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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3

       아실 프라이덴과의 혼담 이후, 일주일이 지났다. 나와 프란체의 시간은 대부분 카자르의 집에서 보내게 되었다. 

       

       아직 사업으로 만든 상품도 세상으로 나가기 전이라 마땅히 할 게 없었고, 프란체가 참석해야 하는 황실 파티도 열리려면 한참 남았으니.

       

       “그러니까, 이 마법식은 어떻게 푸냐면요…….”

       “오, 이런 거구나. 신기하네.”

       

       탁자에 앉아서 이론을 공부하고 있는 프란체. 카자르도 알려주는 게 즐거운 듯 미소가 번져있었다.

       

       ‘다행히 재밌게 해서 다행이네.’

       

       그동안 내가 할 일은 근처에서 그녀들을 지켜보는 것밖에 없었다. 아직 프란체가 마법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해서 고대 마법서를 가져다줘도 쓸모가 없으니…….

       

       ‘그래도 일단 구해볼까?’

       

       카자르에게 준다면 의미가 있을 거다. 프란체에게 알려주기도 쉬울 거고.

       

       나중에 프란체가 마법에 익숙해지면 이 세계의 히든 피스인 고대 마법서를 찾으러 가는 것도 좋겠지. 어차피 다른 것들도 찾으러 가야 했으니까.

       

       ‘근데 이번 사업이 끝나도…….’

       

       아직 하지 못한 사업이 넘친다. 히든 피스들을 모으러 가는 게 언제가 될지 모르겠군.

       

       한창 공부를 진행하던 카자르와 프란체가 팔을 쭉 뻗으며 기지개를 켰다.

       

       “이제 좀 쉬죠.”

       “그래. 확실히 머리를 쓰니까 힘드네.”

       

       카자르는 그대로 책상에 엎어져 “아아-”거리며 그대로 정신을 놨고, 프란체는 목을 꺾으며 뻐근한 몸을 풀어냈다.

       

       나는 차를 우려내 그녀들에게 가져다주었다.

       

       “고마워.”

       

       프란체는 조용히 향을 음미했고, 카자르는 동그래진 눈으로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차도 끓일 줄 아셨어요?”

       “나는 못 하는 게 없어.”

       “와, 왠지 내가 모든 면에서 진 느낌이야.”

       

       혼자 나랑 승부라도 하고 있던 건가? 쟤도 보면 볼수록 웃기네. 마법을 제외하면 쓸데없는 짓만 골라서 하는 느낌이란 말이지.

       

       부엌을 정리하며 창밖을 바라봤다. 해가 지고 있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공녀님. 이제 돌아가시죠.”

       “벌써? 아직 못 푼 문제가 있는데.”

       

       프란체가 창밖을 바라봤다. 노을이 지고 있는 걸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 벌써 해가 지고 있구나. 시간 가는 줄도 몰랐네.”

       “그럼 바로 마차를 준비하겠습니다.”

       

       나는 마부를 부르러 가기 위해 문을 열었다. 뒤에서 카자르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오늘도 청소해줘서 고마워요!”

       “…나중에는 혼자 청소해.”

       

       쟤는 나를 청소부로 아는 건지, 뭔지. 아무튼. 일단 문을 나와서 눈을 붙이고 있는 마부에게 말했다.

       

       “공작저로 돌아갈 준비를.”

       “예, 예? 예.”

       

       고개를 흔들며 잠을 깨는 마부. 나는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가 프란체를 불렀다.

       

       “이제 가시죠.”

       “그래.”

       

       마차를 타고 공작저로 돌아갔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라 금방 도착했다.

       

       그런데…….

       

       “멈춰라.”

       

       에덴 데카르트와 공작가의 기사들이 무장을 끝마친 상태로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대체 뭔 일이래?

       

       “프란체 데카르트. 이쪽으로 와라.”

       “이게,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요?”

       “지금은 이유를 묻지 말고 말부터 들어라.”

       

       프란체가 힐끔 나를 바라봤다.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해 보여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망설이던 그녀는 에덴의 말을 들어 건너편으로 이동했다.

       

       “진 바렌베르크. 너의 진짜 목적을 말해라.”

       

       무슨 목적이요. 프란체를 제국 최고의 권력자로 만들고 데카르트 공작가의 가주로 만드는 목적을 말하는 건가? 질문의 의도를 모르기에 되물었다.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진 바렌베르크. 내가 모를 거라 생각했나?”

