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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29

       

       나는 다시, 철길 위에 올려진 인차(人車)로 시선을 돌렸다. 아직 이 지하철 궤간에 맞는 기관차가 들어오지 않아, 우선 임시로 이런 수동식 차량으로 화물을 옮기는 듯 했다.

       

       아쉽지만, 이거라면 폭발이 일어나기 전에 충분히 멀리까지 도망칠 수 있을 것 같다. 무라사끼 녀석의 강화된 근력으로 펌핑을 하면 자동차만큼의 속도는 나올테고, 폭발로 이곳이 무너지기 전에 종착지인 학교 방향에서 탈출할 수 있으리라.

       

       ‘좋아.’

       

       내가 열차칸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홍옥례가 내 쪽으로 쭈뼛쭈뼛 다가와서는 물었다.

       

       “백 동지! 그런데 이거 타고 가면, 도중에 그 곡괭이 든 마네킹들  마주치는 거 아니야? 그리고 그 박사도……”

       

       엊그제 나랑 함께 학교 지하를 들어갔다 나왔던 홍옥례는, 그때 마주친 마네킹 병사들이 꽤나 무서웠던 모양이었다. 나는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마네킹은 지금의 우리 전력이면 전혀 무서울 것 없고, 박사는 아까 병사들한테 한것처럼 기절시키고 기억소거제 맞추지, 뭐.” 

       

       솔직히, 나·이유하·무라사끼·송병오·홍옥례, 거기다가 우리 모두를 다 합쳐도 이길까 말까한 구로베 교수까지 함께 있다. 고작 곡괭이 든 마네킹 따위를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나는 짝! 박수를 한 번 치고는 동료들에게 말했다. 

       

       『이제 사보타주를 벌여봅시다.』 

       

       도주로를 확보한 우리는, 다시 프노이마-파티켈-자우거 앞에 섰다. 

       

       진공관 사이사이로 모세혈관처럼 세세하게 설치된 가느다란 파이프들. 하지만 이거 한두개쯤 파괴한다고 금방 발열이 달아오르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어차피 기계 자체는 영혼 에너지에 의한 강력한 방어막으로 보호받고 있으니 직접 공격은 불가능했고. 

       

       그래서 나는 넓은 공동의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한강 물을 끌어오는 커다란 수도관. 냉각수를 공급하는 저것을 파괴하는 것이 직빵이었다.

       

       『꽤 두꺼운 철제 파이프 같군! 저걸 어찌 망가트릴 셈인가?』 

       

       송병오 녀석의 말대로, 공격할 각이 애매했다. 너무 높이 있어서 칼질이 닿는 거리도 아니고, 닿는다고 해도 철제 파이프였으니 마구 썰어댈 수도 없다. 송병오의 권총탄으로도 무리다. 

       

       너무 두꺼운 탓에 이유하의 냉각으로 얼려서 깨트리거나 안의 물을 얼리는 것도 무리였다.

       

       『내가 하지.』

       

       구로베 교수는 그렇게 말하고는, 짧은 마술봉을 들고는 눈을 감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건 기대되는데.’

       

       구로베 교수는 화염·전격·빙결·치수(治水) 등 모든 종류의 원소계 마법을 능숙하게 구사하는, 그야말로 원소마법으로는 꽤나 높은 경지에 이른 남자였다. 

       

       여기서는 무슨 능력을 보여줄지 기대되었다. 저런 두꺼운 금속을 자르려면…… 역시 고열의 화염을 지속적으로 투사하려나? 아니면 내부의 물을 조종한다든가?  

       

       하지만 구로베 교수의 마술봉 끝에서는 파지직, 하고 전기가 튀었다. 전격을 쓰려는 건가? 전기로 뭘 어쩔 셈이지? 

       

       ‘……아!’

       

       나는 구로베 교수가 무엇을 하려는건지 눈치챘고, 구로베 교수는 강의하듯 천천히 입을 열며 말했다. 

       

       『기체가 강력한 전기장에 의해 고온·고압으로 가열되어 전기해리(電気解離)되면, 기체 상태를 벗어나 한 단계 상전이(相轉移)되어 새로운 상(相)이 되는데, 이를 전리기체(電離気体)라고 한다.』

        

       그의 마술봉 끝에서 강렬하게 빛나는 보라색 불꽃 덩어리.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플라즈마 커터?!’

