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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27

   99층을 뚫고 100층으로 올라온 아서는 보스룸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던 자기 자신들을 마주하고 나서 방학 동안 죽어라 노력했던 자신을 원망했다.

   

   방학 이전의 자신과 방학 이후의 자신이 전혀 다른 사람이듯 그의 앞을 가로 막는 도플갱어 또한 전혀 다른 사람이었던 것이다.

   

   “다른 생각 할 틈이 있나?”

   “젠장!”

   

   더 짜증나는 것은 도플갱어들이 일행의 약점을 완벽하게 관통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서 아서는 여유를 잃어버릴 정도로 몰리면 더 이상 지휘를 이어나가지 못하게 된다.

   

   마법과 검술을 양립하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치기에 주변까지 신경을 쓸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를 아는 도플갱어들은 프레이를 따라한 녀석에게 아서를 전담시키는 것으로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프레이 쪽도 상황이 안 좋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지닌 검술은 분명 강력하다. 벨 수 있는 것보다 벨 수 없는 것이 더 적을 만큼.

   

   허나 검의 강력함을 펼칠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면 프레이의 강력함도 빛이 바래기 마련이다.

   

   도플갱어들은 이 점을 집요하게 노렸다.

   

   조이의 마법을 통해 애초에 검을 맞댈 상황 자체를 자꾸만 회피해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프레이는 견제를 당하는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든 견제를 뚫고 검을 휘두르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 때마다 페이비의 신성 마법이 그녀의 앞을 가로 막았다.

   

   여태까지 그들에게 든든함을 선사하던 페이비의 신성은 지금에 이르러서 그들에게 가장 큰 장벽이 됐다.

   

   조이도 곤란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알른 기사단에서의 훈련을 통해 근접전에 익숙해진 조이라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커다란 마법을 사용하기 위한 시간을 끌기 위함.

   

   프레이를 어느 정도 상대할 수 있을 만큼의 실력을 지닌 아서가 마법을 사용해가며 자신에게 달려들면 여유를 지니기 어려웠다.

   

   이처럼 모두가 불리 속에서 간신히 버티는 와중에 전선이 유지되는 까닭은 페이비가 있기 때문이었다.

   

   모든 도플갱어들이 본인과 비슷하거나 본인보다 더한 힘을 보이는 와중에 페이비의 도플갱어만큼은 페이비를 완벽하게 따라하지 못했다.

   

   분명 신성마법을 펼치는 수준 자체는 비슷한 것처럼 보이는데 정작 그 결과물은 전혀 달랐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있던 페이비는 자신의 힘으로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상황이 지날수록 패색은 짙어졌다.

   

   상대방은 자신들을 쓰러트리기 위한 완벽한 전략이 준비되어 있는데 자신들에겐 아무런 전략이 없었다는 점이 컸다.

   

   사실 전략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어느 누가 자기 자신을 쓰러트리기 위한 방법을 생각하고 있는단 말인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소모전 속에서 점차 밀려나던 아서 일행은 결국 패배를 하고야 말았다.

   

   허나 아서 일행의 분위기는 그리 어둡지 아니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 때문에 패배했을 뿐.

   

   100층에서 기다리고 있는 게 무엇인지 아는 지금은 이야기가 다르다.

   

   자기 자신들이 상대라는 것을 안다면 그에 걸맞는 전략을 준비하면 그만일 뿐.

   

   뭣보다 아서 일행에게 희망적인 것은 어째선지 페이비만큼은 도플갱어를 압도했다는 점이었다.

   

   한 사람이라도 도플갱어의 완벽한 상위호환이 존재한다면 그를 기점으로 승리를 위한 전략을 짤 수 있으니 아서는 다시금 싸우게 된다면 도플갱어들을 쓰러트릴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그런데 말이죠. 100층에서 기다리고 있는 게 자기 자신이라면 알른 영애는 알른 영애를 상대하게 되는 걸까요?”

   

   다시금 던전으로 진입하기 직전. 조이가 문득 내뱉은 말에 일행의 걸음이 멈췄다.

   

   “그렇겠지.”

   “영애님과 영애님이 싸우는 광경이라니.”

   “잘은 모르겠지만 재밌을 것 같아.”

   

   아서는 재밌을 것 같단 프레이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했다.

   

   루시와 루시가 서로를 매도하며 서로에게 비웃음을 던진다니. 꼭 한 번 구경하고 싶은 모습이었다.

