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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27

       혈교주가 선계를 찾아왔던 그 날.

       

       모든 신선이 목숨을 잃는 것보다야 선계를 내어주는 것이 옳다 판단을 내렸던 그 순간이 지나고 얼마 뒤 다시금 찾은 선계는 폐허가 되어 있었다.

       

       선계 전체에 자리하면 뚜렷한 생기도.

       

       푸릇거리던 대지의 풍경도.

       

       수많은 생명의 자취도.

       

       부드러운 바람도.

       

       모든 것을 잃어버린 선계는 이미 누군가 상상하던 지옥의 풍경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 모습을 보고서 어느 신선은 종선에게 그 때 모두가 죽는 한이 있어도 혈교주를 막았어야 했다 소리쳤지만 종선은 신선의 분노를 가벼이 웃어 넘겼다.

       

       모두가 개죽음을 당하고 선계가 폐허로 변하는 것보다야 선계만 폐허가 되는 편이 낫지 않으냐 생각하며.

       

       선계를 복구하기 위한 작업은 지지부진했다.

       

       신선들의 도술이 제 아무리 뛰어나다한들 이미 죽어 흩어져버린 것을 다시 되살릴 수는 없으니. 사라져버린 생기를 다시금 대지에 새기는 기적을 펼치는 것은 불가능했던 것이다.

       

       고육지책으로나마 다른 곳에서 여러 생물과 생기를 가지고 와 대지를 되살려보려는 시도도 존재했지만 그 또한 큰 의미를 지니진 못했다.

       

       가뭄으로 갈라져버린 대지 위에 물 한 방울이 떨어진다고 무어가 달라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여러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을 무렵 종선은 진지하게 선계를 버리는 걸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이 곳을 살리겠다고 되도 않는 일을 할 바에야 그냥 다른 곳으로 이주를 하는 편이 나을 거란 판단이었다.

       

       많은 신선들이 그의 제안에 반발했다.

       

       신선이란 존재가 선계를 버리는 게 말이 되느냐. 우리의 무능에 의해 파괴된 곳을 어찌 버리라는 말이냐. 아직 시도할 수 있는 게 한참 많이 남지 않았느냐.

       

       이 모든 물음에 종선은 이리 답을 했다.

       

       “신선이 기거하는 곳이면 그 곳이 선계지. 다른 곳이 선계인가.”

       

       다만 종선도 다른 신선들의 마음을 이해했기에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보자는 데에 동의했다.

       

       당장 종선만 하더라도 선계를 살릴 수만 있다면 무어라도 하고 싶었다.

       

       가장 오래된 신선이라 불리는 것이 종선이다. 그가 선계에서 얼마나 많은 추억을 쌓아 왔겠는가.

       

       긴 세월이 지나 사라져버린 고향을 대신하여 종선의 고향이 된 이 곳을 어찌 종선이 버리고 싶어 하겠는가.

       

       어떻게든 선계를 살리기 위하여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던 어느 날이었다.

       

       선계문 너머에서 기괴한 기운이 흘러들어오는 것이 감지됐다.

       

       주변의 기운을 집어삼킴에 따라 강제로 만들어지는 공허.

       

       얼핏 보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자세히 살피면 아무것도 없어선 안 될 곳이 텅 비어 있음을 깨닫게 되는 섬짓한 기운이.

       

       “종선? 왜 그러십니까?”

       

       그 기운을 감지한 종선은 얼굴을 창백히 물들인 채 식은땀을 흘렸지만 다른 신선들은 그런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기운이 지닌 격이 너무도 높아 대부분의 신선이 감지하는 것조차도 실패한 것이다.

       

       상황을 확인한 종선은 다른 신선들에게 다급히 처리할 일이 생겨 잠시 자리를 비운다 이야기를 하곤 기운이 있는 장소로 다급히 움직였다.

       

       검선 그 친구가 선계문을 지키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저 기괴한 기운이 이 곳으로 오고 있단 사실은 검선이 쓰러졌다는 것.

       

       최근 여러 일을 거치며 과거보다도 심오한 경지에 이른 그 친구를 별 어려움 없이 쓰러트릴 정도라면 저 기운의 주인은 어마어마한 괴물이겠지.

