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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28

       

       

       ‘그러니까 이놈이고 저놈이고, 영혼을 모아서 비대칭전력무기를 만들려는 거지.’

       

       나치 병사 두 놈의 이야기를 엿들어보니, 나치 놈들이 구상하고 있는 것은 대동아공영회의 그것과 별 차이는 없어보였다. 아니, 오히려 이쪽이 오리지날일지도. 

       

       나치 놈들이 이런 기계를 만드는 이유도 알아냈으니 더 볼것도 없었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저 놈들 치우죠. 금방 안 떠날 것 같은데, 쟤네 처리하고 다 때려부수고 나갑시다.』 

       『잠깐.』

       

       구로베가 나를 불렀다. 내가 돌아보자 구로베는 나에게 말했다.

       

       『한 놈은 기절시키거나 죽이지 말고, 대화는 가능하게 간단히 제압만 하도록. 물어볼 것이 있으니. 가능하겠나?』

       『예.』

       

       커다란 장비 뒤에 숨어있던 나는 나치 병사의 뒤로 천천히 걸어갔다. 근처에 경보알람 버튼같은 것은 없었다. 

       

       „……할트! 베아 비스트 두!“

       „블라이브 슈틸! 벤 비아 제헨, 다스 이아 오이히 베벡트—“

       잡담을 나누다가 뒤늦게 나의 기척을 눈치챈 두 놈이 급히 총구를 들었지만,

       

       『뭐라는 거야!』

       

       —짜악!

       

       놈들이 총구를 들기 전에 한 놈 먼저 따귀로 기절시키고, 그대로 몸을 회전시키며 나머지 한 놈에게는…… 

       

       —화짝!

       

       승마채찍을 냅다 후려갈겼다. 얼굴에 승마채찍을 얻어맞은 나치 병사는 잠시 비틀거리더니,

       

       „아우!  라센 지 미히 레벤! 이히 베르데 알레스 툰……“

       

       바로 총을 바닥에 던져버리고는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다.

       

       ‘오오.’

       

       교장으로부터 받았던 승마채찍의 효과는 신경자극 및 공포. 무기력한 상태에서도 정신이 번쩍 들게 함과 동시에, 나를 두려워하게 만들어 일시적으로 내 명령에 따르도록 만든다. 

       

       ……라고 듣기는 들었어도, 개한테는 써봤지만 사람을 상대로는 처음 써봤는데 이런 식으로 효과가 나오는구나. 혹시라도 제대로 통하지 않을까봐 칼자루에 손을 대고 있었는데, 성능 확실하구만. 

       

       나는 개처럼 엎드린 나치 병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좋아. 내 일행이 물어볼 게 있다는데.』 

       „베르게벤 지! 이히 칸 카인 야파니쉬 페르슈테헨!“

       

       ……참. 나 독일어 못 하지. 그리고 이 나치 병사도 일본어는 못 알아듣는 것 같고. 조선어는 더더욱 안 통하리라. 말이 안 통하니 뭐라고 할 수가 없네. 

       

       나는 내 뒤쪽을 향해 다들 나오라고 손짓하고는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어차피 대화는, 물어볼 것이 있다던 구로베 교수가 할 테니까. 

       

       구로베 교수가 다가와 뭐라고 물었고, 나치 병사는 죄송스러운 듯한 얼굴을 하고선 연신 고개를 저었다. 한참 그런 대화를 마친 구로베 교수는 주사기를 꺼내며 나에게 말했다. 

       

       『기절시키도록.』

        

       나는 따귀를 때려 기절시켰고 구로베 교수는 바닥에 드러누운 두 나치 병사에게 기억소거제 주사를 놓았다. 나는 구로베 교수에게 물었다.

       

       『무엇을 물어본 겁니까?』 

       『뒤섞인 상태의 영혼 응집체로부터, 특정 개인의 영혼을 되돌릴 방법이 있는지 물었다.』 

       『아…….』

        

       교내에 숨겨진 령입자흡인기 중 하나엔, 구로베 교수의 사별한 아내의 영혼이 흡수되어 있다. 구로베 교수가 십년 째 매달리고 있는 숙원은 그 아내의 영혼만을 빼내어 아내를 되살리는 것이고.  

       

       구로베  교수가 나를 도와서 이곳에 온 목적은 애초에 이것이었고, 그 방법을 혹시나 여기서 알아낼수 있을까 하는 희망에서였을 것이다.

       

       『방법이 있답니까?』

       『이 병사는 자신은 그저 이곳을 지키는 일개 병사일 뿐, 그런 기술적인 부분은 모른다더군.』 

       

       당연한 일이다. 이런 말단 병사가 그런걸 알 리가 없으니까.  

       

       『다만 자네가 궁금해할까봐 물어본 질문에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지금 이곳에 있는 저 프노이마-파티켈-자우거에 응집되어 있는 영혼들은, 유다야 인의 영혼이 아니라 모두 이곳 조선에서 모은 영혼들이라더군.』

       『……예?』

       

       유대인들의 영혼이 아니었나? 사실, 생각해보면 저 기계는 일정 반경 안의 영혼을 끌어당기는 기계고, 독일 본토라면 모를까 이곳 조선 땅에서 유대인이 그렇게 많을 리가 없었다. 

