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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28

   루시 알른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99층을 공략하는 모습을 본 아카데미의 교수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제슬을 비롯하여 루시를 가르쳐 보았거나 그녀의 기행을 직접 지켜보았던 이들은 알른 영애가 또 알른 영애를 하는 구나 하며 헛웃음을 흘렸고.

   

   루시의 기행을 자주 보지 못했거나 이야기로만 들었던 이들은 눈을 부릅뜬 채로 멍하니 99층의 문이 열리는 광경을 지켜봤다.

   

   “…저게 어떻게 가능하지?”

   

   후자에 속한 이들 중 하나이자 교수의 말단인 모니터링 담당이 당혹으로 가득 찬 목소리를 내자 그의 동료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내 눈으로 보고도 믿기가 어렵군.”

   

   루시 알른이 보여준 모습은 믿기 어려운 것들로 가득했다.

   

   명예로운 기사 가문인 알른에 속한 이가. 그것도 주신의 신성을 사용하는 이가 독을 자유자재로 다룬다는 점이라던가.

   

   가문 내에서 훈련만을 받았을 어린 아이가 폭발물을 능숙하게 다루는 부분이라거나.

   

   아니 애초에 저 둘을 도대체 어디에서 구해온 건지에 대한 의문이라거나.

   

   온갖 불경으로 가득한 루시의 신성이 여타 성직자들과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하다거나 하는 것들이 말이다.

   

   허나 이 모든 것을 눈으로 보고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한 이상 이 복잡한 이야기는 한 마디로 귀결될 수 있었다.

   

   단순히 루시 알른이 지닌 재능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것으로 말이다.

   

   그렇지만 한 가지.

   

   단 한 가지.

   

   아무리 생각을 해도 말이 안 되는 부분이 있었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하면 네 보스를 거의 동일한 타이밍에 쓰러트릴 수 있냐는 부분 말이다.

   

   “뭘 어떻게 하긴요. 계산한 거겠죠.”

   

   두 사람의 의문을 들은 제슬은 가볍게 웃으며 그리 이야기를 했지만 두 사람은 그 설명을 쉬이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래층에 있는 애들 때리면서 자신이 얼만큼의 힘을 지녔는지 확인하고 그걸 기반으로 해서 상대의 내구도를 측정. 그걸 기반으로 적을 쓰러트린다.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잖아요?”

   

   “…그건 어디까지나 이론일 때의 이야기이지 않습니까.”

   “네. 맞아요. 이건 비약이 가득한 이론의 이야기죠. 그리고 알른 영애는 그 이론을 현실로 옮길 능력이 있는 사람이고요.”

   

   작년 아카데미 교수로 지내면서 루시 알른의 기행을 온 몸으로 견뎌야 했던 제슬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해질 것이라 이야기하며 화면을 보다가 헛기침을 했다.

   

   화면 너머에 있는 루시 알른이 자신의 기쁨을 드러내듯 폴짝폴짝 뛰기 시작한 것이다.

   

   방금 전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만들어낸 당사자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아이 같은 모습에 제슬은 자기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짓고 말았다.

   

   직접 대화만 하지 않는다면 정말 귀여우신 분이라니까.

   

   그건 모니터링실에 있는 다른 교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자신들이 준비한 것이 무의미해졌다는 좌절도 잠시. 루시가 온 몸으로 기쁨을 드러내자 아무렴 어떤가하는 생각을 품게 된 것이다.

   

   심지어 한 쪽에서는 예술 교단에서 만든 알른 영애의 장신구를 살까하는 이야기가 나오기까지 했다.

   

   “교수님들. 집중해주세요. 아직 저희가 준비한 거 남아 있잖아요.”

   “아. 참. 그랬었지.”

   “알른 영애가 벌인 것이 너무도 신기해서 잠시 생각을 놨군.”

   

   어느 한 사람이 말을 꺼낸 것처럼 아직 아카데미 교수들이 루시를 위해 준비한 것은 남아 있었다.

   

   “어찌 보면 이게 진짜인데 말이야.”

   

   들뜬 기대감을 품은 던전학과의 교수들은 루시 알른이 100층으로 향하는 것을 보며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100층에서 진짜 루시 알른과 그들이 만든 루시 알른이 마주하며 진짜의 손에 힘줄이 새겨진 걸 본 순간 던전학과의 교수들은 하나 같이 밝은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

   “크흡.”

