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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28

        

       실험.

         

       정중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치고는, 꽤 흉흉한 느낌이 있는 단어였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그 단어에 대해 지적하지 않았다.

         

       직접 말을 꺼낸 모리스는 변명을 꺼내지 않았고, 여우 가면을 쓴 신관도 박진성도 실험이라는 단어에 아무런 저항이 없는 것처럼 그저 모리스를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무슨 실험입니까?”

         

       “오, 그 실험이란…. 흠.”

         

       모리스는 실험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잠시 고민하다가 진성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그에게 눈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것은 진성 박과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 말씀이신지요?”

         

       “예. 그렇지요. 진성 박이 이 한국에 속해있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관련이 있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더니 품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더니 얇고 작은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는데, 그것은 진성에게 있어 아주 익숙한 물건이었다.

         

       태블릿.

         

       그것도 유명 브랜드의 제품이었다.

         

       모리스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태블릿을 켠 뒤 사진을 찾더니, 무언가를 화면에 띄우곤 진성과 신관을 향해 보여주었다.

       

        “흠.”

         

       모리스가 그들 쪽으로 향한 태블릿에는 동양의 고서적에서 볼법한, 투박하고 낡은 그림이 띄워져 있었다.

         

       닥나무를 이용해서 만든 종이인지,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천에다 그린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삭고 변색하여 있었고, 그림에 사용된 먹 역시 군데군데 흐릿해지고, 유실되어 오랜 세월 동안 풍파를 맞았음을 짐작하게 만든다.

       게다가 사진을 찍을 때 잘못 찍기라도 한 것인지 중간중간 그림자에 가려지거나 역광이나 빛 번짐이 보이고 있었고, 그 때문에 그림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느낌을 거의 살리지 못하고 있기까지 했다.

         

       그뿐이 아니다.

       성능이 좋지 않은 카메라로 찍기라도 한 것인지 선명하지도 않았고, 또렷하지도 않았다.

         

       어떤 느낌인지, 어떤 형태인지 대충 알 수는 있지만 단지 그뿐.

         

       연구에 사용하기에는 너무나 부실한 자료라고 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런데도 사진은 가치가 있었다.

         

       화질도 낮고, 원본도 낡았음에도.

       그런데도 사진은 분명히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 모인 주술사들에게 있어서는 말이다.

         

       “해골의 탑이로군요?”

         

       해골의 탑.

       사람의 머리통을 쌓아서 쌓아 올린 탑을 묘사한 그림.

         

       “예. 그렇습니다. 옛날 고구려가 쌓았다고 여겨지는 주물이지요.”

         

         

         

        * * *

         

         

       『 …중원 땅에 사는 이들에게는 기묘한 풍습이 있었는데, 이를 경관(京觀)과 갱살(坑殺)이라 하였다. 이들은 사람을 죽이고 쌓는 것을 즐겨하였으며, 이를 이용하여 구조물을 만들고 승리를 기념하는 행사를 하였다. 그 풍습의 형태는 시대나 나라에 따라 차이가 있었는데, 사람이 잘 썩어 문드러지기를 기다렸다가 쌓아 올리는 형태도 있었고, 살을 잘 발라낸 뒤 백골로 만든 뒤 쌓아 올리는 예도 있었다.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은 시체 위에 흙을 덮어 탑을 만드는 형태로, 그 위에서 제를 지내 승리를 기념하곤 하였다. 』

         

       『 적의 시체를 이용하여 탑을 쌓는 것을 경관(京觀), 포로를 죽인 뒤 시체를 전시하는 것은 갱살(坑殺)이라. 경관은 적에게 공포를 안겨주는 효과가 있으며, 갱살은 포로가 헛되이 반항하는 것을 막을 수 있으니 큰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행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경관을 쌓는 것은 종종 볼 수 있게 되었으나 갱살(坑殺)의 잔혹함은 줄어들어 전시하는 대신에 그냥 땅에 파묻고 죽이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풍습은 청(淸)이 들어섬에 따라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

         

         

         

        * * *

         

         

         

       “사람의 시체를 쌓아 올리는 행위는 의외로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습니다. 원초적인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방법이기도 하며, 전공을 자랑하기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고의로 행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시체의 탑은 생기게 됩니다. 시체를 일일이 땅에 파묻어 둘 순 없으니 한 군데에다가 몰아두거나 쌓아두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모리스는 눈을 반짝였다.

         

       “하지만 그것이 어떠한 의식이나 풍습이 될 정도냐 하면 그건 또 아니지요. 기껏해야 전장의 광기에 물들어서 벌인 사건에 지나지 않은 것이 대부분입니다. 이렇게까지 본격적으로 탑을 쌓고 과시하는 행위는…꽤 드물다고 할 수 있지요. 특히나 나라 단위로 탑을 세우는 것이라면 더더욱 말입니다.”

         

       모리스는 거기까지 말했다가 잠시 멈췄다.

         

       “어쩌면 옛 동아시아의 사람들은 시체로 탑을 쌓아 올리는 행위가 적을 물리치고 포로와 아군을 통제하기에 좋은 수단이라는 것을 깨달았을지도 모릅니다. 적어도 수많은 사람으로 쌓아 올린 탑을 보게 된다면, 공포라는 감정을 가지게 될 테니 말입니다.”

