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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26

       고개를 숙이고는 일어날 줄을 모르는 풀과 꽃들.

       

       자신의 잎을 내던지고 태양 아래에서 타 죽어가는 나무들.

       

       여러 생명이 자라날 수 있는 기운을 품고 있었지만 이젠 모든 걸 잃고 쩍쩍 갈라져가는 대지.

       

       오랜만에 발을 들인 선계의 풍경은 본인에게 꽤나 익숙한 것이었다.

       

       과거 혈교주를 죽이고자 마음먹었을 때 지겹도록 보았던 모습들이었으니까.

       

       세상 그 어떤 곳보다도 정순한 기운을 많이 품고 있었던 선계가 이 꼴이 되다니.

       

       혈교주 그 녀석이 그만한 경지에 도달한 것이 이해가 되는 군. 이만큼이나 막대한 기운을 집어 삼켰다면 경지에 이르는 것이 당연하지.

       

       “…어찌 선계가 이런 모습이 되었단 말인가.”

       

       선계의 모습을 살피던 바루는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과거 이 곳을 동경의 장소로 생각하던 바루다. 그런 그녀에게 있어 멸망해가는 선계의 풍경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일 터.

       

       나는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는 바루를 내버려 둔 채 검선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검선이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보시다시피 다른 이를 돕기에는 상황이 좋지 못해.”

       “복구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가?”

       “솔직히 말을 하자면 복구가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 신선들의 도술이 아무리 뛰어나다 하여도 아예 스러져버린 것을 되돌리긴 어렵거든.”

       

       도술이라는 것은 결국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흐름을 인위적으로 재현하는 것이다.

       

       여러 흐름을 조합하여 기적에 가까운 현상을 만들어내는 것은 가능하지만 아예 존재하지 않는 현상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

       

       간단히 말해 죽어가는 것을 회복시키는 건 어렵지 않지만 이미 죽어 으스러진 것을 원래의 상태로 복구시키는 것은 상당히 난도가 높다는 게지.

       

       “이전의 전투에서 살아남은 이들 모두가 선계의 복구에 매달리고는 있다만 전망이 그리 희망적이진 못해. 어쩌면 우리가 직접 선계를 만들어야 할지도 모르지.”

       “그런 것이 가능한가?”

       “글쎄. 한 번도 시도해 본 적 없는 일이라 우리도 확언할 순 없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그것 이외에는 방도가 없는 것을.”

       

       이거야 원. 상황이 곤란하게 되었구나.

       

       물론 이들의 협조를 구하지 않는다 해도 대지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바루가 어렵다 이야기를 한 것도 어디까지나 단기간에 대륙 전체의 대지를 구원하려 들 때의 일.

       

       긴 시간을 들여 차근차근 대지를 복구시켜 나간다면 바루와 백주, 그리고 나까지 합해 셋으로도 언젠가 목표에 도달할 수 있겠지.

       

       문제는 베니의 나라에 그만한 여유가 있을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이미 기근에 신음하고 있던 이들이다. 당장에야 구원을 받았단 기쁨에 환호를 내지르고 있지만 그것도 잠시다.

       

       그 곳의 인간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잔혹한 현실에 부딪혀 환상에서 깨어나게 될 테니.

       

       남은 식량이 바닥나고.

       

       나무뿌리와 온갖 잡초들을 뜯어 먹은 후에.

       

       흙으로 음식을 빗어 입 안에 털어넣다가.

       

       마지막에 가서 인간과 인간이 서로를 향해 이빨을 들이밀게 되는 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공동의 적을 잃어버린 자들이 새로운 적을 찾아내는 데에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쯧. 구원을 해주어야 할 대지가 너무나도 드넓은 것이 문제다.

       

       여유를 부리며 차근차근 나아가다가는 대륙 전체가 구원받는 것보다 구원받지 못한 이들이 먼저 구원 받은 이들을 공격하는 것이 더 빠를 터이니 말이다.

