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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26

    <426 – 아득한 격차>

     

    “안 돼요! 사다코 교수님의 강의는 절대로 포기할 수 없어요.”

     

    앞머리에 감추어진 맨얼굴이 궁금한 까닭도 있지만 그게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같이 강의를 듣고 있는 즈앙과 티토소가가 어떻게 우리만 빼고 도망칠 수 있냐며 힝잉잉 눈물을 흘릴 것도 걸린다.

    게다가 사다코 교수님도 내가 강의를 열심히 듣느라 아카데미에 남아계시기로 했는데 나마저 훌쩍 떠나버리면 더는 강의를 들을 사람도 없지 않은가.

     

    ‘내가 도망치면 즈앙과 티토소가도 분명 눈치 보다가 은근슬쩍 도망치겠지. 그럼 마음에 상처를 받은 교수님도 교편을 내려놓고 은퇴하실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너무한 일이다.

     

    “저 악질군락지는 보아하니 네가 만든 것이겠지. 그 책임을 온전히 네가 지게 되더라도 사다코 교수의 강의를 포기하지 않을 셈이냐?”

    “어쩔 수 없죠. 위어드 교수님한테 신고하고 벌금 내는 수밖에요…”

    “정말 미치광이군. 아카데미에서 손꼽히는 광년교수를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눈도장을 찍히려고 작정을 하다니. 무엇이 널 그렇게 만들었지?”

     

    나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얼빠는 원래 인생 손해보고 살아요.”

    “…이런 답도 없는 한심한 녀석 같으니. 이딴 것도 후배라는 사실이 한스러울 지경이군.”

     

    말로는 투덜거리면서도 등 뒤에 짊어진 커다란 낫을 꺼내든 그림리퍼 선배.

     

    “연락은 그만두어라. 특별히 한 번만 도와줄 테니.”

    “와! 그림리퍼 선배님 최고!”

     

    이 선배의 성격유형은 90% 확률로 츤데레인데 역시나 이번에도 츤데레 선배가 맞았다!

     

     

    * * *

     

     

    이슈타르는 공터 부근에서 심상치 않은 마나의 요동을 감지하였다.

     

    “선배. 저 안에 뭐가 있는 겁니까?”

    “훠이훠이. 애들은 몰라도 된다.”

    “저는 용사 이슈타르입니다. 선배님이 곤란하시다면 제가 도움을 드릴 수도 있습니다.”

     

    단순한 호의를 베푸는 것은 아니다.

    오크노디에게 뒤처진다는 사실을 실감한 이후, 이슈타르는 부단히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이슈타르 저거 용사 맞아?

    -솔직히 오크노디가 더 용사 같아. 용사는 사람을 버리고 다니고 오크노디는 사람을 구하고 다니는데 저딴 게 무슨 용사야.

    -마족계약자 로우를 해치운 것도 사실상 재단간부이자 현역교수인 조나교수님이랑 오크노디잖아.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헐뜯기나 하기는.

    이슈타르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용사는 원래 그런 족속이란 말이야.’

     

    누구나 전부 구할 수 있는 용사는 애초에 용사라고 불릴 수 없다.

    적당히 자기 수준보다 낮은 곳에서 안주하며 실적 불리기에만 집착하는 그런 용사를 유일신 <태양의 소페미아>는 자신의 용사로 인정하지 않으니까.

    다른 신격의 사도로 선정된 양산형 용사들은 신격을 드높이고 신앙을 모으기 위해 그런 안주하는 삶을 선택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이슈타르는 달랐다.

     

    ‘무조건 도전을 멈추지 말아야해. 그러지 않으면 용사의 이름을 상실하게 된다고.’

     

    그러니 약자를 돌보며 모두가 다 함께 나아가는 꿈과 희망으로 가득 찬 삶은 살아갈 수 없다.

    태양은 함께 나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모두의 머리 위에서 가장 찬란하게 떠오르는 경외의 대상일 뿐.