   “평소 다른 이들에게 매도만 하다 보니 본인은 내성이 약한 모양이야.”

   

   루시의 당혹스러움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금방 마음을 다스린 그녀가 도플갱어의 부족한 부분을 툭툭 건드리기 시작한 것이다.

   

   화면 속의 루시는 도플갱어를 보고 못생겼단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녀의 말은 옳았다.

   

   두 사람은 겉보기에 비슷해 보이긴 해도 분위기부터 시작해서 자세히 살피면 살필수록 더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예술 교단의 사도가 극찬한 미를 우리 손으로 재현하는 건 불가능했나.”

   “어쩌겠습니까. 사도분께 직접 협력을 요청드릴 수도 없는 일인데.”

   “예상한 바이기도 했잖습니까. 그래서 다른 부분에서 승부를 본 거고.”

   

   일반적인 도플갱어는 아카데미의 학생이 1층에서 100층까지 공략해 온 경험을 기반으로 해서 자동적으로 만들어지는 물건이다.

   

   그렇지만 루시 알른의 도플갱어는 아니다.

   

   저것은 아카데미 교수들이 여러모로 공을 들여서 만든 것이다.

   

   심지어 루시의 호위기사인 칼이 직접 상대를 하며 확인까지 해준 게 저 도플갱어이니 교수들은 도플갱어를 제작할 때부터 어느 정도 부족함이 있을 수밖에 없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루시에게 장난을 치기 위해 다른 방식을 택했지.

   

   ‘쪼끄마한 언니~’

   

   화면 너머의 풍경에 잔뜩 집중하고 있던 교수들은 루시가 이빨을 아득 깨무는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언젠가 칼이 이야기를 해 준 대로 루시는 자신의 키에 상당한 콤플렉스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루시와 이야기를 나누며 그녀의 매도에 당해보았던 교수들은 루시의 얼굴이 벌겋게 물드는 것을 보고 속이 시원해지는 것을 느꼈다.

   

   특히 바로 옆에서 루시에게 어울려주어야 했던 제슬은 아예 소리를 내지르며 도플갱어를 응원하기까지 했다.

   

   설령 루시와 따로 원한이 없는 사람이라 할 지라도 화면 너머를 흐뭇하게 바라본단 점에선 큰 차이가 없었다.

   

   절로 눈길을 끌만큼 귀엽고 예쁜 아이는 화를 내는 광경 또한 귀여웠으니 말이다.

   

   물론 모두가 마음 편하게 웃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모니터링 실에 있는 단 한 사람.

   

   칼.

   

   루시 알른의 전속 호위이자 본의 아니게 이번 일에 끌려든 남자는 루시의 표정이 썩어들어가는 걸 보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걸까.

   

   아가씨께 헌정하기 위한 것을 만드는 데 협력해달란 이야기를 듣고 저분들이 부탁하는 것들을 말해준 것 뿐인데 왜 그것이 아가씨를 곤란케하는 일이 되어버린 거냔 말이다.

   

   역시 예술 교단 측에서 만든 장신구에 홀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물건은 내 손으로 구해도 되는 것이고 정 안 되면 알새틴에게 부탁해도 되는 것이었는데!

   

   그 쓰잘데기 없…지는 않고. 아무것…도 아니라기보단 엄청 귀중하고 소중하고 내가 지켜야 할 아가씨의 모습이 절로 떠올라 마음을 올곧게 해주는 귀물이긴 하지만 그래도 거기에 홀려선 안 됐다!

   

   덕분에 이 꼴이 나지 않았는가!

   

   칼은 마음 속에 죄책감을 품음과 동시에 루시가 자신을 오해하면 어쩌나하고 걱정했다.

   

   내가 반역을 의도하고 저질렀다 생각하신다면 곤란하다.

   

   저것은 정말 내 의도가 아니었단 말이다!

   

   이 일이 끝나면 먼저 아가씨를 찾아가 사죄를 드릴 터이지만 그 전에 오해가 깊어지면 변명을 할 틈조차 없을 터!

   

   칼은 부디 루시가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리지 못하기를 빌며 루시 알른과 도플갱어가 부딪히는 광경을 살폈다.

