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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27

    <427 – 별로 대단한 일은 아닌데>

     

    선배를 배웅하고 나니 흙투성이가 된 이슈타르가 피를 흘리며 공터에서 일어났다.

     

    “괜찮아? 손수건 빌려줄까?”

     

    손수건은 교양의 상징이라며 꼭 가지고 다니라고 조나가 상의주머니에 꽂아준 녀석을 꺼내서 내밀었다.

    마음이 꺾인 것처럼 탁한 눈동자가 내 손에 들린 손수건을 노려보았다.

     

    탁!

     

    주인도 못 알아보고 짖는 애완견처럼 사납게 내지른 손에 허공을 나는 손수건.

    거미초의 끌어당기기를 응용해서 다시 잡아내니 용사의 눈이 무언가를 깨달은 것처럼 마구 떨렸다.

     

    “아깝게 손수건은 왜 때려! 싫음 싫다고 하지.”

    “너였어? 저 괴물을 불러냈던 건.”

    “응? 어어… 몰?루겠는데…”

    “우릴 시험하려고 했구나. 아주 단단히 놀아났어.”

    “그럴 의도는 없었어!”

    “그럼 저 선배는 뭐지? 어째서 저렇게 강한 선배가 널 따라준 건데.”

    “그건 선배가 츤데레라서 그래!”

    “그런 변명을 믿으라고 하는 거야…? 하하. 너, 정말 사람 비참하게 만드네.”

     

    이슈타르의 눈가에 눈물이 차올랐다.

     

    “괜찮아? 역시 손수건 빌려줄까?”

    “필요 없어.”

    “혹시 필요하면 용사파티에 합류할 강한 동료를 소개시켜줄 수도 있는데!”

     

    들은 체도 않으며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이슈타르.

    치료에 쓸 마나조차 고갈될 정도로 힘을 소진한 유피와 스콜라가 허겁지겁 뒤를 따르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3학년 선배가 다가와서 투덜거렸다.

     

    “싸가지 없는 놈들이네. 도와줬더니 왜 난리야? 사고는 지들이 쳐놓고.”

    “너무 욕하지 마요! 굳이 저까지 괴롭히지 않아도 이슈타르는 충분히 불쌍한 사람인걸요.”

    “너도 참 사람이 좋구나. 저렇게 건방지게 구는 녀석을 좋게 봐주고.”

    “그럴 수밖에 없죠. 이슈타르는 앞으로 저 대신 황제도 잡고 마왕도 잡고 지뢰이벤트 지우개로 열심히 활약해야 하는걸요!”

    “황제 지원을 받는 용사가 황제를 왜 지워?”

    “그런 게 있어요!”

    “아… 너 재단 사람이었지. 뭔가 물어보기도 무서워졌어. 방금 건 못 들은 셈 칠래.”

     

    일이 마무리되자 호다닥 달아나는 3학년 선배들.

     

    “잊지 마요! 내기는 제가 이겼으니까 앞으로 우리 응애 훈련 돌봐주기로 한 거!”

     

    선배들이 달아나는 속도가 3배 더 빨라졌다.

    치.

    저런다고 나중에 못 잡을 줄 아나?

    식물동아리에 가거든 옹기종기 모여 있을 거면서.

     

    구구궁…

     

    멀리서 들려오는 먹장구름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아차.”

     

    멀리서 비행마법으로 날아오는 학생회의 기척이 감지되었다.

    그림리퍼 선배가 사용한 힘을 느끼고 급히 진상조사를 하러 오는 거겠지.

    붙잡혀봤자 득이 될 일 하나도 없다.

    범죄현장에서 달아나듯이 <숨기>의 연계기능 <은신>을 사용하며 호다닥 달아났다.

     

     

    * * *

     

     

    “그런 일이 있었어요!”

     

    3학년들과 어떤 모험을 하고 왔는지 들려줬더니 앨리스 선배가 암흑적성평가모자를 삐딱하게 접으며 못마땅한 기색을 드러냈다.