       

       “이해해주게나.”

       

       검선이 고개 숙이는 것을 보고서 곰방대를 입에 물었다.

       

       어쩌겠는가. 상황이 이런 것을.

       

       물론 이들을 겁박하여 강제로 본인의 말을 듣게 하는 것도 가능은 하겠지만 자신들이 살던 곳을 버릴 각오까지 하고 있는 이들에게 원한을 사고 싶진 않군.

       

       과거 홀로였던 본인이라면 원한을 사건 말건 신경 쓰지 않았을 터이나 지금은 그렇지 않으니 말이다.

       

       화룡무인에 세상에 존재하는 인연을 이런 일로 위험에 빠트릴 순 없지.

       

       하아.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이 회사 측에 도움을 구해야 하는가.

       

       안 그래도 매일매일 바빠 죽겠다는 녀석들에게서 인원을 징집하려면 얼만큼의 대가를 치러야 할는지 모르겠군.

       

       파이스와 나누어서 대가를 치른다 하여도 그리 가볍진 않을 듯 한데.

       

       미간을 찌푸린 채 고민을 하고 있던 중 바루의 근처에서 기운이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바루가 사용하는 무수한 도술 중 하나였다.

       

       과거 부서져 다신 복구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던 화산의 부지를 재건했던 힘.

       

       부서진 것을 있어야 할 형태로 되돌리는 것.

       

       그녀의 도술이 대지에 펼쳐졌지만 그 효과는 그리 크지 못했다.

       

       과거 바루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저 도술은 부서진 걸 되돌릴 순 있지만 가루가 되어 흩어져 버린 것을 돌릴 순 없다.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생기를 다시금 이 세상에 퍼트릴 순 없단 이야기다.

       

       입술을 깨물며 재차 도술을 펼치는 것이 참으로 필사적이구나.

       

       바루. 그대에게 있어 이 장소가 그만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냐.

       

       …흐음?

       

       잠시.

       

       녀석이 펼치는 도술을 가만 바라보고 있던 중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있어야 할 형태로 되돌린다는 것은 곧 무언가를 최선의 형태로 되돌린다는 것.

       

       지금 바루가 펼치는 도술이 실패하는 이유는 이미 이 대지에 생명이 사라져버렸기 때문.

       

       그렇다면 이 세상에 생명을 강제한다면 그를 이용해 선계를 본래의 형태로 되돌리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바루야.”

       “무어냐. 본인은 지금 바쁘다.”

       “얼마 전 화산에 매화가 맺혔던 것을 기억하느냐?”

       “그래. 기억하지. 잊기 어려운 광경이었으니 말이야. 허나 그대도 알지 않나. 그 매화는 이 곳에선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당시 본인이 펼첬던 매화검은 이 세상에 매화를 강제로 새기는 검이었다.

       

       대지에 매화를 견딜힘이 있건 없건 간에 관계없이.

       

       매화가 피어날 계절인지 아닌지도 신경 쓰지 않고.

       

       세상에게 매화를 피울 것을 강제하는 검이었지.

       

       전후가 어찌 되었든 간에 본인에 의하여 꽃이 피어난 것은 사실이고 그 과정에서 대지가 생기로 충만해진 것도 맞았지만.

       

       본인의 검이 가져다주는 현상은 거기까지였다.

       

       망가진 대지는 여전히 망가진 채였고.

       

       죽어버린 나무는 여전히 죽어 있었으며.

       

       삭막한 산은 여전히 삭막할 따름이었지.

       

       그나마 이전에 백주와 바루가 꾸준히 산을 회복시켜 생기를 품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두었기에망정이지.

       

       그들의 노력이 아니었더라면 본인이 펼친 매화검은 대지에 그 어떤 것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이 장소가 그러하다.

       

       혈교주에 의해 모든 것이 죽어버린 이 대지는 매화가 내리 앉더라도 그를 포용하지 못한다.