   

   칼의 조언을 기반으로해서 만들어진 도플갱어는 그의 기억속에 머무는 루시 알른과 유사한 동작을 취했다.

   

   누가 보더라도 말끔하고 정적이라 평가할 만한 정석적인 동작을 말이다.

   

   허나 루시 알른은 아니었다.

   

   그녀의 동작은 도플갱어가 펼치는 것과 전혀 달랐다.

   

   그 움직임을 본 순간 칼이 처음으로 떠올린 것은 춤이었다.

   

   상대를 쓰러트리기 위한 움직임이 아니라 모두의 시선을 모아 감탄을 이끌어내기 위한 움직임말이다.

   

   무대 위의 배우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루시의 동작 하나하나는 우아하고 부드러우며 아름다웠지만.

   

   그 움직임의 끝에서 터져나오는 공격의 위력은 전혀 부드럽지 않았다.

   

   도플갱어가 마력으로 스스로를 강화하기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저만치 뒤로 밀려나는 것을 본 칼은 눈을 크게 떴다.

   

   아가씨께서 스스로의 무를 바꾸고 계신다는 것은 알았다.

   

   다른 이에게 배움을 얻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걸맞는 무를 창조하고 있단 걸 말이다.

   

   그렇지만 그 무가 벌써 실전에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을 줄이야.

   

   화면 너머로 루시의 움직임을 살피던 칼은 아직까지 루시의 새로운 무가 완성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군데군데 어설픔과 망설임이 깃들어 있는 게 보였으니까.

   

   그렇지만 칼은 걱정하지 않았다.

   

   겨우 한 두 달 사이에 저만큼이나 그럴듯한 무를 만들어낸 루시인데 오랫동안 헤맬 리가 있나.

   

   “역시 도플갱어로 알른 영애를 완벽하게 재현하는 건 어려운가.”

   “아무리 소울 아카데미의 출력이 있다 한들 규격 외의 존재까지 따라할 순 없으니까요. 당장 얼마 전 쿠르텐 공자만 하더라도 재현하기 버겁지 않았습니까.”

   “뭐. 그래도 알른 영애에게 복수했으니 전 만족해요.”

   

   도플갱어의 패색이 짙어짐에 따라 교수들이 한 마디씩을 더하던 그 때. 입에서 까득하는 소리를 낸 루시가 자그마한 목소리를 냈다.

   

   ‘…허접견♡’

   

   그 별칭이 누굴 의미하는 것인지 아는 칼은 안색을 시퍼렇게 물들인 채 에린을 찾아갈지에 대해 고민했다.

   

   잠시라도 변명할 시간을 얻기 위해서는 다른 이들에 비해 루시가 막 대하지 못하는 에린이 필요했다.

   

   *

   

   루시 알른의 전속 시녀이자 지금은 아카데미에서 사용인의 일을 하고 있는 에린은 루시의 방을 청소하기 위해 그 곳에 들렸다.

   

   그리고 보았다.

   

   방 한 쪽에서 루시의 그림이 그려진 여러 장신구를 끌어안은 채 헤실거리고 있는 여성을.

   

   루시의 그림이 얼마나 좋은 건지. 문을 대놓고 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은 에린의 정체를 눈치채질 못했다.

   

   …일단은 아카데미 측의 사람을 불러오도록 할까요.

   

   간신히 당혹에서 빠져나온 에린이 뒷걸음질을 친 순간 여성이 여우의 귀를 쫑긋하더니 에린을 발견했다.

   

   처음 방에 들어왔던 에린이 그러했던 것처럼 잠시 굳었던 여성은 도망치려는 에린을 보고서 다급히 목소리를 냈다.

   

   “잠. 잠시! 이야기 할 틈을 다오! 난 이상한 사람이 아니다! 어. 그게. 그래! 이 귀물 중 하나를 나누어줄 테니 제발. 제발 잠시만 이야기를 들어다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가려 했던 에린은 여성의 추하디 추한 목소리를 듣다가 문득 아카데미 방학 때 저택의 세탁실에서 자주 검거되었던 짐승을 떠올렸다.

   

   “여우님?”

   “그래! 나다! 루시의 애완동물이다! 목줄을 차고 싶지만 채워주질 않아서 슬퍼하는 여우다!”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욕망을 마주한 에린은 눈 앞의 여성이 그 변태 여우가 맞단 걸 깨달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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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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