     

    “넌 너무 위험을 즐겨. 그래서는 제 명에 못 살아.”

    “그래도 우리 응애를 괴롭힌 선배들을 그냥 놔둘 순 없었잖아요. 이럴 때 참교육을 해야 우리 응애가 저를 존경하겠죠!”

    “응애…”

     

    힘없이 뿌리를 들어 박수를 치는 응애를 봐라.

    얼마나 3학년들한테 시달렸으면 저렇게 힘이 없을까?

    다음 주에 부실로 놀러가서 괴롭혀야겠다.

     

    “그래서… 다른 쪽의 일은?”

    “샤를로테 선배요? 아직 살아계셨어요!”

    “…아직?”

    “비보도전은 포기할 수 없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알겠다고 했어요!”

    “네 설명은 생략이 과해서 의사소통이 명확하게 전달되질 않아. 좀 더 확실하게 있었던 일을 전부 객관적으로 알려줘.”

     

    앨리스 선배도 참 깐깐하다니깐.

    그래도 몇 년간 벽에 붙어 살았던 선배의 소원이라니 어쩔 수 없지.

    샤를로테 선배와 대면했을 때의 일을 들려주었다.

     

     

    * * *

     

     

    비보도전자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마력재해에 맞설 힘을 기른다.

    누군가는 대량의 유실물을 모아 돌파를 시도하고, 누군가는 비보보다 앞선 마력재해의 중심부에 숨겨진 강력한 유실물 하나의 입수를 노린다.

    유실물이라는 신외기물에 의지하는 대신, 마력재해 그 자체에 적응하며 속성친화작을 하는 선배도 있다.

     

    “샤를로테 선배는 정공법을 좋아하시는구나!”

    “…누구냐.”

     

    서슬퍼런 빛과 함께 뽑혀나온 세검이 미리 쳐둔 보호막을 뚫고 목 언저리에 닿으려다가 중첩보호막에 가로막혔다.

     

    “저는 오크노디라고 해요. 올해로 10살? 11살? 나이는 잘 몰?루에요.”

    “그렇게 어린 애가 휴학생 전용구역에서 뭘 하는 거지. 내 이름은 어떻게 알았고?”

    “저, 실은 선배에게 궁금한 것이 있어서 왔어요. 선배에게 지령을 내리는 감독관이 누구인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딱 그것만 알면 되는데!”

     

    잿더미를 뒤집어쓰고도 바래지 않는 미모의 세검사 샤를로테가 레이피어를 빙글 돌렸다.

    회전력을 실어 내지르는 검격은 아이라고 봐주는 것 없이 이중보호막을 동시에 꿰뚫었다.

    하지만 검을 회전함과 동시에 펼친 삼중첩 회전보호막을 뚫지 못하고 가로막혔다.

     

    “정말 맹랑하네. 교관들의 눈조차 닿지 않는 휴학생 전용구역의 마력재해 한복판에서 재단의 감독관의 정체를 묻다니. 너, 목숨이 몇 개라도 되니?”

    “오해하지 마세요. 저는 적이 아니에요! 저도 재단의 아가씨인걸요.”

    “증거.”

    “이건 제 집사의 호루라기예요. 샤를로테도 재단의 아가씨라면 집사소환템이 있겠죠?”

     

    샤를로테가 처음으로 레이피어를 휘두르지 않고 슬픈 눈으로 호루라기를 쳐다보았다.

    두터운 로브 속으로 들어간 손이 금줄에 묶은 낡은 호루라기를 꺼냈다.

    내 것과 비슷한, 그러나 훨씬 오래된 세월이 느껴지는 낡은 호루라기였다.

     

    “네 것은 깨끗하구나. 아가씨라면 가장 소중히 여길 호루라기인데도.”

    “아직 받은 지 1년도 안 지났거든요!”

