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425

   승계문.

   그곳을 타고 오른 순간 크라슈의 눈앞을 가득 메운 것은 빛이었다.

     

   끝도 없이 쏟아지는 빛이 몸을 투과하는 기묘한 감각은 크라슈마저도 섬찟했다.

     

   크라슈의 몸은 계속해서 하늘을 향해 올라갔다.

   주위가 온통 빛이라서 그런지 얼마나 올라왔는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서서히 몸에 부하가 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런 건 사전에 말해줬어야지.’

     

   크라슈는 몸에 오기 시작하는 부하를 견디고자 내부에서 신기를 끌어내기 시작했다.

   크라슈의 몸 내부에 자리한 별이 신기를 머금고 거센 빛을 쏟아냈다.

     

   그러자 육체 전반을 두르기 시작한 성계의 영역이 승계문에서 오는 빛의 압박을 줄여 나갔다.

     

   빛의 압박이 줄어들자 겨우 숨통이 트였다.

   만약 검존을 따라 성계의 영역에 돌입하지 못했더라면 빛에 짓눌려 찌부러져 버렸을 것이다.

     

   크라슈는 괜찮다.

   이거라면 얼마든지 견뎌낼 수 있다.

     

   ‘하지만 아서는.’

     

   자신과 함께 따라나섰던 아서를 떠올린 크라슈의 얼굴이 굳었다.

   주변은 온통 빛이라 아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과연, 괜찮을까.

   그녀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 아서다.’

     

   그러나 크라슈는 걱정을 거두었다.

   지금껏 수없이 많은 난관을 거쳐온 아서다.

     

   그녀라면 문제 없이 승계문의 끝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아서를 믿기로 하고, 크라슈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드디어 빛의 끝에 새하얀 구멍이 보이기 시작했다.

     

   앞으로 조금이다.

     

   드드드드드!

     

   마지막에 이르기 시작하니 빛의 부하가 더더욱 강해졌다.

   크라슈는 이를 아득 깨물며 악착같이 부하를 견뎌 나갔다.

     

   이윽고, 몸이 구멍을 통과한 순간.

   크라슈는 눈앞이 새하얗게 변하는 감각과 함께 바닥을 굴렀다.

     

   쿠당탕!

     

   얼마나 빠른 속도로 날아온 것인지 정신이 혼미하다.

     

   “끄으, 도둑의 신 자식.”

     

   바닥을 구른 크라슈가 침음을 삼키며 고개를 좌우로 털어내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려던 찰나.

     

   오싹!

     

   크라슈는 몸 전반을 훑고 지나가는 감각에 몸이 굳었다.

     

   “뭐야, 이건.”

   “하계문이 작동 안 하더니 갑자기 뭔가 튀어나왔는데?”

     

   크라슈의 귀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크라슈가 서둘러 시선을 올리자, 거기에는 다수의 무언가가 모여 있었다.

     

   그들은 겉보기에는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크라슈의 눈에 그들은 절대로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내부에는 하나같이 거센 별빛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크라슈의 눈이 주변을 훑었다.

   거기에는 황색으로 물든 풀밭과 함께 저무는 태양이 보였다.

     

   문제는 본래는 하나여야 할 터인 태양이 세 개가 동시에 저물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평선이 끝도 없이 넓다.

   지금 자신이 밟고 있는 땅이 얼마나 큰 것인지 크라슈는 감히 짐작되지 않았다.

     

   신계.

     

   승계문을 타고, 크라슈가 기어코 신계에 도달한 것이다.

     

   ‘그렇다면.’

     

   크라슈를 바라보며 웅성거리고 있는 저들은 다름아닌 하계문을 타고 중간계로 가려 했던 하급 신들이 분명했다.

     

   “저거, 설마 인간이야?”

   “아니, 별이 느껴지는데. 신인가? 몸에서 느껴지는 힘도 신기잖아.”

   “인간의 탈을 쓴 신인 건가?”

     

   그들을 보자 크라슈는 머리털이 쭈뼛 서는 느낌을 받았다.

   하나하나가 전부 천상사강에 버금가는 괴물들이다.

     

   수는 대략 서른.

   만약, 저 신들이 전부 중간계로 내려갔다면.

     

   ‘상상도 하기 싫다.’

     

   나라가 몇 개는 초토화가 되어 버렸을 것이다.

     

   “거기, 너.”

     

   그러는 순간 신 중 한 명이 크라슈를 불러왔다.

   겉모습은 예쁘장한 소년처럼 생겼지만, 내부는 전혀 그러지 못한 신이 크라슈를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어라, 이 애 얼굴 기억날 거 같은데?”

     

   그리고 그가 크라슈의 얼굴을 기억해 내기 시작했다.

   크라슈는 중간계에서 현현한 신들을 상대로 깽판을 부린 전적이 있다.

     

   당연히 그의 얼굴이 알려지고도 남았다.

   이쪽도 신계에 올라오기 전까지 해온 일들이 있으니까.

