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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26

        

       음기(陰氣)라는 것은 양기(陽氣)에 반대되는 기운이며, 어둡고 습한 기운을 말한다. 죽음과도 관계가 있는 기운이며, 생명의 활동을 늦추고 오래 지속되게 하여 영속성(永續性)에 영향을 주는 기운이기도 하다.

         

       사기(死氣)와 비슷하나 좀 더 포괄적인 범위이며, 죽음을 탐구하는 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기운이기도 했다.

       여러 곳에서 얻기 쉬우니 장소를 타지도 않고, 사람의 내장이나 근골에서 쉽게 얻을 수 있으니 때를 타지도 않는다. 그러면서도 차갑고 습하고 죽음과 관련되어 있기까지 하니 귀신을 부리기도 쉬우며, 사후세계와 연관이 되어있는 상징을 안고 있으니 그와 관련된 주술을 사용하기에도 쉽다.

       게다가 양을 조절한다면 사람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부터 사람을 해하는 것까지 가능하니 주물(呪物)로 만들기도 좋고, 몸이 상하는 것을 각오한다면 내장이나 근골에 음기를 잔뜩 품고 다닐 수도 있기까지 하다.

         

       ‘물론 그런 짓을 하는 이들은 거의 없겠지만.’

         

       하지만 음기를 저장하는 것은 거의 볼 수 없다.

         

       건강에 문제가 생기는 것?

       그건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건강이야 뭐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는 것이지 않은가.

         

       진짜 문제는 바로 주술의 특성.

         

       사용할 때마다 대가가 지불되고 몸이 뒤틀리고 영혼이 변화하는 것이 주술이다.

       사람의 몸을 계속해서 뒤틀고 바꾸는 주술의 특성은 주술사가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모아둘 수 없게 만들었고, 안정적인 이능을 사용할 수 없게 만들었다.

         

       기를 한곳에 모아두는 무공?

       단전 위치가 뒤틀리고 파괴되는 것은 기본이고, 심장이나 뇌 같은 부분에도 문제가 생기는 것은 일상이다.

         

       혈관이나 뼈?

       혈관에 노폐물이 쌓이거나 끊기거나 흐름이 바뀌거나 하는 것은 심심찮게 볼 수 있고, 뼈 역시 산 채로 썩어가거나 구멍이 송송 뚫리거나 어이없는 일로 뼈가 분질러지는 일도 있다. 심하면 가루가 되기까지 하니….

         

       이런 일을 일상으로 겪는 주술사가 무공을 익힌다는 것은 곧 반드시 주화입마를 겪거나 내상을 입게 된다는 이야기와 같았다.

         

       무공뿐만이 아니다.

         

       에너지를 몸 안에 모아두고 사용하는 능력은 사용할 수가 없었다.

       그릇이 깨져버리는데 무슨 수로 에너지를 모을 것이며, 무슨 수로 안전하게 그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음기를 다룬다고 할지라도 몸 안에 음기를 모아두는 일은 드물다.

       음기를 모으는 주물을 만들어서 가지고 다니거나, 에너지 베슬(energy vessel)이라고 불리는 특별한 주물에 에너지를 모아두는 것이 고작이다. 그나마도 에너지 손실이나 안정성 때문에 많이 넣고 다니지는 못하는 것이 보통인데….

         

       ‘어마어마한 양의 음기로군.’

         

       진성이 보는 음기는 그런 주물로 모았을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양이었다.

         

       넘실거리는 음기가 어찌나 강한지, 음기(陰氣)를 사용하는 경지에 이른 무인이 힘을 한껏 쏟은 게 아닐까 의심이 될 정도였다. 게다가 감탄이 나오게 하는 것은, 저렇게 넘실거리는 음기가 하늘에 가득함에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음기의 습함이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습기에 섞여 숨었고, 음기의 어두움이 내려앉은 어둠 속에 자취를 감췄도다. 넘실거리는 죽음의 향기는 악귀의 것을 끌어모아 제 몸을 감추고, 쌀쌀하고 침침한 것은 달의 음울함과 차갑게 변해가는 공기 속에 있으니. 참으로 은밀하기 짝이 없는 출수로다.’