         

       “그럴 수 있지요. 같은 사람의 시체만 보고서도 겁에 질리는 것이 대부분인데, 수많은 사람의 시체를 이용해서 쌓아 올린 탑이나 언덕을 보게 된다면…. 분명히 공포라는 감정을 느끼게 되겠지요. 어쩌면 그 공포에 그대로 굴복해서, 충실한 노예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하하하. 제 말이 그 말입니다.”

         

       그는 진성이 흥미롭다는 기색을 보이자 웃음을 지었다.

         

       “실제로 중국은 시체로 탑을 쌓아 올리는 행위를 적극적으로 행했습니다. ‘중원’이라고 불리는 중국 땅을 통일하고, 이민족을 몰아내고, 잡은 포로를 노예로 사용하며…정말로 효과적으로 이 잔혹한 행위를 잘 사용하였습니다.”

         

       “흐음.”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잔혹함은 중국만의 전유물이 아니었지요. 중국이 ‘오랑캐’라고 부르던 이들 중에는 중국 이상의 잔혹함을 가지고 있는 이들도 많았고, 중국이 분열되었던 동안 동아시아의 패자로 부상하던 국가 또한 있었으니까요.”

         

       흉노족이 그러했고, 거란족이 그러했다.

       그들은 중국 이상의 잔혹함을 여과 없이 보여주며 수시로 중국인들을 학살하고 그들의 시체로 탑을 쌓아 경관(京觀)을 만들었으며, 그중 몇몇은 아예 역사에 이름까지 붙여질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하기도 했다.

         

       “흉노족이 만들었다는 고루대(骷髏臺)는 정말 엄청났다고 하더군요. 뜻을 풀어보면 뼈로 만든 누각이라는데…. 얼마나 많은 이들을 죽이고 재료를 사용했기에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 도저히 상상되지를 않습니다. 동양인들 특유의 허풍을 참작해야 하겠지만…. 그래도 누각이라는 단어를 쓸 정도였다면, 충분히 거대한 규모였으리라 생각이 되는군요….”

         

       모리스는 그렇게 말을 흐리더니 다시 진성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구려 역시 마찬가지였지요. 수나라와 싸웠고, 수많은 병사를 죽였고, 그 병사를 재료로 탑을 쌓았다고 합니다.”

         

       그는 태블릿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바로 이런 형태로 말입니다.”

         

       낡아빠진 그림.

       아까와 똑같이 볼품없어 보이는 사진이다.

         

       하지만 아까와 달라진 것이 없음에도, 왠지 모르게 아까와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착각일까?

         

       태블릿에 띄워진 사진에서는 묘한 광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강변을 따라 세워져 있다고 했는데, 그 위용이 정말 대단했다고 하지요. 하기야 기록에 따르면 110만이 넘는 병사를 끌고 쳐들어왔다고 했으니…. 대단할 수밖에 없겠지요. 그토록 많은 재료를 사용하는데 어찌 대단하지 않고 배기겠습니까?”

         

       짤그랑.

         

       모리스는 고대에 세워졌을 백골탑을 떠올리며 양손을 맞잡았고, 그 과정에서 반지와 팔찌가 부딪치며 금속음을 내었다.

         

       “백골탑이라…. 흥미로운 것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하하. 그렇지요.”

         

       모리스는 태블릿을 품 안에 넣고 진성과 신관을 바라보았다.

         

       “저는 죽음에 관해 탐구하는 사람입니다. 죽음의 존재와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 알기 위하여 끊임없이 답을 구하고 있으며, 그 답을 구하기 위해 세상을 떠돌아다니고 있지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저는 자연스럽게 어떠한 것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짤그랑.

         

       “사람의 죽음을 재료로 삼아 만드는 구조물입니다.”

         

       짤그랑.

         

       “죽음을 재료로 만든 구조물에서는 수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미지와 공포 그 자체인 죽음을 ‘도구’로서 사용하기 위한 인간의 지혜를 볼 수 있으며, 각 문화권에 전승되어 온 신화와 전설이 죽음이라는 소재와 만나 어떻게 개화했는지 볼 수 있고, 각 문화권이 가지고 있는 죽음과 사후세계의 인식을 알아볼 수도 있지요.”

         

       모리스는 반지와 팔찌를 부딪치며 짤그랑 소리를 내었다.

       마치 악령이 사람을 홀리기 위해 규칙적인 소리를 내는 것처럼.

       악령의 행동을 사람이 흉내를 내기라도 하려는 듯, 그렇게 모리스는 기이한 행동을 반복했다.

         

       “그렇다면 그 죽음의 재료는 무엇이냐? 그 해답은 간단합니다. 생물이 죽어서 남기는 것, 그 모든 것이 죽음을 뜻하는 재료가 아니겠습니까? 사람의 가죽이, 뼈가. 썩어 문드러진 끝에 남는 그 잔재야말로 진정 죽음을 위한 재료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짤그랑짤그랑.

       반지가 부딪친다.

       팔찌가 부딪친다.

       녹슨 쇠사슬이, 때가 탄 금속이.

       부딪치고 또 부딪치며 소리를 낸다.

         

       망자의 입에 물린 동전이 땅바닥에 떨어지는 것처럼 덧없는 금속음을 발하고, 백골의 몸에 걸쳐진 금은보화처럼 덧없이 소리를 내며 밤하늘에 울려 퍼진다.

         

       모리스는 망자처럼 소리를 내며 웃었다.

       산 사람이 아닌 것처럼, 꺼림칙한 느낌으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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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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