       “그러니까 무엇을 말씀하시는 건지…….”

       

       스릉! 에덴이 검을 뽑아 들자 주변 기사들도 검을 뽑아 들었다. 뭐야, 왜 이래? 너무 당혹스러웠다. 아마 지금 내 감정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있지 않을까?

       

       “바렌베르크 왕국을 재건할 생각이었나? 아니면, 제국에 복수할 생각이었나?”

       

       뭐지. 셀다스도 그렇고, 이 새끼도 그렇고. 내가 왕국을 재건해주길 바라는 건가? 억울하다.

       

       “질문의 의도를 모르겠습니다. 저는 일개 노예일 뿐입니다.”

       

       나는 사실대로 말했다. 애초에 등짝에 노예 각인이 떡하니 새겨져 있는데 뭘 어째?

       

       그러나 내 바람과는 달리 에덴은 더욱더 경계하기 시작했다.

       

       “프란체의 움직임이 이상해진 건 네가 온 뒤부터다. 갑자기 모든 게 바뀌었어. 절대 발을 들이지 않을 사업을 시작한 것도 그렇고, 그토록 바라왔던 혼담도 치밀한 계획까지 세우며 거절했지.”

       

       에덴은 내게 검을 겨누며 말을 이었다.

       

       “프란체를 이용해 무언갈 꾸미고 있는 게 아닌가? 내가 이 정도도 내가 눈치 못 챌 줄 알았나 보지?”

       

       음. 이 상황을 어떻게 빠져나가야 하나. 꼴을 보아하니 내가 해명해도 소용이 없을 거 같은데. 그래도 일단 해보는 편이 좋으려나.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그 어떤 목적도 없고, 공녀님을 이용한 적도 없습니다. 그리고, 제 등에 강력한 노예 각인이 새겨져 있는 건 알고 계실 텐데요.”

       

       내게 새겨진 노예 각인은 평범한 노예 각인이 아니다. 무려 소드 마스터를 억제할 정도의 힘을 가진 노예 각인. 초월 마법사가 아니고서야 이런 각인을 새기는 건 불가능하다.

       

       에덴이 말했다.

       

       “소드 마스터의 오러는 강력하다. 일개 노예 각인 정도야 고통만 참으면 거스를 수 있지. 너는 지금 때를 노리고 기다리는 게 아닌가?”

       

       저건 또 뭔 개소리야. 내가 고통을 참으면서까지 거스를 게 뭐 있다고. 그때. 프란체가 내 곁으로 와 나 대신 해명했다.

       

       “소 공작님! 진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각인의 명령을 거스른 적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일은 제가 주도했고, 제 선택이었습니다! 검을 거두어주세요!”

       

       에덴은 그늘진 얼굴로 프란체를 옆으로 밀쳤다.

       

       “지금은 가만히 있어라. 놈은 너를 부추기며 때를 노리고 있는 거다.”

       

       오, 내가 뒤에서 조종하고 있다는 걸 아예 확정지어 버렸군. 심각한 분위기에, 옆에 있던 프란체가 입술을 머금고 심란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얼굴에 걱정이 가득했다.

       

       ‘어쩔 수 없나.’

       

       나는 감각에 몸을 맡기고 오러를 흘렸다. 후우욱…! 혈류가 뜨겁게 달궈지며 세차게 돌고 있다.

       

       “이것으로 제 결백함을 증명하겠습니다. 부디 제 말을 들어주시길.”

       

       푸른 불꽃이 내 몸을 감싸 안았다. 주변 공기가 가라앉으며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소, 소 공작님! 저놈이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다들 전투 준비!”

       “오러 사용자다! 혼자서 맞붙는 건 불가능해!”

       “진 바렌베르크는 왕국의 정점이었던 기사다! 집중해!”

       

       단체로 패닉 상태가 된 기사들.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고 덜덜 떨리는 손이 눈에 들어왔다. 에덴은 조용히 눈을 얕게 뜨고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진 바렌베르크. 우리에게 이빨을 드러낸 거로 판단해 여기서 처형하겠다.”

       

       화악―! 검붉은 오러가 에덴의 몸을 감싸 안았다. 저놈도 오러를 사용할 줄 알았던 건가? 뭐, 상관없다. 싸울 의도로 오러를 흘린 게 아니니까.