    “…조나 와이히엠하이의 아가씨겠네.”

    “우와. 어떻게 알았어요?”

    “재단의 병기인 아가씨를 육성함에도 충분한 시간을 허락받지 못한 유일한 집사. 스스로가 지은 죄의 대가를 아가씨의 목숨으로 치르는 남자. 네 집사는 그런 사람이야.”

    “힝. 파파랑 사이가 안 좋았구나.”

    “파파…?”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보다 제가 아가씨라는 사실이 증명됐으니 이제 감독관을 알려주실래요? 모름지기 정보란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 주고받기를 해야죠!”

     

    로브 사이로 슬쩍슬쩍 보이는 늘씬한 몸매나 선이 뚜렷한 외모는 남녀노소 인기를 끌 중성적인 매력이 있었지만 이 사람은 좋은 거래 상대는 아니었다.

     

    “너, 앨리스의 동생이지?”

    “헉. 앨리스를 어떻게 알았어요?”

    “같은 978기에서 조나에게 선정된 불운한 아가씨였으니까.”

    “조나를 불행토템처럼 말하지 말아요!”

    “그 남자가 나쁜 건 아니지. 하지만 훈련기간을 반 강제로 단축당하는 아가씨에겐 그의 선택을 받은 것이 가장 불운할 수밖에.”

     

    아픈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파고든다.

    그 사실에 스스로도 상처 입는 주제에.

     

    “조나 와이히엠하이. 그 불행한 집사라면 알 거야. 나 샤를로테의 집사가 누구인지.”

    “집사? 제가 찾는 건 감독관인데요!”

    “내 소중한 사람과 네 원수는 다른 사람이 아니야. 현 세대 중에서는 가장 유능한 아가씨를 배출한 집사이기에 출세했다고 할까.”

    “아항. 그럼 먼저 갈게요!”

    “그렇게는 두지 않아.”

     

    샤를로테의 레이피어가 허공을 격하자 공간을 무시하고 지척에서 불쑥 레이피어의 검신이 튀어나왔다.

     

    “어째서 순순히 정보를 알려줬다고 생각해? 알려줘도 상관없기 때문이야. 넌 돌아갈 수 없어. 그 정보는 저승길에 가져갈 노잣돈 대신이니까.”

     

    ━━━

    [돌발이벤트 샤를로테 조우전!]

    재단의 아가씨 샤를로테.

    그녀는 앨리스가 알고 싶어 했던 원수의 정체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 정체는 바로 샤를로테의 집사!

    하지만 이 정보를 조나에게 전달해 샤를로테의 집사의 정체를 알아내려면 당신을 죽이려는 샤를로테의 손으로부터 살아남아야 합니다.

    힘과 지혜, 언변.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너무 빨리 피어버린 꽃은 빠르게 저물듯이 너무 빨리 휴학생 전용구역에 발을 들인 당신에게도 이 위기는 적잖이 심각합니다!

    부디 무사히 탈출해서 티토소가의 조명대에 붙인 셀로판지를 떼어주세요. 한 가지 색만 나오는 조명대는 너무 불편합니다!

    ━━━

     

    힝. 이벤트 문구를 작성하는 존재가 나보다 티토소가를 더 아끼나 봐.

    내 걱정이 아니라 티토소가 걱정을 하고 있어!

     

    <샤를로테 레이피어술>

    <절명기 – 일점도야一點陶冶>

     

    선배의 기술은 이벤트 문구의 경고가 심각하게 변할 정도로 날카롭긴 했다.

    굳이 빗대자면 용사의 상위호환이라고 할까.

    언제 어디서 공격이 전송되는지 출발점과 도달점을 추측할 수 있는 <홀리미러>와 달리, 샤를로테 선배의 검끝은 아무 때나 허공을 찌르고 어디서든 불쑥 튀어나왔다.

