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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26

       사실 나는 살만한 것이 별로 없었다.

        

       내가 주로 파는 작품들은 국내에서는 2차 창작이 그리 많지 않은 작품이니까. 사람들 사이에 떠밀려 다니면서 가끔 눈길이 가는 물건들이 있긴 했지만, 그것도 다 거의 10년 이상 된 작품들의 시리즈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들이었다. 잠깐 눈길이 가긴 했지만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결국 나는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고 나왔다. 샤를로트도 마땅히 살만한 것은 없었는지 따로 사지는 않았다.

        

       미아는 마법 소녀 얼굴이 프린트된 캔 배지를 샀다. 최신 시리즈 캐릭터의 얼굴 전부를 살 수 있어서 아주 행복한 모양이었다.

        

       클레어는 나도 모르는 만화의 캐릭터가 화려하게 그려진 알람 시계를 하나 샀다.

        

       “아는 작품입니까?”

        

       “응? 아니? 그냥 예뻐서 샀는데.”

        

       그렇네. 그림이 예쁘긴 했다. 꽃이 형형색색으로 그려졌고, 이름 모를 미소녀도 예쁘고.

        

       결국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뭐, 원래 팬시 제품이 캐릭터도 모르고 사는 경우가 많으니까. 혹시 아는가. 그냥 일러스트레이터가 혼자 만든 캐릭터일지.

        

       앨리스도 비슷했다.

        

       앨리스는 에코백을 하나 들고 있었다. 여기는 그렇게 화려한 그림보다는 조금 정갈한 그림체로 미소녀가 그려져 있었다. 별다른 채색 없이 하늘색 선으로 그려진 캐릭터는…… 그래도 솔직히 오타쿠가 좋아할 만한 미소녀 캐릭터로 보이긴 했지만, 앨리스가 들고 있으니 조금 괜찮아 보이기도 했다.

        

       한창 좋아했을 때는 동인지도 잔뜩 사가고 했는데. 아무래도 지금은 그럴 열정까지는 없었다.

        

       “후우…….”

        

       그렇게 부스를 모두 한 번씩 보면서 한 바퀴 쭉 돈 다음에는, 밖에 나와 앉았다. 운 좋게 비어있는 벤치를 발견해 다섯 사람이 주르륵 앉았는데, 그래도 끼어 앉으니 그럭저럭 모두 앉을 수 있었다.

        

       “생각보다 힘드네요.”

        

       우리 중에서는 가장 체력이 떨어지는 미아가 말했다.

        

       “동감이야.”

        

       하지만 앨리스도 그렇게 말하는 걸 보면, 여러모로 지치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하긴, 단순히 오래 걸어서 힘들다기보다는 사람 사이에 치여서 힘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꽤 재미있었어. 그냥 자기가 좋아해서 이것저것 만들어 가져다 판다는 거잖아. 열정 있고 좋지 않아?”

        

       클레어는 언젠가 들어본 것 같은 말을 했다. 역시 사고방식 하나는 긍정적이라니까.

        

       “정말이에요. 오늘은 꽤 즐거웠어요.”

        

       샤를로트까지 그렇게 말하니, 나도 마음이 뿌듯했다.

        

       “아무리 그래도 무대까지 올라갈 생각은 들지 않지만요.”

        

       “그건 그렇습니다.”

        

       샤를로트의 그 말에 우리 네 사람 모두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코스프레도 이렇게 다 같이 하고 다니니 축제 온 기분이라 아무렇지도 않았고, 워낙 친한 사람끼리 뭉쳐 다니니 혼자서는 그냥 지나갔을 것도 꽤 자세하게 보게 되었다. 예전에 친구 없이 혼자 왔을 때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련되어있는 무대에 올라가 공연까지 할 만한 용기는 없었다. 그런 건 그냥 방송에서 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슬슬 가볼까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

        

       예전에, 그러니까 지금같이 미소녀의 몸에 들어오지 않았을 때도, 이렇게 행사장에 들르고 나면 시간이 많이 남았다. 끝까지 남아서 즐기기에는 체력도 없고, 무엇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부스에 마련된 물품들도 떨어져 더 구경하거나 살 것도 없었다.

        

       그래서 부스를 몇 바퀴 정도 돌고, 내가 보는 애니메이션의 물건을 다 사고 나면 더 할 게 없는 것이다.

        

       오전 일찍 나와서 돌았으니, 오후에는 시간이 많이 남는다. 혼자였다면 슬슬 집으로 돌아갔겠지만, 지금은 친구들과 있었다.

        

       그냥 집으로 돌아가는 건 조금 아쉬웠다.

        

       “뭐라도 먹기로 하죠.”

        

       지하철에서 그렇게 말했다.

        

       점심은 돈가스로 정했다.

        

       이미 열차에 탄 뒤라서, 우리는 중간에 갈아타는 김에 역을 나와 근처 맛있는 곳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그래봐야 검색으로 찾는 것이라 정말로 맛이 있는지 없는지 먹어봐야 알 수 있었지만.

        

       내가 얘네들이랑 이곳에서 살기 시작한 뒤로는 여러모로 운이 좋단 말이지.

        

       “맛있어요!”

        

       미아가 눈을 빛내며 그렇게 말하는 걸 보면, 이번에도 운이 좋았던 모양이다.

        

       나름대로 열심히 돌아다니느라 배고픈 줄도 몰랐던 모양이다. 입에 들어가는 음식이 죄다 맛있었다.

        

       식사를 즐기고 있는데, 클레어가 불쑥 입을 열었다.

        

       “그런데, 샤를로트. 옷 정말 어울리더라.”

        

       “풉.”

