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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28

       [……용서 못 해.]

        

       앨리스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네가 여신이건 뭐건, 상관없어.]

        

       [맞아.]

        

       클레어도 겨우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내가 어떻게 해서건, 언니만큼 괴롭게 만들어주겠어.]

        

       아, 이거.

        

       [세상을 당신 뜻대로 움직이게 하겠다니, 절대 허락 못해요.]

        

       그거다. 시리즈마다 최종 보스전에서 나오는, 주인공들이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하는 이벤트.

        

       샤를로트 이후에도 대사는 계속 이어졌다.

        

       [우, 운명은 저희 것이니까, 당신에게 절대로 넘길 수 없어요.]

        

       미아.

        

       [시간을 몇 번이고 되돌리더라도, 이곳에는 우리가 서 있을 거다. 어리석은 놈.]

        

       검성.

        

       [솔직히 이 시리즈 이럴때마다 좀 깨지 않음?]

       [이 대사만 몇 분이야ㅋㅋㅋㅋㅋ]

       [게다가 풀더빙이라서 넘기기는 아까움ㅋㅋㅋ]

        

       그렇다. 이런 중요한 대사는 또 제대로 더빙되어있단 말이지.

        

       과거 작품 중에서는 만들다가 제작비가 부족했는지 어느 순간부터 대사가 나오지 않아 중요한 작품부터는 대사가 아예 안 나오곤 했지만, 해외에 꾸준히 수출하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판매량이 늘어서인지 중요한 장면에선 더빙이 전부 되어있었다.

        

       괜히 넘기면 그건 그거대로 돈이 아깝다고.

        

       한 편에 7만 원이 넘는 게임이다. 아마 조금만 더 있으면 8만 원에 근접할지 모른다.

        

       그런데 이 게임은 그래픽에는 크게 돈을 들이는 것 같지는 않단 말이지.

        

       물론 제작비 문제로 기술력이 딸리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 기술력도 결국에는 패키지로 버는 돈을 투입하면 올라가는 법이다.

        

       실제로 게임 그래픽은 끊임없이 아주 조금씩이나마 개선되고 있고.

        

       하지만 결국, 이 게임의 가격은 풀 프라이스. 같은 가격이면 파●널 판●지 최신작 같은 것도 살 수 있다. 아니면 서양 AAA 급 게임이나.

        

       즉, 이 게임 패키지 가격에는 유명 성우들을 데려다 더빙한 가격이 죄다 포함되어 있다는 소리다.

        

       더빙된 대사를 그냥 넘기기에는 돈이 아깝다.

        

       내가 씹덕이라서 그런 건 아니다.

        

       아직까지는 그냥 오타쿠라고.

        

       [대사 하나하나 다 듣는거 보니 실비아는 ‘진짜’다]

       [혼모노인듯]

       [그런데 게임 속 실비아 목소리 자기 목소리랑 똑같았던거 아님?]

       [?]

       [어 진짜?]

       [그런데 그걸 듣고 있었다고?]

       [ㅋㅋㅋㅋㅋㅋ]

        

       “…….”

        

       채팅창을 보고 몇 사람 밴 할까 조금 고민하던 사이에, 컷신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들의 시간을 되찾겠어! 실비아와 함께!]

        

       [어리석은…….]

        

       제일 앞에 서서 주인공다운 대사를 외치는 레오를 보고 여신이 중얼거렸다.

        

       [……어차피 당신들에게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요. 저기서 죽어가는 제 화신이 시간을 돌리지 않는 이상, 결국 언젠간 죽음에 이를 테니까요.]

        

       하지만 실비아가 시간을 돌리면, 여신은 그때는 다른 방식으로 실비아를 죽일 거다. 조금 더 확실하게 즉사시킬 방법을 사용하겠지.

        

       [좋습니다. 그렇다면 그동안, 당신들과 유희를 즐겨드리도록 하죠.]

