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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27

        

         

       독도의 밤은 어두웠다.

       중간중간 켜져 있어야 할 조명은 귀신에 의해 꺼져버리기라도 한 듯 깨진 유리만을 덜렁거리며 쓸쓸한 어둠 속에 잠겨 있었고,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가 어둠에 어우러져 방향감각을 일그러뜨렸다.

       그나마 빛이 있다면 달과 별의 빛이건만.

       달은 시리고 파랗게 빛날지언정 아래로 빛을 내리쬘 생각 없이 그 자리에 고고하게 떠 있을 뿐이었으며, 별은 월광이 약해진 달 대신에 자신이 시선을 끌기라도 하려는 듯 하늘에 무질서하게 박혀있을 뿐이다.

       그 무질서함을 한없이 바라보고 있다면 경이가 느껴짐과 함께 묘한 공포마저 불러일으키니.

       무지한 자라도 저 별빛을 바라본다면 알게 되리라.

       저 별들은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독도는 어둠에 잠겼다.

       자신을 밝혀줄 월광도 없이, 빛을 발하는 가로등도 없이, 불이 켜져 있어야 하는 숙소 역시 침묵에 잠긴 채로.

         

       그렇게 어둠에 잠겨있다.

         

       그리고 그 어둠 속을 거니는 둘이 있으니.

         

       하나는 사람이요 하나는 사람인 척하는 무언가라.

         

       사람은 양복을 입고 있으며, 사람인 척하는 것은 여우 가면을 뒤집어쓰고 있다.

       사람은 사람이란 정체성이 있어 발걸음 소리를 내지 아니하며, 사람이 아닌 것은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기라도 하듯 무게감을 실어 발걸음 소리를 내는구나.

       발을 걸을 때마다 저벅거리는 소리가 나지막하게 울려 퍼지고, 신발이 바닥에 끌리는 그 특유의 소리가 퍼진다.

       풀과 옷감이 스칠 때마다 벌레의 기억이 사무쳐 몸을 떨리게 만드나 움직일 수가 없으며, 풀이 짓이겨지는 냄새가 향수를 자극하나 벌레는 다시 몸을 빠져나갈 수가 없다. 벌레는 그 몸을 이루는 세포이자 벽돌이 되어있는 까닭이다.

         

       본디 건물을 이루는 벽돌은 제 맘대로 빠져나가지 못하는 법.

       벽돌은 건물로서의 정체성을 이루는 요소일 뿐, 그 혼자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것이 그 이유다.

         

       그렇게 벌레의 무리는 사람인 척 형상을 이룬 채 앞으로 나아간다.

       사람을 옆에 낀 채로.

       자신을 만들어준 주인의 의식을 그대로 투영한 채, 그렇게 나아가고 또 나아간다.

         

       그리고 그렇게 나아가다 멈춘 그 끝에는 사람이 있으니.

         

       “반갑습니다. 여기서 또 뵙게 되는군요.”

         

       그는 깡마른 몸에 새까만 피부를 갖고 있으며,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음한 기운을 잔뜩 내뿜고 있는 이라.

         

       그 얼굴의 형태는 일찍이 진성이 한 번 만난 적이 있는 형상이었다.

         

       “제 이름은 기억하고 계시겠지요?”

         

       그는 웃었다.

       가느다란 손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반지와 팔찌를 짤그랑거리며 손을 한데로 모았고, 불교 신자가 그러하듯 손을 중간에 가지런히 모았다. 그리곤 살짝 눈인사하고는 다시 짤그랑거리는 소리를 내며 손을 풀고 진성을 빤히 바라보았다.

         

       “모리스 E 빈(Maurice E Vin). 맞지요?”

         

       “예. 진성 박. 정답입니다.”

         

       그는 진성이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내자 기쁜 듯 환하게 웃었다.

       그 웃음이란 어둠 속에서도 빛날 정도로 순수하게 보이는 것이라, 그 미소만을 바라보고 있자면 순진하게도 그를 안전하게 느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 순진한 이는 없었다.

         

       진성은 모리스의 몸에서 넘실거리는 음기(陰氣)와 사기(死氣)를 꿰뚫어 보고 있었으며, 모리스 역시 몸에 매달려 있는 귀신들이 친근감을 느끼면서도 두려워하는 진성을 경계하고 있었으니까.

         

       모리스는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 진성과 눈을 마주치고는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품은 경계심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경계심을 확인한 뒤에야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또 다른 사람에게 시선을 주었다.

         

       신관의 옷을 입고 있는 남자.

       여우 가면을 쓰고 있는 정체불명의 인물.

         

       “옷을 보아하니 일본…에서 온 것 같은데.”

         

       모리스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흥미롭다는 듯 눈을 곡선으로 휘었다.

         

       “사람이 아니군요?”

         

       신관의 옷을 입고 있는 저것은 분명히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사람과 똑같은 이목구비를 만들어두었고, 사람과 똑같이 골격마저 만들어두었다. 골격을 기반으로 위에 살점이 들어차 있었고, 그 살점의 형상은 일반적인 성인 남성의 것과 똑 닮았다. 사람의 근육처럼 결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물론이요, 그 하나하나가 움직일 때마다 호응하듯 움직이기까지 어찌 저것을 사람이 아니라고 볼 수 있을까.

         

       하지만 그는 느낄 수 있었다.

         

       무슨 짓을 했는지 투시조차 제대로 되지 않게 만드는 옷감 너머를 꿰뚫어 볼 수는 없었지만, 그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저 옷감의 안에 들어있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확고한 증거 따위는 없었다.