       

       그리고 소드 마스터라고 해서 다 같은 소드 마스터가 아니다. 오러만 사용할 줄 알면 소드 마스터의 경지라고 불리니까. 

       

       소드 마스터의 능력은 각자 천차만별. 감각도, 힘도, 오러 활용도 전부 다르다. 여기서 내가 에덴에게 상처 입을 일은 없다.

       

       ‘공작과 소 공작이 내가 속삭이는 걸 듣지 못한 이유도 이 탓이지.’

       

       우선, 당장의 오해를 풀어야겠지. 나는 싸울 의지가 없다는 걸 알리기 위해 두 팔을 위로 올린 채 소리쳤다.

       

       “반항할 생각은 없습니다!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

       “오러를 활성화한 상태로 할 말인가?”

       “제 얘기를 들어주십시오. 제가 오러를 활성화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쐐액! 에덴이 순간적으로 내 앞에 도달했다. 검을 휘두른다. 오감이 솟아나고 동공이 활성화된다. 검로가 눈에 선하게 보였다. 명백하게 목을 노리고 친 공격. 반사적으로 허리를 숙였다.

       

       후웅! 가공할 만한 풍압이 발생하며 검이 내 머리 위로 스쳐 지나갔다. 나는 흥분한 에덴에게 소리쳤다.

       

       “저는 싸우려는 의도가 아닙니다!”

       “닥쳐라.”

       

       에덴은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나와 에덴의 경지에 압도적인 차이가 있어서인지, 내가 피하는 데 문제는 없었다.

       

       “우선 검을 거두어주십시오!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제국의 적, 데카르트 공작가의 적과 할 말은 없다.”

       

       개 같은 놈아, 제발 말은 좀 들어달라고. 프란체를 괴롭힐 때부터 미친놈인 건 알고 있었다만, 이 정도로 철밥통일 줄은 몰랐다.

       

       내 방어는 계속됐다. 피하는 게 최선이었다. 검을 뽑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정말 돌이킬 수 없기에. 결국에는 이 철밥통 새끼가 내 말을 들어주길 바라야 하는데.

       

       ‘그럴 생각은 전혀 없어 보이네.’

       

       이걸 어쩐다…….

       

       내 몸을 향해 쇄도하는 검날이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 눈동자를 쉴 틈 없이 굴려 가며 검로를 따라갔다. 허리를 숙이고 몸을 비틀었다. 

       

       “그러니까 제 이야기를…!”

       “닥쳐라!”

       

       아오, 개새끼야!

       

       고구마로 산을 이루는 듯한 트럭을 통째로 선사하는 이 새끼를 어찌해야 할까. 미쳐버리겠네.

       

       그러던 그 순간.

       

       “멈추세요!”

       

       프란체가 겁도 없이 앞으로 뛰쳐나와 내 앞을 막아 세웠다. 다행히 검날은 프란체의 목 앞에서 멈췄다. 그럼에도 살짝 베였는지 피가 흘러나왔다.

       

       “물러나라.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나? 진 바렌베르크와 같이 반역자로 처단당하고 싶은 건가?”

       

       저 새끼는 지금 동생 목에 칼이 들어갔는데 저게 할 말인가.

       

       “소 공작님. 우선 침착하세요.”

       “비키라고 말했다.”

       

       프란체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챘는지 고개를 내젓곤 노예 구속구를 꺼냈다.

       

       “각인을 활성화하겠습니다. 경매사의 말로는 다른 각인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강력한 각인이라 했어요. 아무리 소드 마스터라도 해도 이 각인의 고통을 참을 수 없을 거예요.”

       

       프란체가 노예 구속구를 발동시켰다. 치이익- 등이 점점 뜨거워진다. 이내 불타오르는 듯한 고통으로 바뀌었다. 마치 용광로에 넣었던 쇠붙이가 내 전신을 찢어발기는 것만 같았다. 이것도 모자라서 각인의 효과인지, 몸이 마비된 것처럼 움직여지지 않았다.

       

       “끄아아악…!”

       

       원래도 이걸 보여주려고 한 거긴 한데, 진짜 더럽게 아프다! 이런 고통을 참으면서까지 명령을 거스르겠다고? 절대 안 하지.

       

       “꺼어어…….”

       

       나는 바닥에 엎어져 신음을 흘렸다. 이 모습을 확인한 에덴이 그제야 검을 내렸다. 프란체가 말했다.

