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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29

        

       모리스는 퀭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살점이 거의 붙어있지 않은 몸뚱이를 움직이며, 너무 홀쭉해서 해골을 연상케 하는 얼굴을 움직여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그는 망자에 흡사한 모습으로 진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니 진성 박과 일본에서 온 주술사님께 부탁건대, 부디 저에게 그 부산물을 조금 나눠주시지요.”

         

       부산물을 나눠달라.

         

       모리스는 그렇게 말했다.

         

       그의 말에는 분명한 확신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진성과 신관이 무슨 일을 벌일 것이고, 그 과정에서 모리스가 원하는 ‘부산물’이 나올 것이라는 확신이.

         

       그러한 모리스의 모습에 진성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개가 살짝 옆으로 돌아갔고, 동그랗게 뜬 눈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순진무구한 빛을 품었다. 똘망똘망한 눈동자는 반짝반짝 빛을 발하고 있었고, 정말로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모리스를 바라보았다.

         

       “부산물이라니요? 무슨 말씀이신지요.”

         

       신관 역시 마찬가지.

         

       애초에 사람 몸뚱이조차 아니었던 신관은 허수아비처럼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여우 가면을 모리스에게 돌린 채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으며, 이제는 사람 흉내를 내는 것조차 멈췄는지 그 어떠한 움직임도 소리도 진동도 내지 않은 채 그 자리에 그렇게 서 있었다.

         

       진성과 신관은 도무지 모리스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듯,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은 너무나 진정성이 가득해서, 대부분 사람은 속기 충분한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떠보는 듯한 말로는 대답하지 않겠다는 뜻이겠지요.”

         

       하지만 모리스는 두 사람의 모습에 현혹되지 않았다.

         

       순진무구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진성의 표정도,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물끄러미 자신을 보고 있는 신관의 모습도 모리스를 속일 수는 없었다.

         

       겉모습에 현혹되기에는 그가 가지고 있는 물증이 너무나 뚜렷했기 때문이다.

         

       “제가 이 자리에서 두 분을 기다리고 있던 까닭은 단순히 떠보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점괘의 인도가 저를 이곳으로 이끌었기 때문이지요.”

         

       모리스는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두 사람에게 보여주었다.

         

       그것은 새까맣게 타 있었는데, 각도에 따라 딱딱한 돌덩이처럼 보이기도 했고, 숯 더미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묘하게 형태를 이루고 있는 것이, 녹은 플라스틱 장난감처럼 보이기도 했다.

         

       “흐음.”

         

       진성은 모리스가 내민 것을 보고는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모리스를 바라보았다.

         

       “뼈 점이로군요?”

         

       “예. 어릴 적 집시에게 배운 것이지요.”

         

       모리스는 짤랑-하는 소리를 내며 자기 팔찌와 반지를 부딪쳐 소리를 내고는 설명을 이어갔다.

         

       “어릴 적 우리 마을에 집시가 온 적이 있었지요. 여느 집시가 그러하듯 그들은 유쾌하기는 했지만 오래 마을에 같이 있고 싶은 이들은 아니었습니다. 남자 집시는 술을 좋아했고, 그 어떤 일도 하지 않은 채 아내와 딸을 재촉하였지요. 그 모습은 멀리해야 할 나태함이 모습으로 그려진 형태라, 마을의 어른들은 그 남자 집시를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지를 않았으며, 아이들은 남자 집시에게 나는 술 냄새와 폭력의 향기에 가까이하는 것을 꺼렸습니다.”

         

       짤그랑.

         

       “여자 집시들은 나름 치장하기는 하였으되 가난의 향기가 물씬 풍기고 있었으며, 범죄에 거리낌 없는 이들 특유의 기척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화려하였으되 독을 품었고, 사근사근하게 보이되 언제든 거리낌 없이 법을 어길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 여자들은 마을을 떠나갈 때 즈음 부유해 보이는 이들의 지갑을 슬쩍하기도 했으니, 제 느낌은 정확히 들어맞았던 것이었습니다.”

         

       짤랑-

         

       “하지만 이런 집시들 틈바구니에서도 저의 흥미를 끄는 이가 있긴 하였습니다. 제 흥미를 끈 대상은 바로 노파였지요.”

         

       짤랑.

         

       “늙은 집시 노인은 꽤 신비로워 보였습니다. 술 냄새가 나는 남자 집시들과는 다르게 코를 찌르는 듯하면서도 묘하게 머리를 맑게 하는 냄새를 품고 있었으며, 겉으로는 괴팍하게 보이되 무언가 신비로움을 품고 있었지요. 그때의 저는 어쩌면 어릴 적 주님의 품으로 돌아가신 할머니와 비슷하였다고 느꼈을지도 모르지요.”