    그래도 집단의 힘의 필요성은 실감했다.

    그래서 용사친위대도 조직하고 따로 단련에도 필요최저한의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그래도 부족해. 이제는 내 단련, 내 도전을 진행해야 한다고.’

     

    지하대공동의 <종합던전테마파크>라는 시설에 수많은 던전과 몬스터들이 바글바글 존재한다는 사실은 얼마전에 알아챘다.

    그곳의 던전탐사신청을 내며 한층이라도 더 깊은 던전을 공략하며 실습을 시도하고는 있지만 1학년이라는 학년의 제약 때문에 출입가능던전의 상한선에 걸리고 말았다.

    용사친위대는 몰라도 이슈타르 본인에게는 훈련이 되지 않는다.

     

    ‘강의도 이 악물고 소화했지만 그것도 이제는 적응이 되기 시작했어. 이번 학기는 이 정도로 안주하는 수밖에 없나…?’

     

    마지못해 현실과 타협하려는 순간, 심상치 않은 마나의 요동을 느낀 것이 바로 지금.

     

    “안 돼. 1학년이 얼쩡거리면 괜히 나만 혼난다고.”

    “그럼 선배님을 쓰러뜨리겠습니다.”

    “뭐?”

    “자신보다 강한 적에게 습격을 당해 쓰러진다면 그것마저 선배님의 책임이 되지는 않을 겁니다.”

    “헉?!”

     

    <빛무리>

    <등정일참登頂一斬>

     

    참격 하나로 산꼭대기를 정복함을 논하는 광오하기 그지없는 이름.

    그러나 이 일격기에는 오만함을 품을 자격이 있다.

    헤일처럼 몰아닥치는 거대한 자연현상을 일수에 잠재우는 조나 와이히엠하이.

    그 남자의 뒷모습을 보고 느꼈던 부족함을.

    무력했던 자신의 과거를 떨쳐내기 위해 개발해낸 기술이기에.

     

    ‘3학년. 이쪽은 고작 그 정도의 수준에 안주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고.’

     

    안전사고를 방지하고자 저학년의 출입을 통제하던 3학년 선배는 그렇게 용사의 일참을 받고 풀썩 쓰러졌다.

     

    ‘와 진짜 미친년이다. 괜히 버티다가 더 맞기 전에 그냥 바로 쓰러져야지.’

     

    눈치껏 쓰러진 선배 덕분에 본의 아니게 선배를 일격에 쓰러뜨린 이슈타르는 더욱 자신감을 얻었다.

     

    “유피. 스콜라. 딱 좋은 실습상대가 나타났어.”

    “마력량은 적당히 감당이 되는 수준이네.”

    “식물몬스터인가. 상성은 좋지 않지만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성녀 유피가 지팡이를 들어 올리자 강화를 알리는 빛무리가 쉼 없이 계속해서 쏟아졌다.

     

    <시야확장>

    <호흡향상>

    <반사신경향상>

    <이중타격부여>

    <이중돌격부여>

    <독내성부여>

    <수면내성부여>

     

    용사와 함께 덩달아 자신에게도 주어지는 버프의 일부에 스콜라는 전율을 느꼈다.

     

    ‘정말 엄청난 속도의 연속버프군. 이 정도 버프라면 뭐든지 해낼 수 있겠어.’

     

    심지어 용사는 자신의 세 배는 더 많은 버프를 몰아서 받고 있다.

    이겼다.

    싸우기 전부터 자신감이 넘쳤다.

    마력량도 적보다 많다.

    버프로 스펙업까지 진행했다.

    칼바람을 사방팔방 쏟아내는 위협적인 공세도 용사의 홀리미러-백팔방위진 콤보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가로막힐 수밖에 없다.

     

    <방어막부여>

     

    심지어 백팔 개의 홀리미러 위로 유피의 방어막까지 부여되며 문이 부서질 걱정까지 덜었다.

    사실상 승리는 확정!