    앞에서 내지른 검이 등 뒤에서 불쑥 튀어나오고, 옆으로 쳐낸 검이 상하좌우를 간 보듯이 한 번씩 튀어나올 징조를 보이다가 발밑에서 튀어나왔다.

    타이밍을 속여 5m의 간격을 먼저 격할 것처럼 굴더니 두 발로 간격을 따라잡아 실제로 내지르는 검이 일점도야의 뒤로 이어지기도 했다.

     

    ‘엄청나게 테크니컬한 속검!’

     

    일점도야 하나만으로도 이렇게나 다채로운 변주를 구사할 수 있는 선배는 기본기가 곧 모든 것이라는 전투법을 보여주었다.

    3학년 내에서도 이 검을 받아낼 수 있는 선배가 몇이나 될지 의문스러운, 현역 4학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전투력!

    그러나 사람에게는 인간상성이라는 개념이 있다.

     

    캉캉!

     

    아무리 빠르게 내질러도, 아무리 교묘하게 속임수를 써도, 속임수로 위장한 정공법으로 정면에서 실력대결에 돌입해도.

    나는 하나도 속지 않고 모든 공격을 인지하고 받아치는데 성공했다.

     

    “유감이네요, 선배! 그 전투법은 이미 익숙하거든요.”

     

    한방에 모든 패턴을 밀어버리고 즉사시키는 <근 력올인한방캐릭이조아 해병>도 게임을 시작한 첫 트라이부터 탄생한 빌드는 아니었다.

    오히려 이 빌드에 도달하기 이전까지 내가 가장 애용했던 기술은 따로 있었다.

    플레이어블 캐릭터, 용사 <이슈타르>.

    그녀가 구사하는 현란한 성검술.

    한때, 내가 가장 즐겨 쓰던 검술이 그것이었으니.

     

    “…그런가. 앨리스의 복수를 위해 이미 조나 와이히엠하이가 내 모든 기술을 알려주었군.”

     

    샤를로테 선배가 무언가를 단단히 착각한 눈을 하더니 중단세를 풀었다.

     

    “하지만 그 남자가 알 수 있는 내 전력은 휴학생 전용구역에 입성하기 이전까지의 전력이겠지.”

     

    대신, 검 끝을 더욱 들어 올려서 머리높이에서 겨냥하는 상단세를 취한다.

    휘두르기나 베기가 아닌 찌르기임에도 불구하고 상단세를 취하는 기괴한 자세.

    그런데도 압박감은 직전까지의 배 이상 급증했다.

     

    ‘우왕. 이거 힘으로 깨는 이벤트가 아니구나!’

     

    압박감을 느끼자마자 깨달았다.

    이건 편법이 필요하다.

    그래서 한 가지, 편법을 부려보았다.

     

    “샤를로테 선배님은 강하고 아름다우세요!”

    “그래? 유감이네. 아름다운 꽃에는 가시가 피어나기 마련이니까. 네 아첨으로는 이 검을 멈춰 세울 수 없겠구나.”

    “그래서 전 이렇게 생각해요. 선배라면 용사파티의 동료도 될 수 있겠다고!”

    “…하아?”

    “휴학생 전용구역의 비보를 얻어서까지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용사파티의 파티원이라는 신분이 있으면 분명 큰 도움이 되겠죠? 저라면 이슈타르에게 선배를 소개시켜드릴 수 있어요!”

     

    장미처럼 고고한 선배의 가시처럼 날카로운 레이피어가 마침내 검 끝을 지면으로 내렸다.

     

     

    * * *

     

     

    “별로 대단한 일은 아닌데 그런 일이 있었어요!”

    “엄청나게 대단한 일이잖아. 이슈타르한테 소개시켜주려고 했던 동료가 그 샤를로테잖아.”

     

    앨리스가 모자의 입구를 조이며 내 정수리를 구깃구깃 짓눌렀다.

     

    “으앙, 아파요!”

    “넌 좀 아파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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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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