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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27

       

       

       잠시 뒤, 우리는 전부 선글라스 고글을 착용했다.

       

       그냥 평범한 선글라스처럼 까만 코팅이 된 것인지 아니면 어떤 특수한 코팅이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히 시야가 어두워지고 눈에 들어오는 빛이 적어졌다. 

       

       “……이상하지 않소?”

       

       내 곁에 다가온 이유하가 걱정스러운 듯이 물어왔다. 

       

       “뭐가?”

       “그대 눈에 내 모습이 어찌 비추어질지 두렵구려.”

       “……괜찮아. 멋있어. 어울려.” 

       

       선의의 거짓말이었다. 이 무슨 해괴한 패션이란 말인가. 1930년대에 검은색 선글라스 고글은 분명 흔한 패션 아이템은 아니었다. 

       

       그나마 이게 어울리는 사람은, 옷깃을 세운 긴 프록코트 차림에 떡진 머리를 치렁치렁 늘어트린 구로베 교수였달까. 이쪽은 나름 빌런같은 멋이 있었다. 의외로 착한 사람이지만.

       

       그 외로, 나를 포함해서 나머지는 가꾸란이며 세라 교복 차림에 선글라스 고글을 쓴 것이 마치 시대를 한참 어긋난 패션을 한 것처럼 보였다. 

       

       일단 이유하의 댕기머리와는 어울리지 않았고, 심지어 무라사끼 녀석은 도복에 선글라스 고글 차림이었으니……

       

       그 중에서도 특히 가관인 것은 홍옥례였다. 내가 준 고무타이즈수트를 입고 눈에는 검은색 선글라스 고글을 씌우니, 마치 수영선수…… 

       

       가 아니라 그냥 변태같잖아. 

       

       “배, 백 동지? 왜 그렇게 봐……?”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래도 워낙 날렵한 근육이 있는 건강한 몸매였기에 나름대로 마치 올림픽 선수 비슷하게 보이기는 했다. 옥례야! 자신감을 가져도 좋아! 나는 괜히 부끄러워하는 홍옥례에게 물었다. 

       

       “그보다 옥례야. 밧줄 있어?”

       “히익! 도, 동지……?”

       

       이런 상황에서 뭔 상상을 하는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용건을 말했다.

       

       “있으면 잠깐 빌려 줄래? 내가 몸에 묶고 먼저 들어가 볼테니, 내가 대답이 없고 이상하다 싶으면 잡아당겨 줘.” 

       “어, 으응!”

       

       아무리 빛 차단 효과가 있어보이는 선글라스 고글을 썼다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다. 허리에 밧줄을 묶은 나는 다시 문 앞에 다가가, 창문 가림막을 들추어 보았다. 흐릿하게 빛이 보였지만 아까처럼 마음이 조급하지는 않았다. 

       

       『좋아. 문 열테니까, 다들 등 돌리고 눈 감고 있어.』

       

       나는 문고리를 돌리며 문을 열었고, 내부의 빛이 쏟아져들어옴을 느낌과 동시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어디.’

       

       그리고 천천히 눈을 뜨자, 저 안쪽의 빛덩이 즉 영혼 혼합체 안쪽의 필라멘트가 똑똑히 보일 정도로 광량이 확연히 감소되어 보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전에 아무 준비도 없이 교내 령입자흡인기를 마주쳤을 땐 죽은 사람이 말을 걸어온다거나 하는 환각이 있었지만, 지금 그런 것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계속 응시하며 바라보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지만, 잠깐잠깐 시야에 닿는 것은 걱정할 필요가 없어보였다. 

       

       “백 동지!”

       “어엇.”

       

       뒤에서 홍옥례가 밧줄을 당기는 것이 느껴졌다.

       

       “배, 백 동지! 괜찮아? 내 말 들려? 대, 대답이 없으면 당기라고……”

       “아니야. 괜찮아. 환각은 없는 것 같네. 다들 들어와. 혹시 모르니까 빛을 너무 빤히 바라보진 말고.”