    교전 초기까지만 해도 사방팔방에서 쏟아지는 용사의 공격기에 칼바람을 쏟아내던 식물군락지도 금방 파괴될 것처럼 보였다.

     

    “용사. 홀리미러를 너무 많이 펼친 것 아닌가? 공격기가 중간중간 다른 홀리미러에 가로막혀서 유효타를 입혀야 할 타이밍에 사라지고 있는데.”

    “내가 아니야.”

    “뭐?”

    “저건 내가 연 홀리미러가 아니야!”

    “!!”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습적으로 스콜라의 뒤에서 열린 홀리미러와 그로부터 쏟아지는 참격.

    식겁하며 회피한 스콜라의 눈에 그제야 거미초의 <끌어당기기>로 거미줄에 흡수당한 홀리미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놀랍게도 이 식물군락지는 용사의 기술을 흡수하여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럼 지금 우리는 용사의 기술을 구사하는 몬스터와 싸우는 건가?!’

    “스콜라. 방어막이 없는 홀리미러를 부수세요!”

     

    성녀 유피의 말대로 구분법은 있다.

    보호막이 걸리지 않은 홀리미러만 파괴하면 된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았다.

     

    “서둘러요!”

    “아까부터 부수고 있어. 그런데 암만 부숴도 계속 새로운 홀리미러가 열린다고!”

     

    영양을 공급하는 젤리로만 보였던 로얄젤리에 마나가 깃들어있고, 정령들을 흡수하며 마나회복속도마저 늘어났다는 사실을 이들은 알지 못했다.

    그 차이가 전력계산의 오판으로 이어졌고 끝내 용사의 패배로 귀결되었다.

     

    “으윽.”

    “이슈타르!”

     

    유피의 보호막 덕분에 중상은 면했지만 공터 구석까지 튕겨나간 이슈타르.

     

    “공략은 실패야… 모두 도망쳐.”

     

    이건 막을 수 없다.

    달아나야해.

    그러나 도주조차도 이제는 힘들었다.

     

    <홀리미러>

    <윈드커터>

    <대지가르기>

    <절명기 – 템페스트 블레이드Tempest Blade>

    <절명기 – 세븐 볼텍스Seven Vortex>

    <절명기 – 호라이즌 디몰리셔Horizon Demolisher>

     

    이슈타르와 유피, 스콜라의 주변에 연달아 생성되는 홀리미러.

    지척에서 열린 홀리미러에서 쏟아지는 칼바람과 절명기가 연달아 쏟아졌다.

    마나를 사용하는 모든 종류의 기술을 모방하는 식물군락지는 그들의 상상 이상으로 버거웠다.

     

    ‘애초부터 파괴될 걸 전제로 하고 지척에 홀리미러를 열면 이렇게까지 버거워지는 거야? 그보다 식물 따위가 어떻게 절명기를 펼쳐내는 건데!’

     

    뚠뚠초의 단단한 몸체는 용사의 신체에 비견되는 내구도를, 거미초의 강화된 마나제어술은 용사의 절명기를 펼쳐낼 제어력을 발휘했다.

    초보모험가들이 처음 마을을 떠나면 길가에서 가장 먼저 마주치는 가장 하찮은 몬스터.

     

    고블린.

    슬라임.

    그리고 식물몹.

     

    그런 하찮은 존재의 연장선상에 불과하다고 여겼던 식물군락지는 용사의 기술마저 모방하며 그녀의 자존심을 짓뭉갰다.

     

    “길을 열어줄게. 너희라도 도망쳐.”

     

    홀리미러 사이에서 유일하게 공격에 동원하지 않고 거울과 거울 사이를 오가며 증폭시킨 비장의 100스택 절명기가 유피와 스콜라 주변에 펼쳐진 홀리미러를 모조리 깨트렸다.

     

    “조금만 버텨요. 교관님들을 불러올게요!”

    “유피. 그리 멀리 갈 필요는 없겠어.”