        

       여신이 그렇게 말하고—

        

       여신의 몸이 화면 절반 정도를 차지할 만큼 커졌다.

        

       ……그래, 왠지 주인공 일행이 밟고 있는 땅이 부채꼴이더라.

        

       저 가운데 거대 보스가 서 있으려고 그런 거구나.

        

       여신은 거대해진 상태에서도 여전히 얼굴에선 빛이 났다.

        

       [우효wwww 실비아의 거대가슴 겟또다제wwwwww]

        

       “…….”

        

       그 채팅만큼은 참을 수 없어서, 그대로 밴 해버렸다.

        

       저건 여신이라고. 내가 아니라.

        

       물론 게임 속의 실비아 이름을 말한 걸지도 모르지만, 결국 내가 듣기에 기분 나쁜 건 똑같았다.

        

       그리고, 게임의 마지막 전투가 시작되었다.

        

       ‘대충 웅장한 라틴어 배경 음악’이라고 표현되는, 보스전에 어울리는 웅장한 배경음악이 울린다. 당연히 가사 내용은 전혀 알아듣지 못하겠지만, 아마 이 게임과 관련된 내용이긴 할 거다.

        

       과연 음악 잘 만드는 회사답게 이 배경음악도 마음에 들었다.

        

       “이렇게 보니, 여신이 직접 나와 싸우지 않은 게 조금 의아한데.”

        

       앨리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니, 이건 게임이니까 서로 번갈아 치니 그래도 싸울 만 하지만, 실제로 싸우면 답이 없는 상대 아니야.”

        

       클레어의 물음에 앨리스가 대답했다.

        

       “아, 그런가?”

        

       “응. 마법 같은 걸 쓸 때는 게임에서 실제로 있는 장소가 아닌 다른 곳으로 배경이 바뀌는 연출이 있고, 궁극기를 쓰면 배경이 아예 검게 되거나 하얗게 되잖아. 기술 같은 거 쓸 때 지형도 무시하는 편이고.”

        

       “그렇죠. 사실 총 같은 걸 들고 있으면 그렇게 코앞에서 싸우는 일보다는 저 멀리 참호에서 참호로 사격하는 일이 훨씬 많겠죠.”

        

       샤를로트도 대답했다.

        

       “마법도 캐스팅 도중에 방해받으면 취소되기도 하니까요. 여기서도 그건 구현되긴 했지만, 그래도 실제 싸울 때보다 훨씬 느긋하게 대마법을 여러 번 사용하는 걸 보면 조금 이치에 맞지 않긴 해요.”

        

       ……그런데 그걸 이제 와서 지적해봐야.

        

       [이게…… 현실의 무게?]

       [게임은 게임으로 봅시다 좀]

       [아 이미 이세계에서 겪고 온 분들이라고 ㅋㅋㅋㅋ]

        

       봐, 채팅들도 어이없어하잖아.

        

       “어쩌면 여신은 조금 더 자세한 미래를 볼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나의 말에 방 안의 시선이 모였다.

        

       “우리는 지금 저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제가 아닌 실비아’가 있는 시간대에선 가능했을지 모르죠. 그래서 ‘저를’ 여신이 끌고 온 거고요.”

        

       그렇다. 나는 이 게임을 조금 다르게 해석하고 있었다.

        

       저 미래는 여신이 절대로 막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와서, 아마 여신은 나를 아제르나로 옮긴 것이겠지.

        

       “그래도 여신 얼굴조차 보지 않고 끝낼 수 있었잖아, 언니.”

        

       클레어가 말했다.

        

       “지금 우리가 여기 와 있는 것도 여신이 발악한 결과고.”

        

       [그런 설정이었음?]

       [그저 꿋꿋하네 ㅋㅋㅋㅋ]

        

       채팅창에서 뭐라고 하는지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여신을 직접 만나 싸우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게임의 후속작 스토리는 볼 수 있었으니까.