       

       “보세요. 제가 느낄 정도로 강렬한 오러를 사용하는 데에도 각인에 저항하지 못했습니다. 이 정도면 증명이 된 거 아닌가요? 처음부터 진은 이걸 보여주기 위해서 오러를 사용한 걸 거예요.”

       

       그래, 맞아. 우리 좀 같이 지냈다고 내 의도를 알아챘구나. 나는 감동이야…….

       

       “그리고 지금 명백하게 말하겠습니다. 지금까지의 일은 전부 제가 주도한 것이고, 제가 선택한 거예요. 진은 관계 없습니다!”

       

       프란체의 변호. 에덴은 눈을 얕게 뜨고 그녀의 얼굴을 응시했다.

       

       “…….”

       

       잠시 침묵을 이어가던 에덴이 나를 보며 물었다.

       

       “…노예 각인은 어디서 받은 거지?”

       “제국으로 처음 잡혀 왔을 때 받았습니다…….”

       “각인을 새긴 게 누구지? 기억하고 있나?”

       

       어. 그 마귀할멈은 게임에서도 언급이 거의 없어서 이름은 모르는데. 그냥 역대 최고의 마법사라는 것만 알지.

       

       “이름을 듣진 못했습니다만… 초월 마법사라 불리며 킬킬킬거리는 웃음 소리가 특징인 허리 굽은 노인이었습니다…….”

       

       에덴이 눈살을 찌푸리더니 혀를 찼다.

       

       “…초월 마법사. 그 기분 나쁜 노인네가 새긴 거였군.”

       

       그러더니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다들 검을 집어넣어라. 통제가 가능한 녀석이다. 초월 마법사의 각인이니 무언가 목적이 있다고 해도 의미 없겠지.”

       

       에덴의 말에 얼떨떨하게 검을 집어넣는 기사들. 다들 눈치만 보며 입을 열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사건이 끝나나 싶었는데, 어느 한 기사가 소리쳤다. 

       

       “저 자식은 여기서 처형해야 한다고 봅니다! 소 공작님을 상대로 오러를 내뿜지 않았습니까!”

       

       그는 다름 아닌 내가 이 공작저로 처음 왔을 때, 나한테 뒤지도록 맞은 기사였다. 뒤끝이 강한 놈이었군.

       

       “지금 내 결정에 반발하는 건가?”

       

       에덴의 싸늘한 눈빛이 기사들의 기를 확 죽여버렸다. 그 누구도 이 자리에서 말을 잇지 못했다.

       

       “놈은 벌로써 평생 노예의 삶을 살 거다. 해산하도록.”

       

       할 일이 끝났다는 듯 그대로 등을 보이는 에덴. 철컹, 철컹. 걸을 때마다 그가 입은 갑옷이 사납게 울었다.

       

       ‘무장 한 번 제대로 했네. 소용없을 텐데.’

       

       공작저의 기사들 전체가 달려들어도 내가 질 일은 없다. 진의 기억을 점점 이어받으면서 힘을 사용하는 데 익숙해졌으니까.

       

       에덴이 완전히 떠나고, 기사들이 해산하자 프란체가 내 뺨을 쓰다듬었다.

       

       “미안해, 많이 아팠니?”

       “아닙니다. 그보다 공녀님의 상처가…….”

       

       프란체의 목에 생긴 생채기. 다행히 피는 멎었지만, 흉터가 생길까 걱정이다.

       

       “이건 금방 치료할 수 있단다. 걱정하지 말렴.”

       “…예.”

       “들어가자꾸나.”

       

       저택의 안으로 들어서는 프란체. 나는 그녀를 따라 걸었다.

       

       “…….”

       

       프란체의 목에 생긴 상처를 봐서 그런 것일까. 전신이 불타오르는 듯한 고통을 느낄 때도, 온갖 모욕을 당할 때도 흔들리지 않던 내 마음이 차갑게 식었다.

       

       ‘…뭔가 부글거리는데.’

       

       이상하리만큼 분노를 참을 수 없다. 이 분노는 곧 증오로 바뀌기 시작했다. 얼굴에 경련이 일어나 팔자가 꿈틀거렸다.

       

       ‘계획을 조금 수정해야겠어…….’

       

       언젠가 에덴을 유폐시키는 방향으로.

       

       이건 내가 멋대로 진행한 사소한 복수일 거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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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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