         

       짤그랑-

         

       “하여 저는 그 노파에게 접근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동화책에서는 떠돌이 할머니가 엄청난 마법을 사용하곤 했어요. 할머니도 그런 것을 사용할 줄 아나요?’라고 말이지요.”

         

       모리스는 거기서 잠시 말을 멈추고는, 회상하듯 허공을 바라보았다.

         

       “저의 질문이 그 노파의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요. 그 노파는 정말로 마법 비슷한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마법처럼 보이는 ‘주술’을 저에게 보여주었지요. 그리곤 제가 모아두었던 용돈을 복채로 받아 점을 봐주기도 했고, 떠나가기 전에 저에게 몇몇 주술 방법을 알려주기까지 하였습니다.”

         

       이 주술은 바로 그때 그 노파가 알려준 주술입니다.

         

       모리스는 그렇게 말하며 진성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의미심장한 빛을 품고 있었다.

         

       “여러 동물의 뼈를 한데 모아서 불구덩이 속에 집어 던지고, 적절한 주문과 간단한 의식을 추가하여 저는 점괘를 얻었습니다. 새까맣게 타오른 뼈는 미래를 알려주었고, 타고 녹으며 엉겨 붙은 뼈는 저에게 가야 할 길을 알려주었지요. 점괘에 사용된 뼈는 냄새부터 소리까지 버릴 것 없이 저에게 오감을 이용하여 해답을 알려주었으니, 마침내 저는 이 자리에 발을 옮기게 된 것입니다.”

         

       모리스는 손을 움직여 짤그랑 소리를 내는 것을 그제야 멈추었다.

       그는 한 손을 기묘하게 움켜쥐어서 반지와 팔찌를 단단하게 고정했고, 그렇게 고정된 금속을 뼈에 가져다 대고는 천천히 긁어내렸다.

         

       틱.

       티디딕.

         

       금속과 뼈의 마찰음.

         

       타서 변형된 뼈는 금속에 긁히며 기묘한 소리를 내었고, 재를 바닥에 떨어뜨리면서 하얀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티딕.

       티딕.

         

       뼈는 계속해서 긁혔다.

       금속이 뼈를 할퀴고 지나갈 때마다 기묘한 소리를 내었고, 그때마다 새하얀 속살을 드러내며 달빛에 빛을 발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달빛에 빛나는 부분이 많아질수록 소리는 점차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뭉개진 음성이 점차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티디디딕.

       티디-디—

         

       뼈가 말을 한다.

       금속에 긁히며, 말을 재생하려 하고 있다.

         

       입을 봉하고 있던 재가 떨어지면서 점차 소리는 풀려나고, 달빛을 받아 마침내 소리의 형상을 이루나니.

         

       그리하여 뼈가 말하였다.

         

       He’s there.

         

       여기 네가 찾는 남자가 있다고.

         

       모리스는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자아. 이것이 바로 저의 증거입니다. 저의 점괘가, 뼈가 말하고 있습니다. 네가 찾는 남자는 이곳에 있다고. 저에게 재료를 안겨줄 수 있는 남자는 이곳에 있다고.”

         

       그는 더 이상 발뺌하지 말라는 듯 진성과 신관을 바라보았다.

         

       “점괘가 저를 이곳에 인도하였습니다. 죽음이 가득 찰 곳을 인도해주었고, 죽음을 불러올 사람 역시 찾아주었습니다. 점괘에서 말하기를 제가 필요한 재료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눈앞에 있음이라. 하니 다시 한번 부탁드리겠습니다.”

         

       “흐음….”

         

       “제가 이 섬에서 실험을 할 수 있도록 부산물을 주시지요. 대가는…그래…눈치채셨군요. 제가 이렇게 길게 어릴 적 이야기하며 주술을 소개했으니, 눈치채실 만도 하겠지요.”

         

       모리스는 둘을 바라보며 자신이 줄 수 있는 것을 말했다.

         

       주술사에게 가치가 있을 만한 것.

       어쩌면, 젊고 유망한 박진성 주술사에게는 더더욱 가치가 있을 만한 것을.

         

       “제가 보여드린 바로 이 점괘. 집시 노파가 알려준 이 점술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주물이나 주술 재료는 줄 수 없었다.