       

       아니, 이걸 이 시대에 볼 줄이야. 미래에는 그냥 소형 토치만한 플라즈마 커터도 나오지만, 지금 그걸 원소계 마법만으로 어렵게나마 구현한 것은 막대한 능력과 학문적 지식이 있어야 가능한 일인 것이다. 

       

       하긴, 저번에는 이 시대의 학문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원자붕괴까지 구현해낼 정도였으니 이 정도야 크게 놀라운 것은 아니려나……?

       

       아무튼, 저거라면 확실히 철제 수도관 정도는 쉽게 갈라버릴 수 있을 것이다. 

       

       『오래 지속하긴 어렵지만, 이것으로 수 센치 두께의 철제 수도관 정도는 베어낼 수 있다. 낙수와 낙하물이 떨어질 수 있으니 주의하도록.』

       

       그렇게 말한 구로베 교수가 마술봉을 휘둘러 천장의 수도관을 향해 플라즈마 덩어리를 날리려는 그 때, 

       

       —척! 척! 척! 척! 

       

       사방에서 나치 병사들이 우루루 몰려들어오더니, 우리를 둘러싸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슈테헨 블라이벤!“

       „디 바펜 렉트 안!“

       

       —철컥! 

       

       게다가, 나치 병사들이 우리를 향해 조준하고 있는 총 중에서는, 큼지막한 기관총도 있었다!

       

       『……!』

       

       구로베 교수는 급히 플라즈마를 거두고, 마력을 바로 방어 역장으로 전환해서 우리 모두를 감쌌다. 그와 동시에,

       

       „포이아!“

       

       —두두두두두두두두!

       

       나치 병사들의 기관총 세례가 장맛비처럼 방어 역장을 때렸고,  

       

       ‘젠장, 뭐지?’

       

       나는 갑작스럽게 변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경보 알람은 울리지 않았다. 저만한 병력을 소집하려면 침입자의 존재를 미리 알고있었다는 얘기인데, 경보를 울리지 않은 것은 뭐지?  

       

       ‘……상황이 좋지 않은데.’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은 확실했다. 아무리 지금 우리 모두와 구로베 교수라고 할지라도, 저만한 병력의 군대를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

       

       21세기에서도 비슷했지만, 군대·마수·각성능력자의 사이에는 기묘한 상성관계가 있다. 

       

       군대는 마수에 약하다. 

       

       예로부터 군대의 무기인 총포는 평범한 인간이 같은 인간이나 인간이 만든 탈것 등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 총탄도 튕겨내고 속도는 빠른 무언가—즉 마수를 상대할 것을 상정하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물론 엄청난 병력과 화력을 집중시킨다면 군대로 마수를 패퇴시키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엄청난 피해와 손실을 각오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마수는 엽사에 약하다.

       

       어떤 마수라도 약점은 있고, 그 약점 가까이 파고들어 일격을 가하면 의외로 쉽게 죽는다. 그 약점을 파고드는 것이 바로 소수의 각성능력자.  

       

       중대형 마수 하나 잡으려면 수십 명 이상의 사상자를 내고 동네 하나를 쑥대밭으로 만들어야 하는 군대와는 달리, 소수의 엽사는 마수를 상대로 속전속결이 가능했기에, 마수를 잡는 것은 각성능력자가 전담하게 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엽사. 

       

       반면 그런 엽사라도 군대 앞에서는 약하다. 

       

       아무리 강한 강석능력과 전투 노하우를 쌓았더라도 결국은 인간. 잠시나마 총탄을 피하고 막을 수는 있을지언정, 다수의 군대를 상대로는 어떤 고강한 각성자라도 버틸 수 없다. 

       

       군대는 마수에 약하고,

       마수는 엽사에 약하며,

       엽사는 군대에 약하다.

       

       결국 이렇게, 군대<마수<엽사<군대…… 라고 하는 가위바위보같은 상관관계가 성립되어, 게이트 이후의 세계가 유지되어 오는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 수많은 나치 병사가 우리를 포위하며 기관총 세례를 날리고 있는 지금 상황은, 우리로서는 무척이나 곤란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방어 역장 전개에 온 힘을 쏟고 있는 구로베 교수에게 물었다. 

       

       『얼마나 버틸 수 있겠습니까?』 

       『기관총탄의 운동 에네르기는 막대하다. 이대로라면 일 분을 넘기리라고 장담하기도 어렵군.』

       

       젠장. 어쩔 수 없나.