       

       만일 혈교주에 이어 또 다시 재앙이 찾아온 것이라면. 그리고 그 재앙이 이 선계에 있는 모든 생명을 집어삼킬 위험이라면.

       

       그 때에는 정말 선계를 버릴 각오를 해야겠구나.

       

       그리 생각을 하며 기괴한 기운이 있는 곳에 도착한 종선이 마주하게 된 것은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존재였다.

       

       민가. 과거 선계의 문을 부수고서 이 자리에 도달한 압도적 경지의 무인.

       

       허약한 육신과 그에 감히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드높은 경지의 괴리가 인상적이었던 여인.

       

       그녀가 종선이 느낀 기괴한 기운의 주인이었다.

       

       “…저것이 민가의 본신인가.”

       

       육신과 경지의 괴리가 너무도 심하다 생각을 했었는데 역시나 그녀의 진짜 육신이 따로 있었던 게로구나.

       

       가만 민가의 경지를 살피려던 종선은 그녀의 안에 도사린 어둠을 마주하고는 다급히 거기에서 시선을 떼어냈다.

       

       민가의 경지는 끝을 알 수 없는 늪과도 같았다.

       

       발을 들이는 순간 다시는 빠져나갈 수 없는 늪 말이다.

       

       저 안에 도사린 어둠을 유심히 바라보다 저 어둠의 안에 발을 들인다면 어둠에 집어삼켜져 스스로를 잃어버리게 되겠지.

       

       벅차오르는 숨을 가까스로 다잡은 종선은 민가에게서 시선을 떼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검선 저 친구가 멀쩡히 서 있는 것을 보면 별 갈등은 없는 듯 하고. 바루님께서 이 곳에 자리하고 있다는 건 민가가 이 곳을 해할 생각이 없다는 이야기.

       

       다행스러운 일이구나. 아직은 선계를 내버리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으니.

       

       종선이 가슴을 부여잡으며 안도를 하던 그 때. 멸망해가는 선계를 둘러보던 민가가 바루에게 다가가서는 무어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내용은 분명 선계를 되살리기 위한 방책이었다.

       

       이 세상에 생기를 흩뿌려 줄 테니 그를 통하여 이 대지를 복구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민가의 말을 들은 순간 종선은 다른 그 모든 것을 잊은 채 민가에게 달려갔다.

       

       그녀의 본신이 지닌 위험성이라거나. 기괴함이라거나 하는 것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저 돌이킬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선계의 대지에 민가가 희망을 가져다 줄 수 있으리라는 것만을 귀에 새겼다.

       

       “이것은 단순한 도움이 아닌 거래다. 본인이 선계에 도움을 줄 터이니 그대들도 본인에게 도움을 주어야 할 것이다.”

       “선계를 복구할 수만 있다면 무어라도 해드리겠습니다.”

       

       선계를 되살릴 수 있다면. 언젠가 버려야 할 것이라 생각했던 고향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무엇을 못하겠는가.

       

       종선이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고개를 주억거리자 민가가 웃음을 지었다.

       

       “그러면 본인이 하려는 것을 보고 어찌해야할지를 고민하거라.”

       

       그녀의 손에 쥐어진 것은 스스로의 내기로 만들어낸 검이었다.

       

       천마신공이 지닌 특유의 포악함을 그대로 간직한 검.

       

       그 검을 보고서 종선은 전율을 느꼈다.

       

       그가 여태까지 마주했던 천마신공의 사용자가 어디 한 둘이고 그 중에 자신의 극의에 도달했던 이가 또 몇이던가.

       

       수많은 경험을 간직한 것이 바로 종선이라는 인간이지만 그런 그조차도 저리 고요한 천마신공의 내기는 처음이었다.

       

       어찌하여 천마신공의 포악한 내기가 인간의 아래에 굴복한단 말인가.

       

       주인을 집어삼킬 기회를 지켜보기만 하는 저 광견이 어찌 한 인간의 눈치를 본단 말인가.

       

       종선이 눈을 크게 뜨고서 감탄을 하던 그 때에 민가가 자신의 검을 위로 치켜들었다.

       

       그러자 그녀의 주변에 흐르던 수많은 기운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저건 또 무엇일까. 이 세상이 존재하는 한 당연히 있어야 할 도들이 어디로 자취를 감추었다는 말인가.