   

   그 빌어먹을 녀석은 한 번 자기랑 비슷한 녀석한테 당해봐야 해. 그래야 자기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자길 배려하고 있는지 알게 될 테니까.

   

   “…어.”

   

   일행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하던 와중 페이비가 눈을 크게 떴다.

   

   “무슨 일이십니까. 성녀님.”

   “…제 추측이 맞다면 영애님의 도플갱어는 영애님보다 훨씬 더 약할 거에요. 정확하게 설명해드릴 순 없지만 분명해요.”

   “그 말인 즉슨.”

   “영애님이라면 어렵잖게 도플갱어를 쓰러트릴 거란 이야기죠.”

   

   페이비가 없는 말을 하지 않을 것임을 아는 아서는 즉시 일행을 닦달해 던전 안으로 뛰어들었다.

   

   루시 알른이 100층에 도착한 게 보이는 지금. 그들에게 쉴 여유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

   

   “괜찮겠어? 그렇게 인상 찌푸리면 더 빨리 할망구가 되어버릴 걸?”

   

   그러면 자기를 올려봐야 할 거라며 키득대는 도플갱어를 본 나는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당장에 달려들어서 저 꼬맹이를 박살내는 거야 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주신의 신성을 따라하지 못하는 저 녀석은 결코 나를 이길 수 없을 테니까.

   

   그치만 말야.

   

   지금 달려들어 버리면 지는 느낌이잖아!

   

   상대의 도발에 휘말려서 달려드는 꼴이 되어버린다고!

   

   난 저런 건방진 꼬맹이한테 말싸움으로 지고 싶지 않아!

   

   “푸흐흫♡ 그게 무슨 문제야?♡ 내가 할망구가 되어버려도 너 같은 가짜보단 훨씬 더 예쁠 텐데♡”

   “젊은 사람보다 할망구를 더 좋아하는 거구나? 푸핳. 취향 참 독특하네.”

   “뇌가 딱딱해서 내 말을 잘 이해 못했구나?♡ 생각이란 게 없는 널 위해 착한 내가 특~별히 설명을 해줄게♡ 내 말은 허접 쓰레기의 손에서 빚어진 넌 날 이길 수 없단 소리야♡”

   

   눈앞의 도플갱어를 나를 잘 흉내내긴 했지만 완벽하게 일치하는 건 아니다.

   

   도플갱어에게는 여러 부족한 부분이 존재한다.

   

   미적감각을 지닌 나에게 선명히 보이는 여러 단점이 말이다.

   

   “눈동자는 투박하고♡ 콧대도 낮고♡ 손가락도 우둘투둘♡ 심지어 목소리도 못 들어줄 지경이잖아♡ 이런 차이점도 못 느끼다니♡ 널 만든 허접도♡ 너도♡ 안목이 별로네~♡”

   

   피식 웃음을 흘리면서 어깨를 피자 도플갱어가 입술을 꾹 깨문 채 날 노려봤다.

   

   흐흥. 메스가키 스킬도 제대로 못 따라하는 네가 날 말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얌전히 패배를 인정하고 질질 짜기나 하시지. 꼬맹아.

   

   “흐응. 귀여운 언니는 안목이 무지무지 뛰어나구나?”

   “이제 주제파악을 한 거야?♡ 체념이 빨라서 좋네♡ 추녀는 처세라도 잘해야♡”

   “그런 언니라면 나랑 언니랑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이 있단 걸 알텐데! 왜 언급을 안 하는 거야? 외면한다고 현실이 바뀌진 않는 다구.”

   

   다른 부분? 뭐가 다르단 거야? 괜한 헛소리를…

   

   아.

   

   아아아!

   

   “뭐야. 이제야 눈치챈 거야? 푸하핳. 귀여운 언니는 너~무 짜그마해서 위를 못 보나 보네?”

   

   도플갱어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결정적인 차이점.

   

   그것은 바로 키의 차이였다.

   

   도플갱어인 루시는 나보다 머리 반 개 정도는 컸고 팔 다리도 좀 더 길었던 것이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매도는 많았다. 미적감각으로 봐도 약점파악으로 봐도 건드릴 구석은 차고 넘쳤다.

   

   그렇지만 입이 움직이질 않았다.

   

   …솔직하게 말할게.

   

   부러워!

   

   너무 부럽다고!

   

   도플갱어가 나보다 엄청나게 큰 건 아냐! 기껏해봐야 몇 센치 정도의 차이지!