       

       조선인의 영혼이라. 그럼 어디서 저런 막대한 영혼을 모은 것일까? 이 지역은 내가 다니고 있는 엽사전문학교처럼 종종 사고사망자가 나오는 곳도 아닐텐데……

       

       『이 지역에, 조성된지 오래된 큰 유곽촌이 있다고 들었다. 유곽이라면 치정 문제로 목숨을 끊는 자도, 병에 걸려 죽는 자도 많을 것이다. 태어나자마자 혹은 태어나기도 전에 죽는 영아도 꽤 있겠지.』 

       『……그렇군요.』

       

       우리 학교같은 곳이 아니더라도, 사람이 꾸준히 죽는 곳은 세상에 많다. 그러면서도 별다른 화젯거리도 안 되는 곳도 있다. 이 근처에 있다던 미생정 유곽도 그런 곳이겠지. 

       

       그곳에서 죽은 영혼들이 수십 년 동안 쌓인 것이 저만한 양의 영혼 응집체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성불시켜주죠.』 

       

       내가 딱히 사후세계를 믿는 것도 아니고, 영혼이라는 것이 있다고는 해도 결국 자연스럽게 소멸해 없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한때 인간이었던 존재의 영혼을 에너지원이나 무기로 쓰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고. 

       

       『그러니까, 여기는 파괴하고 갑시다.』

       

       교내 령입자흡인기의 원본이자, 이 지하시설 전체에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을 프노이마-파티켈-자우거.

       

       그리고 교내 령입자흡인기를 이루고 있는 영혼관 계산자—즉 원시 컴퓨터를 만드는 제조라인.

       

       이렇게 두 개는 파괴해야지. 사실 첫 잠입에 너무 큰 일을 벌이는 것은 아닐까 고민했지만, 다음 기회가 언제 올지는 모르는데다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으니 해치워버릴 생각이었다. 

       

       파괴야 쉬웠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으니. 

       

       이 진공관 컴퓨터는 어지간한 공격은 먹히지 않을 정도의 자체적인 방어 역장으로 보호되고 있었지만, 진공관 컴퓨터인 이상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그것은, 주변의 열에 약하다는 것. 

       

       신사 지하에서도 이유하가 공기조절장치를 망가트림으로써, 내부 온도를 높여 기계를 폭파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눈앞의 프노이마-파티켈-자우거를 냉각시키고 있는 것은 수랭 파이프. 물을 공급하는 수도관을 파괴하면 진공관 컴퓨터는 발열로 터져나가고, 혼합·응축되어 있던 영혼 에너지는 통제를 잃고 폭발하게 되리라.

        

       교내 신사 지하에서 그랬던 것처럼, 바로 옆의 제조실은 물론 이 지하 전체를 무너트릴만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겠지.

       

       즉, 이 아넨에르베인지 뭔지 하는 나치 연구소가 있는 지하구역 전체가 무너져내릴 것이다. 

       

       『다들, 저번에 신사 지하에서 함께 했었으니까 알고 있지? 이 기계는 발열에 약하다는 거. 이번에는 저 위의 수도관을 공략할 거야.』

       

       내가 동료들 앞에서 작전을 정리하며 설명해주자, 

       

       『하지만 그 전에 탈출할 수 있겠나? 그 때는 우물을 타고 위로 솟구쳐서 탈출했지마는, 지금은 그런 수직 통로도 없고, 구분구불한 길을 꽤 깊게 들어왔는데.』

       

       송병오가 안경을 올리며 허점을 지적했다. 녀석의 말대로, 도망칠 구석이 있어야겠지. 거사를 치르고 안전하게 도망칠 수 있게끔 도주로를 미리 확보해두어야 했다.

       

       무라사끼도 한마디 얹었다. 

       

       『흥! 시라바야시 놈이라면 도망칠 구석 정도는 생각해 두었겠지! 그 적석을 이용할 셈 아니냐?』

       『아니. 그건 최후의 수단이야. 단순 도주용이 아니라, 정말 위급할 때 몸 피하는 수단.』 

       

       나는 고개를 저었고, 구로베 교수가 나에게 물었다.

       

       『그러면 어찌할 셈인가. 수도관 파괴 후 폭발의 촉발되는 시간과 폭발의 규모를 어림짐작으로 추정했을 때, 우리가 지나온 길로 도주하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생각해둔 도주로가 있습니다. 아마 이 근처에 있을 텐데……』 

       『도주로라고.』

       『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 들어오기 전부터 염두에 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저 큼지막한 기계를 어떻게 학교까지 옮길까? 하는 것이었다. 물론 부품별로 조금씩 나눠서 옮기겠지만, 그렇게 옮긴다고 해도 지금까지 우리가 지나온 가파른 계단이나 좁은 복도로 일일이 손에 들고 옮기지는 않을 것이다. 이 근처에 어딘가 운송 수단과 운송 경로가 따로 있겠지.  