       

       그가 지닌 의문은 머지않아서 해소 되었다.

       

       공백으로 물들었던 세상에 도가 새로이 모습을 드러냈다.

       

       허나 그것은 종선이 알고 있는 도와는 다른 종류였다.

       

       민가의 주변에 새겨지는 도는 종선이 상식처럼 여기는 규율을 무시한 채 자신만의 그림을 그려나갔다.

       

       본래라면. 종선의 지식대로라면. 저 도는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져야 할 터였다.

       

       이 세상에 그 어떤 것도 남기지 못한 채 지워져야만 했다.

       

       허나 그 도는 흩어지지 않았다. 그 대신 민가의 검격과 함께 당당히 세상에 자신의 흔적을 새길 뿐.

       

       “…매화향?”

       

       민가의 검 끝에서부터 꽃잎과 함께 매화의 향취가 퍼져 나간다.

       

       그녀의 검무를 멍하니 바라보는 종선을 지나.

       

       고개를 드는 법을 잊어버린 여러 풀잎을 지나쳐.

       

       죽음 이외에 그 무엇도 품지 못하게 된 대지를 넘어.

       

       공허한 푸름만을 지닌 하늘을 향해 뻗어나가서는.

       

       이윽고 매화가 세상 전체를 자신의 존재로 채워냈다.

       

       썩어 문드러져 스스로는 생명을 피워내지 못하게 된 대지에 매화가 흩날린다.

       

       “대충 이런 것이다마는.”

       

       하늘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며 내려오는 매화의 한 가운데에서 민가가 고개를 돌린다.

       

       “어떠냐. 이 정도면 선계를 되살릴 수 있을 듯 싶으냐?”

       

       그녀의 물음을 들은 순간 종선은 한 치의 고민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의 규율 위에 선 존재가 이 대지에 강제로 생명을 흩뿌리는데 그것으로 대지를 살리지 못한다면 신선이라는 이름이 아까울 터.

       

       “다른 신선들을 불러오겠습니다. 그러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천천히 하거라. 다급하게 움직이지 않아도 본인은 사라지지 않으니까.”

       “하하. 그것은 알고 있습니다만 한시라도 빨리 과거의 영광을 되찾은 선계를 보고 싶은지라 그러지 못할 듯 싶습니다.”

       

       *

       

       종선이 구름을 타고서 떠나간 후. 검선은 눈을 벌겋게 물들인 채 내게 이것저것을 물었다.

       

       처음에는 세상의 규율을 바꾼 것에 대한 질문일거라 생각했다만 본인의 예상은 가뿐하게 빗나가 버렸다. 검선이 내게 바란 답은 매화검이라는 검술 그 자체에 관한 것이었으니까.

       

       검에 미쳐 검을 휘두르다가 인간의 거죽을 벗는 무인답다고 해야 하나.

       

       딱히 숨길 것도 아니기에 화산의 매화와 본인의 매화에 관해 알려주었더니 검선이 노골적으로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도 그럴 것이 매화검은 본인처럼 규율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자하신공을 배워야지만 다룰 수 있는 무공이니까.

       

       “이런 고강한 검술을 구경만 해야 하다니. 간식을 앞에 둔 채 기다리기만 해야 하는 강아지의 심정을 이해할 것 같군.”

       “무얼. 그대도 규율을 바꾸는 경지에 이르면 되는 것 아닌가.”

       “…그걸 말이라고 하는가?”

       “아라야. 그건 복장지르는 소리밖에 안 되는 듯 하다만.”

       “아라?”

       “아. 검선님께선 모르셨습니까? 민가의 진짜 이름은 아라입니다.”

       “흐음. 하긴. 민어쩌구 하는 이름이 상당히 괴악하긴 했지.”

       

       그런 자잘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려니 얼마 지나지 않아 종선이 신선 무리를 데리고서 돌아왔다.

       

       “모든 준비는 끝났습니다. 바로 시작하시지요.”

       

       죽어버린 선계를 되살릴 시간이었다.

       

       …음. 과거 선계를 부수고자 했던 본인이 선계를 구원하게 될 줄이야.

       

        세상일은 정말 한 치 앞을 알 수가 없구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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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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