       

       다들 쭈뼛거리며 이 안쪽으로 들어왔고, 나도 그제서야 찬찬히 주변을 살폈다. 들어오기 전에는 몰랐는데, 이곳은 거대한 원형 공동이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육중한 존재감을 과시하며 자리잡고 있는 것은, 일전에 교내 신사 지하에서 보았던 그 진공관 컴퓨터 즉 령입자흡인기와 비슷하게 생긴—하지만 더욱 거대한 기계.

       

       수천 수만의 진공관이 박힌, 거의 조그만 건물만한 기계가 그곳에 있었다. 아니, 과장이 아니라 내가 아지트로 쓰는 2층 상점건물보다 더 큰데. 

       

       그리고 그 위에 올려진 거대한 진공관을 중심으로  마치 원기옥마냥 구빛나는 영혼 혼합체의 규모도, 교내 지하에 있던 것보다 더 거대했다. 

       

       ‘……와우.’ 

       

       역시 이게 원본이고, 교내 지하에 있던건 복제품인걸까. 이건 다르게 불러줘야겠지. 아까 뭐라 했더라. 프노이마-파티켈-자우거? 

       

       규모를 차치하고도 교내 지하에 있었던 것과 차이점이 있다면, 이 프노이마-파티켈-자우거에는 빼곡한 진공관 사이사이마다 수많은 알루미늄 파이프가 통과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뭔가 알 것 같나?』

       

       구로베 교수가 다가와서 물어왔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교내에 있는 것은 이 기계의 축소판인 듯 하네요. 다만 이 파이프는 교내에 있던 것에는 없던 건데, 이게 무슨 기능을 하는건지는……』

       『냉각기 같군.』 

       

       구로베 교수가 말했다. 

       

       『진공관은 막대한 열을 발생시킨다. 이곳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발열을 식히기 위해, 공기조절장치로는 모자라서 흐르는 물을 통해 열을 식히는 것으로 보이는군.』 

       

       일리있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21세기의 컴퓨터에서도 종종 쓰이는 수랭(水冷) 쿨러라는 건가. 

       

       원리는 똑같아 보였다. 단, 21세기의 개인용 컴퓨터에서 수랭에 필요한 냉각수는 고작해야 2L 생수통 하나 정도인데, 이 건물 한 채만한 기계를 식히려면……

       

       『필요한 물 양도 어마어마하겠네요.』

       『아마 근처의 한강에서 물을 끌어다 쓰고 있겠지.』

       

       구로베 교수는 천장을 가리켰다. 엄청나게 굵은 수도관이 천장을 가로지르고 있었는데, 기계를 냉각중인 알루미늄 파이프는 그 수도관에서 모세혈관처럼 이어져나온 것이었다.

        

       ‘과연.’

       

       그러고보니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인 미생정은 미래의 용산구 도원동. 한강에서 불과 몇백 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그래서 이 시설을 일부러 이곳에 지은 걸까. 

        

       ‘파괴시키긴 쉽겠어.’ 

       

       나는 그런 생각을 한 뒤,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 근처에 생산시설도 있을 텐데요. 저긴가?』

       『저 쪽에 젤렌-뢰흐러-레흐나-파브리크(Seelenröhrerechnerfabrik)라고 쓰여져 있군. 영혼관(管) 계산자 제작소라는 뜻이니 아마 그렇겠지.』

       

       젤렌레후레후…… 뭐? 하여간 독일어 단어는 하나같이 양심없게도 길고 발음하기 어려웠다. 아무튼 영혼관 계산자라는 것은 영혼을 담는 진공관 컴퓨터라는 뜻이겠지. 

       

       아무튼, 원본이 되는 기계와 그 생산시설까지 한 곳에 있었다. 나중에도 이런 기계를 뽑아내는걸 막으려면, 기왕 지금처럼 기회가 왔을 때 파괴하는 것이 좋겠지. 

       

       ‘그나저나, 독일 놈들은 이런 기계를 왜 만들……’

       

       그런 의문이 들려고 할 때, 어딘가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독일어로 떠드는 말소리와 철제 바닥을 밟는 단단한 군홧발 소리는 멀리서도 잘 들려왔다. 