     

   “아, 그 녀석이다! 도둑의 신의 아이!”

   “도둑의 신, 아이라고?”

   “그럼 인간이잖아?”

   “인간 따위가 신계를 와?”

     

   크라슈의 행동은 망설임이 없었다.

   상대는 지금 당황한 상태.

     

   그렇다면 그 틈을 노려 하나라도 죽인다.

     

   크라슈의 몸을 일주한 신기가 그의 성운검에 잿빛의 불길을 피워올렸다.

   순식간에 돋아난 뿔과 비늘이 크라슈의 얼굴을 장식한 순간 그의 발이 앞으로 뻗어 나갔다.

     

   크라슈의 머리카락 색이 잿빛으로 물들어 가기 시작했다.

     

   멸화침식(滅火浸蝕)

   오식(五式)

   멸천월화(滅天月火)

     

   서걱!

     

   고열을 담은 크라슈의 검이 소년 신의 목을 꿰뚫고 지나갔다.

   그러자 소년 신의 목이 비스듬히 잘려 나갔다.

     

   “어?”

     

   그가 의문을 품은 순간 목에서 시작된 잿빛 색 불길이 순식간에 번졌다.

     

   화르르르르르륵!

     

   하급 신들이 그 광경을 벙찐 표정으로 보았다.

     

   당연한 이야기다.

   중간계에서 갑자기 뭔가 튀어 올라왔다고 생각했더니 검짓 한 번에 하급 신 하나가 목이 베이며 불타고 있었다.

     

   신이란 족속들은 목이 베인다고 해서 죽을 이들은 아니나.

   크라슈의 검에서 터져 나온 불길은 하급 신을 재생하지 못하도록 좀먹고 있었다.

     

   ‘아우라를 삼켜 오기를 잘했다.’

     

   승계문이 열리는 시간 동안 크라슈는 세계의 틈을 다녀왔다.

   아우라는 세계가 끊임없이 쏟아내는 힘이다.

     

   오랜만에 들리니 아니나 다를까, 아우라는 세계의 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크라슈는 이를 망설임 없이 냉큼 챙겨왔다.

     

   그러고는 사계를 이용해 아우라를 재공정을 거친 뒤 신기와 뒤섞어 버렸다.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스킬.

   세계 자체의 힘인 아우라.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쥔 결과.

   크라슈는 아벨라를 쓰러트리기 직전인 때와 동등한 힘을 거머쥐었다.

     

   거기에 예전에 불안정하던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성계의 영역과 성위 마법을 통해 만들어 낸 육체.

     

   이 두 가지가 늘 유리 대포만 같았던 크라슈의 육체에 안전성을 부여해 주고 있었다.

     

   지금이라면 풀 출력으로 마음껏 날뛸 수 있다.

   한 번 완전히 힘을 잃었던 육체가 다시금 전성기 시절을 되찾은 것이다.

     

   ‘그리고 나라면.’

     

   신들에게 있어서 가장 악질적인 수를 지니고 있다.

     

   크라슈가 불타버린 하급 신 앞에 서서 크라슈가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런 광경을 신들은 아직까지도 멍하니 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다들 현실 감각이 망가진 얼굴이었다.

     

   크라슈가 하급 신을 향해 팔을 뻗자, 그의 손아귀에서 빛이 새어 나왔다.

   빛의 정체는 다름아닌 블랙 후드였다.

     

   신들은 신계에서 완전히 소멸만 안 한다면 무한히 되살아날 수 있다.

   그들이 뒤집어쓰고 있는 육신은 그들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신기를 뽑아내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될까.’

     

   블랙 후드에는 조건이 있다.

   당연히 신들에게도 조건은 행해질 터.

     

   크라슈가 조건이 나올 것을 떠올리며 블랙 후드를 발동시킨 순간이었다.

     

   [ 끄윽, 가아아악! ]

     

   크라슈가 하급 신이 지니고 있던 신기를 블랙후드로 뽑아내기 시작했다.

   육체가 박살이 나버린 신에게서 언령을 통한 비명이 들려왔다.

     

   크라슈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조건이 없다?’

     

   아니다.

   조건이 없는 건 아니다.

     

   대신, 조건 자체가 생각 이상으로 엄청나게 간단해져 있었다.

     

   [ 상대를 무력화시킬 것. ]

     

   본래 존재하던 조건은 대부분 없어지고, 붙은 것은 딱 하나.

   상대를 무력화시켜라.

     

   이를 보고, 크라슈의 눈이 뜨여졌다.

     

   ‘그렇군.’

     

   이제 알겠다.

   블랙 후드가 어떻게 만들어진 스킬인지 말이다.

     

   ‘블랙 후드는 처음부터 신기를 훔치기 위해 만들어진 힘이다.’

     

   블랙 후드의 기원을 크라슈가 처음으로 알아차렸다.

     

   ‘그동안 스킬과 저주 같은 것을 훔치는데 조건이 붙었던 건 이와 같은 것들은 신기가 아니었으니까.’