        

       내가 원래 살던 세상으로 와, 정말 아무런 걱정도 없이 몇 개월이나 놀고먹을 수 있었으니, 결국 후회할 필요는 없다.

        

       여신조차도 골려 먹었다고 생각하면, 뭐 그런대로 만족스러운 선택이었으니까.

        

       언젠가 돌아가더라도, 커다란 추억이 되겠지.

        

       *

        

       도중에 쓰러진 캐릭터를 몇 번이나 살리느라 시간이 조금 걸렸다.

        

       실비아 전에서 스킬 포인트를 꽤 많이 써버리는 바람에 내 예상보다 궁극기 타이밍이 더 빡빡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맞고 버티면서 시간을 벌어 게임을 클리어하는 데 성공했다.

        

       처음에는 내가 없어서 훨씬 더 많이 성장한 아이들이 여신을 이길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었는데, 막상 게임을 해보니 이건 게임적 허용이 맞는 것 같다.

        

       이 게임은 플레이어 측 캐릭터들의 스킬 이펙트가 화려하고 과장된 만큼 적의 스킬 이펙트도 화려하고 과장되었다는 것을 잠깐 망각하고 있었다.

        

       허공에 블랙홀 같은걸 만들어내는 상대를 어떻게 맨몸으로 이겨.

        

       현실의 여신은 그렇게까지는 하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역시 세상에 현현되면 어떤 제한 같은 것이 생기나?

        

       [……그렇군요. 결국 이번에도 실패…….]

        

       HP가 전부 깎인 여신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저는 영속적인 존재. 언젠가 시간이 흘러, 여러분조차 존재하지 않는 때에 다시 시도하면 되겠죠.]

        

       [그때는, 우리와 같은 다른 사람들이 분명 기다리고 있을 거야.]

        

       레오가 말했다.

        

       여신은 그 말에 굳이 답하지 않고 허공으로 사라졌다.

        

       [언니……!]

        

       [클레어.]

        

       실비아는 그때까지도 간신히 살아있었다.

        

       하지만 게임 그래픽 상으로도 얼굴이 매우 창백해서 그렇게 오래 버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여러분,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실비아의 몸에서 조금씩 빛이 흘러나왔다.

        

       혹시 저건 실비아의 몸에 남아있던 여신의 힘일까.

        

       여신이 마지막까지 빼앗지 못했던 실비아의 능력.

        

       뭐, 따지자면 여신의 능력이긴 했지만.

        

       [슬슬, 작별의 시간입니다. 그동안 만날 이유 없던 불청객을 상대해주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언니, 언니……!]

        

       [실비아!]

        

       [실비아, 안돼, 제발!]

        

       클레어도, 앨리스도, 레오도.

        

       그리고 다른 아이들과, 따라온 모두도, 실비아를 목놓아 부르고 있었다.

        

       [제가 죽으면, 남은 힘은 여러분을 위해 사용될 것입니다. 충돌하는 부분도 있겠죠. 여러분이 직접 손에 넣었던 운명이 돌아오고, 동시에 여러분이 저와 함께 겪었던, 세상도—]

        

       실비아의 눈이 클레어한테 가 멎었다.

        

       실비아의 입가에 미소가 살짝 걸렸다.

        

       실비아는 피 묻은 손을 들어, 클레어의 얼굴을 만졌다.

        

       [분명, 당신의 과거도, 그 축복받았던 시절로…….]

        

       [언니? 언니……!]

        

       실비아의 손이 떨어졌다.

        

       천천히 떨어지는 그 손을 클레어가 잡으려고 하자, 손끝에서부터 빛무리가 되어 사라졌다.

        

       [안 돼, 안 돼, 안 돼!]

        

       클레어가 절규하는 것을 끝으로, 화면이 천천히 하얀색으로 페이드아웃.

        

       그리고—

        

       저장하시겠습니까?

        

       나는 일단 YES를 눌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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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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