       

       『잠깐. 피하죠. 병사들이 오는 것 같네요.』

       

       우리는 곳곳에 있는 커다란 장비들 뒤로 모습을 숨겼다. 구로베 교수의 마력 역장으로 우리 쪽에서 발생하는 소리는 바깥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끔 막을 수 있었지만, 모습을 감추지는 못했으니까. 

       

       공동 한쪽과 연결된 복도에서 천천히 걸어나오는 나치독일군 병사 두 명이 보였다. 나치 병사들 역시 철모 아래로 눈에 선글라스 고글을 쓰고 있었는데, 다행히 우리를 발견하진 못한 것 같았다. 

       

       그냥 경로를 따라 순찰중이던 것 같으니까 빠져나가길 기다려야지. 나치 병사들은 한참동안 기계 앞에 선 채 잡담을 이어나갔다.

       

       „………Japaner…………“ 

       „………Jude…………“

       

       숨어서 듣고 있자니, 대화를 알아듣진 못하겠지만 ‘야파나’니 ‘유더’니 하는 말들이 귀에 들려왔다. 눈치껏 추측해보자면, 어감상 ‘야파너’는 일본인, ‘유더’는 유대인을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인데…… 

       

       나와는 달리 제대로 알아들은 듯한 구로베 교수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우스운 이야기를 하는군.』

       『뭐랍니까?』

       

       내가 묻자 구로베 교수는 나치 병사들의 대화를 설명해 주었다.

       

       『자신들이 만들어준 이런 위대한 기계의 복제품을 가지고, 일본인들은 비효율적이게도 사고로 우연히 죽는 생도의 영혼만을 모으고 있다고 조롱하더군. 자신들이 효율적으로 유다야 인들을 ‘처분’해 그 영혼을 모으는 것에 비하면, 기계의 낭비라고 말하고 있다.』

       

       아니, 미친 놈들인가. 

       

       내가 알던 세계에서도 나치는 아우슈비츠 같은 곳에 유대인들을 몰아넣고 죽이던 놈들이었지만, 이 세계에서는 그 짓을 다른 이유를 하나 덧붙여서 똑같이 해대고 있었던 것이다. 

       

       많은 영혼을 ‘효율적으로’ 모으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그래서 이런 기계를 만든 거였나…….’

       

       그러고보면 전에 만났던 미국인 OSS 요원은, 독일놈들이 ‘레벤스라움’이니 뭐니를 만들 작정이라고 했었지. 

       

       일본의 대동아공영회 놈들이 ‘대동아공영권’이라는 반지름 2,000 킬로미터의 대결계를 만들려는 것처럼, 이 나치독일 놈들도 수백만 유대인의 영혼을 원료로 비슷한 짓을 하려는 것 같았다.

       

       아니면 엄청난 양의 영혼 에너지를 응축해서 폭발력을 일으킨다는 령자폭탄같은 것을 만드는 데에 쓰일 수도 있고. 대체 사람 목숨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그러고 보면, 그 미국인 요원은 이런걸 이미 다 알고 있던 것 같은데.’

       

       미국도 정보가 있으면 진작부터 대응할 준비를 하고 있을텐데, 설마 미국도 독일 일본처럼 영혼을 모아서 령자폭탄을 만들려는 것은 아니겠지? 미국은 내가 알던 역사대로 우라늄이랑 플로토늄 가지고 원자폭탄을 만드는 게 맞겠지? 

       

       ‘미국아. 너네는 원자폭탄 만드는 거 맞지?’

       

       잠시 믿음이 흔들렸지만, 으음. 미국을 믿자.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내가 미국을 믿지 않으면 누가 믿어주겠나.

       

       적어도 내가 알기로, 이쪽 세계에서도 원자핵에 대한 연구는 한창 물리학계의 최신분야로써 다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미국은 원폭을 개발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렇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여담이지만 작중의 현재 날짜는 1939년 8월 2일 화요일입니다.

    실제 역사에서는 아인슈타인이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편지를 쓴 날짜랍니다. 아무래도 독일인들이 핵무기를 만들려는 것 같으니, 미국이 먼저 만들어야 한다고 핵무기의 개발 연구를 제안하는 그 편지를요.

    그럼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맛난 저녁 드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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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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