       

       그리고 그것은, 내 추측으로는,

       

       『지하철 터널이 근처에 있을 겁니다.』 

       

       지하철 터널. 학교 쓰레기장의 지하에서 발견한 지하철도 노선의 다른 한쪽 끝은, 바로 이 근처일 것이라고 나는 확신했다.

       

       『……지하철?』

       『예. 학교 지하에 지하철 공사가 진행중이었고, 다른 한쪽 끝은 히가시노리 연구소라고 들었습니다.』  

       

       애초에 학교까지 몰래 지하철을 뚫은 목적은, 모르긴 몰라도 마네킹 병사나 령입자흡인기같은 수상한 화물을 옮기려는 이유일 테니까. 

       

       그러니 이곳에서도 다른 장소가 아니라 바로 이곳, 자동인형 생산소와 령입자흡인기 생산소가 위치한 바로 이 근처에 지하철이 뚫려 있겠지.

       

       『여기서 생산된 기계를 옮기기 위한 지하철도가 이 근처에 있을 겁니다.』

       

       내 말을 들은 모두가 주변을 살폈고, 구로베가 문득 입을 열었다.

       

       『아까 이 아넨에르베 연구소로 들어오기 전의 어느 갈림길에서, 내부시설 확장 공사중이라고 쓰여있던 것을 기억하나?』 

       『예.』

       『저 쪽에도 내부시설 확장 공사중이라고 쓰여있군.』

       

       문을 열자, 마치 학교 지하에서 본 것과 같은 지하철 통로가 있었다. 과연, 역시 여기랑 연결되어 있었구나. 

       

       지하철이라는 것을 처음 보는 동료들이 신기한 듯 이곳저곳 둘러보았고, 송병오 녀석이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보게! 저기 무측차(無側車)가 있네.』 

       

       철길 위에 열차 한 량이 올려져 있었다. 대차 위에 평평한 널빤지 바닥판만 얹어진, 화물운송할 때 쓰일 법한 열차칸이었다.  다만 크기는 대여섯 명만 올라설 수 있을 정도로 작았다.

       

       송병오 녀석은 널빤지 바닥판 위로 올라서며 중얼거렸다. 

       

       『이것만 있는 건가? 모타도 없고 기관차도 없는데.』 

       

       그 모습을 보던 구로베 교수가 입을 열었다. 

       

       『인차(人車)로군. 광차(鑛車)처럼 레버를 밀고 당기며 움직이는 수압식(手押式) 차량이다.』

       『광산에나 있는 것 아닙니까?』 

       『지금은 광산같은 곳이 아니면 보기 힘들지만, 내가 어렸을 때에는…… 철도는 깔렸지만 기관차가 부족한 지역에서는 이러한 인차로 운영되던 노선이 종종 있었다. 이것도 아마 임시로 가져다 둔 것이겠지.』  

       

       확실히, 구로베 교수는 연장자이다보니 아는 것도 많았다. 근데 그 어렸을 때라는게 언제쯤일까? 나는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그게 언제예요? 메이지 시대?』

       『메이지 말기였지.』 

       

       그런 구로베 교수의 대답에, 가만히 듣고 있던 홍옥례가 뜨악하며 중얼거렸다.

       

       『우와, 19세기 사람……』 

       『……다르다. 메이지 시대 태생이라고는 해도 나는 메이지 후기인 38년, 서력 1905년 태생이다.』 

       

       구로베 교수는 홍옥례를 향해 고개를 확 돌리고는 흉흉한 눈길로 노려보며 그렇게 말했고, 홍옥례는 급히 사과했다.

       

       『힛, 히익. 죄송합니다.』

       

       그런데, 구로베는 왜 19세기 사람이냐는 말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일까. 1939년인 지금 기준으로 19세기 사람이라면 최소 마흔 이상이다. 21세기 느낌으로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국민학교 세대’같은 느낌.

       

       즉, 구로베 교수는 나이가 많다는 오해는 싫었은지 자신은 그런 세대가 아니라고 극구부정하며, 20세기 사람이라고 강하게 어필한 것이었다.  

       

       ‘……긁혔네.’

       

       그나저나 구로베 교수가 1905년생이라. 아니, 그럼 지금 34세밖에 안 됐다고? 그러면 40대 아니냐는 말에 충분히 긁힐 만 하지. 이해할 수 있다.

        

       ‘하여간, 의외로 인간적인 면모가 있는 사람이야.’

       

       아내가 죽기 전에는 아내를 모이셴(작은 새앙쥐) 같은 오글거리는 애칭으로 부르던 시절도 있던 사람이니까. 

       

       원래부터 지금처럼 음침하고 어두운 사람은 아니었겠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저도 국민학교 세대 아닙니다. 소학교는 더더욱 아니구요. 애당초 ‘입학’할 때부터 엄연히 ‘초등학교’였던, 파릇파릇한 MZ세대랍니다……!

    덧붙이자면 작중 수원집 에피소드에서 종종 언급된, 계춘희가 다니게 된 수원읍 세류공립심상소학교(현 수원시 세류동 세류초등학교)가 제가 다닌 초등학교였던 것이에용……! 물론 초등학교로 바뀐 뒤에……!

    한편 더 올라갑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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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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