        

       샤를로트는 그녀답지 않게 음식을 뿜을 뻔했다. 다행히 입을 다물고 있어서 정말로 뿜지는 않았지만.

        

       급하게 휴지를 뽑아 입 근처를 두드리고, 입에 있던 음식을 얼른 씹어 삼킨 뒤 샤를로트가 황급히 입을 열었다.

        

       “그, 그런가요? 잘 되었네요.”

        

       본인은 그래도 열심히 연기하는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그게 잘 되지는 않았다.

        

       “그 캐릭터 정말 좋아했나 봐?”

        

       클레어의 말에 샤를로트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나는 돈가스를 한 조각 포크로 찍어 입에 넣으며 그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샤를로트가 저렇게까지 동요하는 걸 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 그렇게?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음.

        

       내 생각에는 그 캐릭터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 회사의 모든 공주 캐릭터를 다 좋아하는 것 같던데.

        

       오늘 나한테 샤를로트가 했던 조언을 전부 세면 손가락이 부족할 지경이니까.

        

       “응? 그래? 지난번에 영화 볼 때는 눈이 반짝반짝하던데.”

        

       하지만 클레어 혼자서도 샤를로트를 훌륭하게 침몰시키고 있었으므로, 굳이 내가 끼어들 필요는 없었다.

        

       물론 샤를로트는 내 쪽을 흘끗 보긴 했다. 내가 혹시라도 얘네들한테 비밀을 말하기라도 했을까 봐 걱정되는 모양이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 있었어?”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앨리스가 물었다.

        

       “아뇨, 딱히 별일은 없었습니다.”

        

       내가 그렇게 대답하자, 앨리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앨리스가 나에게 말을 거는 와중에도, 클레어는 샤를로트에게 이것저것 묻고 있었다.

        

       “왜?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고 말하는 게 잘못된 건 아니잖아.”

        

       “그, 그건…….”

        

       “혹시 체면 때문에 그러는 거야?”

        

       클레어는 핵심을 찔렀다.

        

       “미아, 여기도 찍어보십시오. 맛있습니다.”

        

       “와, 고마워요!”

        

       “아니, 두 사람이 나름 진지하게 대화 중인데 좀 들어줄 생각은 없는 거야?”

        

       미아에게 돈가스용으로 나온 카레 소스를 밀어주며 그렇게 말하자, 옆에 있던 앨리스가 타박을 줬다.

        

       “그렇게 걱정할만한 일은 아니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역시 뭔가 알고 있는 거잖아.”

        

       “…….”

        

       나는 입을 다물었다.

        

       “나도 영화 좋아했거든. 특히 자주색 드레스 입고 나오던 공주—”

        

       “……보라색이죠.”

        

       투툭.

        

       어.

        

       방금 뭔가 실 같은 게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는데.

        

       다만 눈앞에 정말로 끊어진 물건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그냥 내가 혼자 멋대로 그렇게 생각한 모양이다.

        

       하지만 나처럼 소리를 듣지는 못했더라도, 샤를로트의 바뀐 분위기는 모두가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아, 이거 큰일 났네.

        

       아까도 조금 느꼈지만, 샤를로트는 뭐랄까, 이상한 곳에서 엄격한 종류의 매니아인 모양이다.

        

       생각해보면 샤를로트도 한 고집 하긴 하지.

        

       “보라색?”

        

       이상한 곳에서 트집잡힌 클레어가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아마 말씀하신 그 드레스의 색은 보라색이에요.”

        

       “어…… 자주색이나 보라색이나 그게 그거 아니야?”

        

       클레어는 이런 쪽으로는 조금 둔감한 감이 있어서, 색깔을 세세하게 구분하여 쓰는 성격은 아니었다.

        

       사실 게임에서는 이런 쪽으로 꽤 민감한 모습을 종종 보여줬었는데, 아무래도 생활 환경이 달라지다 보니 성격이 원작과는 조금 바뀐 모양이다.

        

       나는 이쪽의 클레어가 더 좋긴 했지만.

        

       “……그게 그거?”

        

       샤를로트는 충격받은 표정이 되었다.

        

       아, 그래. 생각해보니 얘는 벨부르 사람이었어.

        

       그리고 벨부르의 모티브는 프랑스와 벨기에고, 그중 프랑스는 디자인으로 유명한 국가이기도 했다.

        

       “지금 그게 그거라고 하신 건가요?”

        

       “어? 어어?”

        

       샤를로트의 말에 클레어가 당황해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미아, 그건 무슨 소스입니까?”

        

       “아, 이건 유자 같은데요. 한번 드셔보실래요?”

        

       “감사합니다.”

        

       “아니, 두 사람 다, 이야기를 좀 들으라니까.”

        

       별다른 신경도 쓰지 않고 미아에게 말을 거는 나에게 앨리스가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말했다.

        

       *

        

       “……미안해요, 클레어. 제가 조금 흥분해서.”

        

       “아, 아냐. 덕분에 앞으로 화장할 일 있으면 색 구분은 확실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집으로 돌아와 풀 죽어 말하는 샤를로트를 클레어가 위로했다.

        

       “그리고…… 앞으로 그 회사 작품 보고 싶은 거 있으면, 나한테 말해 줘. 언제든지 같이 봐줄 테니까.”

        

       “클레어…….”

        

       클레어의 말에 샤를로트가 조금 감동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거 보라니까.

        

       적어도 이 집 안에서는, 누가 어떤 취미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그게 자유가 아니겠는가.

        

       그날 그렇게 훈훈한 광경을 보며 나도 모르게 미소 지었던 나는—

        

       며칠 뒤 집 앞에 온 커다란 상자 안에서 공주 피규어가 끊임없이 나오는 것을 보고 식겁하게 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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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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