       저 사람 형상의 무언가는 사람 흉내가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고 딱 사람 그 자체였으며, 심장 박동도 느껴지고 체온마저도 느껴졌다. 게다가 기척 역시 사람의 것과 똑 닮아있으니 그 어떠한 것을 증거로 들이밀 수 있겠는가?

         

       다만 죽음을 탐구하며 떠돌았던 그의 경험이, 그가 그동안 살아가며 몸에 둘렀던 세월의 흔적이 말해주고 있을 뿐이다.

         

       저것은 사람이 아니라고 말이다.

         

       “저는 세상을 오랫동안 떠돌아다녔습니다. 죽음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나라의 장례를, 죽음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를, 사후세계에 대한 수많은 문화권의 대답을 알아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모리스는 신관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과정에서 저는 흥미로운 것을 목격하였습니다. 가는 길도 다르고 목적지도 다르지만, 어쩌면 제 해답이 될 수 있을법한 것을 연구하는 이들을 만난 것입니다. 그들은 의식의 초월과 의식의 분리와 독립으로 영속성(永續性)을 획득하려 하고 있었는데, 그 방법으로 죽음을 극복하려 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는 회상하듯 허공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하더니, 천천히 한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곤 손가락 하나를 접었다.

         

       “독일에서 저는 보았습니다. 도플갱어(Doppelgänger)와 관련된 연구를 하는 마법사였지요. 그는 도플갱어라는 존재가 어쩌면 초차원 정보집합체…아카식 레코드(Akashic Records)와 연관이 되어있는 현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아카식 레코드에 자신의 정보가 기록되어 있고, 그 정보를 자기 뜻대로 사용할 수 있다면 그 정보를 세상에 주기적으로 투영함으로써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다시 손가락 하나를 접었다.

         

       “그리고 티베트에서도 보았습니다. 오랫동안 수행을 한 구도자였지요. 그는 ‘치 칙 루 칙 샨가이(tsi chig lus chig sangyais)’라는 밀교의 가르침을 찾아 헤매고 있다고 말하였지요. 승려의 복장을 한 그 사람은 자신을 주술사라 여기지 아니하였으며, 단지 수행을 거듭하다가 주술을 사용할 수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몸에서 뜨거운 열기를 내뿜어 푹 젖은 옷을 순식간에 말리는 것도, 허공에 몸을 띄울 수 있는 재주도, 깊은 구덩이 속에서 여러 달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이 버틸 수 있는 것도 모두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

         

       “그는 다재다능하였습니다. 사람의 도움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것은 여타 다른 사람과 크게 다른 것이 없었으나, 그는 분명히 다른 사람의 도움을 덜 받아도 살아갈 수 있는 이였습니다. 그는 그것을 심령 현상으로 증명하였지요.”

         

       “….”

         

       “그는 강력한 정신 집중으로 사념을 모아 형상을 이루는 것을 저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첫 번째로 만든 형상은 그의 모습과 똑 닮아 있었으며, 두 번째로 만든 형상은 절세 미녀의 형상이었지요. 그 형상은 유령처럼 홀연히 나타나 주변을 맴돌았으며, 서로가 실제 살아있기라도 한 것처럼 행동하기도 하였습니다.”

         

       모리스는 여기까지 말했다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곤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는 이것을 주법의 산물이라 하였으며, ‘툴파(Tulpas)’라 칭한다고 하였지요.”

         

       툴파(Tulpas).

         

       주법으로 만들어내는 일종의 사념체이자 혼령.

         

       모리스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그 주법의 결과물의 이름을 입에 담으며 신관을 바라보았다.

         

       “그때 보았을 때와 흡사한 느낌이 당신에게 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신관은 모리스의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대신에 성대를 진동시켜 목소리를 밖으로 끄집어내었을 뿐.

         

       그는 여우 가면을 모리스 쪽으로 슬쩍 움직이며 그를 바라보았고, 무엇이 들어있을지 모르는 가면에 뚫린 자그마한 눈구멍을 모리스의 눈과 마주치게 했다. 그리고 사람의 눈처럼 보이는 무언가를 움직여 그를 바라보았다.

         

       “꽤 흥미로운 이야기로군요.”

         

       그리곤 감정이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모리스에게 물었다.

         

       “그래서, 그 흥미로운 이야기가 지금 상황과 크게 관련이 있습니까?”

         

       모리스는 신관의 말에 잠시 고민하다가 미소를 지었다.

         

       “관련이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는 것이겠지요. 이는 당신이 본신으로 오지 않았다는 것이 제 생각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뜻이며, 그와 동시에 당신이 분신으로 이곳에 의지를 투영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주술사라는 사실이 제 생각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곤 슬쩍 고개를 돌려 진성을 바라보았다.

         

       귀신이 친근감을 느끼면서도 두려워하는 저 존재.

       무덤가와 시체에서 날법한 특이한 기척을 지닌 젊은 주술사.

         

       모리스는 잠시 진성을 바라보았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신관을 바라보았다.

         

       분신을 사용해 이 섬에 나타난 주술사.

       실제 정체가 무엇인지, 본신은 어떤 존재인지는 알 수 없으나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주술사.

         

       모리스는 그 둘을 눈에 담은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두 분에게 묻겠습니다.”

         

       그는 아주 정중하게, 한껏 예의를 갖추어 질문했다.

         

       “제가 이 섬에서 실험을 하나 하려고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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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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