 미신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지금에 와서는 그냥 대화의 주제나 흥밋거리로 사용되었다가 휙 던져버리는, 별 가치가 없는 이야기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런 미신 같은 말이, 주술사의 입에서 튀어나온다면 조금 이야기가 다른 법이 아니겠는가?

         

       온갖 방법으로 점을 쳐서 미래를 엿보고, 온갖 해괴망측한 짓을 벌이면서 말도 안 되는 주술을 사용하고 다니는 주술사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온다?

         

       그건 일반적인 사람들이 입에 담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무게감이 있었다.

         

       “이보게, 박진성 주술사. 무슨 문제라도 있는가? 응?”

         

       그 때문에 진성이 중얼거린 말을 들은 사람은 진성을 빤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심각해 보이는 진성의 표정과 꾹 닫힌 입술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입에서 제발 ‘유성과 관련된 이야기는 그냥 미신입니다.’라는 말이 튀어나오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흐음….”

         

       사람들의 소망을 듣기라도 한 것일까?

       진성은 천천히 입을 열어 말했다.

         

       사람들이 그렇게 듣고 싶어 하는 말을 말이다.

         

       “아, 여러분. 유성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닙니다. 유성과 관련된 불길한 이야기는 대부분은 그냥 미신에 지나지 않는 것이니까요. 물론 주술적 의미도 있고, 천기를 읽는 방식의 점술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기는 하는데…. 적어도 저 유성에 불길한 의미가 있지는 않습니다.”

         

       유성이 불길한 것이라는 이야기는 그냥 미신에 지나지 않는다고.

       저 유성은 불길함을 알리는 징조가 아니라고.

         

       진성의 입에서는 사람들이 내심 듣고 싶어 하는 말이 정확하게 흘러나왔다.

         

       하지만…그들이 듣고 싶은 말이 흘러나왔다고 해서, 진성이 하는 말이 좋은 뜻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도리어 그들이 원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이야기였다.

         

       “제가 말한 것은 유성 때문에 불길하다는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유성보다는…그래요. 유성이 지나가면서 생긴 기운의 변동입니다. 고여있는 물에 손을 집어넣어 휘저으면 파문이 일고 물결이 일어나 모양을 바꾸듯, 별이 흘러가면서 기운의 형태를 바꾸었습니다. 그 형태는 마치….”

         

       해골 같았지요.

         

       진성은 그렇게 말하곤 잠시 입을 닫았다.

         

       그리곤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는 이들에게 강한 어조로 말했다.

         

       “오늘 밤, 이변이 일어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곤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사람들이 호들갑을 떠는 것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통제되는 음기의 흐름과 유성이 떨어질 때 딱 맞춰 그려지는 해골의 형상이라.’

         

       진성이 바라보는 하늘에는 음기가 가득했다.

         

       인위적인 조작이 강해진 음기가 말이다.

         

       ‘흐. 음기를 다룰 줄 아는 구도자가 나를 초대하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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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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