       실험에 쓰여야만 했으니까.

         

       재물 역시 거래의 대상으로 올릴 수 없었다.

       대부분 주술사에게 있어 재물이라는 것은 그리 큰 가치를 지니지 않았으니까.

         

       그렇다면 그가 줄 수 있는 것은 무형적인 것.

       재주와 지식이다.

         

       하지만 재주를 팔기에는 실험에 매진해야 하니 시간이 소중한바.

         

       그렇다면 남는 선택지는 하나, 주술의 공유.

         

       주술 의식도 아닌 단순한 점술이기는 하지만, 쓸모없어 버려질 ‘부산물’을 사기에는 차고 넘치는 가격이리라.

         

       “이런.”

         

       진성은 모리스가 내민 대가를 듣고는 방긋 웃음을 지었다.

         

       “그런 것을 내미시는데 어찌 거부를 할 수 있겠습니까?”

         

       모리스의 노림수는 정확하게 맞았다.

         

       진성은 방긋 웃으며 거래를 받아들였고, 우두커니 서 있는 신관 역시 거래를 받아들였다.

         

       진성과 신관이 ‘부산물’을 제공하고, 모리스는 ‘점술’을 제공하는 누구나 만족할 수 있는 거래가 말이다.

         

       “거래는 이루어졌습니다. 모리스 씨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겠지요.”

         

       “다만 그 부산물은 이 섬에서 생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부산물이란 무엇인가?

       부차적으로 생기는 물건이 아닌가?

         

       당연하게도 부산물을 얻기 위해서는 일차적 산물을 얻기 위한 행동을 해야 할 터.

         

       그리고 그것은 이 독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이런. 그렇습니까?”

         

       모리스는 진성과 신관의 말에 대수롭지 않다는 듯 반응했다.

         

       “상관없습니다. 질 좋은 재료를 얻을 수 있는데 그것이 어디 땅에서 생긴 것인지 중요하겠습니까? 그저 질이 좋고 싱싱하기만 하면 그만입니다. 혹은 싱싱하지 않더라도 가치가 뛰어난 것도 괜찮겠지요.”

         

       “그러합니까?”

         

       진성은 모리스의 말이 마음에 드는 듯 웃음을 지었다.

         

       “아마 만족할 것입니다. 필시 말이지요.”

         

         

         

        * * *

         

         

         

       프랑스에는 이러한 표현이 있다.

         

       개와 늑대의 시간(l’heure entre chien et loup).

         

       밤과 낮이 교차하며 섞이는, 해 뜰 녘과 해 질 녘의 짧은 그 시간을 뜻하는 말이다.

       이 시간에는 어둠과 빛이 뒤섞이며 푸르스름한 빛을 발하고, 눈앞에 있는 것이 개인지 늑대인지 구분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 오묘한 시간은 친근한 존재와 위협적인 존재를 구분하지 못하게 만들고, 일상을 이질감 넘치게 느껴지게 만든다. 사람을 한순간에 일상에서 비일상으로 옮겨놓기도 하고, 어둠이 다가오기 전에 맞이하는 불안과 긴장이 서서히 들어차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 푸른 시간은 사람을 취약하게 만든다.

       어둠이 들어차지 않았기에 긴장감과 경계심이 밤과 비할 바가 되지 못하며, 낮처럼 훤하지 않아 적과 아군을 제대로 구분할 수조차 없게 만드니까.

       게다가 기기묘묘한 빛이 사방을 감싸며 신비감에 취하게 만드니 사람을 방심하게 만드는 것이며, 잡생각이 들어차게 만드니 대처를 늦게 만드는 것이라.

         

       하여 이 시간은 위험하지 않으면서도 위험한 시간이라 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 사람뿐만이 아니라, 국가에도 이러한 푸른 시간이 존재한다.

         

       전쟁과 평화 사이에 존재하는 바로 그 지점.

       경계와 적대, 친화와 평화가 뒤섞이는 바로 그 순간.

         

       그 순간이 바로 나라가 취약해지는 시간이다.

         

       평화라고 볼 수는 없기에 경계심이 끌어올려져 군대 쪽으로 신경이 쏠려있고.

       전쟁이라고 할 수는 없기에 머리가 복잡해지고, 우유부단하고 애매모호한 판단을 유지하는 바로 그 순간.

         

       진성은 바로 그 순간을 원했다.

         

       개와 늑대를 구분할 수 없고, 어둠과 빛이 기묘하게 뒤섞여 보물을 지킬 수 없는 바로 그 순간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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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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