       

       나는 품에서 적석을 꺼내들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적석을 들고 마문을 열어 피신할 수 있었다. 이계로 도망친 뒤 마문을 닫으면, 적들은 우리를 찾을 수 없다. 

       

       하지만 적석을 손에 쥔 나는 고민했다.  

       

       이건 정말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잠시나마 몸을 피하기 위해서나 쓸만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마문은 두 세계를 잇는 쌍방향의 문. 이계로 피신했다가 다시 마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면 여전히 이곳인데, 그건 마지막으로 마문을 열었던 좌표로 바깥쪽 좌표가 고정되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니 당장 죽음이 임박한 절체절명의 위기가 아니라면, 오히려 괜히 들어갔다 나왔다 하며 시간만 낭비하게 되는 것이고,

       

       심지어 우리가 이계로 피신해있는 동안 바깥에서는 병력이 충원된다든가 할 수도 있어서 오히려 상황이 악화될 수도 있는 것이다. 특히 지금처럼 적에게 발각된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는 더더욱. 

       

       ‘하지만, 지금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

       

       나중에 상황이 불리해질지언정 당장 죽지 않는 것이 먼저였으니까. 결심을 마친 내가 적석을 손에 쥐고 마력을 흘려넣으려던 그 때,

       

       „할트(Halt)!“

       

       하고 어딘가에서 크게 외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 소리와 함께 나치 병사들은 모두 사격을 멈추었고, 뿐만 아니라 아예 차렷총 자세로 서서 완전히 총구를 거두었다. 

       

       ‘……뭐지?’

       

       갑자기 사격 중지라고? 적들의 입장에서 지금 우리는 다 잡힌 먹잇감인데, 어째서 굳이 빈틈을 만들어주는 것일까? 달라진 상황변화를 내가 어떻게 해석하기도 전에,

       

       —짝, 짝, 짝…… 

       

       하는 우렁찬 박수 소리와 함께,

       

       „분다바(Wunderbar)-!“

       

       하고 감탄했다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은 공동의 상층부에 걸쳐진 철제 구름다리. 

       

       고개를 들어서 보니 그 난간에 기대어 선 사람은, 검은색 나치 장교복을 입은 30대 중후반의 사내였다. 

       

       나치장교 모자 아래로는 풍성한 금발이 반짝거렸고, 이곳에 있는 모두와 마찬가지로 선글라스 고글을 끼고 있었으며, 몸은 장교복 아래로도 확연히 알 수 있을만큼 근육질이었다. 

       

       나치 장교는 긴 박수를 마치고는, 난간에 손을 걸치고 상체를 숙여 우리를 내려다보며 외쳤다. 

       

       『레러 크로버! 만나서 반갑습니다!』

       

       일본어를 할 줄 아는지, 나치 장교는 나름대로 유창하지만 딱딱한 발음의 일본어를 구사했다. 그런데, 누굴 보고 반갑다는 거지?

       

       “레러는 선생이란 뜻일세.” 

       

       내 옆에서 송병오 녀석이 작게 소근거렸다. 그랗다면 크로버 어쩌구는 아마 구로베 교수의 이름을 제멋대로 발음해서 부른 것 같은데, 구로베 교수를 아는 사람인 걸까?

       

       『침입자들 중 마술의 대가가 있다는 보고를 받고,  혹시나 레러 크로버가 아닐까 기대하고 있었습니다만…… 야 슈팀트! 정답이었군요!』 

       『…….』

       

       하지만 정작 구로베 교수는 나치 장교를 모르는 듯 아무런 대꾸 없이 빤히 노려볼 뿐이었고, 나치 장교는 실수했다는 듯 자신의 이마를 톡톡 두드리고는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아하, 실례! 저의 소개가 늦었습니다.』

       

       나치 장교는 장교모를 벗어, 서양 귀족들이 인사할 때 그러하듯 모자를 든 손을 과장되게 옆으로 펼치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풍성한 금발이 곱슬거렸고 이마가 상당히 후퇴한 M자 탈모가 두드러졌다. 

       

       다시 고개를 든 나치 장교는 미소를 띈 채 말을 이었다. 

       

       『저는 도이츠의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 친위대 산하 유산학술협회 ‘아넨에르베’의 극동 제3지부의 총책임자, 에른스트 로베르트 슈바르츠발트(Ernst Robert Schwarzwald) 중좌입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은 여기까지……!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맛난 저녁 드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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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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