     

   스킬은 신이 부여해 준 힘이지 신기 그 자체는 아니다.

   정확히는 신이 부여해 준 권한이라고 봐야겠지.

     

   신기를 빼앗는 것과 권한을 빼앗는 건 엄연히 다른 것이었다.

     

   [ 그아아아아아악! ]

     

   하급 신이 크라슈의 블랙 후드에 반항하지 못하고, 결국 신기를 모조리 빼앗겼다.

     

   하급 신이 잿가루가 되어 사라지기 시작했다.

   몸을 이루던 신기가 사라졌으니, 육체가 그대로 무너진 것이다.

   

   크라슈가 하급 신에게서 얻어낸 신기를 고스란히 삼켰다.

   그러자 몸 내부로 흘러 들어온 하급 신의 신기는 전부 크라슈의 힘이 되었다.

     

   크라슈의 몸을 이루던 잿빛의 불길이 더더욱 거세졌다.

   아까보다 훨씬 더 화력이 올라갔다.

     

   크라슈의 눈이 뜨여졌다.

   고작해야 하급 신 하나를 삼켰다고 해서 신기가 이 정도로 늘어 날 줄이야.

     

   왜 도둑의 신이 신들을 쓰러트리고 그들의 신기를 훔치고 다녔는지 이제는 알겠다.

     

   크라슈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의 등 뒤에 소멸하는 하급 신이 불어온 바람을 따라 잿가루가 흩날렸다.

     

   그리고 그 광경은.

     

   오싹!

     

   영생을 사는 신들에게는 참으로 두렵기 그지없는 광경이었다.

     

   죽음이라는 것과 한없이 거리가 멀었던 신들.

   그들은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신의 완전 소멸이라는 광경을 보고 말았다.

     

   크라슈의 몸에서 흘러나온 진득한 살기가 신들의 목을 훑고 지나갔다.

   그의 몸에서 피어오르고 있는 불꽃이 그들의 눈을 일렁이게 만들었다.

     

   크라슈와 눈이 마주치자, 하급 신들은 깨달았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이는 중간계에서 불쑥 튀어나온 흥미로운 장난감 같은 게 아니다.

     

   포식자.

   눈앞에 있는 이는 자신들을 먹잇감으로 보는 포식자였다.

     

   조금 전 하급 신의 신기를 빼앗은 저 힘.

   하급 신들은 크라슈가 지금 블랙 후드를 통해 자신들의 힘도 전부 빼앗을 작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급 신들의 행동은 빨랐다.

     

   “도망쳐! 신기를 빼앗긴다!”

     

   그들은 혼비백산하며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져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를 본 크라슈는 순간 벙찐 얼굴을 하였다.

     

   하급 신들과의 격전을 생각했더니 설마 자신을 보자마자 도망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다 같이 공격했다면 승산이 없던 건 아니었을 텐데. 어째서?’

     

   크라슈는 곧이어 그 이유를 깨달았다.

   중간계에서도 신들은 자신의 힘을 휘두르는 것에 여념이 없었지, 그들은 하나같이 협력이라고는 모르는 것들이었다.

     

   신들에게 만연한 개인주의.

   신들은 서로가 함께 힘을 모아 크라슈를 쓰러트리는 것을 상상한 게 아니라 크라슈와 단독으로 부딪치는 것만을 상상했다.

     

   만약, 이대로 크라슈와 부딪친다면 그들은 십중팔구 그의 먹잇감이 되어 소멸해 버릴 것이다.

     

   그러니 그들은 다 함께 싸운다는 선택지를 처음부터 제외해 둔 채 도망치기 바쁜 것이다.

     

   “하.”

     

   크라슈의 입에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왜 도둑의 신이 지금의 자신이라면 하급 신들을 능히 처리할 수 있을 거라고 했는지 알겠다.

     

   하급 신과 개인으로 맞붙는다면 크라슈가 질 일은 절대 없으니까.

     

   “기껏 긴장했는데.”

     

   손해 본 기분이다.

     

   크라슈는 도망치는 하급 신들을 쫓으려다가 검을 내렸다.

   왜냐하면 아직 함께 왔던 아서가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크라슈는 성운검을 허리춤에 다시 채웠다.

   하급 신들은 언제든 잡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러다가 이 넓은 신계에서 아서와 흩어져 버리면 그것만큼 골치 아픈 일은 없다.

     

   크라슈는 얌전히 아서를 기다리기로 했다.

   하급 신들의 꼴을 보아하니 다시 올 일도 없을 거 같으니 아서와 합류한 뒤 어떻게 할지 상의하자.

     

   그런 생각으로 크라슈는 승계문이 있던 자리에서 기다렸다.

     

   그리고 하루가 흘렀다.

     

   “……썅?”

     

   오랜만에 욕지거리를 내뱉은 크라슈의 인상이 와락 찌푸려졌다.

   세개의 해가 뜨고, 세개의 해가 뜬 시점.

     

   아서가 승계문 너머로 나타나지 않았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