     

    스콜라가 급히 마법시계를 조작하려던 유피를 멈춰세웠다.

    스콜라가 가리킨 곳에는 못마땅해 죽겠다는 얼굴의 오크노디와 그녀를 쏙 닮은 표정을 한 선배 한 명이 서있었다.

     

    “놀이는 끝났냐? 그럼 비켜라.”

     

    놀이가 아니야.

    우린 진심으로 싸웠다고.

    그렇게 반박하려던 유피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입이 닫히고 발이 저절로 떠밀렸다.

     

    “?!”

     

    마법이 아니다.

    그런데도 마법처럼 현상을 조작한다.

    마음을 먹는 것만으로 주변공간에 의지를 투영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펼쳐진 <영역>에 어느새 자신이 속해있음을 깨닫자 유피는 두려움마저 느꼈다.

    입을 다물고 등을 떠민다.

    그 정도에 그치지 않고 목을 가르고 심장을 터뜨리려고 들었다면.

    자신은 과연 저항할 수 있었을까?

     

    “공격모방 재능을 지닌 몬스터의 퇴치법은 간단하지. 모방조차 할 수 없도록 일격에 전부 날려버린다.”

     

    대마법.

    여름방학, 크루즈선에서 목도했던 천외천의 힘이 한 자루의 낫에서 뿜어져 나왔다.

     

    <가칭, 사신베기>

     

    마치 공간을 도려내듯이 지워진 식물군락지.

    재료의 파편조차 남지 않은 허공이 일그러지며 지면에 남은 뿌리들이 진공에 딸려 올려왔다.

     

    <되돌려베기>

     

    궤적을 거슬러 다시금 허공을 가른 일격에 식물군락지의 모든 뿌리가 소멸했다.

    용사파티를 그토록 고전시킨 강적이 낫질 두 번에 모조리 사라졌다.

    유피와 스콜라는 허탈한 얼굴로 그 흔적을 쫓을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를 해낼 수 없다면 공격모방을 지닌 식물군락지는 건들지 마라. 너희의 어설픈 재능이 더 큰 참사를 일으키거든 서로 죽고 죽여야 할 인간들이 몬스터에게 살해당해서 암살의뢰가 끊어지지 않느냐.”

     

    점잖게 훈계를 하더니 허공에서 나풀나풀 떨어지는 줄기 몇 가닥을 쥐고 공터를 떠나는 선배.

    배꼽인사를 하며 예의 바르게 선배를 배웅하는 오크노디의 뒷모습을 보며 유피는 깨달았다.

     

    ‘저건… 재단의 4학년이겠지. 재단에는 간부급 아래에도 저만한 고수들이 있었던 거야…?’

     

    와이히엠하이 재단, 알고 있던 것 이상으로 너무 강하잖아.

    반면 이슈타르의 곁에는 자신들뿐이다.

    제국의 실력자들은 장차 황제의 위치를 위협할 용사에게 필요최저한의 지원만을 해줄 뿐.

    힘이 필요하다면 스스로 강해져야 하고, 원군이 필요하다면 스스로 모집해야 한다.

    그러는 와중에도 오크노디는 재단의 힘을 빌려 간단히 저런 인재를 빌리겠지만.

     

    “이건… 완패잖아.”

    “…”

     

    스콜라의 말이 옳았다.

    상상 그 이상의 격차가 있다.

    조금이지만 마음이 무너질 것만 같았다.

    용사의 동료인 자신조차 이 정도의 무력감을 느꼈다.

    당사자인 이슈타르는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분명 덜하지는 않겠지.

    유피의 시선이 쓰러진 채 고개조차 들지 못하는 이슈타르의 등을 쫓았다.

    지면의 잡초를 꾹 움켜쥔 손.

    이슈타르는 지금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유피는 그 얼굴을 보기가 무서워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인맥 쓰는 비겁한 재단아가씨와 정정당당하게 허접정규파티원으로만 싸우는 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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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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