       

       가뭄으로 말라버린 호수에 물을 들이 붓는다 하여 무어가 달라지겠느냐.

       

       뜨거운 태양 빛이 하늘에서 사라지지 않는다면 결국 호수는 이전처럼 말라버릴 뿐이지.

       

       매화도 마찬가지다. 죽어버린 대지 위에서 피어난 매화가 무얼 남길 수 있겠느냐. 잠시 자신의 아름다움을 세상에 새겼다가 대지 위에 저물어 버릴 게 뻔하다.

       

       허나 매화를 피우는 데에서 멈추지 않는다면?

       

       그로 인해 생겨난 생기를 통해 이 대지를 바꾼다면?

       

       단순히 호수에 물을 붓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비를 쏟아냄으로써 그 대지에 생명을 피워낸다면.

       

       분명 이야기가 다르지 않겠느냐.

       

       “어떠냐. 본인이 생각하기에는 충분히 가능할 듯 하다만.”

       

       내 말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바루는 답을 돌려주지 않았다.

       

       그저 미간을 찌푸린 채 내 제안의 가능성을 검토할 뿐.

       

       가만 바루가 답을 전해주기만을 기다리던 그 때에 저 하늘 위에서 관망을 하던 이가 구름을 타고서 모습을 드러냈다.

       

       “방금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종선. 가장 오래되었다 전해지는 신선.

       

       “한 번 해보도록 하죠.”

       

       녀석이 바루를 대신하여 내게 답을 내밀었다.

       

       “가능할 듯 싶더냐?”

       “글쎄요. 저도 잘은 모르겠습니다. 화령님께서 펼치신다는 그 매화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이토록 망가진 대지를 강제로 회생시키려 한 적도 없으니까요.”

       

       여러 신선들의 책임자가 할 말치고는 상당히 무책임하다만.

       

       “다만 시도조차 안 해보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습니까.”

       

       본인에게 있어서는 만족스러운 답변이구나.

       

       “좋다. 내 일단 매화검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도록 하마. 이를 보고서 어찌할지 한 번 고민을 해보도록.”

       “…선계 전체에 생기를 흩뿌리는 검을 그리 가벼이 펼치셔도 됩니까?”

       “그대의 눈에는 지금 본인이 도달한 경지가 보이지 않는가? 그 정도쯤이야 본인에게 있어 아무것도 아니다.”

       

       종선 네 놈에게야 이 선계가 무척이나 넓어 보이겠지만 본인에게는 그렇지 않다.

       

       선계라고 해봐야 신선놈들이 틀어박혀 사는 자그마한 대지에 불과할 지어니. 이 세상에 매화를 피우는 것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지.

       

       “다만 종선. 한 가지 기억하거라. 이는 단순한 도움이 아니라 거래다. 본인이 선계를 구원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대신 그대도 본인에게 도움을 주어야 할 터.”

       “하하. 선계를 구원할 수만 있다면 무어라도 해드리겠습니다.”

       “약속한 게다?”

       “약속하지요.”

       

       저 능구렁이 같은 녀석에게 언질도 구했으니 어디 한 번 검을 펼쳐 볼까.

       

       과거 검선이 그랬던 것처럼 스스로의 내기로 검을 만들어 손에 쥐자 주변에 있던 이들이 저 알아서 걸음을 뒤로 물린다.

       

       그를 확인한 나는 검을 두 손으로 쥐고서 위로 치켜들었다.

       

       자아. 본인의 매화를 이 세상에 새겨보도록 하자꾸나.

       

       매화의 향기로운 냄새로 선계를 가득 채우고. 오래 전에 죽어버린 대지의 위에 그리운 생명을 새기는 것이다.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 같구나.

       

       화산의 매화조차도 만리 너머까지 자신의 향을 전할 지언데.

       

       본인의 매화가 그보다 못할 리 없잖은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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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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