         

       은밀하다.

       은밀하면서도, 기묘하다.

         

       넘실거리는 것을 보아하니 숨길 생각은 없으나, 눈앞에 있음에도 알아볼 수 없는 성질을 가지고 있으니 이 어찌 기묘하지 않으랴?

         

       진성은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떨궜다.

         

       그리곤 소리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어디론가 향했다.

         

       그가 향한 곳은 일본에서 온 능력자들이 머무르는 숙소였다.

         

       “—!”

         

       “–!”

         

       일본 능력자들이 머무르는 숙소에서는 떠들썩한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떠들썩한 소리에는 감정이 잔뜩 묻어 있었는데, 얼핏 듣는다면 무슨 술자리에서 거나하게 취한 사람들이 신세 한탄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진성은 떠들썩한 소리를 이정표로 삼아 천천히 접근했다.

         

       저벅.

         

       지이이익.

         

       그가 저벅거리며 움직였기 때문일까?

       능력자 한 명이 진성이 오는 것을 눈치채고 대형 텐트의 지퍼를 열고 밖으로 나왔다.

         

       “무슨. 일입니까?”

         

       텐트 밖으로 빼꼼 고개를 내민 마법사 한 명은 통역용 기계 특유의 딱딱한 말투로 진성에게 질문했다. 통역용 기계에서는 감정이 없는 한국어가 흘러나왔고, 진성은 또박또박 흘러나오는 그 질문을 들으며 미소를 지었다.

         

       “만날 사람이 있습니다.”

         

       “만날 사람?”

         

       마법사는 진성의 대답에 혹시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까 있었던 충돌을 생각해본다면…한국 능력자가 뜬금없이 그들의 숙소로 찾아온다는 것은, 그리 좋은 일 때문은 아닐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혹시 누가 사고를 쳤나?’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무인 중 한 명이 사고를 친 게 아닐까 하는 걱정.

         

       마법사의 생각으로는 ‘감성적이고 난폭한데다가 무식하기까지 한’ 무인이라면 충분히 몰래 빠져나가서 한국 숙소에 쳐들어가서 싸움을 벌였어도 이상한 것이 없었다.

       그 때문에 마법사는 그 최악의 상상이 머리에 떠올리자마자 지금 대형 텐트 안에 누가 남아있는지 떠올려보았다.

         

       ‘잠깐만. 다 있는데?‘

         

       하지만 이내 대형 텐트에는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제야 한시름을 덜 수 있었다.

         

       “무슨 일로, 누구를 만나러 왔습니까?”

         

       “흐음. 제가 만나려 하는 사람은…. 아, 저기 있군요.”

         

       진성은 마법사의 뒤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예? 어, 신관님?”

         

       모습을 드러낸 것은 신관.

       여우 가면을 쓰고, 몸에 주렁주렁 주물을 달고 있는 신관이었다.

         

       ‘신관이 대체 왜?’

         

       여우 가면과 몸에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주물.

       게다가 숙소에 들어왔음에도 긴장을 풀기는커녕, 오히려 몸에 주물과 부적을 잔뜩 붙이며 시간을 보냈던 이상한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대체 왜 텐트 밖으로 나왔단 말인가?

         

       그것도 한국의 주술사가 ‘사람을 찾으러 왔다.’라고 말하며 방문하자마자 말이다.

         

       ‘게다가 누가 왔다고 말도 안 했는데…?’

         

       더 기묘한 것은 한국인 주술사가 정확히 누굴 찾으러 왔다고 말하지도 않았고, 안에 기별을 넣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대체 저 신관이라는 사람은 어떻게 알고 이곳에 온 것이란 말인가?

         

       게다가 어째서일까.