   

   근데 그게 더 짜증나! 미묘하게 변화가 현실적이라서 열이 받는단 말야!

   

   아아악! 진짜 저 정도만 되어도 프레이정도는 내려다 볼 수 있을 텐데!

   

   열 받아! 왜 나조차도 가지지 못한 걸 도플갱어 따위가 들고 있는 거냐고!

   

   “부러워? 나처럼 커지고 싶어?”

   

   젠장.

   

   “어쩌면 내가 언니처럼 예쁘지 않은 것도 언니보다 높은 공기를 마셔서 그런가봐~ 나도 언니처럼 아래에 처박혀 있었다면 언니처럼 예뻐졌을 텐데 말야~”

   

   젠장.

   

   “내 키 나눠줄 테니까 가져갈래? 나도 언니처럼 낮은 곳에서 살고 싶거든~ 왜 안 가져가? 아. 못 가져가는 거구나~ 어쩔 수 없네~ 언니는 평생 남을 올려다 보면서 살아야겠다~”

   

   제에엔장.

   

   “불. 쌍. 해. 라”

   

   결국 참다 못한 나는 도플갱어의 비웃음을 받아내며 앞으로 내달렸다.

   

   “쪼끄만 언니는 마음도 쪼끄마하구나? 조금밖에 안 놀렸는데 이렇게나 화를 내다니 말야~”

   

   도플갱어는 비아냥대며 방패를 치켜들었지만 그 방패는 내가 다루는 것과는 다른 평범한 물건이었으며 그를 보조하는 신성 또한 평범한 성직자들이 쓰는 것과 별 다를 것이 없었다.

   

   그랬기에 어렵잖게 방패를 박살낼 수 있을 거라고 내가 생각한 그 순간 도플갱어의 방패에 마력이 깃들었다.

   

   태앵!

   

   충격을 어찌저찌 받아낸 도플갱어는 한참이나 뒤로 밀려나서는 부들대는 손을 다잡으며 애써 웃음을 지었다.

   

   “정말~ 그렇게 마음이 작으니까 키도 안 자라는 거라고! 쪼끄만 언니!”

   “미안~♡ 어줍잖게 날 흉내낸 꼬맹이를 보고 있자니 불쾌해서 견딜 수가 없더라♡ 어쩜 이렇게 보면 볼수록 추할 수가 있는지♡ 어떤 의미론 정말 대단하네♡”

   

   도발에 도발로 대응하면서 도플갱어의 몸을 살폈다.

   

   내 도플갱어를 만든 녀석은 도플갱어가 날 완벽하게 따라하지 못할 걸 알고 있었어.

   

   그래서 마력을 동원하게 만들었지.

   

   당장 저 녀석의 키를 나보다 더 키운 것만 봐도 그래.

   

   내가 키에 민감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 않으면 저런 일은 불가능하지.

   

   즉, 내 도플갱어를 만드는 데에 나와 가까운 사람이 끼어들었다는 소리야.

   

   용의자로 의심되는 자들을 떠올리며 앞으로 내달린 나는 도플갱어와 공방을 나누었다.

   

   바란다면 얼마든 힘으로 찍어누를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난 굳이 그러지 않았다.

   

   도플갱어가 움직이는 걸 보면 용의자의 범위를 줄일 수 있을 것 같았거든.

   

   내 생각은 틀리지 않았어.

   

   도플갱어의 움직임은 내가 할아버지랑 같이 메이스를 다루는 법을 익히기 전과 한없이 흡사했거든.

   

   내가 지니고 있던 여러 버릇들까지도 말야.

   

   이러면 용의자는 한 사람 뿐이지.

   

   “허접견♡…”

   

   이만큼이나 나에 대해 잘 알 사람은 하나 뿐이야.

   

   과거에는 수도 없이 나와 검을 맞댔지만 최근 들어선 자신의 일이 바빠 나와 함께하지 못했던 그 빌어먹을 놈.

   

   칼.

   

   허접견. 너 이 새끼. 딱 기다려.

   

   내가 이 던전에서 빠져나가자마자 바로 조지러 갈 테니까.

   

   오늘 네가 지닌 기사의 명예를 갈기갈기 찢어발겨주마.

   

   이를 꽉 깨물면서 심호흡을 한 나는 전신에 신성을 불어 넣었다.

   

   도플갱어를 박살 낼 시간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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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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