         

       저 한국인 주술사와 신관이 같이 있으니, 묘하게 오한이 드는 것 같기도 하다.

         

       ‘귀가 밝을…수도 있지. 호기심이 강할 수도 있고.’

         

       마법사는 찝찝한 표정으로 주술사와 신관을 바라보았다.

         

       주술사는 웃고 있었고, 신관의 여우 가면 역시 웃고 있었다.

         

       “하늘을 보아하니 특이한 것이 있어 이리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같이 한 바퀴를 돌아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진성은 여우 가면을 똑바로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일본어로 말이다.

         

       그리고 이에 회답하듯 신관은 답해주었다.

         

       “신력(神力)이 동하며 말하기를 치시키노오오카미(道敷大神)님의 기척과 흡사한 기운이 머물러 있다고 말한 것을 보아하니 필시 두 눈으로 확인해봐야 할 일일 터. 신관의 옷을 입고 있으니 마땅히 그 업을 짊어져야 할 것인즉, 왼쪽 눈에 오히루메노 무치노카미(大日孁貴神)님의 축복을 담고 오른쪽 눈에 참나무 활(白眞弓)의 시위에 화살을 물린 채 동굴 속의 어둠을 확인해야만 하겠지요.”

         

       신관은 그렇게 말했다.

       한국어로 말이다.

         

       그렇게 둘의 기묘한 대화가 오갔고.

         

       “갑시다.”

         

       가자는 단호한 말과 함께 둘이 움직였다.

         

       “자, 잠깐만. 어디 가십니까?”

         

       그리고 이러한 모습을 본 마법사는 당황해서 둘에게 물었다.

         

       갑자기 나타난 것도 어이가 없는데, 둘이서 무슨 이상한 말을 나누더니 어디론가 같이 간다고?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지금 밤중입니다. 대체 둘이서 어딜 간다는 겁니까!”

         

       심지어 낮도 아니다.

       새까만 어둠이 내려앉은 밤이다.

         

       악귀가 활동할 시간이란 말이다.

         

       그런데 겁대가리 없이 둘이서만 움직이겠다고?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이게 무슨 일이냔 말이다.

         

       게다가 그를 더 당황하게 하는 것은 지금 이런 돌발행동을 벌이고 있는 이가, 아까 낮에는 그렇게 믿음직스러웠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이 충돌할뻔한 분위기에서 가장 먼저 나서서 분위기를 가라앉혀준 신관.

       신관의 말에 힘을 실어주며 한국과 일본이 협력하게 만든 주술사.

         

       내심으로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무인들보다 훨씬 믿을만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던 둘이 대체 왜 지금 돌발행동을 벌이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걱정하지 마시지요. 위험한 일은 아닙니다. 하늘을 보았을 때 특이한 것을 발견하였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하러 가려 하는 것입니다. 귀신에게 들키지 않도록 주물을 챙겨놓았으니 그리 위험하지는 않을 터.”

         

       “신께서 신력으로 말씀하시기를 촌각을 다투는 일이라 하니 다른 이들에게 알릴 시간은 없을 것 같군요. 부디 다케다 마법사님이 다른 분들에게 말을 전해주셨으면 합니다. 한국의 주술사와 제가 주변을 한 번 둘러보고 온다고 말이지요.”

         

       마법사의 까맣게 타들어 가는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술사와 신관은 그렇게 통보에 가까운 말을 남기곤 거침없이 어둠 속으로 움직였다.

         

         

         

        * * *

         

         

       하늘의 음기는 그 자체로 흐름이니.

       흐름 속에 들어온 자는 그 흔적을 남긴다.

         

       물속에서 움직이면 물결이 이는 것처럼 그 궤적을 그리니 방문자를 알 수 있음이요.

       흐름의 시작과 끝이 똑같다면 목적지를 가늠할 수 있음이니 초대자를 알 수 있음이라.

         

       곧 주술사들이 마주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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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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